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데리고 온 듯한 아버지의 방명록은 실로 안타깝기 그지없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언제나 권위적이고 제멋대로인 대통령을 보아야 한다는 사실이 아프게 실감되었거든요. 이 세상에 이런 대통령, 시골의 촌부, 우직한 바보였던 노무현 대통령이 있었단 사실을,
우리 아이들은 못 보니까요.
시간을 쪼개어 한 테두리에 있는 만장을 대강이라도 전부 읽어보았습니다. 실로 여러 연령대와 성별, 그래도 그들의 진심으로 당신의 평안함을 바라는 글이었습니다.
문득 하늘에서 당신이 계시다는 생각을 하니 저절로 고개가 하늘로 올려졌습니다. '보고계신가요 아버지'
나는 검은 하늘에 대고, 하고싶은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믿고 있었다고, 당신은 혼자가 아니었다고,
그렇게 외로워하며 고통스러워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당신은 우리를 믿지 못한 건지, 우리가 너무 늦은 건지,
둘 다 어쩌면 맞는 말이겠죠.
하지만 우리는 당신을 잃고 통곡합니다.
인간은 언제나 잃고 난 다음에 잃은 것의 소중함을 깨닫는
어리석은 종족이고, 우리는 역시,
예외는 없었단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야말로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
2007년 여름가을, 한창 '놈현스럽다'라는 단어로
당신을 조롱할 때 그건 정말,
국가 원수인 당신을
국민들이 당연하게 욕할 수도 있는게 신기했습니다.
죄질이 더 악독했음 더 심했지,
라는 단어는 생성조차 하지 않는데
신조어로 놈현스럽다라는 단어가 먼저 나왔단 사실은 역시,
당신이 '편한 대통령'이었기 때문이겠죠.
이것을 나는, 신방과 스피치 연습 수업에서
설득 발표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정치 얘기라곤 하나도 모르는 어리석은 신문방송학과학생들,
아, 나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지금 소 귀에 경읽고 있구나.'
학생들의 평가를 받는 식이었던 수업이라
당연히 학점은 보장받을 수 없었죠.
어쨌든 2년전 10월은 한창 당신을 변호했던 때였습니다.
왜 였는지는 모릅니다. 내 마음이 당신의 편을 들었다는 것 외에.
그땐 다들 노무현 당신을 욕하는 분위기였고,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는 말은 유행처럼 번져나갔습니다.
당신의 집권할 당시는 그렇게도 욕하던 사람들이
이명박의 대선 주자 등극에 의해 더 극심해졌고
이명박 후보의 카리스마와 경제대통령 구호로 인해
당신의 퇴진을 외치는 무리는 점차로 커졌습니다.
물론 이명박 대통령 당선 후 당신을 그리워하는 기사,
댓글이 더 많아졌지만은요. 큭.
언론은 대중을 선동하고, 또 의식을 설정시킵니다.
대중은 상대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에 놓였죠.
그런데 당신도 인터넷을 하셔서 아시겠지만
지금 대중의 수준은 ....뭐 같습니다.
수동적이고, 똥 오줌 못 가리고, 냄비근성에, 대세에 따르려고 하죠.
솔직히, 지금 사람들이 애도하고 있는 게 난 좀 우습습니다.
당신의 죽음으로 인해 한번 쯤은 당신을 욕했을 사람도 측은한 마음을 가졌을 테죠.. 그런 사람들이 지금 촛불을 들고 분향하려는 사람들 무리 속에 있고, 나는 문득, 아, 사람들 참 더럽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난 무표정으로 그런 모습들을 찬찬히 바라보았습니다.
이리저리 보아도 다들 똑같이 슬퍼하는 모습들,
아아 인간은 참으로 박쥐와 같군요. 당신이 혹여나, 이러한, 선동에 이끌린 군중들의 막말에 영향을 받지는 않았을까 염려를 합니다.
역시, 우리가 당신을 죽음으로 내몬 것일까요.
이런 저런 생각하며, 안경을 가져오지 않아 침침한 눈으로 분향소의
전경을 살펴보았습니다. 커다란 전광판에는 당신의 모습, 또는
그 지인들의 인터뷰, 당신에 대한 뉴스들을 연신 비추고 있었고,
그렇게 보고 싶던 당신의 영정은 이건, 사실이다. 라고 말하며
흰 국화 속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멀찌감치 떨어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을 뿐인데도 나는 울음을 참지 못했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여자라서 편하다고, 여자라서 길거리에서 울어도 어느 정도 용인될 수 있는 것 같다고.'
집에서도 소리내어 울지 못하는 나는, 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처럼
'어금니 꽉 깨물어'를 속으로 속으로 반복하며
입을 틀어막고 음소거의 울음을 터트리며
화장이 지워지건 말건 손으로 열심히 내 얼굴을 가리웠습니다.
어찌되었건, 우는 건 약한 모습이니까요. 보기 싫으니까요.
간신히 진정되고 나서는, 만장에 걸리는 방명록을 쓰러갔습니다.
난 꼭 이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억울함, 불의에 편승하는 시대에 희생되는 정의, 당신이 결백하다고 믿는 나로써는, 이 말만이
당신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거라 확신했습니다.
당신의 억울함, 국민들이 다 안다고.
그리고 긴긴 줄을 섰습니다. 사람들이 꽤 많았지만 더 많았음 싶었습니다. 줄 옆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전혀 관심없는 표정이었으니까요.
줄을 선 내 앞에는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우리 왜 여기 서 있는거야?'
'이명박 탄핵되면 찬성할거야?'
'우리가 못 하지 않아? 그리고 난 아무래도 좋아. 넌 어때?'
'나도 잘 모르겠는데 아마 탄핵될 것 같아서'
'난 솔직히 왜 이러는 지 잘 모르겠어'
'나도'
'내 짝이 된 애가 나보다 못생겼는데
되려 못생겼다고 놀려서 얼굴보라고 해줬어'
너무 한심해져서 안 들을려고 무시라느라 잘 기억이 안 나지만
그때 제 표정은, 모르긴 몰라도 무시무시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의 대화내용은 한.. 중학생 쯤으로 생각했는데
수능얘길 하는 걸 보니, 고등학생.
아, 제가 고등학생일 때는 이렇게 한심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이들이 이제 개나 소나 가는 대학의 대학생이 된다는 사실은
참 암울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때, 단상에 올라가 내 가족의 안전을 위해 우리는 학생의 신분도 져버리고 거리로 나오게 되었다는 수많은 학생들과는 또 다르게 보였습니다. 하긴, 그때도 저는, 그 어린 친구들의 열의를 순수하게 보진 못했죠. '너희는, 자극적인 선동에 이끌리기 쉬운 나이야' 하면서요.
헌데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이 아이들은,
엄숙한 분향소에서, 웃고 떠들고 하는 걸 보니,
웃기지도 않았습니다. 그 아이들 뒤에서 무서운 표정으로
한번 더 웃으면 죽여버릴 줄 알아, 하는 마음으로 지켜보았습니다.
다행히도 그 무리 중 하나가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는 통에
다소 누그러졌지만은요, 아. 말이 좀 격해졌나요, 어쨌든 이런 아이들도 학교 마치고 당신에게 분향하러 이렇게 줄을 서 있습니다.
보이시나요, 만장에 적인 방명록을 진지하게 읽어보는 꼬마아이를.
왠지 대견해서 사진마저 찍고 말았네요. 하하...
한 줄에 8명씩 분향했던지라 줄은 생각보다 빠르게 줄어들었습니다. 길가에서 분향소가 보이는 정면에 서게되자
흐릿한 눈으로 분향소를 정면에 볼 수 있게 되었고,
흡사, 영정사진이, 사진이 아니라 정말 살아있는 당신을 뵙는 듯이
생생하게 상상을 했습니다. 티비에서, 동영상에서, 보던 당신의 모습을 재현하면서, 내가 당신에게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실제와 같이 느껴졌습니다. 길가에서 보던 것과는 또 다른 느낌.
그때, 전광판에서 귀향한 당신이 기쁜 목소리로
"아! 기분 좋다!!"
왈칵 눈물이 납니다.
어째서인지 당신의 기쁜 모습도, 슬픈 모습도,
모두 애통하고 비통해집니다. 진심으로 기뻐한 당신의 모습이
너무도 소탈하고, 어린 아이같고, 바보같아서, 그 기쁨을 오래토록 지속시키지 못한 이 사회, 그리고 여기에 속한 우리, 그리고 당신.
그리고 우는 모습이 좋은 사진이 되는 양 찰칵 찰칵 찍던 빌어먹을 사진사놈들. 뭐, 이해는 합니다. 그렇지만 사진이 찍히면서 그게,
인위적으로 바뀔까봐 염려가 된달까.
사진 찍는 사람들 땜에 마음놓고 울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영정 앞에 흰 국화꽃을 올렸습니다.
아, 그때 나를 휘감은 슬픔의 고통이란.
나는 이성을 잃었고 어깨를 들썩이며 일어서지 못했습니다.
절을 하려고 가리운 두 손 안으로 얼굴을 묻고 절을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게 일어나 상주분들에게 인사드리고, 잘못 신었다고 후회한 높은 구두를 억지로 신고 휘청휘청 걸어나와 분향소 옆에 쭈그려 앉아 한참을 울었습니다. 분향소 옆에서 그러면 안되는 거였는데,
더 발걸음을 옮길 수 없어, 그 생생한 영정사진, 아니, 실체화되었다가 다시 사진으로 돌아간,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노무현 대통령의 영정 사진을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다 울고 나서 다시 한번 보고, 또 보고, 추적추적 일어나 막차를 타고 집으로 갔습니다.
******
사실 3일 동안 상복 차림을 하려고 했지만
학교 앞에 임시 분향소가 설치되었기에, 가보려고 오늘도
검은 옷을 입었습니다.
날도 더운데, 수고들 하시는 군요.
학교 게시판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학생들이랍니다.
저도, 수요일에 학교 게시판을 보고 알았군요 학교 게시판에는, 고인이 되신 당신을 두고 축제 연기되었다고
별 말 같지도 않는 트집을 잡고선 논쟁을 벌이게 만든 또라이가
있어서 어린 애같이 발끈해서 상대 좀 해주다가
다른 게시물을 보고 분향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당신에게 꼭 해드리고 싶었던 게 뭔지 아십니까?
그건, 끊었던 담배를 다시 무셨다는 당신에게 담배 한 개피 올리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피우신다는 담배로 추정되는 클라우드 나인.
천국의 계단이라는 뜻이라죠.
제가 생전 처음으로 편의점에서 담배도 사봅니다.
클라우드 나인 파란색.
제가 올리는 담배 한 개피 무시고 천국의 계단을 오르시길 간절히 바라며, 그 학생들에게 아이스크림을 건내주고 ,
사람 많이 왔냐며, 질문도 좀 하고 싶었지만
한 낮인데도 불구하고 착잡해져서 그만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날은 바람이 불고,
담배 피우시는 분이 없어 불은 못 붙인 생 담배를
향을 피우는 대신에 제단에 올려놓았습니다.
아직도 아쉬워지는 군요.. 불 붙인 담배를 드릴 수 없었던 점이.
그리고 담배갑은 마찬가지로 제단에,
(설마. 누가 이거 피우진 않겠죠?(웃음))
절을 두 번, 반 배를 한 다음
못 다한 말을 하려 묵념을 하였습니다.
아, 또 이 놈의 눈물.
생각해보니 당신이 돌아가신 후 눈물이 마를 날이 없습니다.
그립습니다. 어째서인지, 당신이 그립습니다.
이젠 가지마시라는 말 조차 할 수 없습니다.
오늘도 슬퍼지는 하루를 보내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저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코너를 돌아 골목길로 들어온 검은 색 차,
창문을 열고 나를 보는 운전자가 노무현 , 당신이었습니다.
특유의 그, 입을 다문 미소, 그 얼굴로 나를 보았습니다.
지나가는 자동차의 속도만큼 확신할 수 없는 환상.
그래도 당신이었습니다.
짐작해볼 때 평소라면, 아가씨를 쳐다보는 아저씨의 음흉한 얼굴이 아닐까 합니다만, 내가 본 것은 분명히 당신이었습니다.
- 침묵의 분향소에서 -
슬픔에 휘청거리는 저는 아직도
당신이 눈에 선한 듯 합니다.
*
23일, 저는 과제에 찌든 대학생이었고
때마침 켜놓은 네이트온은
저와 세상을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였습니다.
헌데, 그때였습니다.
작은 네모상자, 속보. 그것은 당신의 투신소식.
놀란 가슴과 머리는 그런 상황은 아주 뜻 밖의 것이었습니다.
얼마전까지 봉하마을을 찾아온 관광객을 맞이하며
손을 흔들던 당신이었습니다.
밀짚모자에, 영락없는 시골 촌부로 귀향한 당신이었습니다.
헌데 이것이 무슨 일입니까
문자를 돌려 이 소식을 지인들에게 전합니다.
이런 중대한 사실을 조금이라도 늦게 알면 슬픔도 늦어지니까요.
하지만 나는 실망합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당신을 변호합니다. 이 모자란 내가,
변호사였던 당신을 변호합니다. 이상한 일이죠.
슬픔에 두근거리는 심장은 오늘부터 시작이었습니다.
**
이제는 연신 당신의 투신자살 소식으로
인터넷 기사가 도배되었습니다.
과제마저 손 놓고 정신없이
당신에 대한 기사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사건 경위를 보고, 당신의 업적을 보고,
당신이 불법 자금에 연루되어 검찰에 소환조사받을 때도
당신에게 실망하지 않았던 나였습니다.
절대 당신의 지지자라서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정의를 신봉하는 나로서는
언론을 공부하며 언론에 환멸을 느낀 나였으니까요
당신의 결백을 믿었습니다.
설사 관여를 했다하여도 그것은 당신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건 겪어보지 않고는 모르죠.
우리 아버지가 당신과 같이 강직합니다. 지름길이라곤 모르죠.
하지만 생활과 현실은 당신의 자존심을 옭아맬 때도 있음을 압니다.
무릇, 집안의 아녀자란 욕심에 약한 법이고,
권력의 달콤함은 부귀영화에 미련을 가지게 되죠.
어쨌든 당신을 이해하기로 한 나입니다.
그래서, 저는 할아버지의 시신을 눈 앞에 두고서도 담담했던
마음이 슬픔에 휘청거립니다.
정말이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꼭, 분향소에 가리라 다짐합니다. 살아생전 뵙지 못한 당신을, 영정사진 앞에서나마,
당신의 고통을 믿지 못한, 그 죄인인 나를 놓고 사죄하려합니다.
***
주말이 지나 다시 돌아온 월요일은,
남김없이 기력을 소진한 나로서는
비통함으로 가득찬 일주일의 시작이었습니다.
화요일 발표를 앞두고 월요일에 가려한
당신의 분향소 방문은 내일로 미루어졌고,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검은 옷으로 치장한 다음 길을 나섰습니다.
당신은 이 세상에서 사라졌지만 거리는 오늘도 여전했습니다.
당신의 죽음 또한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게
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 하는 것 같았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은요.
그런데, 왜 나만 슬픈 걸까요?
왜, 당신이 비극이 내 눈에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같은 슬픔으로 다가오지 못하는 것 같죠?
불공평합니다.
나는 토끼눈으로 우울한 시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당신은 정말로 실수했습니다. 경솔했습니다.
당신이 죽음을 맞이해도 변하지 않는 현실입니다.
애꿎은 당신의 목숨만 버려졌습니다.
나쁩니다. 당신이 미워집니다.
정말로 미워집니다.
나는 차라리 당신이 죽지만 말았음 했습니다.
미수에 그쳐 영원한 고통에 시달리더라도 당신의 생명만은
꺼지지 않기를 이기적인 마음으로 바라봤습니다.
당신의 존재만으로도
민주의 씨앗이 이 땅에 심어져있길 짐작해보는 것처럼,
당신의 그 존재감이 절실한 오늘입니다.
****
검은 옷에 긴 머리까지 풀어헤치고 여름같은 하루를 맞이했더니
나를 보는 사람들이 모두 답답함을 금치 못하는 것 같습니다.
신호를 기다리다, 어떤 학우의 "아, 덥다"라는 말은
나에게로 와 꽂히는 듯 하였고 당장에라도 지금 더운 게 문제냐는
말로 시비를 걸고만 싶었습니다.
그렇게 나는 우울한 오늘을 시작했습니다.
부은 눈을 한 나는 시종일관 말이 없습니다.
밤새 울었더니 기력이 없어 공연히 짜증만 내던 그 날은
조용히 지나갔습니다.
*****
수요일입니다. 학교도 안 가는 날이니
저는 해가 떨어지기를 기다려 길을 나섰습니다.
도착한 곳은 2.28 공원. 당신이 있는 곳이죠.
지방자치단체에서 두류에 자리를 마련해두었다곤 하지만
2.28공원에 설치된 분향소가 맨 처음 설치된 장소이기도 하고,
또 나는 두류에 있다던 분향소 위치를 잘 모르는 관계로 ^^..
도착하니 시내의 활기는 여전했고, 마치 분향소 쪽 분위기와는
전혀 따로따로 노는 것만 같은 이질감에 휩싸였습니다.
입구로부터 당신의 유서내용이 인쇄된 플래카드를 보고,
또 나무들에 부착한 만장이 슬프게 휘날렸습니다.
거기에는 사람들의 방명록이 있었죠.
다다가 읽어보았습니다.
거기에는 정말 수많은 만장이 영혼의 잔치처럼 어지러웠거든요.
아이들을 데리고 온 듯한 아버지의 방명록은 실로 안타깝기 그지없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언제나 권위적이고 제멋대로인 대통령을 보아야 한다는 사실이 아프게 실감되었거든요. 이 세상에 이런 대통령, 시골의 촌부, 우직한 바보였던 노무현 대통령이 있었단 사실을,
우리 아이들은 못 보니까요.
시간을 쪼개어 한 테두리에 있는 만장을 대강이라도 전부 읽어보았습니다. 실로 여러 연령대와 성별, 그래도 그들의 진심으로 당신의 평안함을 바라는 글이었습니다.
문득 하늘에서 당신이 계시다는 생각을 하니 저절로 고개가 하늘로 올려졌습니다. '보고계신가요 아버지'
나는 검은 하늘에 대고, 하고싶은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믿고 있었다고, 당신은 혼자가 아니었다고,
그렇게 외로워하며 고통스러워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당신은 우리를 믿지 못한 건지, 우리가 너무 늦은 건지,
둘 다 어쩌면 맞는 말이겠죠.
하지만 우리는 당신을 잃고 통곡합니다.
인간은 언제나 잃고 난 다음에 잃은 것의 소중함을 깨닫는
어리석은 종족이고, 우리는 역시,
예외는 없었단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야말로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
2007년 여름가을, 한창 '놈현스럽다'라는 단어로
당신을 조롱할 때 그건 정말,
국가 원수인 당신을
국민들이 당연하게 욕할 수도 있는게 신기했습니다.
죄질이 더 악독했음 더 심했지,
라는 단어는 생성조차 하지 않는데
신조어로 놈현스럽다라는 단어가 먼저 나왔단 사실은 역시,
당신이 '편한 대통령'이었기 때문이겠죠.
이것을 나는, 신방과 스피치 연습 수업에서
설득 발표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정치 얘기라곤 하나도 모르는 어리석은 신문방송학과학생들,
아, 나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지금 소 귀에 경읽고 있구나.'
학생들의 평가를 받는 식이었던 수업이라
당연히 학점은 보장받을 수 없었죠.
어쨌든 2년전 10월은 한창 당신을 변호했던 때였습니다.
왜 였는지는 모릅니다. 내 마음이 당신의 편을 들었다는 것 외에.
그땐 다들 노무현 당신을 욕하는 분위기였고,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는 말은 유행처럼 번져나갔습니다.
당신의 집권할 당시는 그렇게도 욕하던 사람들이
이명박의 대선 주자 등극에 의해 더 극심해졌고
이명박 후보의 카리스마와 경제대통령 구호로 인해
당신의 퇴진을 외치는 무리는 점차로 커졌습니다.
물론 이명박 대통령 당선 후 당신을 그리워하는 기사,
댓글이 더 많아졌지만은요. 큭.
언론은 대중을 선동하고, 또 의식을 설정시킵니다.
대중은 상대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에 놓였죠.
그런데 당신도 인터넷을 하셔서 아시겠지만
지금 대중의 수준은 ....뭐 같습니다.
수동적이고, 똥 오줌 못 가리고, 냄비근성에, 대세에 따르려고 하죠.
솔직히, 지금 사람들이 애도하고 있는 게 난 좀 우습습니다.
당신의 죽음으로 인해 한번 쯤은 당신을 욕했을 사람도 측은한 마음을 가졌을 테죠.. 그런 사람들이 지금 촛불을 들고 분향하려는 사람들 무리 속에 있고, 나는 문득, 아, 사람들 참 더럽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난 무표정으로 그런 모습들을 찬찬히 바라보았습니다.
이리저리 보아도 다들 똑같이 슬퍼하는 모습들,
아아 인간은 참으로 박쥐와 같군요. 당신이 혹여나, 이러한, 선동에 이끌린 군중들의 막말에 영향을 받지는 않았을까 염려를 합니다.
역시, 우리가 당신을 죽음으로 내몬 것일까요.
이런 저런 생각하며, 안경을 가져오지 않아 침침한 눈으로 분향소의
전경을 살펴보았습니다. 커다란 전광판에는 당신의 모습, 또는
그 지인들의 인터뷰, 당신에 대한 뉴스들을 연신 비추고 있었고,
그렇게 보고 싶던 당신의 영정은 이건, 사실이다. 라고 말하며
흰 국화 속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멀찌감치 떨어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을 뿐인데도 나는 울음을 참지 못했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여자라서 편하다고, 여자라서 길거리에서 울어도 어느 정도 용인될 수 있는 것 같다고.'
집에서도 소리내어 울지 못하는 나는, 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처럼
'어금니 꽉 깨물어'를 속으로 속으로 반복하며
입을 틀어막고 음소거의 울음을 터트리며
화장이 지워지건 말건 손으로 열심히 내 얼굴을 가리웠습니다.
어찌되었건, 우는 건 약한 모습이니까요. 보기 싫으니까요.
간신히 진정되고 나서는, 만장에 걸리는 방명록을 쓰러갔습니다.
난 꼭 이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억울함, 불의에 편승하는 시대에 희생되는 정의, 당신이 결백하다고 믿는 나로써는, 이 말만이
당신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거라 확신했습니다.
당신의 억울함, 국민들이 다 안다고.
그리고 긴긴 줄을 섰습니다. 사람들이 꽤 많았지만 더 많았음 싶었습니다. 줄 옆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전혀 관심없는 표정이었으니까요.
줄을 선 내 앞에는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우리 왜 여기 서 있는거야?'
'이명박 탄핵되면 찬성할거야?'
'우리가 못 하지 않아? 그리고 난 아무래도 좋아. 넌 어때?'
'나도 잘 모르겠는데 아마 탄핵될 것 같아서'
'난 솔직히 왜 이러는 지 잘 모르겠어'
'나도'
'내 짝이 된 애가 나보다 못생겼는데
되려 못생겼다고 놀려서 얼굴보라고 해줬어'
너무 한심해져서 안 들을려고 무시라느라 잘 기억이 안 나지만
그때 제 표정은, 모르긴 몰라도 무시무시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의 대화내용은 한.. 중학생 쯤으로 생각했는데
수능얘길 하는 걸 보니, 고등학생.
아, 제가 고등학생일 때는 이렇게 한심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이들이 이제 개나 소나 가는 대학의 대학생이 된다는 사실은
참 암울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때, 단상에 올라가 내 가족의 안전을 위해 우리는 학생의 신분도 져버리고 거리로 나오게 되었다는 수많은 학생들과는 또 다르게 보였습니다. 하긴, 그때도 저는, 그 어린 친구들의 열의를 순수하게 보진 못했죠.
'너희는, 자극적인 선동에 이끌리기 쉬운 나이야' 하면서요.
헌데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이 아이들은,
엄숙한 분향소에서, 웃고 떠들고 하는 걸 보니,
웃기지도 않았습니다. 그 아이들 뒤에서 무서운 표정으로
한번 더 웃으면 죽여버릴 줄 알아, 하는 마음으로 지켜보았습니다.
다행히도 그 무리 중 하나가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는 통에
다소 누그러졌지만은요, 아. 말이 좀 격해졌나요, 어쨌든 이런 아이들도 학교 마치고 당신에게 분향하러 이렇게 줄을 서 있습니다.
보이시나요, 만장에 적인 방명록을 진지하게 읽어보는 꼬마아이를.
왠지 대견해서 사진마저 찍고 말았네요. 하하...
한 줄에 8명씩 분향했던지라 줄은 생각보다 빠르게 줄어들었습니다. 길가에서 분향소가 보이는 정면에 서게되자
흐릿한 눈으로 분향소를 정면에 볼 수 있게 되었고,
흡사, 영정사진이, 사진이 아니라 정말 살아있는 당신을 뵙는 듯이
생생하게 상상을 했습니다. 티비에서, 동영상에서, 보던 당신의 모습을 재현하면서, 내가 당신에게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실제와 같이 느껴졌습니다. 길가에서 보던 것과는 또 다른 느낌.
그때, 전광판에서 귀향한 당신이 기쁜 목소리로
"아! 기분 좋다!!"
왈칵 눈물이 납니다.
어째서인지 당신의 기쁜 모습도, 슬픈 모습도,
모두 애통하고 비통해집니다. 진심으로 기뻐한 당신의 모습이
너무도 소탈하고, 어린 아이같고, 바보같아서, 그 기쁨을 오래토록 지속시키지 못한 이 사회, 그리고 여기에 속한 우리, 그리고 당신.
그리고 우는 모습이 좋은 사진이 되는 양 찰칵 찰칵 찍던 빌어먹을 사진사놈들. 뭐, 이해는 합니다. 그렇지만 사진이 찍히면서 그게,
인위적으로 바뀔까봐 염려가 된달까.
사진 찍는 사람들 땜에 마음놓고 울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영정 앞에 흰 국화꽃을 올렸습니다.
아, 그때 나를 휘감은 슬픔의 고통이란.
나는 이성을 잃었고 어깨를 들썩이며 일어서지 못했습니다.
절을 하려고 가리운 두 손 안으로 얼굴을 묻고 절을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게 일어나 상주분들에게 인사드리고, 잘못 신었다고 후회한 높은 구두를 억지로 신고 휘청휘청 걸어나와 분향소 옆에 쭈그려 앉아 한참을 울었습니다. 분향소 옆에서 그러면 안되는 거였는데,
더 발걸음을 옮길 수 없어, 그 생생한 영정사진, 아니, 실체화되었다가 다시 사진으로 돌아간,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노무현 대통령의 영정 사진을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다 울고 나서 다시 한번 보고, 또 보고, 추적추적 일어나 막차를 타고 집으로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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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3일 동안 상복 차림을 하려고 했지만
학교 앞에 임시 분향소가 설치되었기에, 가보려고 오늘도
검은 옷을 입었습니다.
날도 더운데, 수고들 하시는 군요.
학교 게시판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학생들이랍니다.
저도, 수요일에 학교 게시판을 보고 알았군요
학교 게시판에는, 고인이 되신 당신을 두고 축제 연기되었다고
별 말 같지도 않는 트집을 잡고선 논쟁을 벌이게 만든 또라이가
있어서 어린 애같이 발끈해서 상대 좀 해주다가
다른 게시물을 보고 분향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당신에게 꼭 해드리고 싶었던 게 뭔지 아십니까?
그건, 끊었던 담배를 다시 무셨다는 당신에게 담배 한 개피 올리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피우신다는 담배로 추정되는 클라우드 나인.
천국의 계단이라는 뜻이라죠.
제가 생전 처음으로 편의점에서 담배도 사봅니다.
클라우드 나인 파란색.
제가 올리는 담배 한 개피 무시고 천국의 계단을 오르시길 간절히 바라며, 그 학생들에게 아이스크림을 건내주고 ,
사람 많이 왔냐며, 질문도 좀 하고 싶었지만
한 낮인데도 불구하고 착잡해져서 그만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날은 바람이 불고,
담배 피우시는 분이 없어 불은 못 붙인 생 담배를
향을 피우는 대신에 제단에 올려놓았습니다.
아직도 아쉬워지는 군요.. 불 붙인 담배를 드릴 수 없었던 점이.
그리고 담배갑은 마찬가지로 제단에,
(설마. 누가 이거 피우진 않겠죠?(웃음))
절을 두 번, 반 배를 한 다음
못 다한 말을 하려 묵념을 하였습니다.
아, 또 이 놈의 눈물.
생각해보니 당신이 돌아가신 후 눈물이 마를 날이 없습니다.
그립습니다. 어째서인지, 당신이 그립습니다.
이젠 가지마시라는 말 조차 할 수 없습니다.
오늘도 슬퍼지는 하루를 보내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저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코너를 돌아 골목길로 들어온 검은 색 차,
창문을 열고 나를 보는 운전자가 노무현 , 당신이었습니다.
특유의 그, 입을 다문 미소, 그 얼굴로 나를 보았습니다.
지나가는 자동차의 속도만큼 확신할 수 없는 환상.
그래도 당신이었습니다.
짐작해볼 때 평소라면, 아가씨를 쳐다보는 아저씨의 음흉한 얼굴이 아닐까 합니다만, 내가 본 것은 분명히 당신이었습니다.
실물은 본 적도 없지만 분명히, 분명히..
아.. 그립습니다.
아주 가버리지는 말아요.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