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4일 정진수 성균관대 교수가 쓴 한국예술종합학교와 관련된 글을 보았습니다. 글 자체에서 모순되는 문장이 존재하여 이해하기가 어려웠고 정진수 교수가 덮어두는 fact(팩트) 가 있어 이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미리 언급하지만 감사결과와 관련된 발언은 삼가겠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둘러싼 이념공방과 이론과에 관한 나의 입장, 나아가 통섭 교육이라는 것과 관련해 글을 전개하겠다.
‘이번 감사와 최근 몇몇 단체들의 문제 제기를 이념 공방으로 몰아가는 구도다.’ ‘한예종이 부추기고 있는 소위 이념갈등은 그들이 자초한 것이지’ 라는 정진수 교수의 글에서 저는 의구심을 져버릴 수 없습니다. 네이버에서 뉴스 검색을 해 본 결과 이번 사태를 둘러싸고 한예종에 관해 ‘좌파’ 라는 언급은 가장 먼저 한 사람은 변희재 씨입니다. 2009년 3월 20일 독립신문 정치면에 기재된 기사에서입니다. 변희재 씨는 정진수 교수와 함께 한예종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사람입니다. 이념 공방은 ‘우리’ 가 먼저 꺼낸 것도 ‘우리’ 가 발전시킨 것도 아닙니다. 변희재 씨가 가장 먼저 말했습니다..
이후 이러한 상황에 의구심을 품은 저는 ‘다음>아고라’ 에 변희재 대표에게 글을 썼고 빅뉴스 게시판과 빅뉴스의 대표자 이메일로도 질문을 했습니다. 이메일은 수신 확인은 되지만 답변은 전달받지 못한 상태입니다.
잠시만 ‘예술’ 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물론 예술에 관한 이론이나 정의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허나 1979년~1980년의 인문학 위원회에 기술된 정의를 따르면 예술이란 인문학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사용됩니다. ‘인문학적 내용을 가지고 인문학적 방법을 사용하는 사회과학의 여러 측면들’ 이라 정의되어있기 때문이다. 제가 굳이 이 문장을 인용한 것은 한예종을 둘러싼 ‘이론 수업’ 과 관련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변희재 대표는 5월 23일자 빅뉴스의 기사에서 ‘문화 이론은 학생들의 자발적인 학습으로 충분히 습득이 가능하다’ 며 이론과가 한예종의 목적에 적합하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술이 인간의 언어로 어떻게 표현 되느냐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는 해석의 문제이고 나아가 비평의 활동입니다. 즉 예술에 대한 학문 간의 해석과 분석, 비평은 그 자체로 예술이 되는 것입니다. 해석은 수용자의 전문적이며 개인적인 의견이며 그의 예술적 가치(관)과 개성이 잠재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즉, 그 자체로 한 개인이 지니는 예술에 대한 개성의 결과물이라 칭해질 수 있습니다.
굳이 여기서 이야기를 확장시키자면 ‘통섭 교육’ 의 정당성까지 언급이 되겠습니다. 현재 ‘U-AT'(이하 통섭 교육)사업의 부실한 예산 운용이 한예종의 또 다른 문제로 언급되고 있는 만큼 감사 결과에서 도출된 문제에는 발언을 삼가겠습니다. 허나 그 정당성 혹은 의의 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통섭교육이란 말 그대로 학문간의 경계를 허무는 것입니다. 이미 자연과학 안에서는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또 인문학은 언제부턴가 유행처럼 번져 이제는 CEO 들에게도 필수 과정이 되어버렸습니다. 허나 예술이란 분야는 통섭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대개 예술가란 자신만의 방을 만들어 놓고 혼자만의 언어로 통하려했습니다. 예술이란 분야에서 ’발전‘ 을 논하기는 어렵습니다. 허나 다양한 시도 혹은 가능성은 예술이 누려야 할 권리입니다. 아래에서 다시 언급 하겠지만 예술이란 ’인간적‘ 인 예술의 근본에 충실한 채 다양한 분야에서 시도를 해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저는 통섭 교육의 의의를 찬성합니다.
예술은 인간을 감정 혹은 느낌을 감각을 통하여 전달하는 것이라 정의됩니다. 방법이나 과정 혹은 생물학적인 뇌의 작용은 다르더라도 인간은 공통적으로 예술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형태, 동작’ 등에서는 차이가 존재하겠지만 이러한 예술은 수용자의 감수성을 직접적으로 자극합니다. 따라서 예술의 창조성은 ‘인간적‘ 인 것입니다. 보다 ’인간적’ 이여야만 인간의 공통된 감수성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masterpiece 란 이러한 조건에 충실한 것입니다.
이렇듯 그 무엇보다도 ‘인간적‘이여야 하는 예술에 ‘좌파’ 라는 정치적 잣대로 재단에 나선 변희재 대표는 미학전공자이며 정진수 교수는 성균관대 연기예술학과 교수입니다. 두 분다 싫든 좋든 예술과 관련된 분야를 전공하셨습니다. 본질 운운하며 비극적 시대라 말하는 것이 학생 신분의 낭만주의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정치가 예술과 교육에 참여하지 않은 적이 있었는지도 의문이 듭니다. 허나 제가 지키고 싶은 것은 현실이 아닌 ‘인간과 세상’ 입니다. 이상의 나체를 보아 눈이 멀지언정 지키고 싶은 미래입니다.
한예종 학생이 변희재 대표와 정진수 교수에게...
2009년 5월 24일 정진수 성균관대 교수가 쓴 한국예술종합학교와 관련된 글을 보았습니다. 글 자체에서 모순되는 문장이 존재하여 이해하기가 어려웠고 정진수 교수가 덮어두는 fact(팩트) 가 있어 이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미리 언급하지만 감사결과와 관련된 발언은 삼가겠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둘러싼 이념공방과 이론과에 관한 나의 입장, 나아가 통섭 교육이라는 것과 관련해 글을 전개하겠다.
‘이번 감사와 최근 몇몇 단체들의 문제 제기를 이념 공방으로 몰아가는 구도다.’ ‘한예종이 부추기고 있는 소위 이념갈등은 그들이 자초한 것이지’ 라는 정진수 교수의 글에서 저는 의구심을 져버릴 수 없습니다. 네이버에서 뉴스 검색을 해 본 결과 이번 사태를 둘러싸고 한예종에 관해 ‘좌파’ 라는 언급은 가장 먼저 한 사람은 변희재 씨입니다. 2009년 3월 20일 독립신문 정치면에 기재된 기사에서입니다. 변희재 씨는 정진수 교수와 함께 한예종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사람입니다. 이념 공방은 ‘우리’ 가 먼저 꺼낸 것도 ‘우리’ 가 발전시킨 것도 아닙니다. 변희재 씨가 가장 먼저 말했습니다..
이후 이러한 상황에 의구심을 품은 저는 ‘다음>아고라’ 에 변희재 대표에게 글을 썼고 빅뉴스 게시판과 빅뉴스의 대표자 이메일로도 질문을 했습니다. 이메일은 수신 확인은 되지만 답변은 전달받지 못한 상태입니다.
잠시만 ‘예술’ 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물론 예술에 관한 이론이나 정의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허나 1979년~1980년의 인문학 위원회에 기술된 정의를 따르면 예술이란 인문학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사용됩니다. ‘인문학적 내용을 가지고 인문학적 방법을 사용하는 사회과학의 여러 측면들’ 이라 정의되어있기 때문이다. 제가 굳이 이 문장을 인용한 것은 한예종을 둘러싼 ‘이론 수업’ 과 관련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변희재 대표는 5월 23일자 빅뉴스의 기사에서 ‘문화 이론은 학생들의 자발적인 학습으로 충분히 습득이 가능하다’ 며 이론과가 한예종의 목적에 적합하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술이 인간의 언어로 어떻게 표현 되느냐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는 해석의 문제이고 나아가 비평의 활동입니다. 즉 예술에 대한 학문 간의 해석과 분석, 비평은 그 자체로 예술이 되는 것입니다. 해석은 수용자의 전문적이며 개인적인 의견이며 그의 예술적 가치(관)과 개성이 잠재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즉, 그 자체로 한 개인이 지니는 예술에 대한 개성의 결과물이라 칭해질 수 있습니다.
굳이 여기서 이야기를 확장시키자면 ‘통섭 교육’ 의 정당성까지 언급이 되겠습니다. 현재 ‘U-AT'(이하 통섭 교육)사업의 부실한 예산 운용이 한예종의 또 다른 문제로 언급되고 있는 만큼 감사 결과에서 도출된 문제에는 발언을 삼가겠습니다. 허나 그 정당성 혹은 의의 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통섭교육이란 말 그대로 학문간의 경계를 허무는 것입니다. 이미 자연과학 안에서는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또 인문학은 언제부턴가 유행처럼 번져 이제는 CEO 들에게도 필수 과정이 되어버렸습니다. 허나 예술이란 분야는 통섭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대개 예술가란 자신만의 방을 만들어 놓고 혼자만의 언어로 통하려했습니다. 예술이란 분야에서 ’발전‘ 을 논하기는 어렵습니다. 허나 다양한 시도 혹은 가능성은 예술이 누려야 할 권리입니다. 아래에서 다시 언급 하겠지만 예술이란 ’인간적‘ 인 예술의 근본에 충실한 채 다양한 분야에서 시도를 해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저는 통섭 교육의 의의를 찬성합니다.
예술은 인간을 감정 혹은 느낌을 감각을 통하여 전달하는 것이라 정의됩니다. 방법이나 과정 혹은 생물학적인 뇌의 작용은 다르더라도 인간은 공통적으로 예술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형태, 동작’ 등에서는 차이가 존재하겠지만 이러한 예술은 수용자의 감수성을 직접적으로 자극합니다. 따라서 예술의 창조성은 ‘인간적‘ 인 것입니다. 보다 ’인간적’ 이여야만 인간의 공통된 감수성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masterpiece 란 이러한 조건에 충실한 것입니다.
이렇듯 그 무엇보다도 ‘인간적‘이여야 하는 예술에 ‘좌파’ 라는 정치적 잣대로 재단에 나선 변희재 대표는 미학전공자이며 정진수 교수는 성균관대 연기예술학과 교수입니다. 두 분다 싫든 좋든 예술과 관련된 분야를 전공하셨습니다. 본질 운운하며 비극적 시대라 말하는 것이 학생 신분의 낭만주의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정치가 예술과 교육에 참여하지 않은 적이 있었는지도 의문이 듭니다. 허나 제가 지키고 싶은 것은 현실이 아닌 ‘인간과 세상’ 입니다. 이상의 나체를 보아 눈이 멀지언정 지키고 싶은 미래입니다.
대한 민국에 ‘바그너’ 가 나오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