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만 더 키운 대법원의 삼성 판결

배규상2009.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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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혹만 더 키운 대법원의 삼성 판결

 

 

13년을 끌어온 삼성그룹의 경영권 탈법 승계 의혹에 대해 어제 대법원은 납득하기 힘든 애매모호한 법리로 사실상의 무죄를 선고했다. 의혹의 핵심인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매각에 대해선 무죄로 판결하고, 곁가지에 해당하는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에 대해서는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은 삼성에 면죄부를 준 듯한 인상을 주면서도 법리 공방의 불씨는 남겼다. 의혹에 종지부를 찍은 것도, 사법 정의를 세운 것도 아닌 어정쩡한 결정을 내렸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삼성사건의 본질은 이건희 전 회장이 아들 재용씨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기 위해 CB와 BW를 탈법적으로 동원했다는 의혹에 관한 것이다. 국내 최대기업인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가 달랑 16억원의 세금만으로 가당키나 한 일인가에 대한 상식적 물음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대법원은 CB발행의 배정 형식만을 근거로 무죄를 선고했다. 실체적 진실에 등을 돌렸다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무늬만 주주배정일 뿐 실제로는 중대 배임죄에 해당하는 제3자배정이라는 삼성특별검사의 수사결과를 원점으로 돌려버린 것이다. 더구나 이번 대법의 판결은 기업들에 주주배정의 형식요건만 갖추면 삼성처럼 세금 안내고 경영권을 넘길 수 있는 길을 터주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낳고 있다.

대법원의 선고는 확정 판결에 걸맞은 무게를 지녀야 빛이 난다. 그러나 이번 판결로 에버랜드 CB에 대해 이 전 회장이 무죄 선고를 받은 것 말고 우리 사회가 얻은 것은 없다.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 사회적 갈등을 해소해야 할 사법부는 또다시 삼성이란 경제권력 앞에서 무력한 모습을 드러내며 불신을 자초했다. 이번에도 의혹이 말끔히 씻겨지지 않는 바람에 삼성은 승계구도에 차질이 불가피해졌고, 글로벌 기업다운 경영체질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도 실기하고 말았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 굳이 의의를 찾자면 두가지다. 하나는 검찰과 법원 모두가 기업의 꼼수 승계와 지배구조에 대해 법률적 고민을 더 해야 한다는 숙제를 던졌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삼성에 준 교훈이다. 삼성 스스로 정정당당하고 투명한 경영체질을 스스로 갖추지 않는 한 법의 도움으로 국민과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제 삼성을 둘러싼 법적 공방은 새로운 라운드에 접어들었다. 대법원이 씻어주지 못한 의혹은 삼성 스스로 씻는 것만이 삼성에 대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길임을 잊지 말기 바란다.

 

 

 

2009년 5월 30일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