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아. 아빠는 지금 강원도 어느 시골 마을에 와 있다.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아저씨 집이야. 일 때문에 왔지만 "날씨가 죽이기 때문"이라는 핑계로 둘이 술만 먹고 있다. 아빠는 즐겁다. 갈수록 사람들은 빠르고 돈으로 계산 할 수 있는 시간만 좋아한다. 그러나 아빠는 이런 아무것도 아닌 시간, 느리고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시간이 참 좋다. 술을 먹다 단이가 생각났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말하는 단이 얼굴을 떠올리며 혼자 웃었다. 아빠는 그럴 때 담담한 체하지만 속으로는 아주 많이 기쁘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자기 생각'을 '옳은 생각' 처 럼 말하는 버릇이 있다. 그럴 때, 아빠는 단이가 아빠의 잘못을 들추어 내길, 그래서 아빠가 잘못을 인정하길 기대하곤 한다. 기대는 점점 더 잘 이루어 지고 있다. 이오덕 할아버지를 기억하니? 아빠가 누구보다 좋아했던 분이지. 아빠는 그분을 돌아가시기 5년전쯤부터 사귀었다. 할아버지는 워낙 훌륭하게 사셨기에 그 뜻을 따르는 이들이 참 많았다. 그분이 아빠 글을 읽고 연락을 해오자 아빠도 한 달음에 만나러 갔다. 그분을 사귀면서 많은 걸 배웠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분은 당신을 존경한다고 말하는 수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 지만 너무나 외로워하셨다. 아빠는 그분의 외로움이 그분의 올바른 삶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았다. 단아, 올바르게 산다는게 뭘까? 아빠 생각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는 삶'이다. 사람들은 지난 올바름은 알아보지만 지금 올바른 건 잘 알아 보지 못한다. 그래서 가장 올바른 삶은 언제나 가장 외롭다. 그 외로움만 이 세상을 조금씩 낫게 만든다. 어느 시대나 어느 곳에서나 늘 그렇다. 단이는 남을 배려 하는 마음이 많으니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아빠 보다 더 많은 거다. 하지만 단이의 거침없는 성품과 행동이 단이를 외롭게 만들 지도 모르겠다. 아빠는 단이가 외롭길 바라지 않지마 단이가 올바르게 산다면 단이는 어쩔 수 없이 외로울 거다. 단이가 외로울 거라 생각하면 아빠는 마음이 아프다. 외로움은 어디에서 오든 고통스럽기 때문이야. 단이 가 외롭고 고통스러울 때 이 편지를 기억하면 좋겠다. 아빠는 아빠 책 머리말에 이렇게 적었었다. "그러나 내 딸 김단이 제 아비가 쓴 글을 읽고 토론을 요구해 올 순간을 기다리는 일만으로도 얼마 나 행복한가." 아빠는 정말 그 순간을 기다린다. 지금은 아니지만 머지 않아 단이도 술을 좋아하게 될 거다. 내 딸아, 너의 외로움을 사랑한다. - 김규향
딸에게 보내는 편지
단아. 아빠는 지금 강원도 어느 시골 마을에 와 있다.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아저씨 집이야. 일 때문에 왔지만 "날씨가 죽이기 때문"이라는
핑계로 둘이 술만 먹고 있다. 아빠는 즐겁다. 갈수록 사람들은 빠르고 돈으로
계산 할 수 있는 시간만 좋아한다. 그러나 아빠는 이런 아무것도 아닌
시간, 느리고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시간이 참 좋다.
술을 먹다 단이가 생각났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말하는 단이 얼굴을 떠올리며 혼자 웃었다. 아빠는 그럴 때 담담한 체하지만
속으로는 아주 많이 기쁘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자기 생각'을 '옳은 생각' 처
럼 말하는 버릇이 있다. 그럴 때, 아빠는 단이가 아빠의 잘못을 들추어 내길,
그래서 아빠가 잘못을 인정하길 기대하곤 한다. 기대는 점점 더 잘 이루어
지고 있다.
이오덕 할아버지를 기억하니? 아빠가 누구보다 좋아했던 분이지. 아빠는 그분을
돌아가시기 5년전쯤부터 사귀었다. 할아버지는 워낙 훌륭하게 사셨기에 그
뜻을 따르는 이들이 참 많았다. 그분이 아빠 글을 읽고 연락을 해오자 아빠도 한
달음에 만나러 갔다. 그분을 사귀면서 많은 걸 배웠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분은 당신을 존경한다고 말하는 수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
지만 너무나 외로워하셨다.
아빠는 그분의 외로움이 그분의 올바른 삶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았다. 단아,
올바르게 산다는게 뭘까? 아빠 생각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는 삶'이다. 사람들은 지난 올바름은 알아보지만 지금 올바른 건 잘 알아
보지 못한다. 그래서 가장 올바른 삶은 언제나 가장 외롭다. 그 외로움만
이 세상을 조금씩 낫게 만든다. 어느 시대나 어느 곳에서나 늘 그렇다.
단이는 남을 배려 하는 마음이 많으니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아빠 보다 더
많은 거다. 하지만 단이의 거침없는 성품과 행동이 단이를 외롭게 만들
지도 모르겠다. 아빠는 단이가 외롭길 바라지 않지마 단이가 올바르게
산다면 단이는 어쩔 수 없이 외로울 거다. 단이가 외로울 거라 생각하면
아빠는 마음이 아프다. 외로움은 어디에서 오든 고통스럽기 때문이야. 단이
가 외롭고 고통스러울 때 이 편지를 기억하면 좋겠다.
아빠는 아빠 책 머리말에 이렇게 적었었다. "그러나 내 딸 김단이
제 아비가 쓴 글을 읽고 토론을 요구해 올 순간을 기다리는 일만으로도 얼마
나 행복한가." 아빠는 정말 그 순간을 기다린다. 지금은 아니지만 머지
않아 단이도 술을 좋아하게 될 거다. 내 딸아, 너의 외로움을 사랑한다.
- 김규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