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에 미흡하고 글이 매끄럽지않으나 한분이라도 읽어주셨으면 하는 바램에 글을 올려봅니다 진리-우리가 진실이라 부름에 더 익숙한말서론고린도전서 1: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함이 사람의 강함보다 더 강합니다.아주 오랜 고대에서부터 철학(사유의 문제에 대한 물음)은 시작되어왔습니다.그것은 자신들의 삶에대한 변론, 반박, 변증과, 반증의 연속이었으며이들중 반증과 반박은 항상 철학 사유흐름에 가장 구심점 역할을 차지해 왔습니다.자신의 사유(자신이 진실이라 생각하는것)과 타인의 진실에 대한 의혹과 의심, 그것은 끊임없이 반증과 반박이라는 양날검에 의해 베이고 갈려왔고 이것이 계속되어 현대에 이르러 서는 철학이라는 거대한 성을 쌓아냈습니다.그런데...한가지 묻고싶습니다....진실은 발견 되었습니까? 본론1.Before Christ(B.C)시대를 지나서도 2000년이 넘는 시대동안정답을 탐구하는자들의 생명이 끊임없이 흘러지나가왔고 지금 이순간도 흘러 지나가고 있습니다.그런데 그 길고 길었던 시간동안 절대적인 흠없는 정답은 밝혀졌습니까?세기당 최소 한명으로 잡아도 20명이 자신의 전삶을 진실의 정립에 다 바쳐왔음에도 불구하고 오류없는 진실론(진리)는 아직 발견되지 못하지 않았습니까?여기서 우리는 왜? 라는 질문을 한번 던져보아야할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저는 아직도 정답이 밝혀지지않은 원인을 인간의 인식력의 한계로 규정짖고 싶습니다.사람이 끊임없이 자신의 주위에것을 인식하며 자신의 세계관을 정립해가듯..철학 사유에서 정답의 도출.... 이것은 사람의 머리의 지식과 배경경험, 지능, 감성 에서 나오는 이 것은 어디 까지나 사람의 두뇌 수준에서 나올수 밖에 없다고생각합니다.자신의 인식의 수준을 넘는것에대해 어떻게 그 원리와 깊이를 깨닿겠습니다 예를 들어보자면 어린아이가 아무리 100미터를 13초 12초 안에 뛰지못하는것과 체게바라전집 혹은 전쟁과 평화 와 같은 책을 손에 쥐어주더라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것과 같습니다.그런데도 매우 흥미로운 사실은이런 제한적인 지식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의 진실에 관한 세상의 모든것들을 이해했다고 주장하는 사견(私見)들이 서로간 끊임없이 대립해 왔다는 것입니다.그러한 대립은 항상 어김없이 상대가 부정되어야 자신의 존재성이 입증되는 배타성을 갖고 있었으며 이러한 대립된 사상의 존재 사실만으로도 '절대적이고 완벽한 그어떤' 이라는 명제는 그 자신의 존부가 위협받기에 매우 충분했습니다. 2.권투경기는 상대를 쓰러경기로 상대를 쓰러뜨려야 자신의 승리가 인정 됩니다.이처럼 철학사유도 상대의 논재의 흠을 파악하고 그것을 파헤쳐 상대를 무너 뜨림으로써 자신의 존재 정당성을 인정 받아왔습니다.또한 여러분은 "장님과 코끼리" 예기를아실것입니다.만져지는 데로 느껴지는 데로 그것이 코끼리의 형상이라고 규정했던 장님.. 꼬리를만진 사람은 " 코끼리는 길고 가느다랗게 생겼어"다리를 만진 사람은 "아니야! 코끼리는 굵은 기둥처럼 생겼어"라며 자신이 맞다라고 생각하는것을 자신이 경험한것이 전부라하는 모습..이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하지만 이 모든것을 포괄할수있는 진실(진리)는 다릅니다. 그것은 우화의 코끼리와 같이 감히 온전히 다투어질수없는 성질의 것이며 우리들이 대립할수있다라고 생각하는 사상을 그 진실앞에 내놓을 지라도 그것은 이미 진리앞에 포괄되어버릴사항이 되어버립니다.그것이 진리의 특성이자 필요 충분 조건이기에.... 3.이제 세상에 대한 이해,철학사유 를지나 자신에게 초점을 맞춰보고자합니다.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여러분은 자신을 자유자제로 절제 하실수 있습니까?그리고 남을 온전히 이해하고 포용할수있으시며 자신이 앞에 펼처질 모든일을 예상하실수있으십니까? 한마디로 요약하여 자신을 넘는 범주의 문제에 대해서 온전히 이해하였냐라는 겁니다. 지금쯤 이글을 진지하게 읽으신 분께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자신에 대한, 남에대한, 자신주위에 있는 모듯것에대한 알고있는 개념과 사유들이 진실이고 자체로 완벽하다 확신에 대한 회의를 품음이마땅하다 생각합니다. 4.여러분은 살아오는동안 끊임없는 삶의 정답을 추구해 오셨을 겁니다.그리고 이것의 귀결은 신기하게도 결국 옳다 그르다, 선하다 악하다의 문제로 귀결된다라는것을 한번쯤은 느껴 보셨을 것입니다.게다가 더욱흥미로운사실은 이 선과악의 명제가 생각의 끝에 이르러서는 상대적인지 절대적인지 조차 판단하기 어려운 순간에 놓인다는것까지 느껴 보셨을 것입니다.그런데 저는 이것이 인간철학 역사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선과악의 구별의 시작 그것은 좋은것과 나쁜것을 구별하고자하는 본능의 근원이됩니다.좋은것과 나쁜것의 구별.. 그것은 맞는것과 틀린것의 판단의 기준이 됩니다.이러한 '옳고그름의 구별'이라고 할수있는 모든 판단은나로부터 시작하여 내앞에있는 당신에게 자신의 삶에대해그리고 이것을 넘어 절대적인 명제.. 우리가 각자 진리라고말하는것까지 그영향을 미쳐왔습니다. 이러한 순간에 저는 여러분이 성경의 이 귀절을 읽어보실것을 권해보고자합니다.이부분은 성경에 기록된 사람이 선악과 를먹는 순간을 기록한 부분입니다.(4).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너희는 절대로 죽지않는다. (5).하나님은, 너희가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너희의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것을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것이다."- 창세기 3:4~5여러분은 지금 어떤생각이 드십니까? 저는 이 말씀을 읽고 이런말이 생각났습니다. '절대적이고 객관타탕한 진실은 존재한다 그러나 사람은 이것의 일부분만을 인식할수있을뿐이다. 그 이유는 그 진실은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리-우리가 진실이라 부름에 더 익숙한말
내용에 미흡하고 글이 매끄럽지않으나 한분이라도 읽어주셨으면 하는 바램에 글을 올려봅니다
진리-우리가 진실이라 부름에 더 익숙한말
서론
고린도전서 1: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함이 사람의 강함보다 더 강합니다.
아주 오랜 고대에서부터 철학(사유의 문제에 대한 물음)은 시작되어왔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삶에대한 변론, 반박, 변증과, 반증의 연속이었으며
이들중 반증과 반박은 항상 철학 사유흐름에 가장 구심점 역할을 차지해 왔습니다.
자신의 사유(자신이 진실이라 생각하는것)과 타인의 진실에 대한 의혹과 의심, 그것은 끊임없이 반증과 반박이라는 양날검에 의해 베이고 갈려왔고 이것이 계속되어 현대
에 이르러 서는 철학이라는 거대한 성을 쌓아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묻고싶습니다....
진실은 발견 되었습니까?
본론
1.Before Christ(B.C)시대를 지나서도 2000년이 넘는 시대동안
정답을 탐구하는자들의 생명이 끊임없이 흘러지나가왔고 지금 이순간도 흘러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길고 길었던 시간동안 절대적인 흠없는 정답은 밝혀졌습니까?
세기당 최소 한명으로 잡아도 20명이 자신의 전삶을 진실의 정립에 다 바쳐왔음에도 불구하고 오류없는 진실론(진리)는 아직 발견되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왜? 라는 질문을 한번 던져보아야할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저는 아직도 정답이 밝혀지지않은 원인을 인간의 인식력의 한계로 규정짖고 싶습니다.
사람이 끊임없이 자신의 주위에것을 인식하며 자신의 세계관을 정립해가듯..
철학 사유에서 정답의 도출....
이것은 사람의 머리의 지식과 배경경험, 지능, 감성 에서 나오는 이 것은 어디 까지나 사람의 두뇌 수준에서 나올수 밖에 없다고생각합니다.
자신의 인식의 수준을 넘는것에대해 어떻게 그 원리와 깊이를 깨닿겠습니다
예를 들어보자면 어린아이가 아무리 100미터를 13초 12초 안에 뛰지못하는것과 체게바라전집 혹은 전쟁과 평화 와 같은 책을 손에 쥐어주더라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것과 같습니다.
그런데도 매우 흥미로운 사실은
이런 제한적인 지식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의 진실에 관한 세상의 모든것들을 이해했다고 주장하는 사견(私見)들이 서로간 끊임없이 대립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대립은 항상 어김없이 상대가 부정되어야 자신의 존재성이 입증되는 배타성을 갖고 있었으며 이러한 대립된 사상의 존재 사실만으로도 '절대적이고 완벽한 그어떤' 이라는
명제는 그 자신의 존부가 위협받기에 매우 충분했습니다.
2.권투경기는 상대를 쓰러경기로 상대를 쓰러뜨려야 자신의 승리가 인정 됩니다.
이처럼 철학사유도 상대의 논재의 흠을 파악하고 그것을 파헤쳐 상대를 무너 뜨림으로써 자신의 존재 정당성을 인정 받아왔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장님과 코끼리" 예기를아실것입니다.
만져지는 데로 느껴지는 데로 그것이 코끼리의 형상이라고 규정했던 장님..
꼬리를만진 사람은 " 코끼리는 길고 가느다랗게 생겼어"
다리를 만진 사람은 "아니야! 코끼리는 굵은 기둥처럼 생겼어"라며 자신이 맞다라고 생각하는것을 자신이 경험한것이 전부라하는 모습..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하지만 이 모든것을 포괄할수있는 진실(진리)는 다릅니다.
그것은 우화의 코끼리와 같이 감히 온전히 다투어질수없는 성질의 것이며
우리들이 대립할수있다라고 생각하는 사상을 그 진실앞에 내놓을 지라도 그것은 이미 진리앞에 포괄되어버릴사항이 되어버립니다.
그것이 진리의 특성이자 필요 충분 조건이기에....
3.이제 세상에 대한 이해,철학사유 를지나 자신에게 초점을 맞춰보고자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여러분은 자신을 자유자제로 절제 하실수 있습니까?
그리고 남을 온전히 이해하고 포용할수있으시며 자신이 앞에 펼처질 모든일을 예상하실수있으십니까?
한마디로 요약하여 자신을 넘는 범주의 문제에 대해서 온전히 이해하였냐라는 겁니다.
지금쯤 이글을 진지하게 읽으신 분께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자신에 대한, 남에대한, 자신주위에 있는 모듯것에대한
알고있는 개념과 사유들이 진실이고 자체로 완벽하다 확신에 대한 회의를 품음이마땅하다 생각합니다.
4.여러분은 살아오는동안 끊임없는 삶의 정답을 추구해 오셨을 겁니다.
그리고 이것의 귀결은 신기하게도 결국 옳다 그르다, 선하다 악하다의 문제로 귀결된다라는것을 한번쯤은 느껴 보셨을 것입니다.
게다가 더욱흥미로운사실은 이 선과악의 명제가 생각의 끝에 이르러서는 상대적인지 절대적인지 조차 판단하기 어려운 순간에 놓인다는것까지 느껴 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것이 인간철학 역사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선과악의 구별의 시작 그것은 좋은것과 나쁜것을 구별하고자하는 본능의 근원이됩니다.
좋은것과 나쁜것의 구별.. 그것은 맞는것과 틀린것의 판단의 기준이 됩니다.
이러한 '옳고그름의 구별'이라고 할수있는 모든 판단은
나로부터 시작하여 내앞에있는 당신에게 자신의 삶에대해
그리고 이것을 넘어 절대적인 명제.. 우리가 각자 진리라고말하는것까지 그영향을 미쳐왔습니다.
이러한 순간에 저는 여러분이 성경의 이 귀절을 읽어보실것을 권해보고자합니다.
이부분은 성경에 기록된 사람이 선악과 를먹는 순간을 기록한 부분입니다.
(4).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너희는 절대로 죽지않는다.
(5).하나님은, 너희가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너희의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것을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것이다."- 창세기 3:4~5
여러분은 지금 어떤생각이 드십니까?
저는 이 말씀을 읽고 이런말이 생각났습니다.
'절대적이고 객관타탕한 진실은 존재한다 그러나 사람은 이것의 일부분만을 인식할수있을뿐이다. 그 이유는 그 진실은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것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