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리가 죽었다.

나민규2009.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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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는, 94년도에 주워온 유기견이었다. 주인을잃고 하염없이 횡단보도를 오가던 푸들 한마리.

아버지의 친구분께서 거둬주신 3살짜리 털복숭이를 우리는 가족으로 맞이했다.

당시 아버지 친구분네 두리라는 강아지가 있었고, 그 다음으로 온 강아지여서 이름은 세리. 나세리.

내가 태어날적 면목동 연립주택에 살때 커다란 진돗개가 있었다는 어렴풋한 기억 이후

우리집에 처음으로 받아들인 반려동물이었다.

 

 

 

이건 2003년 일병 휴가나왔을때의 내 생일사진.

우리가족들은, 식구 생일날 꼭 이렇게 가족들이 모여 캐익에 촛불붙여놓고 사진한장찍는걸 그렇게 추억거리로 삼곤 하는데

내가 태어나서부터 찍은 이런 가족사진이 백여장이 넘는다고한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 입대후 내 생일사진에도 저렇게 세리가 있었다.

 

15년동안이나 같이, 사진으로 남은 어엿한 가족이었다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함깨 살아온 세리.

여느 푸들처럼 먹을거에 환장하는 강아지.

집안에 딸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던 아버지의 작은 막내딸.

현규의 동생이었고(현규는 심지어는 세리로 만화캐릭터를 그려 자신의 아바타로 삼을정도였다.)

잠들때엔 항상 어머니의 다리밑에서 자던 털복숭이.

배변 길들이는데 8년이나 걸렸고 산책중에 두어번쯤은 잃어버리기도 했었지만, 제발로 찾아온 기특한녀석.

모두가 외출하면 마루한가운데 다소곳이 앉아 가족을 기다리던 우리집 막내.

간혹 가족간에 다투는 일이 있어도, 아버지가 세리를 안고 '오빠가 뭐라고 하네!'라고하면 곧잘 알아듣고는 그러지 말라는듯이 그르르릉 거리는, 그런 세리가 귀여워 피식 하며 웃고 넘기곤 했다.

 

 

 

 

 

 

 

우리 가족 모두가 세리를 사랑했다. 애완견, 반려동물 이상으로...

 

 

 

  

시간이 지나 나이를 먹고, 이빨이 다 빠져 물에 불린 사료를 먹던 세리는 

언젠가부터 귀가 먹어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세리는 그렇게 한동안 공황상태에 빠졌었다. 예민해졌고, 조그만 불빛에도 조그만 움직임에도 짖어댔다. 한밤중에도 엄마가 뒤척거리면 짖었고, 온가족이 깰 정도였다.

이해한다. 평생을 듣던 가족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얼마나 겁이 났을까. 아무도 세리를 혼내지 않았다.

 

생리도 멈춘 08년 7월, 세리는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다. 이따금 깨갱거리며 다리를 절뚝거릴때고 있었고 피부엔 할머니처럼 검버섯이 피었다. 우린 농담삼아 원더걸스 소희랑 동갑이라며, 세리의 장수를 이야기하곤 했는데 친척들은 아직도 세리가 살아있냐며 놀라곤했다. 그리고 이제 집에 들어와도 세리는 우릴 반가이 맞이할수 없었다.

아이구 할머니 저 퇴근했어요 하며 다가가면, 세리는 이제 왔냐며 검은 눈동자를 꿈뻑거릴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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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전 세리가 갑자기 묽은변을 봤다. 먹은것을 토하고 추위를 타더니 코가 막혔다. 숨을 못쉬었다. 

감기에 걸린줄 알았던 세리가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게 되자 불길한 예감을 느낀 우리는 야밤에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필수접종외엔 병원신새를 질 일이 없었던 세리를, 난생처음 입원시켰다. 이틀동안 엑스레이와 피검사를 받은 세리의 병명은 급성신부전이었다. 덩치만한 링거에 항생제와 영양제, 복막세척에 기타등등... 우리는 회복을 기다렸지만 병세는 예상만큼 호전되지 않았다. 콩팥이 완전히 고장났단다. 왜 몰랐지? 더 일찍 병원에 왔어야 했던걸까? 이틀전엔 오셨어야 한다던 의사선생님의 말을 들은 아버지는 마음의 준비를 하자며 가족들을 다독이셨다. 

난생처음 입원한 세리는 추운 병원에서 두려워하고있었다. 어머니는 그런 세리가 너무 안쓰러우셨는지 데려가자고. 데려가서 가족들이 있는 따듯한 곳에서 보내주자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세리를 퇴원시켜 집으로 데려왔다.

 

여전히 덩치만한 링거를 맞던 세리는 배변깔판 위에 누워있었는데 갑자기 일어나 안절부절못하다가, 다시 눕기를 반복했다. 저녁에 아버지가 들어오셔서 왜 이러지 싶으시다가 화장실에 데려가자 세리는 엄청난 오줌을 쌌다.

그래. 링거를 맞으면 사람도 금세 소변이 마려운데, 기특하게도 이 아이는 맘편히 누워있으라던 배변깔판위에 싸지도 않았던거다. 걱정스런 마음에 어젯밤은 온 가족이 돌아가며 세리를 안고 지냈다.

세리의 체온은 35도였다. 이사짐을 날라주러 갔던 정주네 강아지 해니는 40도에 가까운 체온이었는데.

 

 

 

 

그리고 오늘, 회사에서 업무를 종료할때즈음, 아버지한테서 문자가왔다.

 

[그 동안 우리식구에세 많은 웃음을 주고 사랑을 알게한 우리 세리가 19시 20분경 저세상으로 먼저 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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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세리는 초췌하지만 평온한 모습으로 깊게 잠들었다.

아버지는 세리에게 옷을 입히고, 같이 묻어줄 나무상자안에 평소 깔고앉던 방석을 같이 넣어주시곤 일찍 잠드셨다.

어머니와 동생은 의외로 덤덤했지만 나는 그 앞에서 무릎꿇고, 좋은곳에 가라고 기도하며 바보같이 울었다.

군재대후 작년까지 울질 않았는데... 올해들어 두 번째 흘린 눈물이었다.

 

  

 

 세리가 죽었다.

새벽 5시, 해가뜨면 우리는 세리를 묻어주러 뒷동산으로 갈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지막 인사를 해야지.

고마웠어. 긴 시간동안 우리모두 행복했어.

 

 

 

 

 

잘가. 우리 막내. 내 동생. 나세리.

 

 

 

 

 

 

 

 

 

 

1991(1994) ~ 2009/05/06 나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