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1일. 고종 황제의 인산일 이틀 전. 당시 대한제국의 온 국민들은 황제의 서거와 망국의 통한에 눈물을 흘렸다. 세계 2차대전 이후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반전평화운동에 발맞추어 우리 국민들도 평화적인 만세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일제는 우리 형제, 자매, 자식, 부모들의 가슴에 칼을 꽂았고 총알을 박았다. 그들 자신의 비인간적인 행위에 대항한 우리 민족의 바른 소리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1926년 순종 황제의 붕어 이후 인산일이 다가오자 일제는 7년 전 그들이 당했던 굴욕을 기억했다. 그리고 다시금 두려움에 떨었다. 아비 잃은 조선 백성들의 슬픔이 변한 분노의 표적이 향할 곳은 그들을 억압하던 일제. 바로 그들일 것임이 불 보듯 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일제는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민중들을 감시했다. 민중들이 모일 때 그곳에는 항상 일제의 눈과 귀가 있었다. 그런 노력 끝에 결국 일제는 6.10. 만세운동을 성공적으로 저지할 수 있었다.
2009년 5월,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셨다. 민중들은 우매하여 그분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나, 대한민국의 아버지였던 그를 추모하기 위해 경운궁으로, 봉하마을로 모여들었다. 민중들은 어떤 정치적 목적에 의해서도 아니요, 시위를 전개하기 위해서도 아니요 오로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순수한 그 마음만 가지고 분향소로 향한 것 뿐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대한민국 정부는 그들을 막았다. 폭력시위로 변질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무장한 전투경찰을 배치하고 봉하마을 분향소에는 사복경찰 100여명을 투입했다가 발각되었다. 나도 역시 우매한 민중이기에 그들이 그렇게 움직이는 까닭을 알지 못하겠다. 하지만 그들의 두려움만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현 대한민국 정부와 일본 제국주의
1919년 3월 1일. 고종 황제의 인산일 이틀 전. 당시 대한제국의 온 국민들은 황제의 서거와 망국의 통한에 눈물을 흘렸다. 세계 2차대전 이후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반전평화운동에 발맞추어 우리 국민들도 평화적인 만세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일제는 우리 형제, 자매, 자식, 부모들의 가슴에 칼을 꽂았고 총알을 박았다. 그들 자신의 비인간적인 행위에 대항한 우리 민족의 바른 소리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1926년 순종 황제의 붕어 이후 인산일이 다가오자 일제는 7년 전 그들이 당했던 굴욕을 기억했다. 그리고 다시금 두려움에 떨었다. 아비 잃은 조선 백성들의 슬픔이 변한 분노의 표적이 향할 곳은 그들을 억압하던 일제. 바로 그들일 것임이 불 보듯 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일제는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민중들을 감시했다. 민중들이 모일 때 그곳에는 항상 일제의 눈과 귀가 있었다. 그런 노력 끝에 결국 일제는 6.10. 만세운동을 성공적으로 저지할 수 있었다.
2009년 5월,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셨다. 민중들은 우매하여 그분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나, 대한민국의 아버지였던 그를 추모하기 위해 경운궁으로, 봉하마을로 모여들었다. 민중들은 어떤 정치적 목적에 의해서도 아니요, 시위를 전개하기 위해서도 아니요 오로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순수한 그 마음만 가지고 분향소로 향한 것 뿐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대한민국 정부는 그들을 막았다. 폭력시위로 변질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무장한 전투경찰을 배치하고 봉하마을 분향소에는 사복경찰 100여명을 투입했다가 발각되었다. 나도 역시 우매한 민중이기에 그들이 그렇게 움직이는 까닭을 알지 못하겠다. 하지만 그들의 두려움만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