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보를 접하고

배규상2009.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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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보를 접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어제 서거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아침 일찍 경호원 1명과 고향인 경남 김해의 봉하마을 뒷산에 올랐다가 투신 자살했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의 고통이 너무 크다’는 유서의 제목이 말해주듯 검찰 수사로 인한 정신적 압박과 자괴감을 견디지 못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믿기 어려운 사태를 맞아 나라 전체가 엄청난 충격과 슬픔에 빠져 있다. 더할 수 없는 비통함 속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

이번 사태는 한국 정치의 비극적 실상을 다시금 보여준다. 1980년대 이후만 본다 해도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권력형 비리로 검찰의 수사를 받은 뒤 수감생활을 했다. 김영삼·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도 아들들이 각종 비리에 연루돼 구속되는 홍역을 치렀다. 그렇다 해도 전직 대통령의 자살은 최악의 국가적 비극이다. 이 어두운 후진의 역사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참으로 참담하다. 다시 전직 대통령의 비극을 지켜보면서 우리 대통령 문화가, 우리 정치·사회가 무엇이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총체적으로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은 그가 퇴임 1년 만에 권력형 비리 수사의 한가운데에 서면서 비롯됐다. 고인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640만달러를 받은 혐의로 조사를 받아왔다. 지난달 30일 전직 대통령으로선 세번째로 검찰에 출두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부인 권양숙 여사는 물론 아들 건호씨와 딸 정연씨까지 수사 선상에 오르면서 받았을 정신적 스트레스는 미뤄 짐작이 간다. 유서대로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며 막다른 골목에서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법적 유·무죄를 떠나 실로 참담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고인의 삶은 파란과 곡절로 점철했다. 1981년 부림사건 변호로 인권운동에 눈을 뜬 노 전 대통령은 87년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뒤 이듬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천거로 통일민주당 의원이라는 배지를 달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5공 청문회에선 스타로 부상했다. 91년 민정당과 통일민주당, 공화당의 3당 합당에 반발해 김 전 대통령과 결별했다. 이후 지방선거와 총선 등 세차례에 걸쳐 민주당 소속으로 부산에 나섰으나 번번이 지역주의 벽에 부딪혔다. ‘바보 노무현’은 국민들의 누선을 자극했고, 마침내 2002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고졸 출신의 5공 청문회 스타, 서민의 대통령으로 불리며 정치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행보는 순탄치 않았다. 실제 민주당 분당과 한나라당의 대통령 탄핵, 대연정 제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졸속 추진 등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보수 세력은 좌파정권으로 매도하고, 진보세력은 외피만 서민정권이라고 몰아세우는 등 끊임없는 논란을 불렀다. 하지만 절차적 민주주의와 원칙을 지켜내려는 그의 개혁적 노력은 평가받을 만하다. 죽음이라는 극단적 선택이 어떤 이유로든 미화될 수는 없지만 참담하게 무너져내린 자신의 도덕성 붕괴 앞에 절망했을 ‘바보 노무현’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고인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해야 할 책무도 지니고 있다. 일국의 전직 대통령이 이런 최악의 선택을 하기에 이른 직·간접적 배경과 원인을 진지하게 되돌아보고 후세를 위한 교훈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비리 있는 곳에 검찰권이 있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죽은 권력에 대한 검찰권 행사의 지나침은 없었는지도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고 본다.

정치권과 시민사회도 정략적 대응을 경계해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라는 국면이 초래할 사회적 갈등에 편승해 정치적 득실만 따진다면 그를 두 번 죽이는 일이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신·구 권력의 갈등이 증폭되는 와중에 일어났다는 점에서 용서와 화해의 전기를 마련하는 데도 힘을 쏟아야 한다. 고인 스스로도 자신의 죽음이 대립과 분열 격화로 이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우리 대통령 문화는 이대로 좋은지, 아니면 대안은 뭔지 등을 점검하는 데 정치권이 앞장서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의 돌연한 서거는 앞으로 적잖은 사회적 논란과 파장을 부를 수 있다. 벌써 일각에선 그의 죽음이 현 정권의 몰아붙이기식 수사가 낳은 결과라는 주장에서부터 권력형 비리에 따른 사필귀정이라는 매몰찬 반론까지 위험스러울 만큼 다양한 의견들이 분출되고 있다. 그러나 극단적 접근들은 소모적 혼란만 부를 가능성이 크다.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되돌아보고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진지한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2009년 5월 23일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