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한국 야구가 던진 가장 묵직한 공"선동렬"

김소현2009.05.27
조회220
[피플] 한국 야구가 던진 가장 묵직한 공"선동렬"

당연히 집안의 반대는 거셌다. 먼저 가버린 자식이 야구를 했다는 점도 걸렸지만 이제 외아들이 된 선동렬에게 미래가 보이지 않는 야구를 시킬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부모님은 후에 그가 최고의 선수로 성장하는데 가장 큰 기여를 했다.

 

마른 체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아이들에 비해 눈에 뛸 정도로 구속이 빨랐던 그는 이미 고등학교 때 150km대의 직구를 던졌다. 고교 야구의 열기가 대단했던 당시 그는 전국 4개 대회에서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며 팀을

2차례나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후 대학(고려대)에 진학하면서 그는 생애 처음으로 태극 마크를 달았다.

서울에서 열린 제27회 세계야구선수권에 출전한 그는 미국과 자유중국과의 경기에서 선발로 마운드에 섰고 이윽고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기적 같은 역전극을 옃연출하면서 최연소 MVP로 우뚝 섰다.

 

1985년 프로야구에 진출하면서 그는 해태 유니폼을 입었다. 비록 데뷔전에서는 패전투수가 됐지만 다음 해인 1986년에는 24승 6패 6세이브에 평균 자책 0.99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면서 프로 입문 2년 만에 투수 3관왕을 차지함으로써 시즌 최우수 선수가 됐다.

 

그는 95년 국내 무대를 떠날 때까지 총5번의 0점대 자책점을 기록했고 해태는 그의 눈부신 활약에 힘입어 4연패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96년 그는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에 진출했고 최단 기간 20세이브를 기록하면서 99년 주니치의 리그우승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한국이 배출한 투수 중에서도 아직까지 그가 가지고 있는 '0'의 기록을 깨뜨린 선수는 없다. 또한 그는 2005년 삼성의 감독으로 취임한 이후 한국 시리즈 2연패를 달성하면서 지도자로서의 역량도 선수 시절 못지않다는 것을 입증해 냈다.

 

한국이 낳은 최고의 투수, 선동렬. 그는 삼성의 감독이지만 동시에 한국 야구계를 떠받치고 있는 거인이기도 하다. 기록을 넘어 노력과 의지의 선수로서 참된 인간임을 먼저 입증해 보였던 그의 건승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