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임시 빈소에 다녀왔습니다. 아침에 성가대를 서고, 예배를 마치자 마자 12시15분 서울행 버스에 몸을 맡기고, 고속버스터미널에 2시도착 지하철을 타고 2시40여분에 시청역에 도착해 보니 엄청난 줄이 이미 서있더군요. 아래 사진들 간간히 설명을 첨언하는 형식으로 글을 써두겠습니다. (글의 편의상 반말을 씀을 알려드립니다.) [PM 2:40 시청역 4번출구 가 저기 보인다. 그와 더불어 옆의 전경차들도..] [더운데 고생하는 불쌍한 전경들...니들이 뭔 죄냐...쩝] [4번출구 바로 밖- 혹여 조문 행렬에서 시청쪽으로 빠져나갈 촛불시위를 방지하기 위해(라는 명분으로) 촘촘히도 배치해둔 경찰들] [PM2:55 4번출구 바로 앞에서 뒤를 보고 찍은 사진 저 뒤로 쭉 모두 조문행렬이다. 물론 전경 바로 옆에 왔다갔다 하시는 일반 지하철 이용객분들도 있다. 미련한 경찰들 덕분에 미어터지는 시청역이 된 상황.] [시청역 역사내로 들어와 있는데, 갑자기 칼라티비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찍길래 급히 한장 찍음] [PM 3:00 시청역 5번 출구를 막고 있는 경찰병력. 위에도 썼듯이 조문행렬의 촛불시위화를 방지하고, 시청앞진입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배치한 것으로 추정됨] [PM3:01 바로 위의 사진을 찍은 직후, 갑자기 한 무리의 시민들이 경찰이 차단해둔 5번 출구 앞에서 항의함 아무래도 분향소측 사람들이 아닌가 추정됨.] [PM4:01 한시간째 지하철 역사를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U자형으로 줄이 돌때쯤 찍음. 지하철 역사를 가득 메운 조문행렬.] [PM 4:02 저 앞줄에서 부터, 목마른 시민들을 위해 물을 나눠주시는 분들. 준비한 물이 떨어지자, 조문객들께 요청하여 물이 있는 분들께 서로 나눠달라고 하고, 기꺼이 그에 응하는 모습들이 있었음 -주로 어르신들과 어린이들 위주로 분배.] [PM 5:03 다시 1시간쯤 서자 이제 3번출구(맞나?) 쪽으로 나가기 직전 계단줄. 지하철 이용객들의 편의를 위해 자발적으로 줄을 통제하시는 분(사진 오른쪽 중간의 파란 셔츠)이 보인다.] [PM5:20 출구를 거의 빠져나가자, 덕수궁 돌담이 보인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애도하는, 노란색/검정색의 천이 동아줄에 매여 있다. 천에는 각각 애도의 글, 현정권을 비난하는 글, 2MB를 비난하는 글 등이 주로 써있었다.] [PM 5:34 다시 출구를 나와 쭉 가다보니, 동아줄에 천들 말고도 노무현 대통령의 사진을 누가 걸어두었다. ] [PM6:08 가다보니 이렇게 나무에 매어놓은 동앗줄에도 애도의 표시들과 국화 등이 꽂혀있었다.] [돌담벽에 어느 시민이 붙여놓은 노무현 전 대통령 유서 개인적으론 언론에서 발표한 유서의 조작여부가 궁금할따름이다.] [중간에 보니 조문객들이 하모니카, 기타 등을 연주하면서 느리게 아침이슬, 사노라면 등을 부르고, 주위의 분들이 따라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볼수 있었다. 슬픈 가락으로 눈물을 훔치는 분들도 볼 수 있던 곳.] [덕수궁 돌담에 붙여있던 광고지] [PM6:17 드디어 대한문 앞 도착. 수많은 인파] [대한문 앞의 임시 빈소. 사람이 너무 많이 와서 2개로 늘린 상태의 모습. 대형 태극기와 빈소 뒤로 전경버스들이 늘어서있는 것을 볼수 있다. 이후엔 사진을 안찍었음.] 위에도 썼지만, 꼭 가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혼자 원주에서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그러나 마음 아픈 것은, 왜 이런델 가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던, 온누리교회 후배의 말과, 설교때 아무런 추도의 언사를 듣지 못해 슬퍼했던 동 교회 누나의 발언이었습니다. 또한 개신교인들중에 빈소에 찾아온 이들이 적었던 것도 슬펐습니다. 물론, 그것을 판단한 기준은 빈소에서 2배를 올리지 않고, 묵념만 하는 사람수였지만, 제앞에서 볼때 단 1명밖엔 보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기준임을 알려드립니다....) 빈소에는 조계사에서 오신 스님들이 계속 목탁을 두드리며 위령(맞나요?)을 하고 계셨습니다. 보수적인 개신교인인 저로서는 어색하기도 했지만, 왜 교회들은 빈소를 설치하지도, 위로해주지도 않을까란 의문과 슬픔이 더 컸습니다. 아무튼 저랑 같은 줄의 분들이 모두 2배를 할때 홀로 묵념을 하고 빈소를 빠져나오면서 핸드폰에 남긴 시간을 보니, 6:35분이더군요. 정확히 줄을 선지 3시간 55분 만에 꽃이라도 놓아드리고 올수 있었습니다. 끝으로 이 나라 이 땅에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그리고 주님의 공의가 이땅가운데 제발 속히 이루어지며, 그리스도예수께서 억울한 이들의 소원을 풀어주시길 짧게나마 기도해봅니다.
09.05.23- 대한문 빈소에 다녀옴
노무현 대통령 임시 빈소에 다녀왔습니다.
아침에 성가대를 서고,
예배를 마치자 마자 12시15분 서울행 버스에 몸을 맡기고,
고속버스터미널에 2시도착
지하철을 타고 2시40여분에
시청역에 도착해 보니 엄청난 줄이 이미 서있더군요.
아래 사진들 간간히 설명을 첨언하는 형식으로 글을 써두겠습니다.
(글의 편의상 반말을 씀을 알려드립니다.)
[PM 2:40 시청역 4번출구 가 저기 보인다. 그와 더불어 옆의 전경차들도..]
[더운데 고생하는 불쌍한 전경들...니들이 뭔 죄냐...쩝]
[4번출구 바로 밖-
혹여 조문 행렬에서 시청쪽으로 빠져나갈 촛불시위를 방지하기 위해(라는 명분으로)
촘촘히도 배치해둔 경찰들]
[PM2:55 4번출구 바로 앞에서 뒤를 보고 찍은 사진 저 뒤로 쭉 모두 조문행렬이다.
물론 전경 바로 옆에 왔다갔다 하시는 일반 지하철 이용객분들도 있다.
미련한 경찰들 덕분에 미어터지는 시청역이 된 상황.]
[시청역 역사내로 들어와 있는데, 갑자기 칼라티비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찍길래 급히 한장 찍음]
[PM 3:00 시청역 5번 출구를 막고 있는 경찰병력.
위에도 썼듯이 조문행렬의 촛불시위화를 방지하고,
시청앞진입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배치한 것으로 추정됨]
[PM3:01 바로 위의 사진을 찍은 직후,
갑자기 한 무리의 시민들이 경찰이 차단해둔 5번 출구 앞에서 항의함
아무래도 분향소측 사람들이 아닌가 추정됨.]
[PM4:01 한시간째 지하철 역사를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U자형으로 줄이 돌때쯤 찍음.
지하철 역사를 가득 메운 조문행렬.]
[PM 4:02 저 앞줄에서 부터, 목마른 시민들을 위해 물을 나눠주시는 분들.
준비한 물이 떨어지자,
조문객들께 요청하여 물이 있는 분들께
서로 나눠달라고 하고, 기꺼이 그에 응하는 모습들이 있었음
-주로 어르신들과 어린이들 위주로 분배.]
[PM 5:03 다시 1시간쯤 서자 이제 3번출구(맞나?) 쪽으로 나가기 직전 계단줄.
지하철 이용객들의 편의를 위해 자발적으로 줄을 통제하시는 분(사진 오른쪽 중간의 파란 셔츠)이 보인다.]
[PM5:20 출구를 거의 빠져나가자, 덕수궁 돌담이 보인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애도하는, 노란색/검정색의 천이 동아줄에 매여 있다.
천에는 각각 애도의 글, 현정권을 비난하는 글, 2MB를 비난하는 글 등이 주로 써있었다.]
[PM 5:34 다시 출구를 나와 쭉 가다보니,
동아줄에 천들 말고도 노무현 대통령의 사진을 누가 걸어두었다. ]
[PM6:08 가다보니 이렇게 나무에 매어놓은 동앗줄에도
애도의 표시들과 국화 등이 꽂혀있었다.]
[돌담벽에 어느 시민이 붙여놓은 노무현 전 대통령 유서
개인적으론 언론에서 발표한 유서의 조작여부가 궁금할따름이다.]
[중간에 보니 조문객들이 하모니카, 기타 등을 연주하면서 느리게 아침이슬, 사노라면 등을 부르고,
주위의 분들이 따라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볼수 있었다.
슬픈 가락으로 눈물을 훔치는 분들도 볼 수 있던 곳.]
[덕수궁 돌담에 붙여있던 광고지]
[PM6:17 드디어 대한문 앞 도착.
수많은 인파]
[대한문 앞의 임시 빈소.
사람이 너무 많이 와서 2개로 늘린 상태의 모습.
대형 태극기와 빈소 뒤로 전경버스들이 늘어서있는 것을 볼수 있다.
이후엔 사진을 안찍었음.]
위에도 썼지만,
꼭 가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혼자 원주에서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그러나 마음 아픈 것은,
왜 이런델 가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던,
온누리교회 후배의 말과,
설교때 아무런 추도의 언사를 듣지 못해 슬퍼했던 동 교회 누나의 발언이었습니다.
또한 개신교인들중에 빈소에 찾아온 이들이 적었던 것도 슬펐습니다.
물론, 그것을 판단한 기준은
빈소에서 2배를 올리지 않고, 묵념만 하는 사람수였지만,
제앞에서 볼때 단 1명밖엔 보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기준임을 알려드립니다....)
빈소에는 조계사에서 오신 스님들이
계속 목탁을 두드리며 위령(맞나요?)을 하고 계셨습니다.
보수적인 개신교인인 저로서는 어색하기도 했지만,
왜 교회들은 빈소를 설치하지도, 위로해주지도 않을까란 의문과 슬픔이 더 컸습니다.
아무튼 저랑 같은 줄의 분들이 모두 2배를 할때
홀로 묵념을 하고
빈소를 빠져나오면서 핸드폰에 남긴 시간을 보니,
6:35분이더군요.
정확히 줄을 선지 3시간 55분 만에 꽃이라도 놓아드리고 올수 있었습니다.
끝으로
이 나라 이 땅에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그리고 주님의 공의가 이땅가운데 제발 속히 이루어지며,
그리스도예수께서 억울한 이들의 소원을 풀어주시길
짧게나마 기도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