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트의 조건 여전히 우리의 때가 묻은 가구에 걸터앉아 익숙한 음악을 들으며 소곤소곤 대화를 나눈다. 어느 날 변덕맞은 기분에 마음껏 음악을 바꿔 틀어도 무관하며 우리의 얘기를 엿들을 새도 쥐도 없는 그런 곳, 우리는 아지트라고 부른다. 가로수 길에서 혼자만 익숙하길 원하는 약간의 이기심으로 갈만한 곳이 있다. 느릿하게 여유로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마리앤도널드는 내게도 그랬듯이 또 누군가의 아지트가 될 것이다.
재작년 가을 즈음만 해도 가로수 길의 그 어디이든, 눌러앉아 죽이는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나이 듦에 따라서 ‘철’들기 거부하는 만년 소년이기에 그곳에서의 소박한 ‘된장’질은 ‘한량’이 된 느낌이라 좋았다. 거리도 한산하여 나로서는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쓸 일 없어 좋았다. 뭣보다 친구들과 ‘썰’을 풀어내기에 그만한 장소가 없었다. 이런저런 호박씨를 다 털어도 주워들을 사람 없으니 아지트와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은 왜 그리 많은지 재래시장 같고, 좁은 길에 빼곡히 주차된 차량을 보고 있으면 신사동 모터쇼 같은 게 답답함에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카페들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고 주인이 같은지 가는 곳마다 엇비슷한 공간뿐이다. 근래에 그곳으로 발걸음을 내딛지 않는 이유인데, 얼마 전 겸사 보기로 한 친구 둘, 하필 장소가 가로수 길이었다. 조용히 담소 나누고 싶던 난 부산한 그곳이 영 탐탁지 못했다. 새로운 아지트가 필요했다.
가로수 길이라는 이유로 시큰둥했던 그날, 마리앤도널드MARI&DONALD를 처음 본 느낌은 뭐랄까, 익숙한 느낌이다. 패션지 에디터로 있는 트렌디 한 친구였기에 너무 신선한 곳으로 날 인도하겠거니 노심초사(?) 했는데 다행이었다. 벽은 빛 바랜듯한 흰색 페인트가 발렸고 바닥은 노출콘크리트로 마감된 작은 공간이다. 천정은 너무 높거나 낮지도 않아 적당하니 답답하지 않다. 한 쪽 벽으로는 직사각 형태의 투명 유리창이 있는데 그곳으로 유입되는 자연광은 따스하다. 또한 그 밖으로 보이는 약간의 잔디와 옆 건물의 붉은 벽돌은 강한 대비를 이루며 간혹 쉬어가는 고양이는 왠걸, 동질감이 느껴져 애처롭다. 그 녀석 사는 게 쉽지만은 않은 가보다. 아무튼, 말끔한 벽에 달랑 하나 달려있는 투명창은 한 폭의 액자처럼 어색하지 않고 시각적 환기의 통풍구이다. 정면의 바를 우회하면 또 다른 작은 공간이 보인다. 거기에는 타일로 장식된 멋스런 테이블과 누군가 오래 앉았을 듯한 낡은 주홍빛깔 소파가 있다. 세 명이 앉아도 거뜬할 만큼 널찍한데 보기에도 좋다. 게다가 곳곳에 스크래치가 있어 부담 없이 눌러앉을 수 있다. 또한 그곳에 있으면 귀가 즐겁다. 잔잔하게 공간을 울리는 음원 수준이 공연홀을 연상케 하는데 명품 하이파이 브랜드 오디오아날로그(AUDIO ANLOGUE社)의 마에스트로 쎄딴따(MAESTRO SETTANTA)로 재생되며 ATC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다. 귀가 행복한 이유는 자명하다. 벌떼 같은 친구들과 이야기 꽃을 피우다 보면 응당 달콤한 꿀물이 필요하다. 마리앤도날드는 핸드 드립 에스프레소 전문인데 이것은 씁쓸하고 뜨거워 갈증해소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말이 달라진다. 바리스타 ‘도널드’ 솜씨의 아이스 에스프레소는 달콤하여 텁텁하지 않고 시원해서 마시기 좋다. 에스프레소의 향은 깊고 홀짝홀짝 목으로 넘어가는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참고로 에스프레소 콘파냐는 그가 추천했던 커피. 아포가또도 자신 있어했다. 한편 그곳에서는 샴페인과 와인도 있고 맥주는 기본이다. 샴페인의 경우 모엣샹동 큰 것이 115천원이었으니 5천원 더 주고 뵈브클리코를 마시는걸 권한다.
그곳에는 값비싼 명품의자도 없지만 희한하게 한 번 앉으면 엉덩이를 떼기가 쉽지 않다. 실내는 전체적으로 깔끔하여 마치 우리네 살아가는 집 같다. 낮에 만나는 바리스타 도널드는 곰살궂고 저녁에 보는 소믈리에 마리는 상냥한 미녀이니 보면 또 보고 싶어진다. 마리앤도널드는 아마도 나처럼, 당신에게도 비밀스런 공간이 되겠지.
EDITOR’S CHOICE 아이스에스프레소 8천원,
에디오피아예가체프 7천원, 아포가토 1만 천원 뭘 파는고 와인과 샴페인에 스파클링 그리고 맥주 어디 강남구 신사동 544-27번지 1층 모르면 전화 02 544 8168
<디자인저널 6월호> MARI & DONALD
아지트의 조건
여전히 우리의 때가 묻은 가구에 걸터앉아 익숙한 음악을 들으며 소곤소곤 대화를 나눈다. 어느 날 변덕맞은 기분에 마음껏 음악을 바꿔 틀어도 무관하며 우리의 얘기를 엿들을 새도 쥐도 없는 그런 곳, 우리는 아지트라고 부른다. 가로수 길에서 혼자만 익숙하길 원하는 약간의 이기심으로 갈만한 곳이 있다. 느릿하게 여유로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마리앤도널드는 내게도 그랬듯이 또 누군가의 아지트가 될 것이다.
글/이경빈 기자 kblee@designjournal.co.kr
재작년 가을 즈음만 해도 가로수 길의 그 어디이든, 눌러앉아 죽이는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나이 듦에 따라서 ‘철’들기 거부하는 만년 소년이기에 그곳에서의 소박한 ‘된장’질은 ‘한량’이 된 느낌이라 좋았다. 거리도 한산하여 나로서는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쓸 일 없어 좋았다. 뭣보다 친구들과 ‘썰’을 풀어내기에 그만한 장소가 없었다. 이런저런 호박씨를 다 털어도 주워들을 사람 없으니 아지트와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은 왜 그리 많은지 재래시장 같고, 좁은 길에 빼곡히 주차된 차량을 보고 있으면 신사동 모터쇼 같은 게 답답함에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카페들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고 주인이 같은지 가는 곳마다 엇비슷한 공간뿐이다. 근래에 그곳으로 발걸음을 내딛지 않는 이유인데, 얼마 전 겸사 보기로 한 친구 둘, 하필 장소가 가로수 길이었다. 조용히 담소 나누고 싶던 난 부산한 그곳이 영 탐탁지 못했다. 새로운 아지트가 필요했다.
가로수 길이라는 이유로 시큰둥했던 그날, 마리앤도널드MARI&DONALD를 처음 본 느낌은 뭐랄까, 익숙한 느낌이다. 패션지 에디터로 있는 트렌디 한 친구였기에 너무 신선한 곳으로 날 인도하겠거니 노심초사(?) 했는데 다행이었다. 벽은 빛 바랜듯한 흰색 페인트가 발렸고 바닥은 노출콘크리트로 마감된 작은 공간이다. 천정은 너무 높거나 낮지도 않아 적당하니 답답하지 않다. 한 쪽 벽으로는 직사각 형태의 투명 유리창이 있는데 그곳으로 유입되는 자연광은 따스하다. 또한 그 밖으로 보이는 약간의 잔디와 옆 건물의 붉은 벽돌은 강한 대비를 이루며 간혹 쉬어가는 고양이는 왠걸, 동질감이 느껴져 애처롭다. 그 녀석 사는 게 쉽지만은 않은 가보다. 아무튼, 말끔한 벽에 달랑 하나 달려있는 투명창은 한 폭의 액자처럼 어색하지 않고 시각적 환기의 통풍구이다. 정면의 바를 우회하면 또 다른 작은 공간이 보인다. 거기에는 타일로 장식된 멋스런 테이블과 누군가 오래 앉았을 듯한 낡은 주홍빛깔 소파가 있다. 세 명이 앉아도 거뜬할 만큼 널찍한데 보기에도 좋다. 게다가 곳곳에 스크래치가 있어 부담 없이 눌러앉을 수 있다. 또한 그곳에 있으면 귀가 즐겁다. 잔잔하게 공간을 울리는 음원 수준이 공연홀을 연상케 하는데 명품 하이파이 브랜드 오디오아날로그(AUDIO ANLOGUE社)의 마에스트로 쎄딴따(MAESTRO SETTANTA)로 재생되며 ATC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다. 귀가 행복한 이유는 자명하다.
벌떼 같은 친구들과 이야기 꽃을 피우다 보면 응당 달콤한 꿀물이 필요하다. 마리앤도날드는 핸드 드립 에스프레소 전문인데 이것은 씁쓸하고 뜨거워 갈증해소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말이 달라진다. 바리스타 ‘도널드’ 솜씨의 아이스 에스프레소는 달콤하여 텁텁하지 않고 시원해서 마시기 좋다. 에스프레소의 향은 깊고 홀짝홀짝 목으로 넘어가는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참고로 에스프레소 콘파냐는 그가 추천했던 커피. 아포가또도 자신 있어했다. 한편 그곳에서는 샴페인과 와인도 있고 맥주는 기본이다. 샴페인의 경우 모엣샹동 큰 것이 115천원이었으니 5천원 더 주고 뵈브클리코를 마시는걸 권한다.
그곳에는 값비싼 명품의자도 없지만 희한하게 한 번 앉으면 엉덩이를 떼기가 쉽지 않다. 실내는 전체적으로 깔끔하여 마치 우리네 살아가는 집 같다. 낮에 만나는 바리스타 도널드는 곰살궂고 저녁에 보는 소믈리에 마리는 상냥한 미녀이니 보면 또 보고 싶어진다. 마리앤도널드는 아마도 나처럼, 당신에게도 비밀스런 공간이 되겠지.
EDITOR’S CHOICE 아이스에스프레소 8천원,
에디오피아예가체프 7천원, 아포가토 1만 천원
뭘 파는고 와인과 샴페인에 스파클링 그리고 맥주
어디 강남구 신사동 544-27번지 1층
모르면 전화 02 544 8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