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메리카 중부 태평양 연안에 있는 나라. 정식명칭은 엘살바도르 공화국이며(엘살바도르는 스페인어로 구세주라는 뜻이다.) 수도는 산살바도르(해발 680m)이다. 국명인 엘살바도르는 1524년에 코르테스의 부하 알바라도 장군이 험준한 산맥을 넘어 이 땅에 도달한 뒤 구세주에게 감사하는 뜻에서 명명하였다고 한다.
국기 의미
파랑은 하늘과 카리브해를 하양은 평화와 협력을 상징한다.
중앙의 문장에는 해방을 뜻하는 "자유의 모자"가 그려져 있고 그 둘레에는 독립 날짜(1821년 9월 15일)가 씌어 있으며 에스파냐어로 "신, 단결, 자유"라고 씌어진 리본이 들어 있고 작은 가지를 가진 월계관이 리본을 둘러싸고 있다. 또 바깥 둘레에는 "중앙 아메리카 엘살바도르 공화국(REPUBLICA DE EL SALVADOR EN LA AMERICA CENTRAL)"이라고 씌어 있다.
역사
1524년 코르테스의 부하인 장군 알바라도의 쿠스카틀란 정복으로 이곳 원주민 피필스족이 에스파냐인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며 쿠스카틀란이 파괴된 자리에 산살바도르가 건설되고 1542년에는 과테말라 총독령에 편입되었다. 19세기가 되자 크레올(식민지 태생의 백인)의 독립운동이 활발해졌다. 1821년에 멕시코의 이투르비데가 독립을 선언하였는데 그 이듬해에 과테말라 총독령마저 제국에 병합시키려 하자 과테말라 총독령의 크레올들은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의회에서 미국의 한 주가 되기로 결의하였다. 이 운동은 실패하였으나 이투르비데가 실각한 후 1823년 6월 다른 중앙아메리카 4개국과 함께 중앙아메리카 연방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연방내에 정치적 혼란이 잇달아 일어나 1838년 연방은 붕괴되고 그 후 얼마 동안 불안정한 상태가 계속되다가 1841년에 엘살바도르 공화국으로서 독립하였다. 그 후에도 정치적 통합을 둘러싸고 자주 분쟁이 일어났는데 그 근원은 과테말라 및 온두라스와의 영토문제였다. 1907년 미국의 조정으로 중앙아메리카 5개국의 분쟁처리기관으로서 중앙아메리카 사법재판소가 설립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영토분쟁은 중앙아메리카 각국에 대한 미국의 식민지적 지배정책과 관계가 있는 것이었다.
1931년 12월 공산당이 지지하고 있던 아라우호 정권을 파시스트파의 장군 마르티네스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무너뜨렸다. 마르티네스의 보수적 독재정권은 13년간 계속되었는데 1932년에는 농민을 중심으로 4만여 명이 무장봉기를 일으켜 한때 서부 도시에 그들의 정권이 수립되기도 하였다. 1944년에는 총파업과 반독재 투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청년장교들의 쿠데타가 일어났으며 1946년과 1948년에도 쿠데타가 일어났다.
1950년에는 1948년의 쿠데타로 군사정권을 수립했던 대령 오소리오가 선거를 통하여 대통령에 취임하고 군사정권을 형식상 합법화하였다. 대통령 오소리오는 노동조합의 합법화 등을 실시하였으나 1952년에 민중운동이 심해지자 이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1956년 3월에 시행된 선거에서 레무스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대미 의존정책을 강화하고 보수독재제를 유지하였다. 1959년에는 경제상황의 악화와 쿠바혁명의 영향으로 국민의 반독재운동이 격화되었다. 그 후 여러 사건들이 일어나다가 1962년 대통령선거에서 리베라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1967, 1972, 1977년에 집권자가 바뀌고 1979년 10월 쿠데타로 대통령 카를로스 로메로가 실각한 이후 군민평의회가 설치되어 농지개혁, 은행국유화 등 사회개혁 노선을 내걸었지만 좌우 대립의 격화로 정국이 혼미하였다. 1984년 선거에서 그리스도 교민주당이 승리, 두아르테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또한 이웃 국가인 온두라스와는 자주 충돌을 빚었다.
사회
경축일은 독립기념일(9월 15일)과 독립선언기념일(11월 15일)이다. 해마다 수도에서는 7월 26일부터 8월 6일까지 "8월의 축제"가 열리는데 각지에서 인디오가 모여들어 전통적인 춤을 춘다. 수도의 주택가는 매우 호화롭지만 서민의 생활은 가난하다. 국민의 대다수는 가톨릭교도이다. (가톨릭 83%, 기타 17%)
의무교육제도는 없으나 학교를 다니는 경우 9학년까지의 약간의 수업료 보조가 있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제이며 대학은 엘살바도르 국립대학을 비롯하여 30여 개교가 있다.
엘살바도르는 전통적으로 부의 편중과 계급 분화현상이 뚜렷하며 19세기 말 이래 반체제 세력과 기득권 세력간 충돌이 자주 일어났고 1970년대 말에 갈등이 더 심해졌다. 1980년 이후 12년간의 내전이 일어났고 이에 따른 경제난 등으로 인하여 1980년대에 50만 명 정도가 미국으로 이주하였으며, 현재 약 150만 명(불법이민 포함)이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주민
엘살바도르는 91%는 메스티소, 3%는 인디오, 6%는 백인이고 공용어로는 에스파냐어가 사용된다.
문화
중남미는 세계 최대의 가톨릭교 지역이다. 엘살바도르도 예외는 아니어서 주 종교는 가톨릭이다. 그러나 최근 프로테스탄트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고 1978년 당시에 10만 명 정도였으나 최근에는 150만 명 이상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대원인은 가톨릭교회가 정치에 개입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크게 두드러진 예술문학은 찾아볼 수 없으나 음악공연이 자주 있는 편이다. 시가 인기가 있는데 기타반주에 맞추어 시를 노래하는 칸시온 포풀라르(Cancion Popualar)라는 공연이 자주 있는 편이다.
EL SALVADOR
El Salvador
중앙아메리카 중부 태평양 연안에 있는 나라. 정식명칭은 엘살바도르 공화국이며(엘살바도르는 스페인어로 구세주라는 뜻이다.) 수도는 산살바도르(해발 680m)이다. 국명인 엘살바도르는 1524년에 코르테스의 부하 알바라도 장군이 험준한 산맥을 넘어 이 땅에 도달한 뒤 구세주에게 감사하는 뜻에서 명명하였다고 한다.
국기 의미
파랑은 하늘과 카리브해를 하양은 평화와 협력을 상징한다.
중앙의 문장에는 해방을 뜻하는 "자유의 모자"가 그려져 있고 그 둘레에는 독립 날짜(1821년 9월 15일)가 씌어 있으며 에스파냐어로 "신, 단결, 자유"라고 씌어진 리본이 들어 있고 작은 가지를 가진 월계관이 리본을 둘러싸고 있다. 또 바깥 둘레에는 "중앙 아메리카 엘살바도르 공화국(REPUBLICA DE EL SALVADOR EN LA AMERICA CENTRAL)"이라고 씌어 있다.
역사
1524년 코르테스의 부하인 장군 알바라도의 쿠스카틀란 정복으로 이곳 원주민 피필스족이 에스파냐인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며 쿠스카틀란이 파괴된 자리에 산살바도르가 건설되고 1542년에는 과테말라 총독령에 편입되었다. 19세기가 되자 크레올(식민지 태생의 백인)의 독립운동이 활발해졌다. 1821년에 멕시코의 이투르비데가 독립을 선언하였는데 그 이듬해에 과테말라 총독령마저 제국에 병합시키려 하자 과테말라 총독령의 크레올들은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의회에서 미국의 한 주가 되기로 결의하였다. 이 운동은 실패하였으나 이투르비데가 실각한 후 1823년 6월 다른 중앙아메리카 4개국과 함께 중앙아메리카 연방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연방내에 정치적 혼란이 잇달아 일어나 1838년 연방은 붕괴되고 그 후 얼마 동안 불안정한 상태가 계속되다가 1841년에 엘살바도르 공화국으로서 독립하였다. 그 후에도 정치적 통합을 둘러싸고 자주 분쟁이 일어났는데 그 근원은 과테말라 및 온두라스와의 영토문제였다. 1907년 미국의 조정으로 중앙아메리카 5개국의 분쟁처리기관으로서 중앙아메리카 사법재판소가 설립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영토분쟁은 중앙아메리카 각국에 대한 미국의 식민지적 지배정책과 관계가 있는 것이었다.
1931년 12월 공산당이 지지하고 있던 아라우호 정권을 파시스트파의 장군 마르티네스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무너뜨렸다. 마르티네스의 보수적 독재정권은 13년간 계속되었는데 1932년에는 농민을 중심으로 4만여 명이 무장봉기를 일으켜 한때 서부 도시에 그들의 정권이 수립되기도 하였다. 1944년에는 총파업과 반독재 투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청년장교들의 쿠데타가 일어났으며 1946년과 1948년에도 쿠데타가 일어났다.
1950년에는 1948년의 쿠데타로 군사정권을 수립했던 대령 오소리오가 선거를 통하여 대통령에 취임하고 군사정권을 형식상 합법화하였다. 대통령 오소리오는 노동조합의 합법화 등을 실시하였으나 1952년에 민중운동이 심해지자 이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1956년 3월에 시행된 선거에서 레무스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대미 의존정책을 강화하고 보수독재제를 유지하였다. 1959년에는 경제상황의 악화와 쿠바혁명의 영향으로 국민의 반독재운동이 격화되었다. 그 후 여러 사건들이 일어나다가 1962년 대통령선거에서 리베라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1967, 1972, 1977년에 집권자가 바뀌고 1979년 10월 쿠데타로 대통령 카를로스 로메로가 실각한 이후 군민평의회가 설치되어 농지개혁, 은행국유화 등 사회개혁 노선을 내걸었지만 좌우 대립의 격화로 정국이 혼미하였다. 1984년 선거에서 그리스도 교민주당이 승리, 두아르테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또한 이웃 국가인 온두라스와는 자주 충돌을 빚었다.
사회
경축일은 독립기념일(9월 15일)과 독립선언기념일(11월 15일)이다. 해마다 수도에서는 7월 26일부터 8월 6일까지 "8월의 축제"가 열리는데 각지에서 인디오가 모여들어 전통적인 춤을 춘다. 수도의 주택가는 매우 호화롭지만 서민의 생활은 가난하다. 국민의 대다수는 가톨릭교도이다. (가톨릭 83%, 기타 17%)
의무교육제도는 없으나 학교를 다니는 경우 9학년까지의 약간의 수업료 보조가 있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제이며 대학은 엘살바도르 국립대학을 비롯하여 30여 개교가 있다.
엘살바도르는 전통적으로 부의 편중과 계급 분화현상이 뚜렷하며 19세기 말 이래 반체제 세력과 기득권 세력간 충돌이 자주 일어났고 1970년대 말에 갈등이 더 심해졌다. 1980년 이후 12년간의 내전이 일어났고 이에 따른 경제난 등으로 인하여 1980년대에 50만 명 정도가 미국으로 이주하였으며, 현재 약 150만 명(불법이민 포함)이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주민
엘살바도르는 91%는 메스티소, 3%는 인디오, 6%는 백인이고 공용어로는 에스파냐어가 사용된다.
문화
중남미는 세계 최대의 가톨릭교 지역이다. 엘살바도르도 예외는 아니어서 주 종교는 가톨릭이다. 그러나 최근 프로테스탄트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고 1978년 당시에 10만 명 정도였으나 최근에는 150만 명 이상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대원인은 가톨릭교회가 정치에 개입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크게 두드러진 예술문학은 찾아볼 수 없으나 음악공연이 자주 있는 편이다. 시가 인기가 있는데 기타반주에 맞추어 시를 노래하는 칸시온 포풀라르(Cancion Popualar)라는 공연이 자주 있는 편이다.
국민들은 운동을 좋아하는데 제일 애호하는 스포츠는 축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