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호]하모니를 이루는 순간 : Once

장은석2009.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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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nce(2006) 부분

'절대음감'이라는 말이 있다. 이와 대조를 이루는 말이 '상대음감'이다. 상대음감이 훈련을 통해 음을 비교하여 높낮이를 구별하는 능력이라면 절대음감은 그야말로 생래적으로 그것을 판별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천부적이고 본질적인 감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가령 이런 능력을 지닌 사람은 물이 담긴 컵을 두드리는 소리나 자동차의 경적소리 심지어 개가 짖는 소리까지도 E♭ 혹은 B마이너나 G의 음정으로 듣는다. 단순한 '소리'의 경우가 이러니 악기가 내는 하나의 완전한 '음'의 음색과 높낮이를 파악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들은 '주의깊게' 어떤 음을 '듣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음이 분명하고 확실하게 '들린다.'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지만 절대음감에 관해 아직도 완벽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많은 사람들은 절대음감이라는 천부적이고 놀라운 능력에 관해 부러워한다. 마치 그들에게는 세상이 온통 하나의 아름다운 음악일 것만 같다. 실제로 「August Rush(2007)」라는 영화를 보면 바람에 흔들리는 사물의 소리들을 듣고 음악을 만드는 천재소년이 등장한다. 소년은 쇠줄이 땅에 끌리는 소리에서부터 나뭇가지들이 뚝딱거리고 부딪히는 소리들을 모아 하나의 완벽한 랩소디를 만들어낸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는 사람들의 경우처럼 절대음감의 능력은 과연 신의 축복일까. 실제로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정확히 조율되지 않은 악기는 이들에게 대단히 거슬린다. 예민한 그들의 청각은 정확한 화음을 이루지 못하는 공연의 연주가 견딜 수 없는 짜증으로 돌변한다. 일반인들에게 아름다운 화음은 그들에게 적절하지 못한 불쾌감이 될 수 있다. 많은 어설픈 연주가들의 연주에서 이들은 쉽게 들을 수 없는 것들을 '들을 수밖에 없고' 그런 이유로 그 음악들은 쉽게 하모니를 이루지 못하고 자꾸만 거슬리게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늘 '본질'에 관해 궁금해하지만 어쩌면 근본적인 것들이 모두 지극히 아름다운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거리의 소음에서부터 시작한 하나의 작은 소리들이 모여서 단순한 '음'을 만들고 다시 하나의 멜로디로 자라나는 순간, 또 그런 불완전한 선율들이 여러 개가 모여 조화를 이루는 순간은 어쩌면 더 절실하고 아름다울 수도 있지 않을까. 청소기를 고치며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고 미혼모이면서 피아노를 치는 이 두 남녀의 어울림이 이렇게 지극한 하모니를 이루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여자는 아무도 지나지 않는 늦은 밤거리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를 부르는 남자에게 이끌린다. 자신의 신세는 자각하지 못하고 남자는 볼품없는 여자의 관심에 처음에는 시큰둥하다. 굳이 청소기를 고치러 남자의 집에 찾아온 여자에게 남자는 함부로 자고 가라는 말을 던진다. 작고 초라한 방에서 여자에게 던지는 남자의 초라한 대사는 거울처럼 오히려 남자가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렇게 주고 받는 서사적 리듬을 통해 두 남녀는 통속적인 '사랑'이라는 말로 모두 표현할 수 없는 새롭고 독특한 그들만의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이 작품의 최대 미덕은 이와 같은 '서사적 리듬'이 내부의 진짜 '음악적 리듬'과 조화를 이루며 또 새로운 하모니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인용한 부분은 작품의 그런 미덕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그야말로 '결정적 장면'이다.

 

악기점 입구를 들어서는 두 남녀의 행색을 보라. 땅에 질질 끌리는 청소기와 공중으로 치솟은 기타의 균형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맨 크로스 배낭의 줄과 함께 똑같이 감은 목도리의 형태까지 이어진다. 비슷하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비슷한 이들의 외피는 피아노와 기타라는 서로 다른 음색을 가지고 놀라운 하모니를 이루는 지경으로 나아간다. '도레미레'에서 '도레파미'로 서로 한 발자국씩 내딛는 음들은 이들의 자리에 아주 천천히 내려앉Fallin Slowly는다. C와 F의 반복과 섞임을 거듭하면서 두 남녀는 서로의 음색을 결합하고 새로운 멜로디를 만들어낸다. 각각의 멜로디들은 모두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두 개의 층위로 나뉘고 새로운 차원을 만들어낸다.

 

확실히 음악에서 하모니는 마치 미술에서 평면 그림이 조형이 되는 것처럼 새로운 '공간'을 만든다. 2차원에서 흐르던 멜로디는 하모니의 단계로 진행되면서 3차원의 새로운 공간을 만든다. 각자 한 발씩 내딛던 두 남녀가 어떤 새로운 형태의 어울림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이 작품에서 서사의 주요 흐름이라면 그 서사는 아름다운 하모니가 완성시킨다. 이질적이면서도 공통적이던 두 남녀는 서로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그것을 유지한 채 하모니를 이루면서 비로소 새로운 형태의 '교감'에 다다른다.

 

   이런 하모니의 경험이 직접적인 하나의 체험이 되기를 우리 모두는 소망하지 않던가.

 

     ─ 몽상의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