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테이를 소개합니다

유종현2009.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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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테이를 소개합니다


호테이

♦ 이름: 布袋寅泰 도모야스 호테이
♦ 국적: 일본,군마현
♦ 생년월일: 1962년 2월1일
♦ 혈액형: B형
♦ 프로덕션: IRc2코퍼레이션
♦ 레코드사: 도시바 EMI
♦ 수상경력: 1992년 앨범 "GUITARHYTHM Ⅲ"일본 레코드대상 우수앨범상 수상 외...

 

 


♦ 웹에서 발췌한 글(6년쯤전 작성된글로추정):


80년대 일본을 대표하는 전설적인 록밴드 BOØWY의 기타리스트로서 활약한 호테이 토모야스... 우리에게는 생소한 인물이지만 일본에서는 실력 있는 기타리스트로서도 이름이 높다.
강렬한 인상과 뛰어난 기타연주, 카리스마적인 무대 매너로 인기가 높다.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 최근 발매한 베스트 앨범 'GREATEST HITS 1990-1999'가 플라넷 차트 앨범부문에 1위에 랭크되어 그에 대한 일본인들의 변함없는 사랑과 추억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지난 81년 히무로 쿄스케와 함께 BOØWY를 결성, 82년 < 모럴 >로 데뷔하면서 주목받기 시작, 히무로 쿄스케와 함께 록을 메이저음악으로 평가받는데 일조했다.
그러나 88년 도쿄돔 콘서트를 끝으로 그룹을 해산하고, 89년 4월 킷카와 고지와 COMPLEX를 결성하기도 했다. 88년 BOØWY의 해산이후 같은해 'GUITARHYTHM' 발매로 본격적인 솔로활동에 나섰다.
그룹 BOØWY시절 현재 솔로로 활동중인 히무로 쿄스케와 함께 호테이 토모야스는 정열적인 라이브, 화려한 복장과 반항적인 머리 스타일, 그리고 사회 비판적인 가사로 인기를 얻었다.
특히 사회비판적인 가사로 일본에서도 드문 '앨범 판매 중지'까지 당한 적도 있다.
단순하지만 경쾌하게 반복되는 리듬, 드럼과 호테이 토모야스의 빼어난 기타 연주 솜씨, 매력적인 보이스 칼라의 히무로 쿄스케, 듣는 순간 전혀 낯설지 않은, 80년대 음악이라고는 느낄 수 없는 음악성으로 들으면 들을수록 자꾸 빨려 들어가는 매력을 풍겼다.
솔로로 전향해서도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그는 95년 솔로 싱글 < POISON >이 대히트한후 이어서 발표한 베스트앨범 GUITARHYTHMFOREVER Vol.1,2'가 오리콘에 첫등장 1위. 2위에 랭크되었다.
96년에는 영국 글램록의 대명사인 데이비드 보위의 일본투어에서 게스트로 공연에 참가하였다. 또한 애틀란타 올림픽 폐회식 스테이지의 기타 퍼포먼스로도 유명하다.
99년 6월에는 발라드의 여왕이라는 닉네임을 갖고 있는 인기 여자 가수 이마이 미키와 결혼을 발표하기도 했다.
98년에는 88년 해체된 밴드 BOØWY의 곡들을 모아 'THIS BOØWY' 라는 베스트 앨범을 발표, 상반기에만 140만장이라는 높은 판매고를 올리기도 했다.
최근 싱글 와 를 연속으로 발표하며 팬들의 변함없는 지지를 얻고 있는 상황에서 발표한 베스트앨범 'GREATEST HITS 1990-1999'는 이번주 플라넷앨범차트 1위로 올라서며 호평을 받고 있다.
90년의 솔로 데뷔 싱글로부터 최신곡까지를 총망라한 90년대의 그의 음악을 되돌아볼 수 있는 앨범으로 금주 유럽에서의 첫 해외공연을 마친 후 8월 15일부터는 전국 투어도 시작한다.

♦ 다음은 작년 호테이의 첫 공식 한국 라이센스 음반인 일렉트릭 사무라이의 북클릿에 수록된 자신의 글.


미시마 유키오의 [젊은 사무라이를 위하여] 라는 열정적인 에세이 중에서 [NOBLE SAVAGE/고귀한 야만인]이라는 표현을 보았다.
이 말은 평소에 내가 '이렇게 살고 싶다'라고 생각하고 있던 느낌, 그 자체를 잘 표현해주는 말이다.
고귀하다는 것과 야만스럽다는 것은 정반대의 뜻을 지니고 있지만, 이 두 가지 정신의 한 가운데에 남자로서 살아가는 것의 진정한 의미가 숨겨져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내가 음악가로써, 또 기타리스트로써, 독특하며 유일무이한 '균형감각'이며, 20년 넘는 나의 경력은 항상 팝과 아방가르드의 시행착오 과정이었다. 진심과 농담이 뒤섞인, 언뜻 보면 싸구려로 비칠 수도 있는 한계점에서 관객들을 농락해 왔던 나이기에, 평론가들이 인기순위를 노린 상업적 락 음악이라고 폄하하는 것은 자업자득임과 동시에 사실 내가 예기하고 의도하던 바인 것이다.
음악을 연주할 때에, 누군가에게 전달하고 싶다는 마음과, 아무도 진정하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식의 청개구리 같은 기분이 언제나 나에겐 공존하고 있다.
실제로 나의 음악적 배경은 상당히 특이한 것으로, 마크 볼란(Marc Bolan) 같은 옷을 입고, 레이 파커(Ray Parker Jr.)의 커팅 스타일로 크라프트워크(kraftwerk)에 가입하고 싶다고 진정으로 원했던 17살 시절. 기타를 갖게 되었지만 당시에 다들 따라하던 DEEP PURPLE이나 LED ZEPPELIN을 따라 하기 보다는, 저먼 프로그레시브(German Progressive),샹송(Chanson), 데이빗 보위(David Bowie)와 빌리 할리데이(Billy Holiday), 엘비스(Elvis Presley)와 모리코네(Ennio Moricone), 마일스(Miles Davis), 카사기 시즈코(Kasagi Shizuko)를 동일선상에 놓고 들었었고, 그 후의 PUNK Movement에 관해서도 세상에서 가장 지적인 음악으로 해석했었으며 누구와 음악론을 논하더라도 결코 열을 올린 적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상당히 삐딱한 음악 팬이었다.
BOØWY라는 밴드도 그 성공담만을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은 결성했을 당시부터 음악이나, 이미지에 있어서 아슬아슬한 선을 의도적으로 노렸던 밴드였고, 나중에 일세를 풍미하게 되었을 때에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왜 그런 음악을 하지?"라고 묻는다면, "아무도 하지 않으니까"라고 대답하는 순간에 최고의 기쁨을 느끼지 않는 다면, 진정한 아티스트라고 부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유일무이 한 것, 그것이 전부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 밖에 없다면, 나는 그저 별종일 따름일 것이다.
나의 균형감각을 이루고 있는 또 하나의 측면은, 내가 꿈을 좆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나의 서재에는 커다란 지구본이 있다.
그리고 손끝으로 지구본을 돌리는 것이 나의 취미이다.
일본, 특히 동경이라는 도시는 틀림없이 세계에서도 굴지의 '메트로폴리스'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코스모폴리탄' 으로서의 의식이 희박한 고립된 인종이다.
비록 아시아지역에 있어서는 우리들이 No.1임을 믿어 의심치 않지만, 유럽,미국에 대해서는 지금도 강한 동경을 느낀다. 패션, 음악, 미술, 문학 등등.... 스스로 오리지널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콤플렉스 때문인지 '빌보드1위'라는 말에 엄청 약하고, 영국의 신인 밴드는 데뷔하기도 전에 팬클럽이 형성된다.
내가 기타를 치기 시작했을 때부터, 에릭 클립튼(Eric Clapton)은 '신'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신'은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다는 겸손함의 이면에는 유럽,미국 지상주의가 깊게 뿌리내리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팝 같은 일본음악은 멋있고, 아시아의 음악은 가짜라고 믿는 것이 진정 '쿨'한 것인가? 휴가철에 하와이로 놀러가는 사람이 많은 이유 중에, '하와이는 바다를 건너도 일본이니까' 라는 안도감이 분명 존재하는 것 같다.
우리들은 그렇게까지 모험심이 없는, 보수적인 인종이었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지구본을 돌리면, 몸 속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른다.
그 옛날에 7대양을 누비던 남자들의 전설이나, 새가 되고 싶다는 일념으로 하늘을 날았던 남자들의 이야기. 예전에 대담을 하던 중에 "모험이 바로 인생이다"라고 말하던 리처드 브랜슨(Richard Branson)의 눈동자를 보고 강렬한 질투를 느꼈던 내 자신을 나는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수줍어 하고 있어봐야 아무 소용없으니, 고백하겠다.
세계를 무대로 기타를 치는 것이 나의 [꿈]이다.
그[꿈]은 프로 뮤지션으로 데뷔한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나를 지탱하고 질타하며 또 때로는 미래로 이끌어주고 있다.
이번에 이러한 형태로 세계를 향해서 작품을 발표하게 되어, 또 다시 새로운 문이 열렸다는 실감과, 내 인생이 변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으로 가슴이 설렌다. 어떤 결과를 바라는 건 아니다.
세계에서 기타를 칠 수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할 것이다.
밴드로 공연을 했을 때 관객석이 텅텅 비었던 시절, 거리에서 티켓을 팔던 나는 스스로를 창피하게 생각하기 보다는 자랑스러웠다.
왜냐하면 우리들 스스로 절대적인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10대 때와 같은 앞 뒤 없이 무식한 파워는 잃었을 지 모르지만, 내 음악(기타)을 믿는 마음은 절정에 이르렀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작품에서 [사무라이] 라는 말을 썼던 이유 중에 '칼'과 '기타'의 정신적 유사성을 들 수 있다.
내 칼은 기타이며, 미시마 유키오가 썼던 [NOBLE SAVAGE/고귀한 야만인]이라는 이미지가 지금까지도 서양인들 속에 자리잡고 있다면 오히려 한층 더, 동양의 Rock 'n Roll 정신을 칼끝에 붙어넣어서 그 들에게 들이댐으로써, 조용한 선전포고로 삼고 싶다.
불온한 말투이지만, 나는 진심으로 [꿈] 을 이루려 하고 있는 것이다.
- TOMOYASU HOTEI

♦ 공식 홈페이지: www.hote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