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뜩하고 슬프고…끝없는 청주괴담

biznetpia2009.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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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한 달 전만해도 잘 나가는 포털사이트에서 ‘청주’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청주살인’ 또는 ‘청주연쇄살인’라는 검색명령어가 떠서 두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더니 최근 들어서는 ‘청주시청’과 ‘청주터미널’이라는 검색어 사이에 ‘청주고교생투신자살’이 버젓이 자리를 잡고 있다.

정말 이런 끔찍한 일들이 있었을까? 대부분의 어른들은 느닷없이 왜 이런 단어들이 뜨는지 모르지만 지역의 중고생들은 물론이고 웬만한 초등학생들까지도 그 내막을 훤히 알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철석같이 믿고 있는 내용 가운데 일부는 사실이 아니거나 아예 처음부터 가공된 내용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 없는 풍문에는 연쇄살인범의 이름까지 거론될 정도로 구체적이다. 밑도 끝도 없이 나도는 섬뜩하고 슬픈 청주괴담의 진원을 추적했다.

[IMG0]청주고교생투신자살’이라는 검색어를 유행시킨 것은 인터넷에서만 활동하는 언더그라운드 가수로 추정되는 ‘차쿤’과 ‘에네스’가 부른 랩송 ‘눈물’이다. 눈물 신드롬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단박에 확인할 수 있다.

인터넷을 통해 ‘가장 슬픈 노래’로 급속히 유포되고 있는 눈물의 가사 가운데 마지막 부분은 ‘어린 소녀는 뱃속의 아이를 가슴에 묻고(중략), 맘 굳히고 어쩔 수 없는 선택에 기로에서 소녀는 떨리는 소년의 손을 잡아주네’로 진행된다. 아이를 갖게 된 여고생이 남고생과 투신자살이라는 극단의 수단을 택하며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다는 줄거리다.

문제는 이 노래의 도입부에 한 방송사의 실제 뉴스가 화면과 함께 흘러나온다는 것이다. 앵커멘트와 기자 리포트의 요지는 ‘어제 저녁 청주시 OO동의 한 아파트에서 남녀고등학생이 함께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다.

인트로(Intro)에 뉴스를 삽입함으로써 마치 최근에 이런 사건이 발생했고, 노래내용도 100% 사실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등 청소년들의 예민한 감수성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청주시내 모 여고에 다니는 K양은 “친구들 사이에 ‘죽은 학생들의 슬픈 사연을 알리고 추모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 2001년 뉴스에서 끄집어낸 창작

그러나 노래에 인용된 보도는 2001년에 방송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문제의 기사를 취재해 전국방송에 보도했던 Q기자는 취재가 시작되기 전에는 눈물에 자신의 보도내용 일부가 삽입된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Q기자는 “기억에도 까마득한 사건인데, 몇 달 전 어느 PD라는 사람으로부터 ‘노래를 만들었다’는 내용의 이메일과 전화가 왔다. (그 사건의)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며 물어왔는데, 솔직히 기억도 나지 않았고 생각이 난다고 해도 가르쳐 줄 수 있었겠냐”고 반문했다.

Q기자는 특히 “보도내용 중에는 여고생이 임신을 했다는 내용도 없고 단순히 동반자살을 했다는 사실만을 다뤘는데 어떻게 이런 노래가 만들어졌는지 모르겠다”며 “유족들이 알게 된다면 또 얼마나 충격을 받겠냐”며 분개했다.

Q기자에게는 또 최근 한 여학생으로부터 ‘사건의 진상을 정확히 알고 싶다’는 이메일을 받기도 했으나 뜬금없는 일이라 답장도 보내지 않고 지워버린 것으로 확인됐다.

Q기자는 “당시 방송 앵커도 이 같은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더라”면서 “회사에서도 난리다. 오디오만 들어간 나도 황당한데 또 다른 당사자는 어떻겠냐. 본사의 판단에 따라 공식적인 대응에 나설 수도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도대체 차쿤&에네스가 누구야

이쯤 되면 노래를 부른 차쿤(남)과 에네스(여)가 어떤 인물인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수년 전 사건을 끄집어내 노래에 인용했고, 마치 아는 사람의 이야기인 것처럼 구체적으로 서술된 가사에 비춰볼 때 혹여나 노래 제작자가 사건의 당사자들과 아는 인물이거나 적어도 청주가 고향이지 않을까하는 추측까지 제기됐던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 어디에서도 노래만 검색될 뿐 이들의 실체를 알 수 없었다.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홍보하는 포털의 지식검색에도 ‘도대체 차쿤&에네스가 누구냐’는 아우성만 난무할 뿐이었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지만 ‘한 메신저 사이트에서 활동하는 언더그라운드 DJ로 알고 있다’는 것이 그나마 이들에 대해 ‘알은체’를 하고 있는 정보로 확인됐다.

하지만 문제의 사이트 관계자와 가진 전화 통화에서도 “그들을 알지 못한다. 설사 회원검색을 통해 그런 회원이 있는지 파악된다 하더라도 알려줄 수 없다”는 답변을 들어야 했다.

그나마 확인된 것은 눈물의 랩에 깔리는 원곡의 오리지널버전이 ‘가람&에네스’의 ‘그 끝에’라는 것이다. 에네스란 가수는 이미 가람이라는 예명의 가수와 짝을 이뤄 같은 곡에 가사만 다른 ‘그 끝에’라는 노래를 불렀다는 얘기다.

그 끝에 역시 담배를 건네면서 알게 된 착한 소년과 엄마를 잃고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려온 소녀가 예기치 않던 관계를 맺게 되고 마침내 임신을 하게 된 소녀가 자살을 한다는 내용이다. ‘엄마 미안해’로 노래가 끝나는 것은 눈물과 똑 같다.

◈ 황당하지만 구체적인 연쇄살인 풍문

이에 앞서 초중고생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연쇄살인 소문의 진상은 황당함 자체였다. 청주 흥덕경찰서는 지난달 21일 오토바이 날치기범 검거와 관련해 브리핑을 하면서 당시 무차별적으로 퍼지고 있던 청주 연쇄살인 소문에 대해 해명했다.

날치기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해당지역에 100여명의 경찰을 집중 배치했는데, 이를 오인해 ‘인근 여고에서 여고생 살인사건이 발생했고 사체를 운동장에 묻었다’는 소문을 시작으로 동네마다 초중고를 가릴 것 없이 ‘자신의 학교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내용으로 확대 재생산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데없이 청주 연쇄살인범이 탄생한 것이다.

심지어는 ‘문제의 여학교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극장 앞에서 모자를 파는 할머니가 살해됐다. 연쇄살인범은 청주 모 대학에 다니는 OOO이다’라는 식으로 가공된 이름으로 추정되는 실명 서너 개가 인터넷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충북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의 프로파일러(범죄심리 전문가)인 홍희선 경장은 “특정인을 겨냥하지 않은 무차별 살인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강호순 사건을 계기로 ‘나도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불안심리가 팽배해 각종 괴담이 늘어난 것 같다. 여기에다 ‘내가 그 사건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과시 심리까지 겹쳐 새로운 소문이 양산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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