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위축가쪽증후군 루게릭병

김영민2009.05.04
조회270

루게릭병

"지금 이 순간, 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운 좋은 사람입니다" 뉴욕 양키스의 4번 타자였던 루 게릭(Lou Gehrig 1903~1941)은 베이브 루스와 함께 양키스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전설적인 선수였다. 통산타율 3할 4푼, 493개의 홈런을 기록한 그는 2,130경기에 연속으로 출장한 철인이기도 했다(이 기록은 56년이 지난 1995년, 볼티모어의 칼 립켄 주니어에 의해 깨졌다). 두 번이나 MVP를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이상이 나타난 것은 1938년이었다.

 

 

근육위축가쪽증후군 루게릭병

"피곤하다. 이유는 모르겠다. 다시 잘 뛸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그 해, 그는 13년만에 처음으로 3할 이하(.295)를 기록하며 시즌을 마친다. 이듬해가 되었을 때 그는 더 이상 야구를 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맨 위에 적힌 말은 1939년 7월 그가 양키 스타디움에서 팬들에게 남긴 은퇴 연설의 한 대목이다. 병원에 간 그에게 내려진 진단명은 '근육위축가쪽경화증'. 훗날 '루게릭병'으로 알려진 이 병의 진행은 전설적인 타자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비가 와서 음식을 삼키지도, 말하지도 못하게 됐고, 더 이상 걸을 수도 없었다. 그에게 남은 시간은 3년이 고작이었다. 1941년 눈을 감았을 때, 그의 나이는 겨우 38세였다. 그의 등 번호 4번은 양키스에서 영구 결번(Retired Number)이 되었다. 그와 함께 등 번호도 은퇴한 것이다. 메이저리그 최초의 일이다.

 

 

근육위축가쪽증후군 루게릭병

루게릭병의 원래 이름은 근육위축가쪽경화증(amyotrophic lateral sclerosis)이다. 여기에서 'a'라는 접두어는 '없다'라는 뜻이다. 'myo'는 근육을 의미한다. 'trophic'은 '영양상태' '육성'이란 뜻이다. 지금까지를 종합하면 '근육이 영양을 잃고 쇠약해진다는 뜻이다'. 'lateral'은 척수의 측면을 말하는데, 여기에는 근육을 움직이는 신경이 위치하고 있다. 'sclerosis'는 '단단하게 됨' '경화증'이라는 뜻. 그러니까 척수의 측면에 건강한 신경이 있는 대신 돌덩어리처럼 된다는 말이다.


근육위축가쪽증후군 루게릭병

 

한마디로 루게릭병은 뇌와 척수에 있는 운동 신경원(neuron)이 손상되는 질환이다. 운동 신경원은 호흡과 연하(삼키기)운동, 그리고 몸의 모든 자발적 움직임을 조절하는 신경계의 단위를 말한다. 운동 신경원에는 두 가지가 있다. 뇌에서 척수로 명령을 전달하는 상부운동신경원(upper motor neuron)이 있고, 척수에서 해당 근육으로 명령을 전달해 근육을 움직이게 만드는 하부운동신경원(lower motor neuron)이 그것이다. 우리 몸의 모든 자발적 움직임은 이 둘의 협력에 의해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주먹을 쥐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먼저 당신의 뇌가 상부운동신경원을 통해 손 근육을 통제하는 부위의 척수로 명령을 전달한다. 그 다음 척수에서 해당 근육으로 신호를 보냄으로써 당신이 주먹을 쥘 수 있는 거다.

 

상부운동신경원이 망가지는 경우, 예컨대 뇌가 망가지면 척수로 명령을 전달하지 못하게 된다. 뇌의 통제에서 벗어난 척수는 자기 마음대로 근육에 명령을 보내고, 근육은 긴장이 지나쳐 경직상태에 이른다. 엄마가 안 계시면 아이가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노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하부운동신경이 망가지면? 척수는 근육에 전혀 명령을 보내지 않게 되고, 근육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아이가 아프면 컴퓨터 게임이고 뭐고, 자리에 누워만 있는 것처럼. 결국 근육은 쇠약해지고, 위축되어 양이 줄어든다. 루게릭병은 상부와 하부의 운동신경원이 다 망가져, 이 두 가지가 동시에 나타나게 된다. 대기만 해도 튈 정도로 무릎반사가 증폭되고, 그와 동시에 근육이 위축된다. 감각이나 인지 능력에는 이상이 없다는 것도 이 병의 특징이다.

 

 

근육위축가쪽증후군 루게릭병

어느 날 갑자기 팔, 다리에 힘이 없어진다. 길을 가다가 푹 쓰러지거나, 손에 힘이 풀려 가벼운 물건조차 들지 못한다. 처음에는 왜 그런지 잘 모른다. "전등을 갈아주다가 힘이 없었고... 그 후에 일어나서 보니까 쓰레기봉투도 못 묶겠어요. 힘이 없어가지고. 저리거나 아픈 건 전혀 없어요. 왜 그러지 왜 그러지 하면서 괜히 불길한 생각이 들더라고." 이건 초기증상에 불과하다. 병은 계속 진행되고, 환자 자신은 서서히 기능을 잃고 있다는 걸 느낀다. "자고 일어나면 어제 말을 들었는데 오늘은 말을 안 듣고. 그러니까 더 무섭죠. 문지방을 분명히 어제까지 넘었는데 오늘은 문지방을 못 넘은 거예요. 그리고 쓰러지고." 결국 씹거나 삼키지도 못하고, 말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다. 우리가 숨을 쉬는 것도 횡경막과 늑간의 근육을 써서 하는 행위. 루게릭병이 진행되면 이것조차 할 수가 없다. 숨을 쉬려면 기관을 절개하고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야 하지만, 이 경우 감염이 문제가 된다. 루게릭병의 사인은 대개 호흡부전이나 폐렴으로, 대개 증상이 발현된 지 3-5년 사이에 죽는다. 하지만 일부 환자는 10년 이상 살기도 하는데, 그 중 한명이 바로 세계적인 천체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ven Hawking) 박사다.

 

 

근육위축가쪽증후군 루게릭병 

근육위축가쪽증후군 루게릭병 


이 병은 인종이나 민족 같은 것에 무관하게 매년 10만명 당 2명의 환자를 발생시킨다. 40-60세가 대부분이라니 올해 마흔셋인 나로서는 어떻게 하면 루게릭 병에 안 걸리나를 고민해야 한다. 문제는 원인을 모른다는 것. 10% 정도는 유전이라지만, 나머지 90%는 유전과 무관하다.

 

그래도 위험요인을 찾아보면 몇 가지가 있는데, 한 가지는 괌 지방에서 먹는 신경독으로, 장기간 먹으면 루게릭병은 물론이고 알츠하이머병에도 잘 걸린단다. 두 번째로 좀 황당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이탈리아 축구 선수들에서 루게릭 병이 일반인보다 다섯 배나 높게 발생했단다 (1970년-2000년 사이 열여덟명이 이 병에 걸렸다). 세 번째로 걸프전에 참전한 군인들에서 루게릭 병의 비율이 높았다. 가족, 친지 중 이 병에 걸린 사람이 없고, 괌에 간 적도 없으며 걸프전에도 참전하지 않았으니 난 안심해도 되는 건가? 그렇지 않다. 이런 사람들에서 좀 더 많이 걸렸다는 것 뿐, 이것들을 피한다고 안 걸리는 건 아니니까. 2005년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1,500명의 환자가 투병 중이며, 외국보다 조금 늦은 55-75세에서 가장 발병률이 높다.

 

 

근육위축가쪽증후군 루게릭병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환자의 말이다. "컴퓨터로 찾아보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땀이 순식간에 흐르더라고요. 그렇게 순식간에 땀을 흘려본 적이 없죠."안타깝게도 이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단지 병의 진행을 느리게 할 수 있는 약만 나와 있을 뿐이다. 릴루졸(riluzole)은 이 병에 대해 FDA의 승인을 받은 최초의 약이다. 일반인에 비해 루게릭병 환자들에서 글루타메이트(glutamate)라는 신경전달물질의 농도가 높다는 게 밝혀졌는데, 동물 실험 결과 글루타메이트는 장기간 노출시 신경원을 파괴시켰다. 그러니 릴루졸로 글루타메이트의 작용을 억제함으로써 병의 진행을 더디게 할 수 있는 거다. 이미 파괴된 신경원을 회복시켜 주지 못하는 게 유감스럽지만.

 

호킹 박사는 21세 때 루게릭병으로 진단된 이후 40년이 넘게 생존해 있다. 전동 휠체어에 앉아 목소리를 내주는 신서사이저에 의지한 채 강연을 하는 호킹 박사의 모습은 한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기간 동안 그는 를 비롯해 수많은 책을 집필했고, 블랙홀과 양자우주론 등 혁명적인 이론들을 정립했다. 호흡도 혼자 하지 못하고, 손가락 몇 개만 움직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병은) 사랑하는 가족들로부터 날 앗아가지 못했으며, 내 일을 방해하지도 못했습니다. 난 운이 좋습니다. 이 병에 걸린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병의 진행이 느린 것도 행운입니다. 하지만 이건 우리가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40년을 넘게 루게릭병과 싸우며 위대한 업적을 이룬 스티븐 호킹의 생애는 충분히 감동적이다. 하지만 호킹 박사와 달리 대부분의 환자들은 3-5년 내 목숨을 잃고, 그 중 일부는 기관절개술을 거부한 채 죽음을 선택한단다. 당장 죽지는 않더라도 이혼을 당하고 가정파탄을 겪는 환자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 병에 대한 연구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다.


근육위축가쪽증후군 루게릭병 

 

근육위축가쪽증후군 루게릭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