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이야기인데, 나에게는 여자친구가 있었어. 반년 정도 지난 이야기이지. 정말 오래 된 것 같아.
우린 200일이 조금 넘게 사귀었지. 사귀면서 수없이 삐걱대고, 빌고, 용서하고, 웃으며 함께 걸어왔어.
사귈 때는 먼저 고백 받고 사귀기 시작했었지. 처음에 나는 그닥 맘 없었지만 사귀면서 좋아하게 되었었어.
나는 원래 좋아하던 애가 있었거든. 그런데 그 애는 내가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내가 상담을 받고 있던 친구에게 가버렸지. 친구는 그저 나를 상담해주고 있었을 뿐이고 그 애가 대쉬를 한 것이라 배신감 같은 것은 느낄 틈도 주어지지 않았어. 그렇게 있던 차에 고백을 받은 거야. 정확하게는 진실게임 자리에서 내가 간접적으로 고백하는 자리에서 그 애도 나와 똑같은 방법으로 나에게 고백을 해왔었던 것이지.
물론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어. 그래서 나는 모른척 했지. 그런데, 그 애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에게 잘해주었지. 자꾸 말도 걸어오고, 이것저것 가끔 챙겨주기도 하고. 그렇게 보름 정도가 지났던 것 같아. 친구가 깨지기를 바랄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그래서 그냥 멍하니 무방비로 있던 내 마음이 조금씩 움직였나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낮이었어, 뜬금없이 문자가 왔었지.
'할 얘기 있는데, 만나줄 수 있어?'
라는 식으로 말이야.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러겠다고 했지. 사실 이쯤 되면 어떤 멍청이라도 알만하잖아? 나가면 고백 받을 것이라고, 태도를 결정해야 할 때가 온다고. 나 역시 그걸 느끼고 있었어. 그래도, 아니 그래서 알겠다고 했었지.
2008년 4월 28일. 그날은 참 묘한 날이었어. 우리 학교에서는 방송 동아리에서 아침, 점심, 저녁 시간에는 꼭 노래를 틀어 놓거든. 그런데-, 그날따라 노래들이 전부 고백하는 노래였던 거야. 게다가 한술 더 떠서 거의 답가에 가까운 노래들이 번갈아서 나왔지.
노래가 그래서인지, 그 애도 당황을 했는지 어쨌는지, 일상적인 이야기만 30분쯤 하면서 같이 걸었었어. 그러다가 문득 그 애가 말했지. 원래 씩씩하고 당돌한 애였는데, 정말 그 애 다운 고백이었어.
'있잖아, 나 너 좋아해.'
걸음을 멈추고,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아니, 쳐다봤다가 부끄러웠는지 슬며시 시선을 피했었지.. 하지만 발음도 전혀 흐트러지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었던거야.
이미 알고 있던데다, 깔린 노래들도 그렇고, 행동과 말투가 언벨런스한게 너무 재미있어서 나는 풋, 하고 웃고 말았었지. 그러니까 그제서야 그 애 얼굴에 당혹감이 서리더라. 하도 씩씩해서 귀여운면은 없을줄 알았더니, 역시 여자인가 싶더라. 정말 귀여웠거든.
그 직후에 치켜올라간 눈꼬리로 날 슬쩍 흘기면서 왜 웃냐고, 진심이라고 당당하게 쏘아 붙이던 모습도 기억이 나.
나는 잠시 대답을 회피했었지. 사실 무대포로 만나긴 했는데, 오히려 내쪽에서 마음의 준비를 안했었으니까. 그래서 내일까지 생각해서 다시 보기로 했지. 물론 결과는 위에서 말했다시피 사귀자였어. 하지만 그 때는 아직 호감 정도에 불과했지. 그저 기댈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 수록, 그 애가 나에게 고백해준 것이, 그 애가 나를 좋아해주는 것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 어차피 우리 둘 다 기숙사였으니까, 매일 시간만 나면 손을 잡고 걸었어. 겨우 손 잡고 같이 있었을 뿐인데, 그게 어찌나 그렇게 행복했던지... 그래, 그렇게 나 역시 그 애를 좋아하게 되었어.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의 나는 정말 연애가 뭔지도 잘 모를 때였지. 그래도 기뻐하는게, 웃는게 너무 좋아서 해달라는 것은 할 수 있는한은 해주려고 노력했어. 다시 생각해보면 하나도 해준게 없는 것 같지만 말이야....
그렇게 어느덧 그 애의 생일이 되고, 무언가 해줄 생각에 일은 벌였는데 계산 미스여서 결국 그 애 돈까지 쓰게 되기도 했고, 바로 몇일 뒤인 100일째에는 둘 다 돈이 없어서 조촐하게 보냈었지..
그래, 그렇게 못난 나였지만 그 애는 그래도 내가 좋다고, 나 밖에 없다고 해주었었어. 정말 고마웠지.. 지금 이렇게 이 글 쓰는 와중에도 고맙고 슬퍼져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어느덧, 200일이 지났어. 그 때는 권태기였는지 정말 많이 싸웠어. 정말 사소한 것으로 시작해서 크게 싸웠었지. 내가 조금만 이해했으면, 한걸음만 물러섰으면 싸우지도 않았을 일들인데 말이야..
그래도 200일이잖아. 그래서 우린 화해하고 웃으며 케이크의 불을 껐지. 둘이 나란히 앉아서 자축 노래를 부르고, 케이크의 불을 껐었어..
그리고 몇일 뒤에, 또 정말 사소한 것으로 싸우게 되었었어. 그 무렵 싸운 이유는 거의 같았어. 그 애의 말투는 씩씩하고 당당한 것이 조금 지나쳐서 약간 명령조, 공격조이거든. 게다가 어찌나 표정 관리를 잘하던지, 장난도 진심으로 들릴 정도였달까. 그것 때문에 오해가 생겨서 싸웠던 것이지.
거의 3주간 하루 건너 싸웠었으니 서로 지칠만도 했을거야.... 그런만큼 내가 이해 했어야했는데..
그 날, 나는 싸우다 이런 말을 들었었어.
'니가 200일 동안 나한테 해준게 뭐가 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눈 앞이 캄캄해졌지. 물론 내가 해준게 없다지만, 아프면 업어서 택시 잡아 병원에 가고, 산 위에 있는 기숙사에서 뛰어내려가서 약도 사오고, 목마르다면 또 뛰어내려가서 마실 것 사오고..... 나름대로 해본다고, 뭔가 해준다고 했었는데도 그걸 알아주지 않는 것이, 그렇게 담아두었었다는 것이 너무 충격이었어..
그래서 나도 홧김에 해서는 안될 말을 해버렸어...
헤어지자고.. 정 그러면 너한테 여러가지 잘해주는 남자 만나라고..
해서는 안될 말이었지.....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어..
그 애는 1달쯤 지나서 나에게 연락을 하기 시작했었어, 잘못했다고. 그런데 나는 정말 좀생이 같아서, 정말 소심해서,
'내가 미안해, 정말 잘못했어, 네가 나한테 용서를 구할게 아니라 내가 용서를 구해야해, 잘못했어, 미안해.'
그래, 정말 간단하게 '사랑해'라는 말을 못했던거야... 그렇게 문자를 무시하고, 전화가 와도 내버려두었지. 그리고 그렇게 다시 연락은 오지 않았어...
그러다가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었어. 원래는 그 날에 같이 여행을 가기로 했었지.. 그래..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난 전에도 그랬듯이 친구들과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지. 그 때 갑자기 전화가 왔어. 나는 연락이 끊긴 후에 후회를 하고 있던 참이라서, 당황하면서도 기뻤지. 당연히 전화를 받았어. 하지만 목소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받았지.
어디냐고, 묻길래 PC방이라고 대답을 했지. 그러니까 근처에 있으니까 잠깐만 만나주라는 거야. 그래서 나는 '왜'라고 물었어. 정말 바보 같이도... '왜'라니.. 그러니까 그 애는 고백하던 날처럼 '있어, 그니까 한번만 만나줘'라고 대답을 해왔지. 그런데 나는 또 '왜'라고 물은 거야. 정말 내가 미쳤었지.. 내가 뭘 잘했다고.. 무릎 꿇고 빌어도 모자를 판에 말야.... 그렇게 두번쯤 대화가 오갔을까, 그 애가 짜증을 냈지. 마구 쏘아붙이길래 친구에게 말을 했더니 그녀석이 전화를 끊어버렸지. 그리고 그녀석에게 내가 욕을 하는 사이에 다시 전화가 왔어, 난 급히 받았지. 그리고 내가 뭐라고 해명하기 전에, 받자마자 들려온 말은.... 그 애 특유의 강한 어조의 물음이었어.
'야, 너 지금 전화 끊었냐? 하, 내가 진짜 어이가 없어서. 니가 그렇게 잘났냐? 어?'
거기까지 듣고 나는 전화를 끊어버렸어. 이번에는 내 손으로... 정말이지, 아직도 그 불같은 성격 못고쳤구나, 하면서. 사실 다시 한번 전화가 오기를 바랬어... 그런데 전화는 오지 않았지. 아니 오긴 했어. 하지만 우습게도 내가 화장실에 간 사이에 전화가 왔더라... 웃기지도 않아, 이런 거.. 하..
그렇게, 우린 연락이 없이 개강날까지 보냈어. 서로 뭘 하고 사는지도 모른채..
같은 학교에 같은 동아리야. 흔히 CC라고들 하지. 난 CC였어. 그래. 그리고 동아리가 같아서 동아리에 나가면 매번 마주치지. 하지만 그녀 옆에는 이젠 다른 남자가 있어. 알면서도, 보면 나만 아픈 것을 알면서도 오늘도 동아리방에 찾아가. 얼굴이라도 보려고. 볼 때마다 속이 뒤집히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좋으니까, 동아리방에 가.
헤어진 후로 눈물을 흘리지 않았어. 얼마전에 꾼 꿈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엄마에게 하소연 할 때를 제외하고는 단 한번도. 슬프고 울고 싶은데, 눈물만은 나오질 않더라... 그래서 나는 더욱 완벽하게 웃어. 아무렇지 않은 듯, 정말 즐거운 듯, 축하한다는 듯이... 환하게, 정말 환하게 웃어..
잊혀지지가 않아, 주변 모든게 다 그 애와의 기억이라서, 잊을 수가 없어... 기억 속에 있어서 기억을 지울 수가 없어...
얼마전에 동아리 사람들이 영화를 보러 가자길래 영화를 보러 갔어. 당연히 또 만났지. 주말엔 얼굴 볼 일이 없는데, 만나게 된 거야. 물론 알면서도 나간 것이지만. 속이 타도, 얼굴 보려고..
영화 보고 돌아오는 길에, 난 일부러 전화 받는척 뒤에 쳐졌어. 그런데 그 애도 뒤로 쳐지더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내가 전화 받으며 걷고 있고, 앞에서는 그 애가 걷고 있고, 그리고 저 앞에 한 일행이 있고. 이렇게 따로따로인 것으로 보였을 거야.
그렇게 걷다가, 그 애가 지금 사귀는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지. 둘이 화해 좀 하면 어떻겠냐고.
그래, 화해 하고 싶어 미치겠어. 그런데, 네가 말하는 그 화해랑 내가 원하는 화해는 다른 것 같다.
그래서 난 시큰둥하니, 네가 잘 해주면 되지, 라고 말하고는 말을 끊었어.
그러다보니 그 애가 우리보다 한참 뒤쳐졌지. 그래서 난 무심한척 휙 뒤돌아서 꾸물거리지 말고 빨리 오라고 소리쳤지.
추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시리다..
새하얀 기억들아.
아아─, 이것은 '그 사람들'이 되어버린
우리의 기억인가.
'그 때'라고 불리는 것인가.
길 위에 듬뿍 쌓여,
흔하지만 새하얘서 눈에 띄는 것들아.
너희는 알고 있니,
너희가 지닌 '시림'을?
내 이야기 좀 들어줄래?
오래된 이야기인데, 나에게는 여자친구가 있었어. 반년 정도 지난 이야기이지. 정말 오래 된 것 같아.
우린 200일이 조금 넘게 사귀었지. 사귀면서 수없이 삐걱대고, 빌고, 용서하고, 웃으며 함께 걸어왔어.
사귈 때는 먼저 고백 받고 사귀기 시작했었지. 처음에 나는 그닥 맘 없었지만 사귀면서 좋아하게 되었었어.
나는 원래 좋아하던 애가 있었거든. 그런데 그 애는 내가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내가 상담을 받고 있던 친구에게 가버렸지. 친구는 그저 나를 상담해주고 있었을 뿐이고 그 애가 대쉬를 한 것이라 배신감 같은 것은 느낄 틈도 주어지지 않았어. 그렇게 있던 차에 고백을 받은 거야. 정확하게는 진실게임 자리에서 내가 간접적으로 고백하는 자리에서 그 애도 나와 똑같은 방법으로 나에게 고백을 해왔었던 것이지.
물론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어. 그래서 나는 모른척 했지. 그런데, 그 애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에게 잘해주었지. 자꾸 말도 걸어오고, 이것저것 가끔 챙겨주기도 하고. 그렇게 보름 정도가 지났던 것 같아. 친구가 깨지기를 바랄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그래서 그냥 멍하니 무방비로 있던 내 마음이 조금씩 움직였나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낮이었어, 뜬금없이 문자가 왔었지.
'할 얘기 있는데, 만나줄 수 있어?'
라는 식으로 말이야.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러겠다고 했지. 사실 이쯤 되면 어떤 멍청이라도 알만하잖아? 나가면 고백 받을 것이라고, 태도를 결정해야 할 때가 온다고. 나 역시 그걸 느끼고 있었어. 그래도, 아니 그래서 알겠다고 했었지.
2008년 4월 28일. 그날은 참 묘한 날이었어. 우리 학교에서는 방송 동아리에서 아침, 점심, 저녁 시간에는 꼭 노래를 틀어 놓거든. 그런데-, 그날따라 노래들이 전부 고백하는 노래였던 거야. 게다가 한술 더 떠서 거의 답가에 가까운 노래들이 번갈아서 나왔지.
노래가 그래서인지, 그 애도 당황을 했는지 어쨌는지, 일상적인 이야기만 30분쯤 하면서 같이 걸었었어. 그러다가 문득 그 애가 말했지. 원래 씩씩하고 당돌한 애였는데, 정말 그 애 다운 고백이었어.
'있잖아, 나 너 좋아해.'
걸음을 멈추고,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아니, 쳐다봤다가 부끄러웠는지 슬며시 시선을 피했었지.. 하지만 발음도 전혀 흐트러지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었던거야.
이미 알고 있던데다, 깔린 노래들도 그렇고, 행동과 말투가 언벨런스한게 너무 재미있어서 나는 풋, 하고 웃고 말았었지. 그러니까 그제서야 그 애 얼굴에 당혹감이 서리더라. 하도 씩씩해서 귀여운면은 없을줄 알았더니, 역시 여자인가 싶더라. 정말 귀여웠거든.
그 직후에 치켜올라간 눈꼬리로 날 슬쩍 흘기면서 왜 웃냐고, 진심이라고 당당하게 쏘아 붙이던 모습도 기억이 나.
나는 잠시 대답을 회피했었지. 사실 무대포로 만나긴 했는데, 오히려 내쪽에서 마음의 준비를 안했었으니까. 그래서 내일까지 생각해서 다시 보기로 했지. 물론 결과는 위에서 말했다시피 사귀자였어. 하지만 그 때는 아직 호감 정도에 불과했지. 그저 기댈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 수록, 그 애가 나에게 고백해준 것이, 그 애가 나를 좋아해주는 것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 어차피 우리 둘 다 기숙사였으니까, 매일 시간만 나면 손을 잡고 걸었어. 겨우 손 잡고 같이 있었을 뿐인데, 그게 어찌나 그렇게 행복했던지... 그래, 그렇게 나 역시 그 애를 좋아하게 되었어.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의 나는 정말 연애가 뭔지도 잘 모를 때였지. 그래도 기뻐하는게, 웃는게 너무 좋아서 해달라는 것은 할 수 있는한은 해주려고 노력했어. 다시 생각해보면 하나도 해준게 없는 것 같지만 말이야....
그렇게 어느덧 그 애의 생일이 되고, 무언가 해줄 생각에 일은 벌였는데 계산 미스여서 결국 그 애 돈까지 쓰게 되기도 했고, 바로 몇일 뒤인 100일째에는 둘 다 돈이 없어서 조촐하게 보냈었지..
그래, 그렇게 못난 나였지만 그 애는 그래도 내가 좋다고, 나 밖에 없다고 해주었었어. 정말 고마웠지.. 지금 이렇게 이 글 쓰는 와중에도 고맙고 슬퍼져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어느덧, 200일이 지났어. 그 때는 권태기였는지 정말 많이 싸웠어. 정말 사소한 것으로 시작해서 크게 싸웠었지. 내가 조금만 이해했으면, 한걸음만 물러섰으면 싸우지도 않았을 일들인데 말이야..
그래도 200일이잖아. 그래서 우린 화해하고 웃으며 케이크의 불을 껐지. 둘이 나란히 앉아서 자축 노래를 부르고, 케이크의 불을 껐었어..
그리고 몇일 뒤에, 또 정말 사소한 것으로 싸우게 되었었어. 그 무렵 싸운 이유는 거의 같았어. 그 애의 말투는 씩씩하고 당당한 것이 조금 지나쳐서 약간 명령조, 공격조이거든. 게다가 어찌나 표정 관리를 잘하던지, 장난도 진심으로 들릴 정도였달까. 그것 때문에 오해가 생겨서 싸웠던 것이지.
거의 3주간 하루 건너 싸웠었으니 서로 지칠만도 했을거야.... 그런만큼 내가 이해 했어야했는데..
그 날, 나는 싸우다 이런 말을 들었었어.
'니가 200일 동안 나한테 해준게 뭐가 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눈 앞이 캄캄해졌지. 물론 내가 해준게 없다지만, 아프면 업어서 택시 잡아 병원에 가고, 산 위에 있는 기숙사에서 뛰어내려가서 약도 사오고, 목마르다면 또 뛰어내려가서 마실 것 사오고..... 나름대로 해본다고, 뭔가 해준다고 했었는데도 그걸 알아주지 않는 것이, 그렇게 담아두었었다는 것이 너무 충격이었어..
그래서 나도 홧김에 해서는 안될 말을 해버렸어...
헤어지자고.. 정 그러면 너한테 여러가지 잘해주는 남자 만나라고..
해서는 안될 말이었지.....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어..
그 애는 1달쯤 지나서 나에게 연락을 하기 시작했었어, 잘못했다고. 그런데 나는 정말 좀생이 같아서, 정말 소심해서,
'내가 미안해, 정말 잘못했어, 네가 나한테 용서를 구할게 아니라 내가 용서를 구해야해, 잘못했어, 미안해.'
그래, 정말 간단하게 '사랑해'라는 말을 못했던거야... 그렇게 문자를 무시하고, 전화가 와도 내버려두었지. 그리고 그렇게 다시 연락은 오지 않았어...
그러다가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었어. 원래는 그 날에 같이 여행을 가기로 했었지.. 그래..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난 전에도 그랬듯이 친구들과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지. 그 때 갑자기 전화가 왔어. 나는 연락이 끊긴 후에 후회를 하고 있던 참이라서, 당황하면서도 기뻤지. 당연히 전화를 받았어. 하지만 목소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받았지.
어디냐고, 묻길래 PC방이라고 대답을 했지. 그러니까 근처에 있으니까 잠깐만 만나주라는 거야. 그래서 나는 '왜'라고 물었어. 정말 바보 같이도... '왜'라니.. 그러니까 그 애는 고백하던 날처럼 '있어, 그니까 한번만 만나줘'라고 대답을 해왔지. 그런데 나는 또 '왜'라고 물은 거야. 정말 내가 미쳤었지.. 내가 뭘 잘했다고.. 무릎 꿇고 빌어도 모자를 판에 말야.... 그렇게 두번쯤 대화가 오갔을까, 그 애가 짜증을 냈지. 마구 쏘아붙이길래 친구에게 말을 했더니 그녀석이 전화를 끊어버렸지. 그리고 그녀석에게 내가 욕을 하는 사이에 다시 전화가 왔어, 난 급히 받았지. 그리고 내가 뭐라고 해명하기 전에, 받자마자 들려온 말은.... 그 애 특유의 강한 어조의 물음이었어.
'야, 너 지금 전화 끊었냐? 하, 내가 진짜 어이가 없어서. 니가 그렇게 잘났냐? 어?'
거기까지 듣고 나는 전화를 끊어버렸어. 이번에는 내 손으로... 정말이지, 아직도 그 불같은 성격 못고쳤구나, 하면서. 사실 다시 한번 전화가 오기를 바랬어... 그런데 전화는 오지 않았지. 아니 오긴 했어. 하지만 우습게도 내가 화장실에 간 사이에 전화가 왔더라... 웃기지도 않아, 이런 거.. 하..
그렇게, 우린 연락이 없이 개강날까지 보냈어. 서로 뭘 하고 사는지도 모른채..
같은 학교에 같은 동아리야. 흔히 CC라고들 하지. 난 CC였어. 그래. 그리고 동아리가 같아서 동아리에 나가면 매번 마주치지. 하지만 그녀 옆에는 이젠 다른 남자가 있어. 알면서도, 보면 나만 아픈 것을 알면서도 오늘도 동아리방에 찾아가. 얼굴이라도 보려고. 볼 때마다 속이 뒤집히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좋으니까, 동아리방에 가.
헤어진 후로 눈물을 흘리지 않았어. 얼마전에 꾼 꿈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엄마에게 하소연 할 때를 제외하고는 단 한번도. 슬프고 울고 싶은데, 눈물만은 나오질 않더라... 그래서 나는 더욱 완벽하게 웃어. 아무렇지 않은 듯, 정말 즐거운 듯, 축하한다는 듯이... 환하게, 정말 환하게 웃어..
잊혀지지가 않아, 주변 모든게 다 그 애와의 기억이라서, 잊을 수가 없어... 기억 속에 있어서 기억을 지울 수가 없어...
얼마전에 동아리 사람들이 영화를 보러 가자길래 영화를 보러 갔어. 당연히 또 만났지. 주말엔 얼굴 볼 일이 없는데, 만나게 된 거야. 물론 알면서도 나간 것이지만. 속이 타도, 얼굴 보려고..
영화 보고 돌아오는 길에, 난 일부러 전화 받는척 뒤에 쳐졌어. 그런데 그 애도 뒤로 쳐지더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내가 전화 받으며 걷고 있고, 앞에서는 그 애가 걷고 있고, 그리고 저 앞에 한 일행이 있고. 이렇게 따로따로인 것으로 보였을 거야.
그렇게 걷다가, 그 애가 지금 사귀는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지. 둘이 화해 좀 하면 어떻겠냐고.
그래, 화해 하고 싶어 미치겠어. 그런데, 네가 말하는 그 화해랑 내가 원하는 화해는 다른 것 같다.
그래서 난 시큰둥하니, 네가 잘 해주면 되지, 라고 말하고는 말을 끊었어.
그러다보니 그 애가 우리보다 한참 뒤쳐졌지. 그래서 난 무심한척 휙 뒤돌아서 꾸물거리지 말고 빨리 오라고 소리쳤지.
그러다가 봐버렸어.
그 어색한 웃음을.....
언제나 잘못했다고 애교 피울 때 짓던 그 어색한 웃음을......
숨이 멎었지, 정말 이 표현이 어떤때 쓰이는지 몸소 실감했어. 정말 숨이 멎었어.
하지만 곧 현실을 상기했지.
그 웃음은, 나를 위한게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그 웃음이...... 너무 아름다워서, 너무 가슴아파서, 아직도 이러고 있어.
깨지고 나서 그 날 오히려 내가 반한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