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사진의 거장, 카쉬전 (후기)

김재익2009.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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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3일

 

전일 행렬로 지친 몸을 이끌고 일찍부터 일어나

예술의 전당으로 갔다. 카쉬전을 보기 위해서다.

 

날이 날인지, 셋이서 보기로 했지만

한명은 몸이 아파 취소

한명은 1시간 지각에 다 보지도 못하고 급한 용무로 퇴장.

 

결국 혼자서 유유자적 즐기다 오고 말았다.

 

 

 

예술의 전당은 꽤 오랜만이었다.

어렸을 적에 와본 기억이 잠시잠시 났지만

도무지 겹치는 부분을 찾을 수가 없었다.

 

입구의 계단을 타고 올라가자 제일 먼저 눈에 띈 현수막

 

이번 전시 홍보자료에 주로 실린 인상쓰는 처칠경과

티켓에도 새겨진 오드리 햅번이 눈에 띈다.

 

 

 

그럼 카쉬는 누구인가 .

 

유섭 카쉬(Yousuf Karsh)

-사진작가, Canadian, 1908.12.23~2002.7.13

 

핍박을 피해 캐나다로 이민간 카쉬.

숙부의 사진관을 통해 처음 사진을 접한 카쉬는

수많은 인물 사진을 통해

20세기 가장 위대한 인물사진 작가라는 평을 받았다.

 

 

카쉬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윈스턴 처칠경의 사진이 LIFE지에 실리게 되면서부터다.

 

 

이 완고한 정치가의 당장이라도 덤벼들듯한 표정은

우연한 상황에서 탄생했다.

 

때는 세계 2차 대전,

처칠은 방금 막 단상에서,

2차 대전에 대한 영국의 대전 의지를 표출하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그때 촬영 준비를 하던 조명이 예기치 않게 터져버리는 바람에

처칠의 심기는 불편해지고 말았다.

 

결국 못마땅한 표정으로 시가를 물고 못내 촬영을 허락한다.

모든 사람이 기다렸지만 처칠은 완고했다.

 

바로 그 때 카쉬가,

"죄송합니다. 각하" 라는 한 마디와 함께

돌연 물고 있던 시가를 뺏아가 버린다.

 

처칠의 표정은 일그러졌고 카쉬는 그순간 셔터를 눌렀다.

 

저 사진은 바로 그 순간의 사진이다.

 

그러나 처칠은 도리어 웃음을 띠며 한장 더 찍어보길 권유했고

 

이 사진은 나중에 LIFE지에 실려

 

전세계에 영국의 전쟁에 대한 의지를 잘 보여주는 사진으로

 

알려지고 곧 유명해졌다.

 

 

이어 카쉬는 캐나다 정부의 공식 요청으로 수많은 인물 사진들을

 

찍게 되는데, 그의 사진 작품에는 한 번도 찍기 어려운

 

수많은 유명인사들이 담겨있다.

 

 

 

오드리 햅번의 사진도 그중 하나다.

이 유명한 사진은 오드리 햅번의 아름다움을

절실하게 표현해 주고 있다.

 

수십년전에 질산은으로 뽑아낸 이 사진이

전혀 촌스럽거나 낡게 느껴지지 않는 것 역시

카쉬의 사진의 마력을 알수 있게 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깊었던 사진은 역시 파블로 카잘스.

 

이 사람은 현대 첼로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첼리스트다.

카잘스의 연주기법은 지금도 활용되고 있으며

음악가로서의 삶 역시 대단했다고 한다.

 

수많은 카쉬의 사진들 중 인물이 등을 지고 있는 사진은

이 사진 하나뿐이다.

카쉬는 절대 정면 이외의 사진을 찍지 않기로 유명했는데,

카잘스의 촬영 때만은

왠지 뒷모습을 찍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며 만든 것이

이 유일한 뒷모습 사진이다.

 

작은 방 안에 더욱 작은 창문 틈으로 스며오는 햇빛이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인물의 실루엣을 그려준다.

연주한다는 것을 알수 있을 뿐 표정과 자세, 모든 것을

상상해야만 하는 이 사진에서는 음악이 담겨 나온다.

 

미국에서 전시되던 중,

어떤 노신사가 매일같이 이 사진 앞에 한참을 서있었다고 한다.

직원이 왜 그러시느냐 묻자, 이렇게 대답한다.

"자네는 내가 음악을 듣고 있는 게 안 보이는가?"

 

 

 

사진가로서의 카쉬의 힘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던

극작가 버나드 쇼의 사진.

 

이 완고한 작가는 사진을 찍기 전에

한참동안을 떠들어 댔다고 한다.

카쉬는 사진을 찍기 전에

그 대상을 이해하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하는데

버나드 쇼는 자아가 강하고 완고하여

사진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이야기 도중 버나드 쇼는 어떤 농담을 하나 던지고는

"자네, 알겠는가?" 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카쉬는 그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사진 한장이 얼마나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그레이 아울

전시 초반에 가장 긴 시간을 서서 바라보았던 사진이다.

 

그레이 아울은 환경운동가였다.

그러나 부모의 뿌리를 인디언으로 속이고 얻은 좋은 평판은

사망 후 사실이 밝혀져 송두리째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사후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그의 업적이 재조명되고

지금에 들어서는 환경운동가로서의 그레이 아울이

새롭게 평가받고 있다.

 

그는 왜 자신의 출신을 속여야 했을까?

환경을 사랑하고 자연을 위해 살았던 삶의 시작은

평범한 영국인을 인디언의 후손으로 속이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는 왜 그래야 했을까? 평생을 안고 죽은 그 비밀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을 것이다.

 

그의 눈빛에서는 큰 모자만큼이나 커다란 한숨 같은게 느껴진다.

 

 

인상깊었던 사진은 수도없이 많지만

그 모든것을 적어낼 수는 없기에,

또 이만큼 적어내려오는 동안

마음으로 받은 감동을 애써 부족한 글로 깎아내려가는 것이

안타깝기에 나머지는 담아두려한다.

 

 

카쉬의 사진은

모두가 질산은으로 이용한 silver print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대부분이 상반신에 집중한 전면 사진이다.

손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해서

사진에 가장 많은 의미를 부여하곤 한다.

자주 사용하는 배경은 아주 밝은색, 어두운색인데

인물에게서 표현하고자 하는 이미지에 따라 달라졌다.

 

 

이런 것들은 지식일 뿐이다.

 

사진들에서 받아낸 감정은 그런 것들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사진 한장만을 통해

전혀 만날 수 없었던 모델의 삶과 느낌을

일부나마 전달받을 수 있었다는 데서 나온다.

 

사진은 한 사람을 어디까지 표현해낼 수 있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이 사진들 안에 있다.

 

 

 

일행을 기다리던 중

아래 층에서 전시되던 작은 인물전
(한국 작가들이 찍어낸 인물 사진전... )

내부에 너무 마음에 드는 글귀가 있어 담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