맑은 정신의 도취 상태 는 미치광이...?

Kye Chul Yi2009.05.01
조회98
맑은 정신의 도취 상태 는 미치광이...?

'진정한 바보'는 하나님이 바보라고 말하는 사람,

즉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지혜가 없는 자다.

그러나 '바보처럼 보이는 자'는 다르다.

그들은 세상의 눈에는 어리석어 보이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그렇지 않다.

 

'그리스도를 위한 바보'는 실제로, 문자 그대로 객관적으로

바보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서 바보의 모습을 하고

또 그렇게 대우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이 세상은 어리석게도 가짜 지혜를 가지고 스스로를

지혜롭다 여기기 때문에 하나님의 참 지혜를

어리석은 것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신실한 자는

세상과 절연하고 스스로 어리석음을 짊어져야 한다.

그들이 바로 내가 '바보처럼 보이는 자'(foolbearer)라고

부르는 자들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으로

행동하며 세상에서 당하는 수치를 충성과 영예의 배지로

달고 다니는 자들이다.

 

그리스도를 위한 어리석은 자라는 말은 바울이 고린도에

보낸 편지에 나오는데, 그 대목은 사도가 심오한 역설로서

그리스도인 형제에게 쓴 내용이다.

하지만 이 개념은 그 보다 훨씬 더 오래된 것이다.

다윗 왕은 기쁨이 충만하여 옷이 흘러내리는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 여호와 앞에서 춤을 추다가 아내에게 바보 취급을

당했다. 많은 선지자들도 어떤 시각에서는 미친 짓으로

보이는 행동을 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이사야는 3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돌아다녀야 했고,

예레미아는 목에 나무로 만든 멍에를 건 채 한 세대 동안

웃음거리가 되어야 했으며, 에스겔은 공중 앞에서 배설물울

먹어야 했고, 호세아는 창녀와 결혼해야 했다.

 

바울이 사용한 '바보'(fool)라는 단어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저능아'(moron)라는 단어의 기원이다.

소포클레스가 안티고네의 미친 상태를 일컬을 때 이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는 심히 모욕적인 말이다.

사실 사도 바울 자신도 미치광이라고 비난 받았는데,

아테네의 지식인들로부터, 또한 아그립바 왕 앞에서

로마 총독 베스도로부터 그런 말을 들었다.

 

그러나 이 모든 예는 성경에서 가장 으뜸 가는 '바보처럼

보이는 자'였던 예수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예수님은 자기 가족에게 미치광이로 여겨져 버림받았으며,

결국에는 로마 친위대 앞에 선 채 조롱거리가 되셨다.

세상의 죄를 짊어지기에 앞서 그분은 세상의 어리석음을

짊어지신다. 예수님은 홍포와 가시 면류관과 갈대 홀로

치장되어, 고의적으로 바보 같은 왕의 모습을 한 조롱받는

왕이 된다.

 

그러므로 수없이 많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로욜라의

이그나티우스(Ignatius of Loyola)의 말을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이 젼혀 이상하지 않다.

"우리는 그분에 대한 감사와 사랑의 마음으로 바보로

취급받기를 원해야 하고, 그분의 옷을 입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해야 한다."

 

지배하기 좋아하고 이해타산이 빠른 이 시대에 세상적인

이상형은 항상 남을 주관하는 것이지 책잡히는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한마디로 '그 누구의 바보가 되어서도

안 된다.' 이와 반대로, 그리스도를 위한 바보는 이렇게

말한다. 그 자신의 세상적인 지혜로 인해 미친 상태에

빠진 세상에서, 참된 지혜는 심지어 절망적으로 연약한

상태가 되더라도 '하나님을 위해 미치는 것'이다.

 

즉 '모든 이의 바보'가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버리는 것은 우스운 짓이고, 자기 이익을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며, 자기 보호를 포기하는

것은 부조리한 행위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제자들이

십자가에서 죽은 신인(Son of God)이신 조롱받은

메시아의 제복을 입기 위해서 선택하는 명백한

어리석음이다.

 

그러나 이 어리석음은 기쁨도 없이 찡그린 얼굴을 한

금욕주의의 산물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기쁨이 충만한 얼굴로 죽어간 사람,

고난받으면서도 마음으로는 찬송하며 살다 간 사람들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가 우리를 감동시킨다.

우리의 고난은 그분의 고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며,

그분의 고난은 모두 우리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바보처럼 되는 것은 한마디로 신실함이다.

더 나은 표현으로는, 클레르보의 버나드가 '심각한 게임'

이라고 부른 것이고, 닛사의 그레고리(Gregoriy of nyssa)가

'맑은 정신의 도취 상태'라고 표현한 것인데, 이는

예수님의 복음의 핵심 곧 십자가에서 죽으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옥스포드의 철학자 오스틴 파러(Austin Farrer)는 한때

이렇게 말했다. "만약 예수님이 기꺼이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세상에 보여 주기를 원하신다면,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바보가 되고 우리가 담당한

역할로 인해 구경거리가 되는 것은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니다."

 

오스 기니스(Os Guinness), 소명(The Call)중에서 발췌      

 

 

나는 귀먹은 자같이 듣지 아니하고

I am like a deaf man, who cannot hear,

벙어리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오니

like a mute, who cannot open his mouth;

나는 듣지 못하는 자 같아서

I have become like a man who does not hear,

입에는 변박함이 없나이다

whose mouth can offer no reply.

여호와여 내가 주를 바랐사오니

I wait for you, O LORD;

내 주 하나님이 내게 응락하시리이다

you will answer, O Lord my God.

 

시편 38:1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