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노무현 前 대통령의 러브 스토리

강혜선2009.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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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노무현 前 대통령의 러브 스토리

"결혼은 둘이 함께 기와집을 지어가는 과정입니다."

 

'알면서도 딴청부리는 그녀, 딱 제 타입이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경남 진영의 한 마을에서 같이 자랐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마음에 두었던 그녀를 제대 후 고시공부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책을 빌려주고 받는 평범한 사이였다가 나중에는 읽은 책에 대해 얘기를 나눌 정도로 발전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향한 내 마음을 알고 있었지만, 시침을 뚝 떼고 딴청을 부리다가 근 1년이 다 되어서야 마음을 열었습니다. 저는 예나 지금이나 지적이고 자존심 강한 여성을 좋아했는데, 아내는 그런 저의 이상형에 딱 맞는 사람입니다.

 

고상한 문학 소녀가 나의 주인이 되어버린 사연. 하지만 동전의 앞뒷면처럼 모든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이상형과의 결혼생활.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더군요. 나는 아내가 문학을 좋아하는 고상하고 품위있는(?) 여성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속았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나의 주인이 되어버렸고, 그런 그녀의 모습은 결혼 전 내가 마음 졸이며 사모하던 처녀 양숙 씨가 아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내가 제일 무서워했던 훈육주임 선생님을 닮았다고나 할까...

 

'늦 여름 밤하늘의 은하수는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그래도 우린 소박하지만 남들이 흔히 갖기 어려운 아름다운 추억을 갖고  있습니다. 몇 킬로나 되는 둑길을 걸으면서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늦여름 밤하늘의 은하수는 유난히도 아름다웠고, 논길을 걷노라면 벼이삭에 맺힌 이슬이 달빛에 반사되어 들판 가득히 은구슬을 뿌려 놓은 것 같았습니다. 동화 속 세상같은 그 속에서 아내는 곧잘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당시 나는 동네 앞 들판 건너 산기슭 토담집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여름이 끝나가던 무렵 덮고 잘 담요를 집에서 갖고 나왔습니다. 그 때 양숙 씨를 만나 그 둑길을 어김없이 함께 걸었는데, 그 모습을 누가 보았던지 "무현이랑 양숙이랑 담요를 갖고 다니며 연애한다"는 소문이 퍼져 변명 한 마디 못하고 망신을 당했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2년 가까이 커피값 한 푼 안 들이고 순전히 맨입으로 연애를 했지만, 누구보다도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시절이었습니다. 아내에게 이런저런 구박(?)을 받다보면 아내가 마귀할멈처럼 미워지다가도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며 흐뭇해집니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가치관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가 결혼할 때 양가의 반대가 심한 편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던 때라 처가에서는 장래가 불투명하다는 이유였고, 저희 쪽에서는 시험 합격을 자신하고 있어서 더 좋은 조건의 혼처를 구할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결혼은 이상이 아닌 현실이기 때문에 조건을 안 따질래야 안따질 수가 없습니다. 저는 성격과 가치관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부는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생각이나 사고방식이 다르다면 결혼생활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왕자와 공주가 되기 전에 신하와 시녀가 되자. 가끔 결혼식 주례를 설 때마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너무 큰 기와집을 짓지 마십시오. 그렇다고 불안해하지도 마십시오. 30년 쯤 인생을 더 산 선배로서 내게 결혼이 뭐냐고 묻는다면 그냥 '신비'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결혼은 쉽게 말해 둘이 함께 기와집을 지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일을 하다 보면 상대방이 내 입맛대로 될 것이라 기대하게 마련입니다. 남자의 경우는 '내가 왕자가 되고 상대는 시녀가 될 것'을, 여자는 반대로 '내가 공주가 되고 상대가 하인이 될 것'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왕자고 또 한 사람은 공주라면 그 집에는 시녀도, 하인도 없습니다.

 

왕자도, 공주도 아닌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해줄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혹시 상대를 시녀나 하인으로 착각해서는 절대 안 될 것입니다. 바꿀 것이 있다면 상대가 아니라 내가 바꿔야한다는 자세를 가진다면 행복한 결혼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인생을 끝없이 개척하고 도전해 온 사람입니다. 고졸 학력으로 독학 끝에 사법고시에 합격했고, 국회의원이 된 후에는 정치풍토 개선을 위해 여러 역품에 도전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래도 결혼을 포함한 내 인생의 7할은 운명인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결혼에서는 운명적인 요소가 가장 큰 것 같습니다. 젊은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언제나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며, 그래도 뜻대로 안되는 것이 있다면 담담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