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나는 죽는다. 모두에게 죽음은 곧 다가온다. '곧'이란 말, 좀 껄끄럽다. 그럼에도 수긍한다. 아마 나를 기준으로 우주상에서 내 앞에 흘렀던 시간과 내 뒤에 놓여진 시간들에 비해 내 죽음까지의 시간이 우주속에 존재하는 나만큼 적기 때문이리라. 언젠가는 찾아올 죽음. 나에게 있어 내 존재가 없어지는 것보다 큰 행사가 있을까. 탄생. 죽음과 견줄만한 큰 행사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세상에 나면서 벌써 치뤘던 행사이다. 시험, 수능, 연예, 결혼, 취직, 임신, 승진, 퇴직... 죽음과 견주어 보면 모두 보잘 것 없이 작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런 것들에 고통을 무릅쓰고 매진한다. '꿈'이라는 것음 향해 아름답게 달려가려 한다. 그러면 꿈을 이루고 나면 무엇이 있는가? 그걸로 끝이다. 못 이루면? 그것으로도 끝이다. 남는 것은 없다. 죽으면 다 끝난다. 모두 잊혀진다. 꿈의 산물들로 인해 나 또한 후대가 윤택해 질 수 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기간동안 가졌던 숭고한 정신과 업적을 높이삼아 위인으로서 기려질 수도 있다. 하지만 죽은 후엔 거기 즉, 여기엔 '나'가 없다. 허무를 느낄 새도 없다. 말 그대로 무無이다. 목표로 보여지는 저 높은 곳을 오르기 위해 우리는 열심히 노력한다. 세상의 끝이 오든 지구가 멸망하든 전혀 상관없다. 오직 내 만족과 앞으로 삶의 윤택함을 위해 살아간다. 미래를 준비하는 것 즉, 죽기전 영위하게 되는 긴(?) 시간을 위해 현재 노력하는 시간동안의 고통을 감수한다. 내 주위사람들을 위함이라는 명목. 그것도 결국 나의 만족이라는 테두리 안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목표 즉, '꿈'이라는 것을 위해 살아간다. 그러나 과연 죽음 앞에서 그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소용없다. 단지 사는데 좀더 명목적인 이유를 찾기위해 '꿈'이란 것을 꾸고 사는 것이다. 사는 이유 즉, 존재의 이유. 스스로 정한 것이긴 하지만 이는 정체성의 혼란을 막아준다. 자칫 의미 없을 수 있는 인생을 꾸며준다. 그래서 꿈을 아름답다. 그래서 꿈은 필수적이다. '꿈'을 목표를 두고 살 것이라면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에도 가치를 두어야 한다. 결과만을 얻기위해 더러운 짓을 했다면 이미 그것은 꿈이 아니다. 인생 꾸미기에 오점이 되기 때문이다. 꿈을 이루고도 계속 고통스러워지는 그런 꿈이라면 차라리 버리는 것이 낫다. 흔히 남에 비해 뒤떨어 지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내게 맞지 않는 꿈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간다. 내게 알맞는 꿈이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찾지 않는다. 이는 살아있는 동안에 가장 불행한 일이다. 시간이 없어서 그럴수밖에 없다는 것은 변명이다. 돈이나 환경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도 변명이다. 죽음 앞에서 무엇을 견주랴. 불가항력. 앞으로 인생을 살며 겪을 여러 경험에 대한 기대감.(앞날이 창창한데...ㅋ) 사랑. 그리고 꿈. 무엇 때문이든 우리는 현재 살아 있다. -GEM@완두콩-
죽음, 그리고 존재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나는 죽는다.
모두에게 죽음은 곧 다가온다.
'곧'이란 말, 좀 껄끄럽다.
그럼에도 수긍한다.
아마 나를 기준으로 우주상에서 내 앞에 흘렀던 시간과 내 뒤에 놓여진 시간들에 비해 내 죽음까지의 시간이 우주속에 존재하는 나만큼 적기 때문이리라.
언젠가는 찾아올 죽음.
나에게 있어 내 존재가 없어지는 것보다 큰 행사가 있을까.
탄생.
죽음과 견줄만한 큰 행사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세상에 나면서 벌써 치뤘던 행사이다.
시험, 수능, 연예, 결혼, 취직, 임신, 승진, 퇴직...
죽음과 견주어 보면 모두 보잘 것 없이 작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런 것들에 고통을 무릅쓰고 매진한다.
'꿈'이라는 것음 향해 아름답게 달려가려 한다.
그러면 꿈을 이루고 나면 무엇이 있는가?
그걸로 끝이다.
못 이루면?
그것으로도 끝이다.
남는 것은 없다.
죽으면 다 끝난다.
모두 잊혀진다.
꿈의 산물들로 인해 나 또한 후대가 윤택해 질 수 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기간동안 가졌던 숭고한 정신과 업적을 높이삼아 위인으로서 기려질 수도 있다.
하지만 죽은 후엔 거기 즉, 여기엔 '나'가 없다.
허무를 느낄 새도 없다. 말 그대로 무無이다.
목표로 보여지는 저 높은 곳을 오르기 위해 우리는 열심히 노력한다.
세상의 끝이 오든 지구가 멸망하든 전혀 상관없다.
오직 내 만족과 앞으로 삶의 윤택함을 위해 살아간다.
미래를 준비하는 것 즉, 죽기전 영위하게 되는 긴(?) 시간을 위해 현재 노력하는 시간동안의 고통을 감수한다.
내 주위사람들을 위함이라는 명목.
그것도 결국 나의 만족이라는 테두리 안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목표 즉, '꿈'이라는 것을 위해 살아간다.
그러나 과연 죽음 앞에서 그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소용없다.
단지 사는데 좀더 명목적인 이유를 찾기위해 '꿈'이란 것을 꾸고 사는 것이다.
사는 이유 즉, 존재의 이유.
스스로 정한 것이긴 하지만 이는 정체성의 혼란을 막아준다.
자칫 의미 없을 수 있는 인생을 꾸며준다.
그래서 꿈을 아름답다.
그래서 꿈은 필수적이다.
'꿈'을 목표를 두고 살 것이라면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에도 가치를 두어야 한다.
결과만을 얻기위해 더러운 짓을 했다면 이미 그것은 꿈이 아니다.
인생 꾸미기에 오점이 되기 때문이다.
꿈을 이루고도 계속 고통스러워지는 그런 꿈이라면 차라리 버리는 것이 낫다.
흔히 남에 비해 뒤떨어 지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내게 맞지 않는 꿈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간다.
내게 알맞는 꿈이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찾지 않는다.
이는 살아있는 동안에 가장 불행한 일이다.
시간이 없어서 그럴수밖에 없다는 것은 변명이다.
돈이나 환경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도 변명이다.
죽음 앞에서 무엇을 견주랴.
불가항력.
앞으로 인생을 살며 겪을 여러 경험에 대한 기대감.(앞날이 창창한데...ㅋ)
사랑.
그리고 꿈.
무엇 때문이든 우리는 현재 살아 있다.
-GEM@완두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