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가 사는 길(25)

윤화숙2009.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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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세계은행(IBRD) 차관업무를 다룰 기회가 있었다.


차관은 대개, 개발금융 방식으로 돈이 풀린다.


그러다 보니 자연, 기업경영을 예측. 분석. 평가하는 일을 배우게 되었다.


거기에는 소위, 가치공학 기법이 동원되고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제삼자수치를 이용한다.


제삼자수치에 의하면, 벤처기업의 성공률은 2~3%에 불과하고, 창업한 지 7년이 넘어야 비로소, 적자를 면하게 되며 초기투자비의 3배가 넘는 시장진입 비용이 소요되고 있다.



IMF로 인해, 가진 돈 다 까먹고 개방형계약직 공무원이 되었다.


새로운 신기술을 발굴하여 산업화시키다 보니 은근히, 사업에 대한 욕심이 또 생겨났다.


그래서 그 중, 가장 유망 시 되는 프로젝트 하나를 골라, 거의 맨손으로 창업을 했다.


창업 5년 차, 사업이 정상궤도로 돌입하기도 전에 자금조달에 한계가 왔다.


그래서 6년 차에는 호랑이 대신, 고양이라도 그려보겠다는 심정으로, 마지막 남은 자원과 역량을 쏟아 부어넣으려던 차에, 내가 중병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난 1년을 회고하면 정말, 악몽과도 같은 한해였다.


항암 중, 한 번씩의 쇼크와 패혈증을 맞았을 때는 ‘차라리 깨어나지 말았으면.......’하는 생각까지 했다.


지난 연말, 회사에서 돌아오는 데, 차비가 떨어져 버스를 타지 못할 상황이 되었을 때는 정말, 독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래도 어쨌든, 천신만고 끝에, 그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오늘에 이르렀다.


비록, 내일의 일을 알 수 없는 상태라고는 하나, 병세는 더 이상의 치료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호전됐다.


매 월말이면 골이 좀 지끈거리기는 하지만, 기업도 아직은 돌아가고 있다.


어떻게든, 올 한해만 잘 넘기면 그런대로, 모든 것이 술술 풀릴 것 같다는 예감까지 든다.



그런데 불가측 한 복병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나 자신조차도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의 변덕이다.


이렇게, 잘 버텨내다가도 순간적으로 절망과 불안, 우울증에 빠지곤 하는 것이다.


어떤 상황과 좌절감이 겹치면 돌발적인 심적 상태가 형성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산에 가기가 두려운 때도 있다.


바위 위의 높은 벼랑 끝에 섰을 때, 나도 누구처럼 그냥, 그 자리에서 뛰어내리고 싶다는 충동이 문득, 일어나곤 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환우들을 생각한다.


단 하루라도 더 살기를 염원하다 유명을 달리하였거나 지금 이 순간도 오로지, 병만 낫기를 염원하는 수많은 환우들.......


그들만큼 생의 의욕을 더 크게, 더 빨리 일깨워주는 존재는 없다.



바쁜 일정을 물리치고 기어이, 하루를 환우들과의 소풍으로 보내고 왔더니 한 직원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이제 더 이상, 환자들을 만나시지 마세요!”


물론, 그 짧은 한 마디에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정녕, 그는 모를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내게 있어, 생명의 끈을 붙들어 매어주는 구명줄의 한 가닥임을.......



사소한 일이 때로는, 아주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지니게 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