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대 잔디밭, 그 네번째 이야기

주동희2009.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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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대 잔디밭, 그 네번째 이야기

 

봄비라고 부르기엔 너무 억센 비가 내리고 있다.

 

한 여름 장마처럼 굵은 빗줄기가 폭포처럼 떨어진다.

 

시멘트 바닥이라도 뜷뚫을 것 같은 이런 비가 내릴 때면

 

그녀는 그 날의 일이 생각난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떠오른다.

 

 

어느 해 여름, 장마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그녀의 집이 물에 잠겼다.

 

아버지는 어려워진 사업을 일으켜보겠다고

 

공장에서 숙식을 해결해 가며 지내고 있을 때였고,

 

어머니와 그녀를 포함한 두 딸은

 

지하 셋방에서 지내고 있을 때였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빗줄기가 점점 거세지더니,

 

어느새 그녀가 살고 있는 보금자리에 물이 차기 시작했다.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장면이 그녀의 눈앞에서 펼쳐졌다.

 

번듯한 아파트에서 살던 그녀에게 그 장면은 마치 영화 속 같았다.

 

어머니는 정신없이 중요한 물품들을 챙기기 시작했고,

 

동생은 넋을 잃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녀도 당황스러웠다.

 

그 때, 그녀의 머릿속엔 오직 한 사람만이 그려졌다.

 

아버지가 아닌 그가 그녀의 가슴을 꽉 채웠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야..지금 좀 집으로 와 줄래?"

 

"알았어..조금만 가다려.."

 

 

그는 무슨 일이냐고도 묻지 않고 한 걸음에 달려갔다.

 

그에겐, 그녀가 지금 자신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

 

그것만이 중요할 뿐이었다.

 

그녀의 집에 도착한 그는 당황스러운 상황 앞에서도 침착했다.

 

약국으로 달려가 청심환부터 사왔으니까.

 

다행히 비는 곧 그쳤다.

 

이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줄곧 내릴 것 같던 빗줄기가

 

어느새 잦아들기 시작했다. 기적처럼.

 

하지만 그 날 이후,

 

그녀는 비만 내리면 저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두려움에 포위당했다.

 

 

그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이제 이 잔디밭만 지나면 바로 그녀가 있는 건물이다.

 

그녀는 대학에서 조교를 하고 있다.

 

이 빗속에 그녀가 혼자 있다고 생각하면

 

그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지금도 회사를 조퇴하고 그녀에게 가는 길이다.

 

그 날 이후 몇 년 째, 그는 비가 내리는 날이면 늘 그녀 곁을 지킨다.

 

그게 그의 사랑이다.

 

 

사랑이...사랑에게 말합니다.

 

비 오는 날에도 태양은 존재한다고,

 

그녀에게 당신은 그런 태양 같읕 존재일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