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이명박 정권 덕에 벌어지고 있는 한국 현대사에 대한 대중들의 담론 형성처럼, 이제 그만 예술의 절대성과 상대성에 대한 문제도 공감대가 이루어 질 때가 되었는데, 여전히 이 문제는 산으로 가고만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술성의 문제에 있어서 중점이 되는 사항은 이것이 상대적인가 절대적인가, 상대적이라면 어느만큼 상대적이며 절대적이라면 어느정도나 절대적인가, 만약 그것이 절대적이라면 그 절대성을 누가 판단할 것이며, 만약 그것이 상대적이라면 예술성에 대한 평가는 오로지 인기투표식의 상업성에 의해서만 가려질 수 있는 것인가. 와 같은 것들일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예술성의 질적 차이의 우열을 가리는데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 정확한 수치로 표현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술성이란 결국 감동인데, 이 감동이라는 것은 철저히 주관적인 것인데, 이것을 구체적인 데이터로 표현을 할 수가 없는 것인데, 어떻게 그것의 우열을 가릴 수 있겠는가- 하는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오류가 발생을 합니다. 무엇이냐면, 대중들이 어떠한 부분에 있어서는 이 주관적 상대성의 전문성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유럽 축구리그의 선수 별점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반론을 제시를 안합니다. 그런데 영화 평론에는 반론을 제시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축구에 있어서는 뭐가 축구를 잘하는 것인지 잘 아는 사람도 있고 잘 모르는 사람도 있는데, 그중에 잘 아는 사람들이 내리는 평가가 좀 더 객관성에 근접할 것이라고 인정을 하는 것이죠. 사실 이 문제도 결코 쉽지가 않은 것이거든요. 대체 축구를 잘한다- 는 것이 뭐죠? 구체적인 데이터로 표현을 부탁드립니다. 어떻게 해서 골을 넣은 선수보다 그렇지 않은 선수가 평점이 높을 수가 있는 것이죠? 공간을 만든다- 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습니까? 그게 꼭 축구를 잘하는 겁니까? 이렇게 안물어 본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어느 팀이 경기는 잘했는데 골이 안들어가서 졌다. 이런식의 말은 틀렸다. 이렇게 얘기를 안합니다. 그런데 어떤 영화가 관객은 많이 안들어왔지만 잘 만들었다. 이런식의 말은 틀렸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것이죠.
이 문제의 근본은, 대중 예술 문화에 있어서 이 분야를 잘 모르는 사람조차 이것을 향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축구의 경우에는 사실 왠만큼 축구에 애정이 있지 않고서야 집구석에서 저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놀이 구경에 열성을 보이지는 않거든요. 그런데 영화나 음악, 이런것은 그 분야에 애정이 있는 사람들만 향유를 하는게 아니고 평소에는 전혀 관심도 없고 열정도 없는 사람도 때때로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는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죠.
그리고 사실, 이 문제는 그것보다 조금 더 복잡합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 예술성. 이라는 것에 대해서 대중들도 인정을 합니다.
어느 경우에서냐면, 자신들의 감정이 상하지 않을 범위 안에서 인정을 합니다.
작년에 MBC 방송 대상에서 말입니다. 송승헌씨와 김명민씨가 공동 수상을 했습니다. 네티즌들이 난리였죠. 그런데 사실 인기는 송승헌씨가 출연하고 있는 에덴의 동쪽이 더 많았어요. 시청률이 말이죠. 그럼 대중들의 애초 논리대로, 예술성이란 주관적인 것이고 결과적으로 인기에 있어서 평가되는 것이라면 거기서 반발이 나와서는 안되는 거에요. 그런데 대중들도 그건 알거든요. 시청률은 에덴이 높았지만 그것은 기록이고 기억이 아니라는걸 아는거에요. 인기와는 별개의 예술성, 작품성이라는 개념을 인정을 하고 있는 것이죠.
괴물의 경우도 마찬가지고 올드보이도 마찬가지에요. 자신들이 예술성을 알아볼 수가 있는데, 그걸 전문가들이 칭찬을 해주면 막 좋아라해요. 칸 만세. 역시 국제적 예술상. 역시 명작. 이런다고요.
그런데 자신들 눈에는 당췌 뭐가 감동이라는 건지 느껴지지를 않는데 전문가들이 좋다. 이러면 난리가 납니다. 그러고 나서는 아는척을 하는 건방진 애호가들 사기꾼들 쉣더빠까. 이래버리는 것입니다.
일단 여기에서 우리는, 소위 전문가들. 애호가들. 매니아들. 평론가들. 이 주장하고 있는, 대중들은 모르지만 우리는 느껴지는 어떠한 감동. 이라는 것이 과연 실제하는 것인지 조작된 것인지를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이 문제를 풀어내려면, 그것이 조작되었다는 증거- 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몇가지 예를 들자면, 폭력과 섹스가 들어가면 무조건 작품성 있다고 뻥을 친다. 내용이 어렵고 난해하면 자기들은 뭔가 아는것처럼 사기를 친다. 특정 아티스트의 네임벨류에 적합하게 평론을 조작한다. 같은 것들이죠.
그런데, 이러한 조작과 사기. 라는 것을 증명할만한 정황적 증거가 미안하게도 전혀 없습니다. 그럴수가 없는 것이죠.
네이버 영화에 들어가셔서요. 조금만 돌아다니면 답이 금방 나와요. 폭력과 섹스가 들어가도, 어렵고 난해해도, 상당한 명성을 쌓았던 감독이라도, 평론에서 완전히 까이는 경우는 수도없이 많습니다. 도무지 음모라 할만한 증거가 없어요.
심지어는, 예술영화에 대한 오해. 같은 신랄한 평도 있고요. 저도 그 영화 봤는데, 꽤나 난해한척 만들어 놨더라구요. 그것은 있는척 하는것이지 예술성이 있는것은 전혀 아니죠.
또 이런식의 음모론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평론가들 사이에서 모종의 협의가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가 있어야 됩니다. 매달 한번씩 단합하는 회의가 있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그게 아니라면 각개전투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의견에 어떠한 공통점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사기다. 음모다. 라고 말할수가 없는 것이죠. 마치 촛불집회의 배후를 의심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없는 음모론입니다.
평론이라는 것은 절대로 어떠한 이미지를 가지고 하는 작업이 아닙니다. 이를테면 작년에 태양의 앨범이 꽤 좋은 평가를 받았었죠. 반면 빅뱅 앨범은 좋은 평가를 못받았구요. 이게 다 사기라면 도대체 무슨 의도로 '아이돌'이라는 이미지가 있는 동일한 아티스트에게 서로다른 평가를 내리겠어요, 이미지에 부합하는 평가라면 태양의 앨범도 혹평을 받았어야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평론이라던가 애호가들의 평가라는 것이 절대적인 객관성을 가진다는 말을 아닙니다. 그건 오해에요.
평론가들도 주관성이 있고 취향이 있고 관점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비틀즈가 위대하냐 롤링 스톤즈가 위대하냐. 둘중에 누가 더 낫냐. 혹은 비틀즈 앨범중에 최고 앨범이 뭐냐. 이정도의 주관성은 존재를 합니다.
그런데 서태지가 위대하냐 문희준이 위대하냐. 이런질문은 성립자체가 안되는 것이죠. 그건 불가능한 질문이에요.
예술에 있어서의 보편성이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대중들 사이에서 많은 혼란과 갈등이 있는것은 그 분야에 대한 대중 사회의 수준이 아직 덜 올라온 것이라고 보셔야 됩니다.
그러니까, 진달래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이러면, 어느정도 교육받지 못한 사람은 이걸 절대 이해를 못해요. 도대체 말이 되는 표현이냐. 그런데 일정한 선을 넘어온 사람들은, 아 정말 슬픈 표현이다. 이런다고요.
제 친구의 할머니는 서태지랑 신해철을 구분을 못합니다. 똑같대요. 그런데 그 둘이 음악이 똑같나요? 달라도 너무 다르죠. 그럼 서태지랑 신해철의 음악은 똑같을 수도 있고 다를수도 있는가, 하면 절대로 그런것이 아니고 그걸 듣는 사람이 그것의 감동과 수준과 가치를 판단할만한 경험치를 쌓았는가. 보는눈과 듣는귀가 있는가. 그동안 애정을 가지고 그 예술적 오브제를 즐겨왔는가. 를 봐야하는 것이죠. 왜냐하면, 제 친구의 할머니도 락을 좋아하고 2~3년만 즐겨보시면 아, 서태지랑 신해철은 달라도 너무 다르구나. 라고 말할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건 주관성이 아니라 수준의 차이죠.
박쥐는 좋은 영화입니다.
왜냐하면 예술적 감동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예술적 감동에 대해서 영화의 깊이와 질적 차이와 창의적 가치를 잘 아는 사람들이 인정했기 때문에 좋은 영화입니다.
물론 이 얘기는, 박쥐를 욕해서는 안된다- 라거나 박쥐는 꼭 봐야만한다- 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박쥐를 재미없다고 말할 권리가 있습니다.
다만 영화를 사랑하고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쏟아내는 평가들에 대해 그것은 모두 사기고 거짓말이라고 말하는, 사기와 거짓말을 일삼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사실 현대 한국 사회의 대중들이 왜 그렇게 예술적 품위에 목숨을 거는지 이해가 잘 안됩니다.
문희준은 인기있는 아티스트입니다. 앨범도 많이 팔리고 돈도 많이 벌고요. 물론 애호가들이 인정하는 아티스트는 아니죠. 산울림이나 들국화처럼 역사적으로 기억되지도 않을 것이고요. 그래서 그러면 안됩니까?
작품성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고 많이 팔리는 음악을 만들어라- 라고 큰 소리로 외치는 대중들이, 그 음악은 작품성이 없다. 라고 하면 아주 화를 내는 것입니다. 중요하지 않다고 했잖아요?
저는 예술가들이 안스럽습니다.
칸에서 상 좀 타면 뭐합니까.
박찬욱, 김기덕, 홍상수, 이런 이름들은 지구상에서 영화라는 예술이 사라지지 않는한은 영원히 역사에 남을 겁니다. 후대에도 여전히 이들의 영화를 사랑하고 보고 공부하고 기억하겠죠. 그래서 그러면 뭐합니까? 돈이 안되는데.
지금 대중들은 예술가들이 현세에서 그나마 누릴 수 있는 명성과 품위 마저도 돈이 많고 부자인, 역사적으로는 전혀 이름이 남지 않겠지만 어쨌든 상업적으로 많이 파는 예술가들에게 몰아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문희준이 불쌍합니까? 돈이 많잖아요. 정말 불쌍한건 홍대에서 죽을 똥 싸가면서 음악하는 사람들이죠. 애호가들 한테야 사랑받고 역사와 후대가 이름을 기억해 주겠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 배가 고픈데.
그냥 좀 내버려 두세요.
칸이 러시아에 달렸는지 프랑스에 달렸는지도 모르고 무슨 상이 있는지 전에 어떤 영화가 상을 탔는지 전혀 관심도 없고 애정도 없고 악플한번 달고나면 '영화' 라고는 잊고 살거면서 칸에서 상좀 탔다고 잘난척하는 쓰레기들 이라고 말하지 마시라고요.
정말 취향의 일갈이 아닌, 영화의 미적 가치와 재미와 감동에 대해 평- 하고 싶으시면 그만큼 영화를 사랑하고 관심을 가지고 많이 보고 글을 읽고 글을 쓰고 인문학을 배우고 연출의도와 주제와 미학적 가치를 느끼는 재미를 조금씩 쌓으시면 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샌가 박쥐의 편을 들고있는 자신을 발견하게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지금 영화, 라는 예술세계를 지탱하고있는 감독과 평론가를 비롯한 영화에 빠져있는 모든 사람들도 똑같은 과정을 거쳤으니까요.
박쥐와 예술의 상대성에 대한 반론
또 난리도 아닙니다.
괴물때의 김기덕 발언도 그랬고, 디워때는 절정이었고요.
최근에 이명박 정권 덕에 벌어지고 있는 한국 현대사에 대한 대중들의 담론 형성처럼, 이제 그만 예술의 절대성과 상대성에 대한 문제도 공감대가 이루어 질 때가 되었는데, 여전히 이 문제는 산으로 가고만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술성의 문제에 있어서 중점이 되는 사항은 이것이 상대적인가 절대적인가, 상대적이라면 어느만큼 상대적이며 절대적이라면 어느정도나 절대적인가, 만약 그것이 절대적이라면 그 절대성을 누가 판단할 것이며, 만약 그것이 상대적이라면 예술성에 대한 평가는 오로지 인기투표식의 상업성에 의해서만 가려질 수 있는 것인가. 와 같은 것들일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예술성의 질적 차이의 우열을 가리는데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 정확한 수치로 표현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술성이란 결국 감동인데, 이 감동이라는 것은 철저히 주관적인 것인데, 이것을 구체적인 데이터로 표현을 할 수가 없는 것인데, 어떻게 그것의 우열을 가릴 수 있겠는가- 하는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오류가 발생을 합니다. 무엇이냐면, 대중들이 어떠한 부분에 있어서는 이 주관적 상대성의 전문성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유럽 축구리그의 선수 별점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반론을 제시를 안합니다. 그런데 영화 평론에는 반론을 제시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축구에 있어서는 뭐가 축구를 잘하는 것인지 잘 아는 사람도 있고 잘 모르는 사람도 있는데, 그중에 잘 아는 사람들이 내리는 평가가 좀 더 객관성에 근접할 것이라고 인정을 하는 것이죠. 사실 이 문제도 결코 쉽지가 않은 것이거든요. 대체 축구를 잘한다- 는 것이 뭐죠? 구체적인 데이터로 표현을 부탁드립니다. 어떻게 해서 골을 넣은 선수보다 그렇지 않은 선수가 평점이 높을 수가 있는 것이죠? 공간을 만든다- 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습니까? 그게 꼭 축구를 잘하는 겁니까? 이렇게 안물어 본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어느 팀이 경기는 잘했는데 골이 안들어가서 졌다. 이런식의 말은 틀렸다. 이렇게 얘기를 안합니다. 그런데 어떤 영화가 관객은 많이 안들어왔지만 잘 만들었다. 이런식의 말은 틀렸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것이죠.
이 문제의 근본은, 대중 예술 문화에 있어서 이 분야를 잘 모르는 사람조차 이것을 향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축구의 경우에는 사실 왠만큼 축구에 애정이 있지 않고서야 집구석에서 저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놀이 구경에 열성을 보이지는 않거든요. 그런데 영화나 음악, 이런것은 그 분야에 애정이 있는 사람들만 향유를 하는게 아니고 평소에는 전혀 관심도 없고 열정도 없는 사람도 때때로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는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죠.
그리고 사실, 이 문제는 그것보다 조금 더 복잡합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 예술성. 이라는 것에 대해서 대중들도 인정을 합니다.
어느 경우에서냐면, 자신들의 감정이 상하지 않을 범위 안에서 인정을 합니다.
작년에 MBC 방송 대상에서 말입니다. 송승헌씨와 김명민씨가 공동 수상을 했습니다. 네티즌들이 난리였죠. 그런데 사실 인기는 송승헌씨가 출연하고 있는 에덴의 동쪽이 더 많았어요. 시청률이 말이죠. 그럼 대중들의 애초 논리대로, 예술성이란 주관적인 것이고 결과적으로 인기에 있어서 평가되는 것이라면 거기서 반발이 나와서는 안되는 거에요. 그런데 대중들도 그건 알거든요. 시청률은 에덴이 높았지만 그것은 기록이고 기억이 아니라는걸 아는거에요. 인기와는 별개의 예술성, 작품성이라는 개념을 인정을 하고 있는 것이죠.
괴물의 경우도 마찬가지고 올드보이도 마찬가지에요. 자신들이 예술성을 알아볼 수가 있는데, 그걸 전문가들이 칭찬을 해주면 막 좋아라해요. 칸 만세. 역시 국제적 예술상. 역시 명작. 이런다고요.
그런데 자신들 눈에는 당췌 뭐가 감동이라는 건지 느껴지지를 않는데 전문가들이 좋다. 이러면 난리가 납니다. 그러고 나서는 아는척을 하는 건방진 애호가들 사기꾼들 쉣더빠까. 이래버리는 것입니다.
일단 여기에서 우리는, 소위 전문가들. 애호가들. 매니아들. 평론가들. 이 주장하고 있는, 대중들은 모르지만 우리는 느껴지는 어떠한 감동. 이라는 것이 과연 실제하는 것인지 조작된 것인지를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이 문제를 풀어내려면, 그것이 조작되었다는 증거- 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몇가지 예를 들자면, 폭력과 섹스가 들어가면 무조건 작품성 있다고 뻥을 친다. 내용이 어렵고 난해하면 자기들은 뭔가 아는것처럼 사기를 친다. 특정 아티스트의 네임벨류에 적합하게 평론을 조작한다. 같은 것들이죠.
그런데, 이러한 조작과 사기. 라는 것을 증명할만한 정황적 증거가 미안하게도 전혀 없습니다. 그럴수가 없는 것이죠.
네이버 영화에 들어가셔서요. 조금만 돌아다니면 답이 금방 나와요. 폭력과 섹스가 들어가도, 어렵고 난해해도, 상당한 명성을 쌓았던 감독이라도, 평론에서 완전히 까이는 경우는 수도없이 많습니다. 도무지 음모라 할만한 증거가 없어요.
심지어는, 예술영화에 대한 오해. 같은 신랄한 평도 있고요. 저도 그 영화 봤는데, 꽤나 난해한척 만들어 놨더라구요. 그것은 있는척 하는것이지 예술성이 있는것은 전혀 아니죠.
또 이런식의 음모론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평론가들 사이에서 모종의 협의가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가 있어야 됩니다. 매달 한번씩 단합하는 회의가 있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그게 아니라면 각개전투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의견에 어떠한 공통점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사기다. 음모다. 라고 말할수가 없는 것이죠. 마치 촛불집회의 배후를 의심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없는 음모론입니다.
평론이라는 것은 절대로 어떠한 이미지를 가지고 하는 작업이 아닙니다. 이를테면 작년에 태양의 앨범이 꽤 좋은 평가를 받았었죠. 반면 빅뱅 앨범은 좋은 평가를 못받았구요. 이게 다 사기라면 도대체 무슨 의도로 '아이돌'이라는 이미지가 있는 동일한 아티스트에게 서로다른 평가를 내리겠어요, 이미지에 부합하는 평가라면 태양의 앨범도 혹평을 받았어야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평론이라던가 애호가들의 평가라는 것이 절대적인 객관성을 가진다는 말을 아닙니다. 그건 오해에요.
평론가들도 주관성이 있고 취향이 있고 관점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비틀즈가 위대하냐 롤링 스톤즈가 위대하냐. 둘중에 누가 더 낫냐. 혹은 비틀즈 앨범중에 최고 앨범이 뭐냐. 이정도의 주관성은 존재를 합니다.
그런데 서태지가 위대하냐 문희준이 위대하냐. 이런질문은 성립자체가 안되는 것이죠. 그건 불가능한 질문이에요.
예술에 있어서의 보편성이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대중들 사이에서 많은 혼란과 갈등이 있는것은 그 분야에 대한 대중 사회의 수준이 아직 덜 올라온 것이라고 보셔야 됩니다.
그러니까, 진달래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이러면, 어느정도 교육받지 못한 사람은 이걸 절대 이해를 못해요. 도대체 말이 되는 표현이냐. 그런데 일정한 선을 넘어온 사람들은, 아 정말 슬픈 표현이다. 이런다고요.
제 친구의 할머니는 서태지랑 신해철을 구분을 못합니다. 똑같대요. 그런데 그 둘이 음악이 똑같나요? 달라도 너무 다르죠. 그럼 서태지랑 신해철의 음악은 똑같을 수도 있고 다를수도 있는가, 하면 절대로 그런것이 아니고 그걸 듣는 사람이 그것의 감동과 수준과 가치를 판단할만한 경험치를 쌓았는가. 보는눈과 듣는귀가 있는가. 그동안 애정을 가지고 그 예술적 오브제를 즐겨왔는가. 를 봐야하는 것이죠. 왜냐하면, 제 친구의 할머니도 락을 좋아하고 2~3년만 즐겨보시면 아, 서태지랑 신해철은 달라도 너무 다르구나. 라고 말할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건 주관성이 아니라 수준의 차이죠.
박쥐는 좋은 영화입니다.
왜냐하면 예술적 감동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예술적 감동에 대해서 영화의 깊이와 질적 차이와 창의적 가치를 잘 아는 사람들이 인정했기 때문에 좋은 영화입니다.
물론 이 얘기는, 박쥐를 욕해서는 안된다- 라거나 박쥐는 꼭 봐야만한다- 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박쥐를 재미없다고 말할 권리가 있습니다.
다만 영화를 사랑하고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쏟아내는 평가들에 대해 그것은 모두 사기고 거짓말이라고 말하는, 사기와 거짓말을 일삼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사실 현대 한국 사회의 대중들이 왜 그렇게 예술적 품위에 목숨을 거는지 이해가 잘 안됩니다.
문희준은 인기있는 아티스트입니다. 앨범도 많이 팔리고 돈도 많이 벌고요. 물론 애호가들이 인정하는 아티스트는 아니죠. 산울림이나 들국화처럼 역사적으로 기억되지도 않을 것이고요. 그래서 그러면 안됩니까?
작품성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고 많이 팔리는 음악을 만들어라- 라고 큰 소리로 외치는 대중들이, 그 음악은 작품성이 없다. 라고 하면 아주 화를 내는 것입니다. 중요하지 않다고 했잖아요?
저는 예술가들이 안스럽습니다.
칸에서 상 좀 타면 뭐합니까.
박찬욱, 김기덕, 홍상수, 이런 이름들은 지구상에서 영화라는 예술이 사라지지 않는한은 영원히 역사에 남을 겁니다. 후대에도 여전히 이들의 영화를 사랑하고 보고 공부하고 기억하겠죠. 그래서 그러면 뭐합니까? 돈이 안되는데.
지금 대중들은 예술가들이 현세에서 그나마 누릴 수 있는 명성과 품위 마저도 돈이 많고 부자인, 역사적으로는 전혀 이름이 남지 않겠지만 어쨌든 상업적으로 많이 파는 예술가들에게 몰아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문희준이 불쌍합니까? 돈이 많잖아요. 정말 불쌍한건 홍대에서 죽을 똥 싸가면서 음악하는 사람들이죠. 애호가들 한테야 사랑받고 역사와 후대가 이름을 기억해 주겠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 배가 고픈데.
그냥 좀 내버려 두세요.
칸이 러시아에 달렸는지 프랑스에 달렸는지도 모르고 무슨 상이 있는지 전에 어떤 영화가 상을 탔는지 전혀 관심도 없고 애정도 없고 악플한번 달고나면 '영화' 라고는 잊고 살거면서 칸에서 상좀 탔다고 잘난척하는 쓰레기들 이라고 말하지 마시라고요.
정말 취향의 일갈이 아닌, 영화의 미적 가치와 재미와 감동에 대해 평- 하고 싶으시면 그만큼 영화를 사랑하고 관심을 가지고 많이 보고 글을 읽고 글을 쓰고 인문학을 배우고 연출의도와 주제와 미학적 가치를 느끼는 재미를 조금씩 쌓으시면 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샌가 박쥐의 편을 들고있는 자신을 발견하게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지금 영화, 라는 예술세계를 지탱하고있는 감독과 평론가를 비롯한 영화에 빠져있는 모든 사람들도 똑같은 과정을 거쳤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