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노무현 죽음 당시 수행했던 이병춘 경호과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시절 김세옥 경호실장이 임명해서 (봉하마을) 수행담당으로 결정된 사람이고 사저를 경호하는 경호팀은 총 21명임
2, 5월 23일은 기자들에게 특종감인 권양숙 여사의 소환 일이었는데도 그 주변에 기자들의 흔적이 전혀 없음
3, 진영119센터는 부엉이 바위에서 4.19㎞ 정도 떨어진 곳인 5분거리에 있음
노무현의 행적
05:21분= 컴퓨터에 유서작성 시작
05:26분= 유서 1차 저장
05:44분= 유서 최종 저장- 연합뉴스를 보면 두번째 문장이 파일명으로 저장되어 있더라.
05:45분= 경호동에 `산책간다' 인터폰 연락
05:47분= 사저에서 등산 출발-이 장면은 경호동 폐쇄회로(CC) TV에 찍혔다
이 경호관이 정문에서 대기하다 오전 5시47분 등산 출발.
06:10분쯤= 경찰은 이 경호관의 휴대전화 통화기록 등을 면밀하게 분석한 결과, 부엉이 바위 도착-사저에서 부엉이바위까지 약500m
※사저를 경호하던 의경이 두 사람이 부엉이 바위 위에 서 있는 장면을 목격한 시간도 6시 20분이 아니라 10분~14분경인 이 무렵이라고 경찰은 정정 설명
06:14분= 노 전 대통령은 부엉이바위에서 뒤쪽으로 5m 정도 떨어진 묘지 옆 잔디밭에 앉아 "정토원에 선 법사가 계신지 보고 오지"라고 했고, 이 과장이 "모셔올까요"라고 되묻자 "아니, 그냥 확인만 해보라"고 했다. 이 과장은 바로 정토원으로 뛰어갔다. 이 시간은 6시14분으로 추정된다.
06:17분= 정토원에 갔다가 공양관 앞에 선 법사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왔으나 노무현 실종(※부엉이바위와 정토원과의 왕복거리 약 500m의 산길-45세 이 경호과장)-경찰은 이 14분~17분 사이에 투신추정
◇ 이 경호관이 경사가 있는 247m를 왕복하는 데 불과 3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경찰 조사결과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으나 경찰은 “당시 위해 대상자를 두고 다녀오는 위급한 상황이어서 급하게 다녀오지 않았나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운동으로 단련돼 있는 이 경호관이 상황이 상황인 만큼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06:17분= 실종 확인 즉시 휴대폰 단축키를 이용해 사저 경호동 신 모 경호관에게 “잠깐 대통령 심부름 다녀온 사이 대통령께서 보이지 않는다. 내려오시는가 확인하라”고 연락”하고 주변 수색함
06:17분= 등산하다 정토원 앞에서 100m 떨어진 이정표 전방 10m에서 노 전 대통령이 “힘들다 내려가자”며 부엉이바위 방향으로 가자 이 경호관은 CP(경호동)에 있는 신 모 경호관에게 “하산하신다”고 무전.
06:20분= 부엉이바위에 서 있는 노무현-전경 2명이 부엉이 바위에 노무현과 경호관이 서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중 사저 경비 3초소 이모(21)이경이 '현재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 있다'고 경호상황실에 보고
(故)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회 제공 당시 인근 3초소에 근무하던 전경은 이 과장이 노 전 대통령과 함께 부엉이바위에 온 장면을 목격했다.
전경은 이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느라 잠시 시선을 돌렸다. 노 전 대통령은 바로 이때 투신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어 이 과장이 숲 속으로 노 전 대통령을 찾아다니다 세 차례 부엉이바위에 돌아온 모습을 전경이 목격했다.
06:20분쯤= 등산객 회사원 A씨-부엉이바위 등산로에서 혼자 걷고 있는 경호관으로 보이는 사람을 만났다"고 증언했다고 MBC 9시뉴스가 보도-경찰은 26일 밤 3차 진술을 받는 과정에서 "다가오는 등산객을 다른 곳으로 보낸 후 돌아오니 노 전 대통령이 없었다"는 진술을 받았다.
이 사람과 30여미터를 함께 걸으며 대화를 나눴지만 부엉이바위에 도착해서는 노 전 대통령은 보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A씨는 새벽 5시 50분 숙소를 나서 6시 20분쯤 부엉이바위를 지나다가 경호관으로 보이는 사람을 만났다고 말했다.
무슨 행사가 있느냐고 물으니까 자기(경호관)는 아침 등산 올라왔다고 말했다.
● 인터뷰: 부엉이 바위에서 대통령은 못 보셨어요?
● 인터뷰: 못 봤어요.
● 기자: A씨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경호관은 이미 6시 20분 이전부터 노 전 대통령과 떨어져 있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06:23분= 올라갔던 등산로를 따라 149m떨어진 마애불 위쪽까지 가보는 등 수색 와중에 나물캐는 오모(57.여)씨를 만났고 “등산객 한 명 못봤냐”고 물어봤으나 “아무도 못 봤다”는 말을 듣고 다시 동료 신 경호관에게 전화를 걸어 찾았냐고 물어봄
06:30분= 다시 신 경호관에게 “저수지나 연꽃밭쪽을 찾아봐라”고 연락하고 다시 정토원으로 내려와 선 원장을 만남. 선 원장이 “무슨 일이냐, VIP오셨나”라고 묻자 “아무것도 아닙니다.”고 말함
※ 정토원 선진규(75) 원장은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당일 새벽 경호원이 ’계시냐’며 나를 찾아왔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다음날 오전 7시께 이 경호관은 공중전화기를 이용, 정토원 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경찰에서 대통령을 모시고 정토원에 갔다는 것은 진술했으나 원장님을 봤다는 진술은 빠졌다”면서 “원장님이 이를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 전화드렸다”고 말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이는 노 전 대통령을 찾아 헤매는 자신을 목격한 정토원 원장에게 사건 당일 자신을 본 일이 없다고 말해줄 것을 간접 요청한 것으로, 노 전 대통령과 떨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한 시도로 풀이됐다.
또 이 사찰에서 음식공양을 담당하는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사찰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봤다”고 모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런데 경호관이 정토원 원장을 만나는 사이 노 전 대통령은 혼자 법당 뒷길을 통해 부엉이 바위로 다시 내려가는 것이 목격됐습니다.
◀INT▶ 정옥순/정토원 관계자-"(원장님이) 'VIP(노 전 대통령)하고 같이 왔냐'하니까 자기(경호관) 혼자 왔다고 하더라고요. 경호관이 돌아간 사이 나는 '절대 혼자 왔을 리가 없는데'하고 나가니까 벌써 저 밑으로 내려가시더라고요."
경호관은 급히 뒤따라가 노 전 대통령과 동행합니다................
지금 수사발표결과가 정토원서 내려오면서 놓치고 나서 투신한걸로 나옵니다.
위의 인터뷰 증언을 보면 정토원에서 내려오면서 놓친게 아니라는 결론입니다..
그리고 둘다 정토원서 함께 목격되었으므로 정토원 심부름간사이 투신했다고
제기되는 가능성도 제로가 됩니다
"놓쳤다 보이지 않는다"는 무전을 보낸것은 다른 시점이였다는 증거입니다.
※경찰도 “이 경호관이 조사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과 함께 정토원에 들렀다는 사실만 얘기했을 뿐 구체적인 얘기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지나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경찰은 2차 수사결과 발표 때 노 전 대통령의 시간대별 이동경로를 발표하면서 이 부분은 밝히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이병춘 경호과장과 함께 봉화산으로 올라가 부모 위패가 모셔져 있는 사찰 '정토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정토원에 다다르기 50m 전쯤 노 전 대통령은 "힘들다. 돌아가자"며 정토원에서 200m쯤 아래에 있는 부엉이바위로 경호과장과 함께 내려왔다. 지금까지는 노 전 대통령이 정토원 근처까지 갔다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었다.
정토원에서 내려와 부엉이바위에 도착한 노 전 대통령은 경호과장에게 "담배 있나"고 물었고 "없습니다. 가져올까요"라는 대답이 돌아오자 "됐다"고 말했다. 그리고 "저기 밑에 사람이 지나가네"라는 말을 했다. 이 부분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같다
하지만 이후 노 전 대통령은 바로 투신하지 않고 또 다른 말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경호과장에게 "(정토원에) 선진규 원장이 계신지 가 봐라"고 말했다. 경호과장이 "계시면 모셔올까요" 하니까 노 전 대통령은 "그냥 확인만 해보라"고 말했다. 경호과장은 정토원으로 향했고, 그 사이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했다는 게 경찰이 경호과장 조사를 통해 26일 밝힌 내용이다. 정토원 관계자도 당시 노 전 대통령의 경호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정토원을 방문했다고 26일 말했다.
이 과장은 “(노 전 대통령 지시로 정토원에 다녀온 다음) 등산객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등산객에게 달려가서 ‘대통령이 계시니 다른 곳으로 가시라’고 안내하고 돌아와보니 노 전 대통령이 투신했다”고 했다. 경찰은 이 과장의 진술을 종합한 결과, 노 전 대통령이 이 과장이 곁을 비운 사이 혼자 뛰어내린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6시30분= 천호선 전 홍보수석은 25일 “노 전 대통령과 경호관은 오전 6시25분께 부엉이 바위를 출발해 6시30분께 정토원 입구 공터에 도착했다”며 경호관으로부터 전해 들은 상황을 전했다.(경호관의 증언이라 신빙성이 약하지만 정토원 사람들의 증언과 대비하여 정토원을 갔다왔다는 사항만은 주목할 필요가 있음)
천 전 수석은 “정상 쪽을 향하다 발걸음을 돌려 6시20분께 부엉이 바위에 처음 도착해 5분간 머문 뒤 정토원에 갔다가 바위에 다시 되돌아온 시각이 6시40분이었다”고 덧붙였다.
※MBC는 26일 저녁뉴스에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 당시 경호관의 무전 내용 중에 ‘놓쳤다, 보이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다고 보도하고 노 전 대통령이 경호관과 계속 함께 있었다는 경찰의 발표와 달리 혼자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다
이와 관련해 경찰은 노 전 대통령의 투신 시점을 전후해 이 경호관이 ‘놓쳤다’, ‘보이지 않는다’고 보고한 무전 내용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그와 비슷한 교신 내용이 있는 건 사실이나, 어느 시점과 상황에서 이뤄진 것인지는 좀더 조사를 해봐야 안다”고 말했다.
MBC 뉴스데스크는 26일 복수의 경찰 관계자 말을 인용해 "노 전 대통령이 경호관을 정토원에 떼놓은 채 부엉이바위로 혼자 내려와 뛰어내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이 매체는 "투신하는 모습을 보지 못한 경호관이 여기저기 찾다가 다친 상태의 노 전 대통령을 찾아내 병원에 옮겼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MBC는 이어 수사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당시의 무전교신 내용을 분석한 결과 놓쳤다,보이지가 않는다 등의 내용이 있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06:30분쯤= 박영철(마을주민)-부엉이 바위 아래쪽에서 쿵하는 소리가 두 번 들렸다고 증언
※(최종 증인)-봉하마을 주민인 이모씨(60)와 김모씨(58) 부부는 27일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의 사저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있는 고추밭에서 일하던 중 '툭' '탁' '쿵' 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며 "그때는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무엇이 떨어진지 알 수 없었지만 새벽이라 소리는 굉장히 크게 들렸다"고 당시 상황을 기억했다.
이씨 부부는 사건 발생 당일 오전 5시50분께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한 부엉이 바위에서 100여m 떨어진 곳에 있는 고추밭에서 밭일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김씨는 "남편은 농약을 치고, 나는 김을 매고 있는데 아주 가까운 곳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고 말했다. 남편 이씨는 "두 번 정도 제법 큰 물체가 땅바닥에 부딪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며 "하지만 비명소리는 듣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또 이 신문에 따르면 이씨 부부는 아침 식사를 위해 집으로 돌아가던 중 경호관이 투신한 노 전 대통령을 부둥켜 안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김씨는 "부엉이 바위 밑에서 한 남자가 또 다른 사람을 일으켜 세우려고 하는지 두 손으로 안고 있었다"며 "그때는 그들이 대통령과 경호관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경찰이 이날 3명의 경호관이 부엉이 바위 밑에서 노 전 대통령 수색작업을 했다는 발표와는 다른 대목이다.
이들 부부는 "집에서 나와 밭일을 시작하는 데 걸린 시간이 길게 잡아도 10분 이상 걸리지 않았다"며 노 전 대통령 투신 시점을 '6시10분에서 20분' 이내로 추정했다. 또 경호관이 노 전 대통령을 안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 시간은 6시30분 전이었을 것으로 기억해냈다. 밭일을 끝내고 귀가한 시간이 6시30분 전이었다는 주장이다.
이씨 부부는 또 경호원이 최근 진술에서 노 전 대통령 지시로 정토원에 다녀온 뒤 등산객이 다가오는 것을 봤다고 한 데 대해서도 "밭이 등산로 바로 입구에 있는데, 당시 등산을 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며 의문을 제기했다고 이 한국경제신문은 보도했다.
◇이 부부가 부엉이 바위 밑에서 경호원과 노무현을 목격한 시점 6시30분 전은 이 경호과장이 노무현의 시신을 발견하여 보고한 6시 45분 시점보다 15분이나 빨랐다.
사실 투신자살 시점은 몰라도 노무현을 발견하고 보고한 6시 45분이라는 시점은 거의 정확하다고 볼 때, 이 두부부의 증언이 거짓증언이 아니라고 보면 단순히 그 집 시계가 15분이나 빨랐다고 산정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 쿵 소리를 들었다는 6시 10~20분도 6시 25분~35분 사이로 추정되어 다른 여러 증언들과도 배치되지 않았다.
06:45분= 그렇게 31분 간 노무현을 찾아 헤 메다 마지막으로 부엉이바위에 도착한 이 과장은 '혹시' 하는 불길한 생각에 바위 밑을 보려 했으나 보이지 않자 등산로를 따라 약수터 쪽으로 내려가서 다시 한번 부엉이바위 아래쪽을 살폈다. 이 과장은 경찰 조사에서 "흰옷 같은 것이 보여 바위 밑으로 뛰어갔다가 산 아래쪽을 보고 모로 누워 있는 노 전 대통령을 발견했다"고 진술
곧장 휴대전화 단축키를 이용해 동료에게 전화를 건 시간은 6시45분이었다.
이 경호관은 “노 전 대통령이 의식이 있는지 얼굴을 흔들어보고 맥박을 만져봤지만 이미 맥박이 없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사고가 발생했으니 차를 대라”고 경호동에 연락한 뒤 의식이 있는 지 얼굴을 흔들어보고 목부위 경동맥을 확인한 뒤 오른쪽 어깨에 노 전 대통령을 메고 공터쪽으로 66m를 뛰어내려와 인공호흡을 2차례 함. 경호차량이 도착하자 뒷좌석에 이 경호관이 노 전 대통령을 안고 탑승해 세영병원으로 후송.
06:45분=경찰의 1차발표에 의하면 "수행 경호과장이 사고 직후 무전 등으로 문모 비서관에게 연락했고 문 비서관으로부터 다시 연락받은 박모 비서관이 컴퓨터 바탕화면에서 처음 유서를 발견했다."
◇특이사항=경찰의 추정대로 하면 14분~17분 사이에 투신했고 6시45분에 발견되어 노무현은 적어도 부엉이 바위 밑에 28분 방치된 것이 되지만 들리는 말로는 경찰은 그 장소나 인근에서 피묻은 잠바와 신발 한 짝만 확보하고 혈흔은 거의 확보하지 못함(극소량)
부엉이 바위 위에서부터 아래까지의 중간중간에서 다수의 혈흔을 확보했다지만 단지 몇 방울에 불과하였고 그것도 추락시의 운동성을 감안하면 혈흔의 방향성이 없어 혈흔으로서의 증거능력이 없음
06:45분= 노무현은 20분에 도착했던 부엉이바위에서 20분간 앉아 있다가 6시45분 투신증언-의식불명-무전치고 업고 내려옴
06:47분=(?) 사저 CCTV 분석결과 이 경호관이 긴급히 차량을 요청한 시각
06:50분쯤= 이재우(노무현 마을친구)-사고 직후 사저에서 경호 차량이 급히 빠져 나가는 것을 목격하고 이상한 생각이 들어 권 여사에게 전화함-권여사와 전화통화 내용("5시 돼서 등산 간다고 하기에 나도 같이 갈까요, 하니까 가자고 했답니다. 준비하려고 하니까 사람이 없어서 벌써 나가버렸대요.)라고 대답했다.-조선닷컴은 이미 그 전에, 정보기관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서 '권여사도 동행했다'는 내용을 기사에 담았다.
※한편 노 전 대통령의 50년 친구이자 진영 대창초등학교 1년 후배인 이재우 진영농협조합장(63)은 “권양숙 여사님이 양산 부산대병원에서 링거를 맞고 계실 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더니 권 여사님께서 ‘(등산을) 같이 갈까요’ 했는데 대통령님께서 ‘그럽시다’라고 해서 옷을 입고 준비하는 사이 혼자 집을 나서 버렸다고 하더라”라고 밝혔다.-연합뉴스와의 인터뷰 내용을 기사화
06:56분=(?)경호차량은 9분이나 지난 6시 56분에야 사저를 출발 -봉하마을 KBS 특별취재단 조미령
07:00분=경호차량을 통해 김해 세영병원 도착(손․머리부위 출혈, 의식불명)
도착 당시 이미 의식이 없고 머리에 심한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이 병원 손창배 내과과장 등이 30여 분간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지만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처음진료 당직의사 의문 있음
◇특이사항=노무현을 세영병원의 환자복으로 갈아입힘.
(참작하면 환자진료를 위하여 입은 옷을 칼로 다 조각내어 거의 포기상태인 생명보다 품위를 더 생각하면 그럴 수는 있음-일부 의견으론 환자복으로 갈아입힐 만큼 상태가 좋았다는 설 )
07:12분=봉화마을 사저 경호동은 오전 7시12분에야 청와대에 노 전 대통령 투신 사실을 보고했다.
07:20분=청와대, 사고소식 보고받음.
07:40분=세영병원 관계자가 마산삼성병원(세영에서 15분 거리) 측에 치료 협조를 요청한 것은 확인됐으나 돌연 양산시 부산대학병원(세영에서 40분 거리)으로 방향을 급선회한 것으로 알려짐
07:35분=응급팀이 동승한 앰뷸런스를 타고 노 전 대통령은 양산 부산대병원으로 후송됐다.
손 과장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데다 다급한 상황이라 다른 외상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며 상급병원인 부산대 양산병원으로 후송하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또 당시 상황에 대해 “자세한 사항은 내가 언급할 입장이 아니다”며 말을 아꼈다.
모두가 납득할 명쾌한 답이 필요하다
노무현 의문사 일지
기본 정황과 의문조건
1, 노무현 죽음 당시 수행했던 이병춘 경호과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시절 김세옥 경호실장이 임명해서 (봉하마을) 수행담당으로 결정된 사람이고 사저를 경호하는 경호팀은 총 21명임
2, 5월 23일은 기자들에게 특종감인 권양숙 여사의 소환 일이었는데도 그 주변에 기자들의 흔적이 전혀 없음
3, 진영119센터는 부엉이 바위에서 4.19㎞ 정도 떨어진 곳인 5분거리에 있음
노무현의 행적
05:21분= 컴퓨터에 유서작성 시작
05:26분= 유서 1차 저장
05:44분= 유서 최종 저장- 연합뉴스를 보면 두번째 문장이 파일명으로 저장되어 있더라.
05:45분= 경호동에 `산책간다' 인터폰 연락
05:47분= 사저에서 등산 출발-이 장면은 경호동 폐쇄회로(CC) TV에 찍혔다
이 경호관이 정문에서 대기하다 오전 5시47분 등산 출발.
06:10분쯤= 경찰은 이 경호관의 휴대전화 통화기록 등을 면밀하게 분석한 결과, 부엉이 바위 도착-사저에서 부엉이바위까지 약500m
※사저를 경호하던 의경이 두 사람이 부엉이 바위 위에 서 있는 장면을 목격한 시간도 6시 20분이 아니라 10분~14분경인 이 무렵이라고 경찰은 정정 설명
06:14분= 노 전 대통령은 부엉이바위에서 뒤쪽으로 5m 정도 떨어진 묘지 옆 잔디밭에 앉아 "정토원에 선 법사가 계신지 보고 오지"라고 했고, 이 과장이 "모셔올까요"라고 되묻자 "아니, 그냥 확인만 해보라"고 했다. 이 과장은 바로 정토원으로 뛰어갔다. 이 시간은 6시14분으로 추정된다.
06:17분= 정토원에 갔다가 공양관 앞에 선 법사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왔으나 노무현 실종(※부엉이바위와 정토원과의 왕복거리 약 500m의 산길-45세 이 경호과장)-경찰은 이 14분~17분 사이에 투신추정
◇ 이 경호관이 경사가 있는 247m를 왕복하는 데 불과 3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경찰 조사결과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으나 경찰은 “당시 위해 대상자를 두고 다녀오는 위급한 상황이어서 급하게 다녀오지 않았나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운동으로 단련돼 있는 이 경호관이 상황이 상황인 만큼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06:17분= 실종 확인 즉시 휴대폰 단축키를 이용해 사저 경호동 신 모 경호관에게 “잠깐 대통령 심부름 다녀온 사이 대통령께서 보이지 않는다. 내려오시는가 확인하라”고 연락”하고 주변 수색함
06:17분= 등산하다 정토원 앞에서 100m 떨어진 이정표 전방 10m에서 노 전 대통령이 “힘들다 내려가자”며 부엉이바위 방향으로 가자 이 경호관은 CP(경호동)에 있는 신 모 경호관에게 “하산하신다”고 무전.
06:20분= 부엉이바위에 서 있는 노무현-전경 2명이 부엉이 바위에 노무현과 경호관이 서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중 사저 경비 3초소 이모(21)이경이 '현재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 있다'고 경호상황실에 보고
(故)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회 제공 당시 인근 3초소에 근무하던 전경은 이 과장이 노 전 대통령과 함께 부엉이바위에 온 장면을 목격했다.
전경은 이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느라 잠시 시선을 돌렸다. 노 전 대통령은 바로 이때 투신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어 이 과장이 숲 속으로 노 전 대통령을 찾아다니다 세 차례 부엉이바위에 돌아온 모습을 전경이 목격했다.
06:20분쯤= 등산객 회사원 A씨-부엉이바위 등산로에서 혼자 걷고 있는 경호관으로 보이는 사람을 만났다"고 증언했다고 MBC 9시뉴스가 보도-경찰은 26일 밤 3차 진술을 받는 과정에서 "다가오는 등산객을 다른 곳으로 보낸 후 돌아오니 노 전 대통령이 없었다"는 진술을 받았다.
이 사람과 30여미터를 함께 걸으며 대화를 나눴지만 부엉이바위에 도착해서는 노 전 대통령은 보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A씨는 새벽 5시 50분 숙소를 나서 6시 20분쯤 부엉이바위를 지나다가 경호관으로 보이는 사람을 만났다고 말했다.
무슨 행사가 있느냐고 물으니까 자기(경호관)는 아침 등산 올라왔다고 말했다.
● 인터뷰: 부엉이 바위에서 대통령은 못 보셨어요?
● 인터뷰: 못 봤어요.
● 기자: A씨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경호관은 이미 6시 20분 이전부터 노 전 대통령과 떨어져 있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06:23분= 올라갔던 등산로를 따라 149m떨어진 마애불 위쪽까지 가보는 등 수색 와중에 나물캐는 오모(57.여)씨를 만났고 “등산객 한 명 못봤냐”고 물어봤으나 “아무도 못 봤다”는 말을 듣고 다시 동료 신 경호관에게 전화를 걸어 찾았냐고 물어봄
06:30분= 다시 신 경호관에게 “저수지나 연꽃밭쪽을 찾아봐라”고 연락하고 다시 정토원으로 내려와 선 원장을 만남. 선 원장이 “무슨 일이냐, VIP오셨나”라고 묻자 “아무것도 아닙니다.”고 말함
※ 정토원 선진규(75) 원장은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당일 새벽 경호원이 ’계시냐’며 나를 찾아왔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다음날 오전 7시께 이 경호관은 공중전화기를 이용, 정토원 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경찰에서 대통령을 모시고 정토원에 갔다는 것은 진술했으나 원장님을 봤다는 진술은 빠졌다”면서 “원장님이 이를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 전화드렸다”고 말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이는 노 전 대통령을 찾아 헤매는 자신을 목격한 정토원 원장에게 사건 당일 자신을 본 일이 없다고 말해줄 것을 간접 요청한 것으로, 노 전 대통령과 떨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한 시도로 풀이됐다.
또 이 사찰에서 음식공양을 담당하는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사찰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봤다”고 모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런데 경호관이 정토원 원장을 만나는 사이 노 전 대통령은 혼자 법당 뒷길을 통해 부엉이 바위로 다시 내려가는 것이 목격됐습니다.
◀INT▶ 정옥순/정토원 관계자-"(원장님이) 'VIP(노 전 대통령)하고 같이 왔냐'하니까 자기(경호관) 혼자 왔다고 하더라고요. 경호관이 돌아간 사이 나는 '절대 혼자 왔을 리가 없는데'하고 나가니까 벌써 저 밑으로 내려가시더라고요."
경호관은 급히 뒤따라가 노 전 대통령과 동행합니다................
지금 수사발표결과가 정토원서 내려오면서 놓치고 나서 투신한걸로 나옵니다.
위의 인터뷰 증언을 보면 정토원에서 내려오면서 놓친게 아니라는 결론입니다..
그리고 둘다 정토원서 함께 목격되었으므로 정토원 심부름간사이 투신했다고
제기되는 가능성도 제로가 됩니다
"놓쳤다 보이지 않는다"는 무전을 보낸것은 다른 시점이였다는 증거입니다.
※경찰도 “이 경호관이 조사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과 함께 정토원에 들렀다는 사실만 얘기했을 뿐 구체적인 얘기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지나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경찰은 2차 수사결과 발표 때 노 전 대통령의 시간대별 이동경로를 발표하면서 이 부분은 밝히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이병춘 경호과장과 함께 봉화산으로 올라가 부모 위패가 모셔져 있는 사찰 '정토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정토원에 다다르기 50m 전쯤 노 전 대통령은 "힘들다. 돌아가자"며 정토원에서 200m쯤 아래에 있는 부엉이바위로 경호과장과 함께 내려왔다. 지금까지는 노 전 대통령이 정토원 근처까지 갔다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었다.
정토원에서 내려와 부엉이바위에 도착한 노 전 대통령은 경호과장에게 "담배 있나"고 물었고 "없습니다. 가져올까요"라는 대답이 돌아오자 "됐다"고 말했다. 그리고 "저기 밑에 사람이 지나가네"라는 말을 했다. 이 부분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같다
하지만 이후 노 전 대통령은 바로 투신하지 않고 또 다른 말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경호과장에게 "(정토원에) 선진규 원장이 계신지 가 봐라"고 말했다. 경호과장이 "계시면 모셔올까요" 하니까 노 전 대통령은 "그냥 확인만 해보라"고 말했다. 경호과장은 정토원으로 향했고, 그 사이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했다는 게 경찰이 경호과장 조사를 통해 26일 밝힌 내용이다. 정토원 관계자도 당시 노 전 대통령의 경호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정토원을 방문했다고 26일 말했다.
이 과장은 “(노 전 대통령 지시로 정토원에 다녀온 다음) 등산객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등산객에게 달려가서 ‘대통령이 계시니 다른 곳으로 가시라’고 안내하고 돌아와보니 노 전 대통령이 투신했다”고 했다. 경찰은 이 과장의 진술을 종합한 결과, 노 전 대통령이 이 과장이 곁을 비운 사이 혼자 뛰어내린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6시30분= 천호선 전 홍보수석은 25일 “노 전 대통령과 경호관은 오전 6시25분께 부엉이 바위를 출발해 6시30분께 정토원 입구 공터에 도착했다”며 경호관으로부터 전해 들은 상황을 전했다.(경호관의 증언이라 신빙성이 약하지만 정토원 사람들의 증언과 대비하여 정토원을 갔다왔다는 사항만은 주목할 필요가 있음)
천 전 수석은 “정상 쪽을 향하다 발걸음을 돌려 6시20분께 부엉이 바위에 처음 도착해 5분간 머문 뒤 정토원에 갔다가 바위에 다시 되돌아온 시각이 6시40분이었다”고 덧붙였다.
※MBC는 26일 저녁뉴스에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 당시 경호관의 무전 내용 중에 ‘놓쳤다, 보이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다고 보도하고 노 전 대통령이 경호관과 계속 함께 있었다는 경찰의 발표와 달리 혼자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다
이와 관련해 경찰은 노 전 대통령의 투신 시점을 전후해 이 경호관이 ‘놓쳤다’, ‘보이지 않는다’고 보고한 무전 내용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그와 비슷한 교신 내용이 있는 건 사실이나, 어느 시점과 상황에서 이뤄진 것인지는 좀더 조사를 해봐야 안다”고 말했다.
MBC 뉴스데스크는 26일 복수의 경찰 관계자 말을 인용해 "노 전 대통령이 경호관을 정토원에 떼놓은 채 부엉이바위로 혼자 내려와 뛰어내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이 매체는 "투신하는 모습을 보지 못한 경호관이 여기저기 찾다가 다친 상태의 노 전 대통령을 찾아내 병원에 옮겼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MBC는 이어 수사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당시의 무전교신 내용을 분석한 결과 놓쳤다,보이지가 않는다 등의 내용이 있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06:30분쯤= 박영철(마을주민)-부엉이 바위 아래쪽에서 쿵하는 소리가 두 번 들렸다고 증언
※(최종 증인)-봉하마을 주민인 이모씨(60)와 김모씨(58) 부부는 27일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의 사저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있는 고추밭에서 일하던 중 '툭' '탁' '쿵' 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며 "그때는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무엇이 떨어진지 알 수 없었지만 새벽이라 소리는 굉장히 크게 들렸다"고 당시 상황을 기억했다.
이씨 부부는 사건 발생 당일 오전 5시50분께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한 부엉이 바위에서 100여m 떨어진 곳에 있는 고추밭에서 밭일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김씨는 "남편은 농약을 치고, 나는 김을 매고 있는데 아주 가까운 곳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고 말했다. 남편 이씨는 "두 번 정도 제법 큰 물체가 땅바닥에 부딪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며 "하지만 비명소리는 듣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또 이 신문에 따르면 이씨 부부는 아침 식사를 위해 집으로 돌아가던 중 경호관이 투신한 노 전 대통령을 부둥켜 안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김씨는 "부엉이 바위 밑에서 한 남자가 또 다른 사람을 일으켜 세우려고 하는지 두 손으로 안고 있었다"며 "그때는 그들이 대통령과 경호관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경찰이 이날 3명의 경호관이 부엉이 바위 밑에서 노 전 대통령 수색작업을 했다는 발표와는 다른 대목이다.
이들 부부는 "집에서 나와 밭일을 시작하는 데 걸린 시간이 길게 잡아도 10분 이상 걸리지 않았다"며 노 전 대통령 투신 시점을 '6시10분에서 20분' 이내로 추정했다. 또 경호관이 노 전 대통령을 안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 시간은 6시30분 전이었을 것으로 기억해냈다. 밭일을 끝내고 귀가한 시간이 6시30분 전이었다는 주장이다.
이씨 부부는 또 경호원이 최근 진술에서 노 전 대통령 지시로 정토원에 다녀온 뒤 등산객이 다가오는 것을 봤다고 한 데 대해서도 "밭이 등산로 바로 입구에 있는데, 당시 등산을 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며 의문을 제기했다고 이 한국경제신문은 보도했다.
◇이 부부가 부엉이 바위 밑에서 경호원과 노무현을 목격한 시점 6시30분 전은 이 경호과장이 노무현의 시신을 발견하여 보고한 6시 45분 시점보다 15분이나 빨랐다.
사실 투신자살 시점은 몰라도 노무현을 발견하고 보고한 6시 45분이라는 시점은 거의 정확하다고 볼 때, 이 두부부의 증언이 거짓증언이 아니라고 보면 단순히 그 집 시계가 15분이나 빨랐다고 산정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 쿵 소리를 들었다는 6시 10~20분도 6시 25분~35분 사이로 추정되어 다른 여러 증언들과도 배치되지 않았다.
06:45분= 그렇게 31분 간 노무현을 찾아 헤 메다 마지막으로 부엉이바위에 도착한 이 과장은 '혹시' 하는 불길한 생각에 바위 밑을 보려 했으나 보이지 않자 등산로를 따라 약수터 쪽으로 내려가서 다시 한번 부엉이바위 아래쪽을 살폈다. 이 과장은 경찰 조사에서 "흰옷 같은 것이 보여 바위 밑으로 뛰어갔다가 산 아래쪽을 보고 모로 누워 있는 노 전 대통령을 발견했다"고 진술
곧장 휴대전화 단축키를 이용해 동료에게 전화를 건 시간은 6시45분이었다.
이 경호관은 “노 전 대통령이 의식이 있는지 얼굴을 흔들어보고 맥박을 만져봤지만 이미 맥박이 없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사고가 발생했으니 차를 대라”고 경호동에 연락한 뒤 의식이 있는 지 얼굴을 흔들어보고 목부위 경동맥을 확인한 뒤 오른쪽 어깨에 노 전 대통령을 메고 공터쪽으로 66m를 뛰어내려와 인공호흡을 2차례 함. 경호차량이 도착하자 뒷좌석에 이 경호관이 노 전 대통령을 안고 탑승해 세영병원으로 후송.
06:45분=경찰의 1차발표에 의하면 "수행 경호과장이 사고 직후 무전 등으로 문모 비서관에게 연락했고 문 비서관으로부터 다시 연락받은 박모 비서관이 컴퓨터 바탕화면에서 처음 유서를 발견했다."
◇특이사항=경찰의 추정대로 하면 14분~17분 사이에 투신했고 6시45분에 발견되어 노무현은 적어도 부엉이 바위 밑에 28분 방치된 것이 되지만 들리는 말로는 경찰은 그 장소나 인근에서 피묻은 잠바와 신발 한 짝만 확보하고 혈흔은 거의 확보하지 못함(극소량)
부엉이 바위 위에서부터 아래까지의 중간중간에서 다수의 혈흔을 확보했다지만 단지 몇 방울에 불과하였고 그것도 추락시의 운동성을 감안하면 혈흔의 방향성이 없어 혈흔으로서의 증거능력이 없음
06:45분= 노무현은 20분에 도착했던 부엉이바위에서 20분간 앉아 있다가 6시45분 투신증언-의식불명-무전치고 업고 내려옴
06:47분=(?) 사저 CCTV 분석결과 이 경호관이 긴급히 차량을 요청한 시각
06:50분쯤= 이재우(노무현 마을친구)-사고 직후 사저에서 경호 차량이 급히 빠져 나가는 것을 목격하고 이상한 생각이 들어 권 여사에게 전화함-권여사와 전화통화 내용("5시 돼서 등산 간다고 하기에 나도 같이 갈까요, 하니까 가자고 했답니다. 준비하려고 하니까 사람이 없어서 벌써 나가버렸대요.)라고 대답했다.-조선닷컴은 이미 그 전에, 정보기관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서 '권여사도 동행했다'는 내용을 기사에 담았다.
※한편 노 전 대통령의 50년 친구이자 진영 대창초등학교 1년 후배인 이재우 진영농협조합장(63)은 “권양숙 여사님이 양산 부산대병원에서 링거를 맞고 계실 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더니 권 여사님께서 ‘(등산을) 같이 갈까요’ 했는데 대통령님께서 ‘그럽시다’라고 해서 옷을 입고 준비하는 사이 혼자 집을 나서 버렸다고 하더라”라고 밝혔다.-연합뉴스와의 인터뷰 내용을 기사화
06:56분=(?)경호차량은 9분이나 지난 6시 56분에야 사저를 출발 -봉하마을 KBS 특별취재단 조미령
07:00분=경호차량을 통해 김해 세영병원 도착(손․머리부위 출혈, 의식불명)
도착 당시 이미 의식이 없고 머리에 심한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이 병원 손창배 내과과장 등이 30여 분간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지만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처음진료 당직의사 의문 있음
◇특이사항=노무현을 세영병원의 환자복으로 갈아입힘.
(참작하면 환자진료를 위하여 입은 옷을 칼로 다 조각내어 거의 포기상태인 생명보다 품위를 더 생각하면 그럴 수는 있음-일부 의견으론 환자복으로 갈아입힐 만큼 상태가 좋았다는 설 )
07:12분=봉화마을 사저 경호동은 오전 7시12분에야 청와대에 노 전 대통령 투신 사실을 보고했다.
07:20분=청와대, 사고소식 보고받음.
07:40분=세영병원 관계자가 마산삼성병원(세영에서 15분 거리) 측에 치료 협조를 요청한 것은 확인됐으나 돌연 양산시 부산대학병원(세영에서 40분 거리)으로 방향을 급선회한 것으로 알려짐
07:35분=응급팀이 동승한 앰뷸런스를 타고 노 전 대통령은 양산 부산대병원으로 후송됐다.
손 과장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데다 다급한 상황이라 다른 외상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며 상급병원인 부산대 양산병원으로 후송하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또 당시 상황에 대해 “자세한 사항은 내가 언급할 입장이 아니다”며 말을 아꼈다.
08:13분쯤=노 전 대통령이 김해 세영병원 환자복을 입고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 도착
구급차에는 세영병원 내과 과장과 경호원 등 관계자 3~4명이 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