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재즈, 재즈 #1

황정호2009.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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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주전 오래된 친구를 불러내서 내 '전 여자친구'에 대한 단점을 열댓 개를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실 때였다.

그 '오래된' 친구 얘기를 조금 하자면

일본어와 영어에 능통한 천재에다가

연애에 있어서도 전문가라고 할만한 그런 녀석이었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꽤 귀여운 마스크를 하고 있던 지라,

학창시절엔 그의 성을 따서 '모염둥이'라는 별명을 얻어

동아리 누나들의 인기를 독차지 했던가 하면,

졸업 후에는 러시아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칠 때

독일어를 가르치던 금발의 늘씬한 러시아인 동료와 동거까지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째서 러시아에서 한국인이 영어를 가르쳐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지금은 부모님께서 원장선생님으로 계시는 학원을 다니며

가르치고 있는 풋풋한 고등학생 여자아이들에게도 이따금 고백을 받곤 하는 부러운 녀석이었다.

하지만, 이건 소설이나 드라마가 아니므로 우리들의 신은 공평하다.

정말이지 공평하게도 이 녀석은 '드워프'인 것이다.

 

 그 '드워프' 천재녀석과 갔던 곳은 홍대에서 유명한 떡볶이 집을 조금 지나면 나오는

(일명 조폭 떡볶이로 불리는데 나도 먹어보진 않았다)

조금 낡은 건물 지하에 있는

'con bar'라는 바였다.

건물 벽 곳곳에 금이 가있고 보수한 흔적은 오히려 흉물스러워 보이는 건물이었다.

뭔가 조용히 대화하기에 좋을 것 같아 선택한 바였다

내려가는 입구부터는 다크 브라운으로 깔끔하게 도색 되어 있었고

벽에는 잘은 모르지만 유명할 것 같은 뮤지션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조명은 조금 어두운 느낌이었고,

작지만 구석구석 괜찮은 스피커가 설치되어 있어서

꽤 괜찮은 음향시설이라고 할 수 있었고,

흘러나오던 곡은 내가 부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팝송인 스테비 원더의 'Lately'였다.

술을 마시고 돌아갈 때까지 올드 팝송이라든가 재즈 등이 흘러나왔는데

딱히 주제 없이 선곡된 '팝송 베스트 100' 따위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들은 바 한 켠의 조그만 테이블에 앉으려 했으나

단체로 우르르 몰려온 사람들 때문에 다이닝 바에 앉았다.

언뜻 보기에도 10명 이상으로 보였는데,

대체 어째서 단체로 이런 소소한 바에 찾아오는지 나로서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유를 아는 분이 있거든 내게 좀 알려주면 사례하겠다)

 

바텐더는 단체 손님의 과일안주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멀리서 봐도 윤기 있는 머리 결을 가진 단발머리 아가씨였는데,

얼핏 보인 옆모습이지만 턱 선이 뚜렷하게 보일 정도로

갸름한 얼굴을 가진 미인형이었다.

'미인형' 바텐더가 주문을 받으러 가까이 왔고,

앞에서 보니 처음 느낌과는 달리 뛰어난 미인은 아니었다.

반면 뭔가 설명할 수 없는 이목구비가 뚜렸하고 조화로운 매력적인 얼굴이었고,

 오히려 미인이라고 생각했을 때보다 내 관심을 빼앗아가기엔 충분했다.

 

'드워프' 친구는 헤네시 한 병을 주문했고,

나는 호가든을 주문했다.

호가든은 평소에 즐겨 마시는 맥주 중에 하나였는데,

그 이유는 설탕이 들어가서 달콤함 에다가 전용 잔에 따라서 먹는 '특별함'이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불행이도 이 맥주를 국내 OB에서 OEM생산 하게 되면서

진짜 오리지널 수입 호가든은 맛볼 수 없게 되고 있다.

물론 아직은 수입물량이 남아 있었고, 다행히 그 바에서 팔고 있던 호가든은

'진짜' 호가든이였던 것이다.

 

"럭.키"

 

호가든을 전용 잔에 2/3정도 따르고 나머지를 따르기 위해

병을 흔들고 있을 때였다.

(호가든은 설탕이 들어가서 침전물을 흔들어 따라줘야 한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의 OST 'calling you'가 나오기 시작했고,

피아노 연주를 타고 보컬 목소리가 조그만 바 안을 가득 매웠다.

 

"너 그 사실 알고 있어?"

음악이 한참 클라이막스에 다다르자,

'드워프'가 턱을 괴고 혼자 재미있다는 듯이 삐쭉 거리며 물었다.

(이 녀석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약간 우쭐대는 성향이 있다)

 

"무슨 사실?"

성격이 급한 나로서는 주어 없는 질문을 답답해서 싫어하지만

딱히 대답 말고는 방법이 없으므로 최대한 빠른 어조로 대답했다.

'드워프'로서는 좀 더 흥미를 유도하고 싶었겠지만

내 성격을 아는 이상 말을 이어가는 수밖에 없다.

 

"지금 나오는 이 곡 말야."

 

"바그다드 카페?"

 

"맞았어. 바로 그거야.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래 제목보다는 영화제목만을 알 뿐이야.

노래 제목은 잘 모른다는 뜻이지.

다른 곡들도 보통 그렇겠지만 이 곡이 특이한 이유는 영화보다 노래가 더 유명하기 때문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래 제목은 알려지지 않은 반면에.."

 

성격 급한 내가 그의 말을 이어갔다.

"반면에 바그다드 카페 영화 OST로 불린다?"

 

"맞았어, 바로 그거야"

 

"동점이군. 하하."

 

'바그다드 카페OST'로 시작한 우리의 대화는

여느 남자끼리 대화의 방향이 그렇든 마침내 '여자'로 화제가 넘어갔고

호가든 두 병을 비우고 그가 주문한 헤네시를 홀짝거리기 시작했을 때쯤

비열하고 구차한 '전' 여자친구 흉보기가 끝났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