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우울함이었다. 어린 소녀인 실비아와 그녀의 여동생 제니는 평소에 알지 못하는 생소한 집단속에 들어간 이방인이 다. 어느 집단이나 그렇지만, 새롭게 들어온 이방인에겐 일종의 텃세와 무시가 존재한다. 여섯남매를 키우느라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지치디 지친 거트루드가 이해가 안가는건 아니다. 전남편에게 버림받고, 젊은 애인과 사귀다가 돈만 뜯기면서 그 애인과의 사이에서 놓은 아기까지 키 우는 처지가 불쌍하기도 하다. 거트루드가 가장으로 군림하는 집안에서 그녀의 여섯아이들은 그녀의 눈치만 보며 살아간다. 한시라도 그녀가 있는 1층의 거실에는 있으려고 하지 않고, 항상 2층으로 올라가 자기들끼리 지낸다. 그들의 엄마인데도, 그 엄마 앞에 서면 경직되어버리는 여섯남매들... 지긋지긋한 가난 속에서 학교보다는 생활전선에 몰리는 장녀인 폴라와 남자친구 집에서 주로 저녁 식사를 해결하는 스테파니를 보면 이 집안의 분위기가 이해는 간다. 강압적이고 히스테릭한 엄마 밑에서 눈치를 보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아이들인 것이다. 결국 실비아가 담배빵 (ㅡ.ㅡ;; 마땅한 용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죄송..) 을 당하는 걸 보면서도 그들은 숨죽여 지켜볼 뿐이고, 그 행동을 답습해 똑같이 실비아에게 한다. 모전자전인가... 피는 물보다 진하다인가.. 그런 아이들에 동화되어 실비아의 학교친구들이 집으로 와 실비아를 학대하는 것은 성인이 못된 정 신적으로 아직 미숙한 아이들만이 가지는 공유의식일 것이다. 나쁜짓을 한다는 공유의식.. 이것이 나쁜건 알지만, 어차피 다들하니깐 자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시기의 청소년들에겐 법이나 도덕보다는 자기들만의 세계의 공유의식이 더 중요한 법이니깐... 그런 아이들을 지켜보며 실비아의 동생인 제니는 무기력하게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자기 또한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언니가 당하는 걸 숨죽이며 볼 뿐이고, 어린 소녀들이 그렇듯이 이웃의 도움이나, 목사의 도움, 경찰의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언제 올지 모르는 그녀의 부모님들이 빨리와서 이 무시무시한 지옥에서 꺼내주기를 기다릴 뿐이다. 실비아와 제니에겐 그녀들의 부모님들만이 집단에서 자기들 구해주어 돌아가게 해 줄 천사들 인 것 이다. 자매가 절실하게 부모님을 원하는 느낌이 영화에서 강하게 묻어 나온다. 처음엔 왜 이런곳에 자기들을 맡겼나 하는 원망이지만, 나중엔 빨리 오라고 어서 오라고 하는 그녀들 의 절규와 호소가 느껴진다. 이 영화는 실화이다. 지금도 신문과 뉴스를 보면 평범한 우리들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끔찍한 범죄가 보도된다. 결과만 보면 그것들은 정말 천인공노할 나쁜 것들이다. 이 영화를 봐도 그렇다. 종신형이 아니라 사형을 선고받아야 마땅하게 여겨진다. 그에 동조한 그녀의 아이들과, 실비아의 학교 친구들 역시 중형을 선고받아야 한다고 여겨진다. 우리가 사는 사회와 우리가 속한 각각의 집단은 다른 이방인이 들어오는 걸 꺼리고 싫어한다. 실비아가 당한 고통의 이유는 결국 집단 속의 이방인이기 때문에 그런게 아닐까.. 거트루드의 이웃집에 사는 노부인은 여러차례 집안에서 소녀의 비명소리와 수상쩍은 움직임을 보았음에도, 모른척하고 넘어간다. 법정에서도 노부인은 모르쇠로 일관한다. 미국의 특성상 충분히 사고임을 인지하고 신고를 하여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노부인은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이다. 노부인만의 특성일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것은 실비아가 자신이 오랫동안 알고 있던 사람이 아닌 이방인이어서 그런것은 아닐까.... 애초에 그 동네에 살던 아이였고, 그 학교에서 오랫동안 다녔던 학생이라면 그 같은 괴롭힘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아메리칸크라임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우울함이었다.
어린 소녀인 실비아와 그녀의 여동생 제니는 평소에 알지 못하는 생소한 집단속에 들어간 이방인이
다.
어느 집단이나 그렇지만, 새롭게 들어온 이방인에겐 일종의 텃세와 무시가 존재한다.
여섯남매를 키우느라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지치디 지친 거트루드가 이해가 안가는건 아니다.
전남편에게 버림받고, 젊은 애인과 사귀다가 돈만 뜯기면서 그 애인과의 사이에서 놓은 아기까지 키
우는 처지가 불쌍하기도 하다.
거트루드가 가장으로 군림하는 집안에서 그녀의 여섯아이들은 그녀의 눈치만 보며 살아간다.
한시라도 그녀가 있는 1층의 거실에는 있으려고 하지 않고, 항상 2층으로 올라가 자기들끼리 지낸다.
그들의 엄마인데도, 그 엄마 앞에 서면 경직되어버리는 여섯남매들...
지긋지긋한 가난 속에서 학교보다는 생활전선에 몰리는 장녀인 폴라와 남자친구 집에서 주로 저녁
식사를 해결하는 스테파니를 보면 이 집안의 분위기가 이해는 간다.
강압적이고 히스테릭한 엄마 밑에서 눈치를 보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아이들인 것이다.
결국 실비아가 담배빵 (ㅡ.ㅡ;; 마땅한 용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죄송..) 을 당하는 걸 보면서도
그들은 숨죽여 지켜볼 뿐이고, 그 행동을 답습해 똑같이 실비아에게 한다.
모전자전인가... 피는 물보다 진하다인가..
그런 아이들에 동화되어 실비아의 학교친구들이 집으로 와 실비아를 학대하는 것은 성인이 못된 정
신적으로 아직 미숙한 아이들만이 가지는 공유의식일 것이다.
나쁜짓을 한다는 공유의식..
이것이 나쁜건 알지만, 어차피 다들하니깐 자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시기의 청소년들에겐 법이나 도덕보다는 자기들만의 세계의 공유의식이 더 중요한 법이니깐...
그런 아이들을 지켜보며 실비아의 동생인 제니는 무기력하게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자기 또한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언니가 당하는 걸 숨죽이며 볼 뿐이고, 어린 소녀들이
그렇듯이 이웃의 도움이나, 목사의 도움, 경찰의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언제 올지 모르는 그녀의 부모님들이 빨리와서 이 무시무시한 지옥에서 꺼내주기를 기다릴 뿐이다.
실비아와 제니에겐 그녀들의 부모님들만이 집단에서 자기들 구해주어 돌아가게 해 줄 천사들 인 것
이다.
자매가 절실하게 부모님을 원하는 느낌이 영화에서 강하게 묻어 나온다.
처음엔 왜 이런곳에 자기들을 맡겼나 하는 원망이지만, 나중엔 빨리 오라고 어서 오라고 하는 그녀들
의 절규와 호소가 느껴진다.
이 영화는 실화이다.
지금도 신문과 뉴스를 보면 평범한 우리들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끔찍한 범죄가 보도된다.
결과만 보면 그것들은 정말 천인공노할 나쁜 것들이다.
이 영화를 봐도 그렇다.
종신형이 아니라 사형을 선고받아야 마땅하게 여겨진다.
그에 동조한 그녀의 아이들과, 실비아의 학교 친구들 역시 중형을 선고받아야 한다고 여겨진다.
우리가 사는 사회와 우리가 속한 각각의 집단은 다른 이방인이 들어오는 걸 꺼리고 싫어한다.
실비아가 당한 고통의 이유는 결국 집단 속의 이방인이기 때문에 그런게 아닐까..
거트루드의 이웃집에 사는 노부인은 여러차례 집안에서 소녀의 비명소리와 수상쩍은 움직임을
보았음에도, 모른척하고 넘어간다.
법정에서도 노부인은 모르쇠로 일관한다.
미국의 특성상 충분히 사고임을 인지하고 신고를 하여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노부인은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이다.
노부인만의 특성일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것은 실비아가 자신이 오랫동안 알고 있던 사람이
아닌 이방인이어서 그런것은 아닐까....
애초에 그 동네에 살던 아이였고, 그 학교에서 오랫동안 다녔던 학생이라면 그 같은 괴롭힘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