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내 주위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룰수 없을 거라고 했던 기도 제목도 그 날 응답을 받았다.
그 것은 바로 주님의 모임 시간을 피해서 일할수 있는 일자리를
얻는 것이었다. 수,금토주일에 모임이 있었기에 모두들 그 응답은
받기 힘들다고 여겼다. 실상 그 날 얻어진 일자리는 금토주일
모임에는 온전히 다 참석 가능 했지만 수요일은 좀 힘든 일자리였다. 하지만 주님의 인도함이 있었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했다.
하지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 과정에도 주님의 말씀을 받았기에 일을
그만 두는 것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실제 그 당시,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남자가 토론토에서 어학연수 생으로 웨이터 등과
같은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은 정말 하늘의 별따기와 같은
수준으로 어려웠다.) 그리고 일을 그만 두게 된 날 다른 일자리를
얻게 되었다. 너무나도 감사하게 이 일자리에서 주님은 모임을
온전히 수요일까지도 다 참석할 수 있는 곳으로 날 인도해주셨고
훨씬 더 일하기 편하고 좋은 곳으로 옮겨주셨다. 또 그 전까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기도 제목이 또 이루어 졌다. 나 조차도
불가능하다고 여겼지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기도제목.
일하면서 성경을 볼 수 있는 곳에서 일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웨이터로 일하면서 성경을 본 다는 것은 불가능 중에 불가능이다.
그것은 너무나도 불가능한 것이기에 웨이터를 해보지 않은
사람조차 불가능인 것을 알것이다. 하지만 이 식당을 달랐다.
가슴 좀 아픈 얘기지만 내가 일하는 낮 시간에는 손님이
너무너무 없었다. 그래서 사장님께서는 손님 없을 때는 앉아서
쉬라고 책이라도 갖고 와서 읽으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렇게
난 성경책을 보며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주님의 인도하심에
놀랄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주님은 내게 말씀을 주셨다.
너무나도 감사한 말씀, 복을 내게 명하셨다.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물질을 얻을 능, 그리고 축복(일자리)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와 그의 넘치는 사랑, 그리고
그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사랑을 높이기 위해 이 글을 씁니다.
^ㅡ^
어릴 때부터 욕심이 많았던 나는 안정된 직장을 다니시는
아버지 덕에 차고 넘치지는 않지만 어린 시절부터 부족함을
잘 모르고 살았다. 때때로 우리 차가 남들보다 그리 좋지
않음이 좀 짜증이 났지만 해외 여행을 못가봐 좀 짜증이
났지만 그건 한마디로 그저 배부른 소리에 불과했다.
언제나 어머니는 내게 물질적인 부분은 후하게 대해주셨고
집안의 경제 사정보다도 나에게 물질적인 부분은 넉넉하게
베풀어 주셨다. 그래서 자연히 또래 친구들 보다는 용돈이
많은 아이였고, 항상 자신감에 넘치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물질적인 풍요 속에 자라왔다.
물질에 대한 귀한 마음을 품게 되다.
내가 살던 동네는 바로 우리 교회 옆 신길동이었다.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신길동은 그리 부유한 동네가
아니었고 유독 용돈이 풍족했던 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내 친구들은 항상 용돈이 부족했고 뭔가 재미있는 것들을
하려고 해도 항상 친구들은 '돈 없어', '돈 없어서 못해' 라는
말을 자주 했다. 어린 시절 그런 상황이 너무 싫었고
그저 함께 놀고 함께 즐기고 싶었다. 그래서 그때 품은
마음이 바로 내 '섬김'의 기초가 되어주었다. '내가 꼭
돈을 벌면 내 친구들 맛있는거 많이 사줘야지.', '내가 성공하면
내 친구들 다 데리고 살면서 필요한거 다 사줘야지.' 그런
조금은 어린 생각을 그때부터 하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들,
내 친구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언제나 내게 있었고,
그 마음은 주님을 너무나도 뜨겁게 만난 후 그 대상이 친구들,
혹은 사랑하는 자들을 넘어 영혼들을 향하게 되었다.
그리고 성장을 하며 주님은 베풀고 나누고자 하는 마음을
주 뜻대로 더욱 귀하게 이끌어 주시어 물질로서 영혼들을
섬기는 자가 되고 싶다는 비젼을 주시며 기도 제목을 주셨다.
감사하게도 그 귀한 마음은 아직까지도 변함이 없으며
주 뜻대로 쓰여지기 바란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IMF의 여파에 직격탄을 맞은 우리 집은 경제 상황이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고 2년 전인 2007년 이 후 심각한 상태가
되었다. 지금이 아니면 나를 다시는 해외에 보낼 수 없을
것이라는 어머니의 결단에 어려운 가정 형편에 캐나다 토론토로
그렇게 어학연수를 떠나게 되었다. 토론토에서 어학연수를
하는 동안 어머니는 항상 내게 가정 형편이 괜찮다고 좋아졌다고
말씀하셨고 난 순진하게도 그 것을 곧이 곧대로 믿었었다.
하지만 실상 2008년은 우리 가계에 가장 심각한 해였고 말도
못할 정도로 가계는 기울기 시작했다. 2009년이 되어 유학이라는
비젼을 주님께 인도받고 그 소식을 전하기 위해 한국에 건
전화는 나를 현실 속으로 밀어넣었고 날 절망 가운데로 떨어
뜨렸다. 무리였다. 모든 것이 절대 무리였고 당장 한국으로
가야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확실한 주님의 인도가
있었기에 토론토에 남기 위해 기도했고 한국에서 한 푼의
지원도 없이 일하며 대학 합격을 기다리며 혼자 영어 공부하기로
부모님과 얘기가 잘 되어 일단 토론토에 남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과연 남는 것이 잘하는 것일까? 한국으로 가야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셀 수 없이 들기도 했지만 너무나도 확실했다.
주님은 말씀하셨다. '남아라 영기야. 남아서 나를 보아라.
너의 인생을 나에게 준다고 하지 않았냐? 내가 인도하니 남아라
나만 보고 남아라.'
오직 순종, 내려놓음 그리고 눈물의 순간들
주님은 그렇게 돈 한푼 없는 내게 지낼 수 있는 집을 주셨다.
할렐루야~ 너무나 감사했다. 아, 주님만 따라가면 정말 다 해결
되는구나~ 하는 감사와 간증이 절로 나왔다. 그렇게 주님의 손길을
느끼며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았다. 돈이 전혀 없는 상황도 지원
받을 어느 곳도 없는 없는 상황도 어떤 상황도 주 앞에서 두렵지
않고 오히려 가슴 벅찬 기대만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모든것이
탄탄대로 같이 평탄할 것이라는 생각은 그저 내 기대일 뿐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알게 되었다. 상황은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또
비참하게 나를 괴롭혔다. 주님 앞에서 과부의 두 렙돈과 같이
내 주머니의 전 재산을 털어 주님께 믿음을 고백한 그 날부터
나에게는 1센트와 5센트짜리로 된 52센트가 전 재산이었다.
그 52센트는 주님께 드리기에 너무나도 부끄러웠고 온전한
헌물이 아니라고 생각되서 갖고 있었을 뿐 실제 나의 전 재산은
말그대로 0원이었다. 현실은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돈이 없어
끼니를 거르고 그렇게도 좋아하던 커피 조차 입에 댈 수 없었다.
당시 나는 학교 편입 서류 준비와 시험을 준비하고 맡은 바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주위 사람들 그리고 동역자들의 한마디
한마디 였다. 그들은 일하지 않는 나를 바보처럼 생각하였고
혹은 아무 것도 안하고 하나님의 채우심만 바라보는 자 같이
대하기도 말하기도 했다. 자존심이 너무나도 상했다. 그래서
너무나도 일하고 싶었다. 한국에 당장 이라도 전화하고 싶었다.
못살겠다고 10만원이라도 좋으니 돈 좀 부쳐달라고....
하지만 할 수 없었다. 주 앞에서 한 약속과 또 그 문제에 대한
주님의 응답은 기다리고 인내하라 였다. 때로는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됐는지 원망스럽기 까지 했다.
돈이 없어 거지처럼 살아서 무시 받는 것, 그것까지는 이를 악물고
참을 수 있었다. 무참히 짓밟힌 자존심 조차 눈물을 삼키며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나를 참을 수 없게 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에 대한 무시였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
인도 그리고 말씀을 무시할 때 하나님을 무시하는 그들 때문에
너무나도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울부 짓었다. 제발 주님의
능력을 그들에게 보여달라고 무시하던 그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달라고 그렇게 까지 기도하였다...
귀한 섬김의 손길, 하나님께서 주시는 만나
피붙이 하나 없는 외국에서 내가 3달 동안이나 무일푼으로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주위 사람들의 참 섬김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그 시간동안 내 기억에 먹을 양식을 위해 기도 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주님은 정말 그 날 먹을 일용할 양식을
채워주셨다. 우리 교회의 귀한 영혼들을 통해서 또 잠자리를
제공해준 고마운 내 친구이자 동역자, 목사님 사모님을 통해
항상 매일 매일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에서 그랬듯 한끼한끼를
채워주셨다. 밥 한끼의 소중함, 섬기는 손길의 고마움을 너무나도
절감하며 참 섬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타국 땅에서 한 겨울에 길에서 얼어죽거나
굶어 죽었거나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들에게 받은 진정 참
섬김은 나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앞으로 내가 감당하고 해야할
섬김에 대해 좋은 모델이 되어 주었다.
항상 자기 손이 커서 반찬을 많이 해 남는 거를 주는 거라고
겸손히 말하며 섬기는 귀한 주희,
방 값이나 밥 값은 신경쓰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서 학교
꼭 합격하라고 내게 안락한 집과 음식을 오랜 시간동안
제공해주었던 우리 곰태구
나의 참 스승이자 내 영혼의 인도자이며 지난 1년이 넘는 시간동안
일주일에 4일을 섬기며 물심양면으로 채워주시고 이끌어 주신
갚을 수 없는 빚을 진 정관식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아무 말 말라며 조용히 뒤에서 물질로 섬겨 주신
미옥이 누나...
그 밖에 너무나도 많은 이들이 그렇게 부족하고 부족한 한 영혼을
너무나도 섬겨 주셨다.
말씀, 말씀, 말씀
그렇게 내 인생에서 너무나도 힘겨운 시절을 보낼 때
항상 웃음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하나였다.
오직 내 주 하나님 때문이었다. 매일 하는 QT 속에서 주님은
매일 매일 그 날의 필요한 말씀을 주셨다. 말씀 속에서 살며
성경 속에 사는 듯한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성경에 나온 말씀들이
체험이 되고 성경 속에 나온 이야기들이 삶에서 펼쳐지는
그런 시간은 내게 너무나도 기쁨이 되었다. 진정 참 성락,
거룩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육체의 눈으로 현실을
봤을때는 아무런 희망도 그저 미친 짓을 하는 내가 보였지만
영의 눈으로 나를 봤을 때 내 영혼은 기뻐 춤췄고 항상 웃을 수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왜 생명인지 또 기쁨인지 또 그 것을
만나라고 하는지,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던 그 말씀이 너무나도 확실하게 체험이 되는
시간이었다. 내 삶에서 앞으로도 이런 체험이 이어지길 정말
너무나도 간절히 원하고 원한다. ^ㅡ^
고난의 끝, 복을 명하노라
지쳐 쓰러지기를 반복하며 또 때로는 주님께 눈물을 흘리며
이젠 정말 한국 가겠다고 더 이상은 정말 못하겠다 금식하며
절규하던 내게 주님은 믿음을 강하게 하고 두려워 말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주님께서 허락하는 그 복을 받으라고
말씀해주셨다. 너무나도 힘들어서 이젠 정말 끝이라고 바보같은
결심을 했던 나를 주님은 너무나도 강하게 잡아주셨다.
수요 집회 날, 김기동 목사님의 영상 설교를 통해 주님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는 질문을 하셨고 나는 눈물로
고백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가 진정 왜 토론토에 남았는지
그 이유를 다시 깨닫게 되었다. '그래, 내 것이 아닌 주님의
것을 위해 남았지. 참고 나아가자. 주님만 보고 나가자."
그렇게 다시금 잡아주시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너무나도
꽁꽁 닫았던 마음을 다시 열고 주님께 죽는 다는 심정으로
순종했다. 그 날이 청년부 단기 수련회 3일전이었다.
그렇게 수련회가 끝나면 죽어도 좋다라는 작정으로 충성을
다했던 수련회가 끝나고 나는 당연히 죽지 않고 다시 세상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들, 특히 물질부분은
나를 또 근심하게 하였다. '주님, 끝까지 충성했는데 왜 이문제는
끝까지 풀리지 않고 절 괴롭히나요...이 고난은 안끝나나요?'
이런 기도가 절로 나왔다. 이런 고민에 대해 든든한 믿음의
동역자와 나누었을 때 그를 통해 주님은 말씀하셨다. 평안하고
믿음을 끝까지 지키라고. 그리고 이틀 후 주님은 새로운 길을
열어주셨다. 그 날이 되기 전까지 몇번이고 한국에 기도를 하고
전화를 했었다. '주님, 오늘 어머니한테 돈 문제 말하고 돈 좀
부쳐 달라고 할껀데요. 주님의 뜻이면 잘 되게 해주세요.'
하지만 번번히 전화할 때마다 내가 돈 문제 말하기에 앞서
어머니는 항상 말씀하셨다. 돈 문제는 한국에서는 도와줄 수
없으니 내가 알아서 하라고...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내색조차
할 수 없었었다. 하지만 주님께서 열어주신 그 새 날, 아침부터
한국에서 전화가 왔다. 잠결에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였다.
그냥 생각나서 전화하셨다는 말씀을 하시며 마지막에 말씀하셨다.
'많이 힘들지? 100만원 부쳐줄테니 생활에 보태써라'
우와 할렐루야 드디어 3년같았던 그 3개월의 고난의 시간이
끝이 나는구나~ 너무나도 기뻣다. 단순히 돈이 생겨서 기뻣던
것이 아니라 그 3개월동안 단지 물질이 없었던게 아니라 주님께서
물질의 복을 기도하던 내게 물질의 연단을 주시고 또 믿음의
테스트를 주시고 복을 주시기 전 나를 성장시키시는 과정이란걸
깨닫게 해주셨기에 마침내 그 고난의 길고 긴 터널이 끝이 났구나
하는 기쁨이 너무나도 컸다.
또한 내 주위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룰수 없을 거라고 했던 기도 제목도 그 날 응답을 받았다.
그 것은 바로 주님의 모임 시간을 피해서 일할수 있는 일자리를
얻는 것이었다. 수,금토주일에 모임이 있었기에 모두들 그 응답은
받기 힘들다고 여겼다. 실상 그 날 얻어진 일자리는 금토주일
모임에는 온전히 다 참석 가능 했지만 수요일은 좀 힘든 일자리였다. 하지만 주님의 인도함이 있었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했다.
하지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 과정에도 주님의 말씀을 받았기에 일을
그만 두는 것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실제 그 당시,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남자가 토론토에서 어학연수 생으로 웨이터 등과
같은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은 정말 하늘의 별따기와 같은
수준으로 어려웠다.) 그리고 일을 그만 두게 된 날 다른 일자리를
얻게 되었다. 너무나도 감사하게 이 일자리에서 주님은 모임을
온전히 수요일까지도 다 참석할 수 있는 곳으로 날 인도해주셨고
훨씬 더 일하기 편하고 좋은 곳으로 옮겨주셨다. 또 그 전까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기도 제목이 또 이루어 졌다. 나 조차도
불가능하다고 여겼지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기도제목.
일하면서 성경을 볼 수 있는 곳에서 일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웨이터로 일하면서 성경을 본 다는 것은 불가능 중에 불가능이다.
그것은 너무나도 불가능한 것이기에 웨이터를 해보지 않은
사람조차 불가능인 것을 알것이다. 하지만 이 식당을 달랐다.
가슴 좀 아픈 얘기지만 내가 일하는 낮 시간에는 손님이
너무너무 없었다. 그래서 사장님께서는 손님 없을 때는 앉아서
쉬라고 책이라도 갖고 와서 읽으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렇게
난 성경책을 보며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주님의 인도하심에
놀랄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주님은 내게 말씀을 주셨다.
너무나도 감사한 말씀, 복을 내게 명하셨다.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물질의 복을 주님은 그렇게 허락하셨고 명하셨다. 그리고
그때까지의 상황에 대해 명쾌한 응답을 주셨다. 너무나도
감사하게..그리고 또 며칠 후 멀리 미국에 사는 영감 넘치는
동역자를 통해 다시한번 쾅쾅쾅 말씀을 다시 주심으로 확증해
주셨다. 그렇게 나의 물질의 길이 열리고 주님께서 채워주시는
복이 내게 임하였다.
그렇게 너무나도 기쁨에 들떠 있을 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있었다. 너무 장사가 안되서 가게를 문닫아야된다고 그래서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라는 거였다. 주님께서 인도해주시는
일자리였는데 이제 무슨 일이죠? 기도가 나왔다. 실상 웨이터로서
다시 일자리를 구한 다는 것은 정말 하늘의 별따기였다.
하지만 믿음을 잃지 않고 계속 기도하였다. 그리고 얻은 세번째
일자리 그곳은 주님의 놀라운 예비하심과 놀랄 수 밖에 없는
세심함이 부인 할 수 없이 거하는 곳이었다. 기존에 있던 일자리
에서는 기본 시급이 낮았기에 아침부터 5시까지 매일 일해야했다.
저녁에 모든 모임에 참석은 가능했지만 따로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세번째로 주어진 그곳은 시급도 전에 일하던 곳보다
더 높았고 팁도 훨씬 더 많이 들어오는 곳이라 적은 시간을
일하고도 같은 돈을 벌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저녁시간에만
일을 해도 충분히 생활비가 채워지는 곳이었다. 주님은
그렇게 나의 공부까지도 배려를 해주셨다. 하지만 주님의
배려는 이 곳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였다. 새로 얻은 일자리는
토론토 아니 캐나다에서도 찾기 힘든 특징이 있었다.
사장님께서는 믿음이 있는 크리스챤으로 주일에 문닫는
식당이었으며 또 너무나도 좋은 분이시고 또또또 일하는 시간에
식당에 계시지 않았다. 그래서 너무나도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쉐프 아저씨도 다른 주방 사람들도 웨이터 웨이츄리스들도
각자 맡은 일만 열심히하면 되는 곳이었다. 스트레스 주는 이가
없이 그저 자기 일만 하면 되는 곳이었다. 일을 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 환경은 오히려 더 효율성이 높고 너무나도 편하고
일하기에 감사한 환경인 것이다. 너무나도 좋은 환경 속에서
높은 임금으로 생활비를 채우며 또 주님은 유학원을 통해
무료로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는 길까지 열어 주셨다.
감사 또 감사..감사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동안
신세를 졌던 친구 집을 떠나 나올 수 밖에 없던 상황에서
기가 막히게 절묘한 타이밍에 일자리와 새로 얻은 집이
교회 근처로 잡히게 되어 뛰어서 교회를 갈 수 있는 곳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게 되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집이 교회에서
2시간 가량 떨어진 곳에 있어 많은 시간을 이동 시간에 들여야
했지만 차로 10분 거리에 집을 얻게 되어, 훨씬 더 좋은 환경
속에 살게 된 것이다. 일하는 곳도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
너무나도 환상적인 주님의 인도하심에 감사가 끊이지가 않는다.
또 나를 너무나도 잘아시는 주님은 너무나도 세심한 것까지
신경 써 주셨다. 나는 Jazz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토론토와서
좋은 이유 중 하나는 토론토에 Jazz 라디오 채널이 있다는 것
이었다. 하지만 Mp3가 고장난 후 전혀 그 방송들을 들을 수
없었다. 그런 내게 주님은 내가 일하는 식당에 그 방송이
항상 울려퍼지게 해주었다. 할렐루야 주님 이런 부분까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으로 채워주시네요...주님의 세심함은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이토록 놀랍고 세심하게 하나하나
응답해주시고 이끌어 주시는 우리 주님을 어찌 내가 떠나며
어찌 부인 할 수 있겠는가. 생명의 말씀이 이 곳에 있는데
내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고백이 절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 너무나도 감사한 것은 주님은 어머니의 꿈을
통해서도 그 복들을 확증해 주셨고 내 현재도 그 복들로
채워주고 계신다.
우리의 믿음은 실상이다.
영적 세계는 실상이다.
영적 복과 부요 또한 실상이며 우리의 삶과 직결된다.
우리는 그 복과 은혜를 사모하며 나아가야 한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함은 복과 은혜 때문이 아니라
주님에게 받은 구원과 은혜를 갚을 길이 없기에 이 한 몸으로
믿음을 나타내고 또 주님께 헌신 할 뿐이지만
주님은 그런 우리에게 복을 명하시고 우리를 채우시길
아끼지 않으신다. 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인가...
이렇게 주님께서 내게 역사하여 주심을 남길 수 있게 되어
너무나도 감사하다. 나의 간증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숨을 멎는 그 순간까지.
하나님 홀로 영광 받으소서.
부족한 나를 통해 영광 받으소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