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하여

배규상2009.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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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하여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났다. ‘삶과 죽음은 자연의 한 조각’이라던 노 전 대통령은 이제 자연의 품으로 돌아갔다. ‘미안해 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 운명이다’라는 짤막한 몇마디를 남기고 영면했다. 그는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인권과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섰고, 서민의 대변자로서, 대통령으로서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며 살았다. 이제 고인의 꿈은 후대의 과제로 남았다. 부디 고인이 무거운 짐을 훌훌 털고 안식하길 빈다.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은 외롭지 않았다. 끝없이 이어진 추모 행렬은 인권과 민주주의, 권위주의 타파, 원칙과 상식, 개혁과 통합을 위해 헌신해온 고인의 삶을 되새기며 애도했다. 소외되고 약하고 가난한 이웃의 친구가 되고자 했고, ‘바보 노무현’으로 상징되는 정치혁명을 꾀했던 고인의 행적을 기렸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권위를 벗어던진 채 고향으로 돌아가 잘사는 농촌을 가꿔보고자 했던 작은 꿈마저 앗아간 현실에 분노했다. 고인이 죽으면서 사회에 던진 소통과 통합의 메시지를 잡으려고 오열했다. 꽉 막힌 소통 부재의 사회와 파국에 직면한 남북관계의 아픈 현실을 아파했다. 경복궁에서 서울광장, 서울역 앞을 지나는 운구 행렬은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보려고 달려드는 인파에 파묻혀 더뎌지고 또 더뎌졌다. 갈수록 후퇴하는 민주주의를 붙잡으려는 안간힘 같았다. 고인의 죽음은 전직 대통령이라는 한 개인이 아니라 팍팍한 삶보다 더 가슴 저리는 절망을 호소하려는 그 무엇이었다.

고인을 애도한 7일 동안은 우리 모두의 삶을 재발견하는 시간이었다. 영결식 전날까지 봉하마을을 찾은 추모객은 100만명을 넘어섰고, 전국 각지에 마련된 분향소 추모객을 포함하면 500만명 가까이 동참했다. 남녀노소, 각양각층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빈소와 분향소는 소통을 열망하는 광장이었고, 쏟아낸 눈물은 비통한 고인의 삶과 강퍅해진 우리의 모습에 대한 분노로 비쳤다. 난데없이 쏟아진 장대비도, 30도를 넘나드는 뙤약볕도 그들을 막지는 못했다. 누구도 지휘하지 않았지만 너나없이 자원봉사를 자청했다. 추모 열기를 두려워하고 못마땅해하는 일부 세력의 우려와 달리 질서정연하고 경건한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상주였고, 추모객이었다. 고인의 죽음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을 다시 하나로 묶는 용광로였다.

고인의 한마디 한마디는 산 사람의 목소리인 양 생생하다. “일류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리고 높은 자리에 안 올라가도 사람 대접 받을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되면….” “국민통합은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숙제이다.” “반칙과 특권이 용납되는 시대는 이제 끝내야 한다.” “이제 대통령의 초법적인 권력행사는 더이상 없을 것이다.” “보안법은 독재시대의 유물이다. 박물관으로 보내는 게 좋지 않겠는가.” “국가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잘못은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 “임기 5년이 길게 느껴진다.” “저는 이미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졌다. 여러분은 저를 버려야 한다.” 이 모두가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갈구였고, 자신의 꿈이 좌절된 데 대한 회한이었다. 정작 고인은 책도 읽을 수 없고, 글도 쓸 수 없는 고통과 의지할 데 없는 외로움 속에서 삶을 마감했다.

우리는 고인의 뜻을 계승할 책무를 지고 있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먼저 집권세력의 성찰이 필요하다. 그들의 눈에 서민이 있었던가, 그들의 가슴에 ‘나’ 아닌 ‘너’가 있었던가, 그들의 귀에 민의 소리가 들렸던가. 통절하게 반성해야 한다. 서울광장도, 그들 마음의 광장도 더이상 닫혀선 안 된다. 고인의 죽음에 대한 정권 책임론도 가슴 터놓고 새겨야 한다. 국민을 두려워하기만 할 게 아니라 그들의 흉중을 읽어야 한다. 경찰력에 의존한 공안정치는 국민들의 분노만 돋울 뿐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추모의 물결도 고인의 죽음에 대한 애도를 넘어 그의 유지를 이어받겠다는 다짐이어야 한다. 그것이 ‘바보 노무현’을 우리의 삶 속에서 부활시키고, 애도와 분노를 승화시키는 일이다. 민주주의, 균형발전, 평화로운 한반도, 멀고 험해도 가야 할 길이다.

 

 

 

2009년 5월 30일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