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종태 열사의 첫 추모집회가 4일 오후 7시 송암공단 안 대한통운 광주지사 앞에서 열렸다.
고 박종태 열사의 자결 소식에 광주전남지역 노동·시민사회가 크게 분노했다. 금호그룹과 대한통운을 향한 지역사회의 분노는 반드시 지금의 투쟁을 승리로 맺는 것이 열사의 뜻이라며 5월투쟁의 발화점이 될 것임을 기자회견을 통해 선언했다. 그리고 첫 추모대회는 말그대로 '눈물'의 추모집회가 되었다.
4일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투쟁방침을 결정했던 민주노총 광주본부와 시민사회진영은 오후에 추모집회를 열었다. 오후 7시 송암공단 안 대한통운 광주지사 앞에서는 광주와 전남의 각지에서 온 노동자 시민 3백여명이 추모대회에 참석했다. 손에손에 촛불을 들고 촛불문화제 형식으로 치러진 추모대회는 무대에 선 발언자들이 금호그룹과 대한통운에 대한 격한 분노를 드러내는 한편 말을 잇지 못할 정도의 눈물로 해서 울음바다가 되었다.
집회 참가자들의 무거운 모습과 눈에 띄며 시간이 갈수록 참가자는 점점 불어났다.
김현석 민주노총 광주본부 부본부장의 사회로 치러진 이날 추모대회는 열사에 대한 묵념에 이어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시작되었다. 강승철 민주노총 광주본부장이 첫 발언자로 나서서 "고 박종태 동지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자"면서 "12일 동안의 고공단식농성 이후 현재 몸이 따르지 않지만 빨리 추슬러 동지들과 함께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다짐했다.
12일 동안의 단식농성으로 초췌했지만 열사의 뜻을 이어 "투쟁의 승리를 확신하며 몸을 추슬러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서 화물연대 소속 삼성분회 노동자는 "2004년 고 박종태 동지를 삼성자본과의 투쟁 때 처음 만났다"며 열사의 삶을 회고하면서 금호그룹과 대한통운에 대한 격정적인 분노의 감정을 드러내며 "기어이 택배노동자를 직장으로 돌려보내 승리로 답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또 다른 화물연대 노동자는 발언 도중 흘러내리는 눈물과 격한 감정으로 해서 미처 말을 다 잇지 못하고 구호로 정리했다.
자본의 추악한 행태를 고발하며 분노를 격렬하게 표출하고 있는 화물연대 삼성분회 노동자.
솟구치는 감정과 눈물로 인해 말을 잇지 못하는 또다른 화물연대 소속 노동자.
이어진 고 박종태 열사가 남긴 유서를 고미경씨가 대신 읽었다. 동지들에게 남겼던 유서 가운데 1가지였다. 고미경씨는 유서를 읽는 동안 하염없이 쏟아져내리는 눈물을 계속 닦아내며 읽어내려갔다. 유서가 읽혀지는 동안 추모대회에 참석했던 많은 분들이 저절로 쏟아져나오는 눈물을 닦아내거나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유서낭독을 들었다.
故 박종태 열사가 동지들에게 남긴 유서를 읽고 있는 고미경씨. 내내 눈물을 닦아내며 읽어야했다.
추모대회 내내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던 한 여성(왼쪽)과 끝까지 솟구치는 눈물을 참지 못하는 고미경씨.
시간이 갈수록 주위는 점점 어두워져갔고 어둠이 짙어져 갈수록 촛불은 더욱 밝은 빛을 뿜어냈다. 이것이 촛불이 가진 매력이자 힘일 것이다. 추모대회가 열린 도로 바로 옆으로는 끊임없이 차량이 달려갔고 촛불의 빛은 오히려 더 현란하게 밝혀졌다.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추모대회 참석자들의 옆으로 버스를 비롯한 차량이 끊임없이 지나다녔다.
어둠이 짙어갈수록 반비례하여 촛불은 점점 더 밝아졌다.
강기수 민주노동당 광주시당 위원장은 "고 박종태 열사도 우리 당원이다"며 "전 당원의 힘을 모아 이 투쟁을 반드시 승리하도록 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뒤이어 김범종 건설노조 조합원은 화물연대와 같은 특수고용비정규직노동자의 삶을 고발했다. 그는 "정부는 자영업자라고 하지만 엄연히 비정규직 노동자"라며 헛점을 밝히면서 "운송비, 기름값 등 정부와 기업이 합의하지 않는 한 점점 더 살기 어려워지는 게 특수고용비정규직노동자의 현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함께 살자"는 구호가 붙은 기아차 노동자와 어디 배후인지 모르지만 '배후'임을 주장하는 분의 뒷모습.
열사를 추모하는 노래도 불려졌다. 여성의 노래는 애잔하고 가슴 아프게 참석자들에게 파고들었고, 남성의 노래는 열사의 뜻을 이어 힘찬 투쟁을 결의를 돋우는 노래였다. 한껏 구슬픈 노래로 추모의 뜻을 전한 뒤 울고 슬프하며 주저앉아서 열사의 뜻을 이어갈 수 없다며 힘찬 투쟁을 불러일으키는 듯했다.
힘찬 투쟁의 노래로 참석자들이 슬픔을 떨치고 투쟁의 결의를 높이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마지막으로 참석자를 모두 일으켜세운 뒤 동지가를 부르며 추모대회를 맺었다. 5일인 어린이날에도 로케트전기 해고노동자들의 원직복직을 위한 촛불문화제는 옛 도청 앞에서 열기로 결정되었다. 어린이날인 점을 생각해 일정을 취소하는 것이 것이 원래 계획이었지만 박종태 열사의 죽음 앞에서 투쟁을 멈출 수 없다는 절박함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분노… 눈물… 투쟁… "故 박종태 열사 추모대회"
고 박종태 열사의 첫 추모집회가 4일 오후 7시 송암공단 안 대한통운 광주지사 앞에서 열렸다.
고 박종태 열사의 자결 소식에 광주전남지역 노동·시민사회가 크게 분노했다. 금호그룹과 대한통운을 향한 지역사회의 분노는 반드시 지금의 투쟁을 승리로 맺는 것이 열사의 뜻이라며 5월투쟁의 발화점이 될 것임을 기자회견을 통해 선언했다. 그리고 첫 추모대회는 말그대로 '눈물'의 추모집회가 되었다.
대열 앞쪽은 박종태 열사의 영정사진을 들고, 끌어안고 있었다. 진지하게 메모하며 집회를 지켜보는 김병균 목사(오른쪽).
4일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투쟁방침을 결정했던 민주노총 광주본부와 시민사회진영은 오후에 추모집회를 열었다. 오후 7시 송암공단 안 대한통운 광주지사 앞에서는 광주와 전남의 각지에서 온 노동자 시민 3백여명이 추모대회에 참석했다. 손에손에 촛불을 들고 촛불문화제 형식으로 치러진 추모대회는 무대에 선 발언자들이 금호그룹과 대한통운에 대한 격한 분노를 드러내는 한편 말을 잇지 못할 정도의 눈물로 해서 울음바다가 되었다.
집회 참가자들의 무거운 모습과 눈에 띄며 시간이 갈수록 참가자는 점점 불어났다.
김현석 민주노총 광주본부 부본부장의 사회로 치러진 이날 추모대회는 열사에 대한 묵념에 이어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시작되었다. 강승철 민주노총 광주본부장이 첫 발언자로 나서서 "고 박종태 동지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자"면서 "12일 동안의 고공단식농성 이후 현재 몸이 따르지 않지만 빨리 추슬러 동지들과 함께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다짐했다.
12일 동안의 단식농성으로 초췌했지만 열사의 뜻을 이어 "투쟁의 승리를 확신하며 몸을 추슬러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서 화물연대 소속 삼성분회 노동자는 "2004년 고 박종태 동지를 삼성자본과의 투쟁 때 처음 만났다"며 열사의 삶을 회고하면서 금호그룹과 대한통운에 대한 격정적인 분노의 감정을 드러내며 "기어이 택배노동자를 직장으로 돌려보내 승리로 답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또 다른 화물연대 노동자는 발언 도중 흘러내리는 눈물과 격한 감정으로 해서 미처 말을 다 잇지 못하고 구호로 정리했다.
자본의 추악한 행태를 고발하며 분노를 격렬하게 표출하고 있는 화물연대 삼성분회 노동자.
솟구치는 감정과 눈물로 인해 말을 잇지 못하는 또다른 화물연대 소속 노동자.
이어진 고 박종태 열사가 남긴 유서를 고미경씨가 대신 읽었다. 동지들에게 남겼던 유서 가운데 1가지였다. 고미경씨는 유서를 읽는 동안 하염없이 쏟아져내리는 눈물을 계속 닦아내며 읽어내려갔다. 유서가 읽혀지는 동안 추모대회에 참석했던 많은 분들이 저절로 쏟아져나오는 눈물을 닦아내거나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유서낭독을 들었다.
故 박종태 열사가 동지들에게 남긴 유서를 읽고 있는 고미경씨. 내내 눈물을 닦아내며 읽어야했다.
추모대회 내내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던 한 여성(왼쪽)과 끝까지 솟구치는 눈물을 참지 못하는 고미경씨.
시간이 갈수록 주위는 점점 어두워져갔고 어둠이 짙어져 갈수록 촛불은 더욱 밝은 빛을 뿜어냈다. 이것이 촛불이 가진 매력이자 힘일 것이다. 추모대회가 열린 도로 바로 옆으로는 끊임없이 차량이 달려갔고 촛불의 빛은 오히려 더 현란하게 밝혀졌다.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추모대회 참석자들의 옆으로 버스를 비롯한 차량이 끊임없이 지나다녔다.
어둠이 짙어갈수록 반비례하여 촛불은 점점 더 밝아졌다.
강기수 민주노동당 광주시당 위원장은 "고 박종태 열사도 우리 당원이다"며 "전 당원의 힘을 모아 이 투쟁을 반드시 승리하도록 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뒤이어 김범종 건설노조 조합원은 화물연대와 같은 특수고용비정규직노동자의 삶을 고발했다. 그는 "정부는 자영업자라고 하지만 엄연히 비정규직 노동자"라며 헛점을 밝히면서 "운송비, 기름값 등 정부와 기업이 합의하지 않는 한 점점 더 살기 어려워지는 게 특수고용비정규직노동자의 현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함께 살자"는 구호가 붙은 기아차 노동자와 어디 배후인지 모르지만 '배후'임을 주장하는 분의 뒷모습.
열사를 추모하는 노래도 불려졌다. 여성의 노래는 애잔하고 가슴 아프게 참석자들에게 파고들었고, 남성의 노래는 열사의 뜻을 이어 힘찬 투쟁을 결의를 돋우는 노래였다. 한껏 구슬픈 노래로 추모의 뜻을 전한 뒤 울고 슬프하며 주저앉아서 열사의 뜻을 이어갈 수 없다며 힘찬 투쟁을 불러일으키는 듯했다.
힘찬 투쟁의 노래로 참석자들이 슬픔을 떨치고 투쟁의 결의를 높이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마지막으로 참석자를 모두 일으켜세운 뒤 동지가를 부르며 추모대회를 맺었다. 5일인 어린이날에도 로케트전기 해고노동자들의 원직복직을 위한 촛불문화제는 옛 도청 앞에서 열기로 결정되었다. 어린이날인 점을 생각해 일정을 취소하는 것이 것이 원래 계획이었지만 박종태 열사의 죽음 앞에서 투쟁을 멈출 수 없다는 절박함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열사를 추모하면서 동시에 투쟁을 다짐하는 <동지가>를 부르며 추모대회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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