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과 만표 텟페이

이승훈2009.05.31
조회108
 

 

 화려한 일족은 극적으로 패전을 극복하고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한 1960년대의 격동의 일본, 그 속에서 만표가(万俵家)라는 화려한 재벌가문이 약육강식의 경쟁에서 살아남아 더 거대해지고 화려해져가는 이야기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혼돈스러운 약육강식의 경쟁 속에서 부자간에도 서로 경쟁해야했던 만표 다이스케와 만표 텟페이의 애증의 이야기, 그리고 태어나면서부터 아버지의 사랑을 얻지 못했고 평생을 그 사랑을 얻기위해 그리고 자신의 존재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치열한 삶을 살았던 만표 텟페이라는 한 젊은 남자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이다. 일개 한 가족의 이야기지만 여느 정치 드라마를 능가하는 스케일과 격정적인 이야기 전개가 압권이다. 하얀거탑으로 유명한 작가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일본 최고의 흥행배우 기무라 타쿠야, 왠만한 영화를 뛰어넘는 스케일과 화려한 세트로 화제가 되었었다.

 

 남자가 봐도 멋진 기무라 타쿠야가 멋진 수트를 입고 정열적인 남성상을 연기하는 것이나 상하이 로케를 통한 1960년대를 재현하는 드라마 세트, 그리고 정치드라마를 능가하는 이야기 전개와 상상을 초월하는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세트, 의상 등등. 드라마는 이렇게 매력적인 요소가 곳곳에 존재하지만 드라마를 처음 보는 한국인으로서는 그 모든 우월함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를 좋게 평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2년 전 처음 이 드라마를 보았을 때 나 역시 그랬다. 근친상간과 일부다처가 난무하고, 욕망과 증오가 뒤섞여 인간이 얼마나 잔인하고 차가울 수 있는지를 작정하고 보여주는 듯한 악역들, 그리고 처음부터 시종일관 주인공을 힘들게만 하는 이야기 구조등.. 하지만 그런 것들까지도 봐줄만 했다. 그래도 주인공이 마지막에 웃는 모습 한 장면을 보기위해 그 모든 불편함을 온몸으로 맞으며 기꺼이 함께해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만표 텟페이가 종국에 이르러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선택을 할 때에는 이틀을 꼬박 지새며 몰입하며 보았던 나로서는 허망하고 허탈했고 정말 사랑했던 사람을 잃은 것처럼 어쩔 줄 몰라했고, 끝에 가서는 이렇게 끝내버리는 작가가 밉기까지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참 ‘일본스러운’ 이야기구나. 소제도, 전개도, 결말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1억개의 별’을 보았을 때처럼 주인공은 애초에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의 굴레속에서 너무 잔인할 정도로 치열한 삶을 살지만 끝내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것. ‘참 일본스러운 결말이구나.’ 잔인하리만치 어두운 숙명의 굴레 속에 주인공을 몰아넣고서는 ‘아, 이 얼마나 파란만장한 삶인가?’하고 포장하는 듯한 전개. 괜히 보았나 싶었다.

 

 그렇게 덮어버렸던 이야기인데 어제 문득 만표 텟페이가 생각이 났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버지의 사랑을 얻지 못했고, 그 사랑을 얻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던 사나이. 그리고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존재라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는 듯이 치열한 삶을 살았지만 끝내 자신이 원했던 사랑도, 그가 꾸었던 꿈도 모두 잃어버리고는 헤어나올 수 없는 슬픔과 상실감과 외로움으로 끝내 비극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문득 그의 삶이 지난 한주간 우리모두를 슬프게 했던 한사람의 삶과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선택을 옹호하거나 미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만표 텟페이와 노무현, 두 남자의 ‘마지막 선택’이 아니라 그 비극적이고 어리석은 선택을 하기까지의 치열하고도 파란만장한 삶, 그 삶의 고단함과 어떻게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의 굴레가 주는 좌절감 그리고 마지막 선택에서의 그 외로움을 어루만져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그리고 뉴스를 통해 소식을 들으면서 참 화가나고, 원망스럽기도 했고,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제와서 그런 마음을 먹는 다고 해서 그 마지막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마지막'에 대한 원망보다는 마지막 이전의 외로움과 그들을 슬프게 한 모든것을 이해하기를 바란다. 많은 사람들은 마지막 선택 거기에만 집중하지만 사실 정말 문제의 발단은 그 이전의 삶의 모든 순간에 담겨져 있다. 연쇄살인범이나 묻지마 살인이 나오면 그 마지막 선택에만 집중하고 모두들 이를 악물고 한 사람을 향해 돌을 던진다. 하지만 이 순간 어딘가에서 또 다른 어린 신창원이 모질게 상처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고 있는 이상 한 사람이 돌을 맞고 죽는다고 해서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자살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자살은 죄이기 때문에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기 때문에 그 사람은 잘못되었다고 말한다면 또 다른 자살을 막을 수 없다. ‘참 일본스러운 선택이구나’하고 덮어버렸던 다시 꺼내보기 싫은 그 이야기가 정말 인정하기 싫지만 이 땅에서도 여전히 이어져가고 있고, 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텟페이와 노무현이 홀로 외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텟페이의 이야기는 단순히 한 사람의 또는 한 집안의 이야기가 아니다. 억울하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생산해내는 우리 사회의 이야기이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자살하면 지옥 가는가? 이 질문은 ‘술이 죄인가?’ 또는 ‘이순신이나 세종대왕 같은 의로운 사람들도 예수 믿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에 있는가?’ 라는 질문처럼 크리스쳔에게 주어진 무겁고도 어려운 질문이다. 그 질문 대한 답은 나도 모르겠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풀어야할 숙제이겠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답이나 결론이 아니다. 답이 무엇이든 간에 기독교가 사람들의 슬픔앞에서 무례하지 않았으면 하기를 바란다. 설사 자살하면 지옥간다 하더라도 수십년 고민하고 얻은 결론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기독교가 슬퍼하는 사람들 앞에서 침을 뱉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故 이은주의 죽음 이후 참 많은 연예인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이제는 전직 대통령까지 비극적인 선택을 했다. 그들의 영전에서 그들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사람들 앞에서 기독교가 고작 ‘자살하면 지옥간다’하는 감정 없는 이야기만 되풀이한다면 그들에게 침을 뱉는것과 다를바가 없다. 기독교는 사람들의 슬픔을 위로하고 어루만져줄 수 있어야한다. 물론 자살을 미화한다거나 옹호해서는 안된다. 자살은 어떠한 경우에도 막아야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정죄가 결코 자살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정죄는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미워하게 만든다. 우리는 살아있는 사람들, 남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어루만져야한다. 죽은 이들에게 침을 뱉는 다고해서 결코 남은 사람들을 도덕적 판단으로 이끌지 못한다.

 

 함께 슬퍼해주었으면 좋겠다. 조용히 그리고 으스러지고 상처입은 마음들을 따뜻하게 위로해주었으면 좋겠다. 예수님은 깨끗한 옷을 입은 대제사장 보다 죄 많은 창녀 하나를 더 따뜻하게 위로하셨다. 무엇이 성경의 답인가? 결론이 무엇인가를 따지지말고 예수님처럼 슬픔앞에 애통해하고 사람들을 위로하고 어루만져주는 기독교가 되기를. 교회가 정죄함의 악령을 떨쳐버리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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