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 악용 막을 보완책 마련 나서야

배규상2009.05.22
조회56

 

존엄사 악용 막을 보완책 마련 나서야

 

 

대법원이 어제 인간이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스스로 자연사할 수 있는 존엄사 권리를 인정했다. 환자가 인공호흡기 등 기계장치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더 생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일 경우 치료 중단을 요구해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도록 하는 자기결정권을 허용한 것이다. 대법원은 치료 중단이 오히려 ‘인간의 존엄’과 ‘행복추구권’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법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좁히려는 시도를 했다고 판단된다. 그동안 법원은 환자의 ‘생명권’을 ‘존엄하게 죽을 권리’의 상위에 두었다. 환자가 의식불명이고 소생할 가능성이 없다고 해도 인공호흡기를 떼냈을 땐 의사와 가족을 처벌했다. 그러나 광범위하게 퍼진 연명치료 중단과 이를 인정하는 외국의 추세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서울대병원은 2007년에 말기 암환자 중 85%인 436명이 연명치료를 중단했다고 공개하기도 했다. 현실 상황을 법이 외면해 법의 사각지대로 남겨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장기간의 치료로 인해 환자와 가족이 신체적·경제적으로 의미 없이 고통을 겪는 세월을 줄여야 한다는 현실론도 반영됐다.

대법원은 다만 존엄사의 남용을 우려해 안전 장치를 마련하고자 했다. 연명치료 중단의 요건을 ‘의학적으로 소생이 불가능’하고, ‘환자의 사전 의사표시, 종교관 등을 고려해 진정한 치료 중단 의사가 있다고 추정되는 경우’로 제한한 것이다.

그럼에도 문제는 많다. 존엄사를 인정할 가장 중요한 근거는 본인의 의사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사고로 의식불명이 된 경우 어떤 근거로 환자가 치료 중단을 결정했는지 추정하기 어렵다. 장기매매 등 상업적 목적으로 악용될 수 있고, 경제적 능력이 떨어지는 빈곤층에서 존엄사가 남용될 가능성도 있다.

존엄사는 의학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으며 윤리·법률·종교·철학적 가치가 얽힌 문제다. 환자가 처한 여건도 제각기 다르다. 존엄사 논의가 이제야 공론의 장으로 나왔다.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다양한 논의와 함께 연명 치료 중단의 세부적 기준과 절차, 남용시의 처벌 방안 등 필요한 보완책 마련도 함께 진행해야 한다.

 

 

 

 

2009년 5월 22일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