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수용소 20만 "help us"

이세진2009.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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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동포들의 고통을 기억해주세요...

 

 

수용소에 대한 탈북자의 증언.

 

수용소 현황 -

북한 내 10여 곳 이상 추정. 규모는 남한의 일개 군,면 정도 크기.

수감자들은 마을 규모의 단위로 모여서 살며 간부들은 따로 마을을 이뤄 살면서 호화로운 대접을 받는다.

 

수감자 현황 -

한 곳에 보통 3-4만명, 전국적으로  20만에서 30만명 정도 수감 추정..

 

수감자 분포 -

한국전쟁포로(외국인 포함), 탈북자가족, 체제비판자, 기독교인 가족 등

대부분 무고하거나 자신이 어떤 죄 때문에 들어왔는지 알지조차 못하는 사람들이 다수.

 

완전통제구역 수용소 -

한번 들어가면 살아서 나올 수 없음. 

혁명화구역 수용소 -

출소가 가능하나 그 가능성은 거의 희박함.

 

식량상황 -

정상적인 식사의 1/3 정도의 양. 옥수수와 쌀, 소금 등이 배급되며 굶어죽는 일이 다수.

굶어 죽지 않으려고 쥐나 개구리, 뱀 등을 간부들 몰래 잡아먹음. 

 

주거환경 -

방 하나에서 한 가족이 생활하며 집은 진흙과 짚,나무 등으로 만들어짐.

옷과 신발 등은 거의 배급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들어올 때 입은 옷으로

평생을 살아야 하는 곳도 있음. 포대자루, 타이어조각 등으로 옷이나 신발을 만들어 사용.

 

학교상황 -

수용소 내에 수감자 자녀를 위한 학교가 있으나 작업과 노동이 주요 일과.

선생이 학생을 고문하거나 죽이기도 함.

 

규율상황 -

간부인 보위부원이 절대권력을 행사함. 즉결 처형권한이 있으며

그날 기분에 따라서 죽이기도 함. 눈앞에서 자식을 죽여도 저항할 수 없고

경비견이 이유없이 지나가는 사람을 물어죽여도 항의할 수 없는  상황. 

(실제로 여자 두 명이 경비견에 잡아먹힌 사건 존재) 

 

감시상황 -

인민군 무장 경비대가 경비업무 담당. 탈출 시도시 즉시 총살가능.

수용소는 '고압 전기 담장'과 '죽창 함정' 등으로 둘러쌓여 있음.

 

인권상황 -

고문과 폭행이 합법적임. 특히 여성의 경우 간부의 성폭행과 성상납이 일상적.

미혼 여성이 성상납으로 임신하게 되면 고문을 당하고 비밀 처형됨. 가족에겐 실종으로 통보.  부모나 자식이 보는 앞에서 딸이나 어머니를 강간하기도 함.

 

노동상황 -

평양 고위층과 군에 공급되는 농산물,공산품을 생산하고 건설노동에 동원됨.

핵 시설과 수력 발전 시설 등 인력만으로는 건설하기 힘든 공사에 동원되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고 함. 어린이들도 탄광 노동, 건설 노동에 동원되어 죽거나 불구가 되기도 하며 노동은 새벽에 시작하여 다음날 새벽에 끝날 정도로 가혹한 상황.

 

연좌제 적용 -

가족 친지가 죄를 지으면 함께 벌을 받는 '연좌제'가 적용됨. 가족이 탈출했을 시 남은 가족들이 나무에 매달린채 굶어 죽기도 함. 가족이 자살할 경우 남은 가족들은 수용소를 나올 수 없음.                              

 

확장된 수용소  -

유엔 등 세계기구에서 수용소 내 인권조사와 폐쇄를 위해 촉구해왔으나 오히려 수용소의 규모가 더 커지고 있다는 증언이 제기.

2000년 이후에 탈북한 사람들의 일치되는 증언들도 수용소 상황이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줌. 또 북한의 일반 주민들은 수용소 상황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며 이는 국가 일급 기밀로 다뤄지고 있다고 함.

 

탈북자들이 말하는 북한 수용소 -

" 삶을 포기한 사람들도 많지만 그곳에는 남조선이나 미국에서 언젠가 자신들을 구하러 와줄거라는 막연한 희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 수용소 같은 공포의 대상이 없으면 북한 체제는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김정일도 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절대 수용소를 없애지 않을 겁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내린 교지(지시,명령) 를 바탕으로 수감자들은 하루하루 지옥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겁니다. "

 

" 김정일은 히틀러가 쓴  '나의 투쟁'이라는 책을 머리맡에 두고 잘 정도로 히틀러를 존경한다고 들었습니다. 남한에 와서 2차대전 당시 독일의 아우슈비츠 이야기를 들었는데 수용소 생활을 했던 저로서는 아우슈비츠는 북한 수용소에 비하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 저는 수용소에서 어머니와 형이 공개처형되는 것을 목격하고 목숨을 걸고 탈출하여

2006년에 이곳 남한으로 왔습니다. 같이 탈출하려던 사람은 전기철조망에 걸려 타죽었어요. 아버지는 지금도 그곳에 갇혀 계십니다. 저는 저에게 주어진 사명이 그곳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