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하루 그 곁의 서울.

박민진2009.05.16
조회96

 

 

우리에게 남은 건 오로지 서울 하늘 뿐. 

 

 이 서울엔 로맨스도 낭만적인 속삭임도 어울리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엔 불안한 경기로 인한 돈에 대한 집착만이 남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정한 사랑을 원한다면 어디로 가야할까? 헛된 푸념만 늘어놓는 오후라면 식은 라면과 바꿔 먹으리.


 요즘 친구들 가족, 선배 그리고 나에게까지 불어 닥친 불황의 여파에 뼈가 시릴 정도다. 난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 꿈을 이루겠다던 힘찬 포부는 일간지가 발표하는 안정적인 직장 명단에 뺏겨 버렸고, 월급통지서는 할부내역의 압박에 소중한 '0'들을 잃어버리는 수모를 겪고 있다. 그저 경기가 힘들어 그런 것일까? 난 언제나 힘들었는데...유독 지금 왜 이리 더 힘들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영화 <멋진 하루>의 시작은 경마장. 한탕주의에 맞물린 사람들의 푸념과 한심스런 수다가 계속된다. 서울의 낭만적인 노을은 따사롭게 비추는데, 사람들은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듯이 겨울바람에 몸을 움츠린다. 경마장 한가운데 이 영화의 주인공 희수도 떼인 돈 350만을 받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넣고 빠른 걸음을 재촉한다. 서울에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는 이제 흔해 빠졌다. '저 여자는 경마장까지 와서 빚쟁이 노릇을 하려나?' 희수가 좀 더 특이한 점은 떼인 돈을 전에 사귀던 남자친구 병운에게서 받으려고 한다. 도대체 얼마나 급했으면 집도 절도 없는 병운에게 350만을 달라하다니. 병운도 당황하긴 마찬가지다. 슬픈 눈의 희수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다. 병운에게 이별을 통보하던 그 날카로운 눈이 아니기에 그럴 수 없다. 이렇게 어색한 두 연인의 재회는 이 영화는 전체적인 분위기를 구성한다. 우연한 기회에 이질적인 공간에서 전혀 상관도 없었던 여정을 펼치는 이들은 한국사회가 신자유주의 유혹에 홀려 황당한 현실을 맞은 것처럼 그렇게 어색한 공기를 가지고 있다.



 

 

 90년대 IMF위기 때였던가. 당시 유행했던 진한 'Smokey' 화장이 더욱 그녀의 눈을 매섭게 보이게 한다. 마치 자신의 슬픈 눈을 감추려는 것처럼 작위적인 모습이다. 한 번의 이혼을 경험한 속없는 병운과 그 어떤 상처로 자신의 눈을 숨기는 희수는 서로의 흔적을 기억한다. 그들이 쌓았던 추억의 시간들을 다시 창고에서 꺼내 듯 그 당시를 기억한다. 서울의 풍경에는 두 사람이 속삭였던 식당도 있고, 첫 만남을 추억하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 병운에게 이별을 통보한 이별의 장소도 있고, 같이 걸었던 거리도 여전하다. 현실을 비관하기에는 추억이 너무 많다. 포기할 수 없는 당신의 조각들이 가득하다. 서울은 우리에게 그런 곳이다. 영화는 그들의 추억을 통해 우리에게 서울이 어떤 존재인지 자문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멋진 서울'라 칭하고 싶다. 30년대 뉴올리언스 재즈를 연상시키는 편안하고 경쾌한 재즈 선율이 인상적인 <멋진 하루>의 음악은 국내 퓨전재즈 밴드 푸딩(Pudding)의 리더 '김정범'이 맡았다. 그 덕분에 뉴욕의 맨하탄('Manhattan')이 부럽지 않을 서울의 숨겨진 매력을 가감 없이 표현하는데 성공했다. 영화를 보며 '어 이런 곳도 있어나?'를 연발하는 나를 발견할 때 서울의 노을과 재즈음악이 함께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걷는 이 길이 더욱 친근하고 의미 있듯이 영화 속 서울은 반갑고 대견하고 앉아주고 싶다. 하지만 이 여정을 이끌어가는 두 연인은 분위기를 깨며 한창 말싸움을 하고 있다. 마치 꿈에서 깨어난 아이처럼 난 스크린을 멍하니 바라본다. 분명 내가 어릴 적 바라보던 근사한 서울의 모습이 아니다. 설 연휴 한강을 지하철로 건너며 한강 물에 비치는 따스한 햇살에 감격하던 그 서울이 아니었다. 지리멸렬한 일상에서 도무지 벗어날 수 없는 돈타령이 가득한 속물사회가 되어 버렸다. 경제적인 부침이 인생의 짐이 되어버린 후에 우리는 돈타령에 모든 정서의 꼭대기를 내주고는 이끌려 여기까지 왔다. 2009년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돈에서 시작해 돈에서 끝나는 버스노선 속 길 잃은 아이와 같다. 영화가 더욱 멋지게 서울의 매력을 들춰낼수록 희수의 속은 더욱 가혹하게 난도질당한다. 전 애인에게 350만원을 받는 것도 못할 짓이거늘, 그와 관계있는 여자들에게 빈정거림과 동정과 야유와 연민을 받아야 하는 '희수'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감정을 맛본다.

 

 

 '여자 희수'는 '이윤기' 감독의 전작이 그랬던 것처럼 딱 보기에도 이리저리 치여 상처에 치여 더 이상 뒤로 내디딜 수도 없는 여린 사람이다. 한때 너무도 사랑했던 구제불능 '병운'에게도 채무관계를 잊고 어느새 연민을 느끼기도 하고, 지하철에 내리우는 한강의 따듯한 햇살에 자신을 투영시켜 눈물을 보일만큼 약한 감성을 얼핏 드러내기도 한다. 경직된 얼굴로 자신의 불쾌감을 표하려고 무딘 노력하지만, 밉지 않은 이유는 그녀의 눈망울이 언제나 흔들리고 있는데 있다. 자신을 힐난하는 여자에게 화를 내 보지만, 정작 상처를 줬다는 죄책감과 미안함에 눈물을 흘리고 마는 그녀는 미련해보이기까지 하다. '병운'과의 여정 중 울고 웃으며 어느새 경직된 얼굴을 풀며 주변을 바라보며 서울의 고단함을 즐기는 그녀의 모습은 작디작은 소소한 이 영화를 즐기는 관객들의 가장 큰 즐거움으로 다가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 모습은 마치 힘든 하루를 마치고 퇴근길에 동네를 걷는 우리처럼 자주 걷던 그 거리에서 자주 느끼던 그 풍경에서 위로를 받는다. 우리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서울은 나를 구원한다.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서울하늘에 자신을 마음을 내어놓는 방법을 배워버렸다. 그것이 비록 매연이 가득 찬 도심 시가지의 적막함이라 할지라도 그 어느 곳에서도 느끼지 못하는 편안함을 가진 친구처럼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이 영화가 하려는 말은 희수의 표정에서 우리가 가장 잘 느낄 수 있다. 우리에게 서울의 의미를.


 난 피곤한 하루를 마치고 버스에서 돌아오는 길에 사람들을 하나씩 보다보면 과연 무엇 때문에 저리 아등바등 살까 생각을 하게 된다. 그놈의 돈 돈. 어떤 인생을 위하여 앞만 보고 사는 것일까 괜히 마음대로 그들에게 인생의 잣대를 들이민다. 저 사람처럼 살면 안 되겠다. 저런 옷을 입으면 있어 보이는 구나. 저들에게 있어 인생의 재미는 무엇일까? 살만할까? 신자유주의 붕괴와 함께 찾아온 자본주의 부식화를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영화들이 속속 등장한다. 우리의 명치를 후려치듯 우리가 그토록 믿었던 돈의 가치가 무너져 책상 속의 부채덩어리로 다가올 때 인생의 절망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아 지겹다 이놈의 돈타령. '이윤기' 감독은 자본주주의 끔찍한 현실을 애써 부정하진 않는다. 하지만 다른 작품과 반대로 이 사회에도 여전히 웃을 수 있는 서울의 거리 곳곳이 우리를 위로할 수 있음을 넌지시 알려준다. 특히 병운이 우연히 만난 후배 부부와 간단히 한잔 하는 장면에선 중산층의 폐해와 빈부격차의 권위주의로 가득 찬 대한민국의 현실을 유머러스하게 꼬집고 있으며, 이는 곧 병운의 너스레로 쓴웃음으로 넘어가고 만다. 그건 꽤나 세련된 화법의 농담으로 다가온다.

 

 

 영화의 막바지 병운과 황당한 여행을 한 그녀의 얼굴에는 피로가 가득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얻는다는 것이 아닌 마음의 빚을 얻고 돌아왔기에 그렇다. 연민, 동정, 멸시, 빈정거림, 사랑 그리고 행복을 얻어 온 그녀는 복잡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은행 잔고는 늘었지만, 부채도 점점 늘어난다. 점점 멀어져가는 꿈꾸던 삶까지 모두 송두리째 돈에 빼앗겨버린 기분. 크다면 크고 적다면 적은 350만원을 얻기 위해 병운을 찾은 희수지만, 결코 그에 못지않은 마음의 무게를 앉고 그를 떠난다. 배우 전도연의 얼굴에는 풀리는 마음과 삶의 고단한 긴장이 녹아들어 금세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독기가 서린 얼굴로 묘한 감정의 굵은 선을 스크린에 수놓는다. 지하철의 습한 공기를 비추는 따스한 햇살에 투영될 때 그녀는 한 방울의 눈물을 흘린다. 그 어떤 옛 기억에 잠기었는지.. 자신의 한심한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그건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녀가 상처받은 내면을 서울의 근사한 풍경에 의지하여 위로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래된 세월동안 나를 지켜주던 서울만이 그녀에게 남아있을 뿐이다. 이 장면에서 난 깊은 공감을 가질 수 있었다. 일상의 소소한 것들에서 행복을 얻어야만 살 수 있는 우리들이 그 시야가 모두 가려 더 이상 여유를 잃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하게 된 것이다.


 내가 걷고 있는 이 서울 하늘에 우리가 모두 원하는 사랑이 있다. 아니 있을 것이다. 서울의 구석구석을 비추며 두 남녀의 동선을 따라가는 <멋진 하루>는 사랑이 있던 자리를 비추며 옛 기억을 추억한다. 있었다. 그곳엔 분명 사랑이 있었다. 현실 속의 연예인의 자살과 경제침체로 인한 실업률 증가 또 그로 인해 악순환 되는 행복의 상실이 영화를 더욱 뼈아프게 한다. 과연 우리가 웃지 못하는 이유가 그 때문일까. 생각해보면 언제나 힘들었다. 각자 삶에는 언제나 힘든 것들이 존재했다. 그래도 그때는 웃었는데 어떻게든 웃었는데 왜 지금은 웃지 못할까. 왜 사랑하기 힘들까. 그건 서울을 아로새기는 사람을 돌아볼 수 없는 우리의 여유부족이 가져온 착각이 아닐까 싶다. <멋진 하루>는 현실도피가 아닌 현실 속 낙원을 선사한다.


 우리를 위로하는 건 오로지 서울하늘 뿐이다. 영화를 보면서 더욱 분명해졌다. 너무 무책임한 말인가? 하지만 그 사실을 잊고 나면 돌이키기 힘든 회의에 바진 당신을 발견할 뿐이다. 그래서 이어폰을 귀에 꽂고는 오늘도 익숙한 그 서울 거리를 걷는다. 서울을 느낄 줄 아는 이 영화는 서울에 대한 자그마한 소품집이라 칭하고 싶다. 빡빡한 우리의 맘에도 서울에 울려 퍼지는 재즈는 달콤했고, 당신도 다시 웃으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당신과 나 그리고 서울이 삼위일체 된 행복의 시간을 기대한다. 그래서 이 영화가 참 사랑스럽다.


 내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 여유가 가득하길. 이 서울에 대한 소품집은 꽤나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