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완전하지 않다. 그러한 인간이 '완전한' 척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는데, 그 곳은 '정의가 실현된다.' 는 법원이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자. 인간 스스로가 만든 법으로 사회 정의를 실현시킬 수 있을까? 또한 인간은 그 법을 토대로한 재판에서,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고 사회 정의를 실현시킬 수 있을까? 그렇다면 죄인과 의인은 어떤 기준에 근거하여 결정되는 것일까? 이 영화는 143분동안 민주사회의 최고의 자랑인 재판에 대해서 비교적 객관적인 상황설정을 들어, 보는 이들에게 위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왜 하지도 않은 일을 인정해야 하는 거죠?" "정말 안했어요?" "당신도 마찬가지군." 아침에 회사면접을 보기 위해 만원 전철을 탄 가네코 텟페이는 옷이 전철문에 끼어서 빼내려고 하다가, 여중생 치한범으로 몰리게 된다. 경찰과 당번 변호사는 텟페이에게 혐의를 인정하고 자백하면 벌금형으로 취하하여 불구속 입건처리를 할 수 있다고 권유하지만 텟페이는 거절한다. 경찰의 부당한 취조와 유도 심문에도 결백을 주장한 텟페이는 결국 기소되고 형사 재판을 받게 된다. "형사 재판의 최대의 사명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진실을 규명하는 것?" "공평하게 판단하는 것?" "공평성?" "최대의 사명은.. 죄가 없는 사람을 벌하지 않는 것입니다." 형사 재판에서 유죄를 받을 확률은 99.9%이고 무죄를 받을 확률은 0.1% 라는 통설이 있는 가운데, 텟페이는 0.1%의 가능성을 믿고 재판에 계속 임한다. 그러나 재판이 계속될수록 무죄를 입증할 명확한 증거가 없자, 텟페이는 점점 불리해지고 객관적으로 사건을 처리하려 한 판사마저 다른 판사로 교체된다. 그러던 중에 주변사람들과 어머니의 도움으로 사건 당일, 텟페이가 치한이 아니라고 증언했던 여성이 나타나게 된다. "재판은 진실을 밝히는 곳이 아니다. 재판은 피고인이 유죄인가 무죄인가를 모아들인 증거를 가지고 임의로 판단하는 장소와 같다." 어떤 이에게는 이 영화가 지루한 법정영화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민주사회가 가지는 문제점을 심도있게 표현했다. 그리고 실제로 이러한 일들은 우리 사회에서 비일비재하다. 돈과 권력 앞에서 무죄가 유죄가 되어버리는 것은 이젠 일도 아니다. 사람들은 실정법과 자연법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개인을 바라본다. 그리고 재판을 통해 법을 위반한 자들을 엄중하게 문책하고 유죄시 그에 따른 처벌을 내린다. 그러나 오판의 여지는 늘 있고, 불완전한 인간의 행동과 심리는 법과 논리로 정의될 수 없는 영역에 있다.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민주주의를 너무 싫어했다. 그들은 민주주의의 치명적인 문제로 신분을 막론하고 누구나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것과 다수결의 원칙으로 법이 제정된다면, 사회정의는 절대적인 것이 아닌 상대적인 것으로 돌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 라는 말을 남기고 민주주의자들에게 죽임을 당했고, 그것을 지켜본 플라톤은 철인정치를 주장했다. 근래에 우리 사회를 보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말한 민주주의 문제점들이 되새겨진다. 수많은 사람들의 피로써 민주주의를 이룩한 이 나라의 오늘은, 정의를 당당하게 외치는 사람이 없고 정의를 실천하려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만인에게 자유란 제한되었고 평등은 사라졌으며, 오직 돈과 명예와 권력만이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등에 업고 가증스러운 일을 벌이고 있다. '장자연 리스트'와 '신영철 대법관 사건', '노무현 前 대통령의 서거' 등이 그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이후의 글은 감정이 컨트롤이 안돼서 쓸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나는 이 리뷰의 마지막을 노무현 前 대통령의 13대 초선 국회의원 당시 첫 국회발언으로 마무리 지으려 한다. 지금으로써는 이 말이 가장 나의 마음을 대변해준다. "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먹는 거, 입는 거, 이런 걱정 좀 안 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좀 신명나는 그런 세상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만일 이런 세상이 좀 지나친 욕심이라면, 적어도 살기가 힘이 들어서 아니면, 분하고 서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런 일이 좀 없는 세상, 이런 것이라 하겠습니다." 수오 마사유키 감독은 실화를 근거로, 지루하지만 의미있고 기억에 남을만한 법정영화를 만들었다. 무고한 치한범으로 열연한 카세 료는 섬세한 심리묘사와 감정연기로 단번에 나를 영화로 몰입시켰다. <스윙걸즈>의 코히나타 후미요는 극중 배역에 충실한 연기로 나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EMBED src=http://api.v.daum.net/static/recombox2.swf?nid=3353519 width=400 height=58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bgcolor="#ffffff" quality="high">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재판은 진실을 밝히는 곳이 아니다.
인간은 완전하지 않다.
그러한 인간이 '완전한' 척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는데, 그 곳은 '정의가 실현된다.' 는 법원이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자.
인간 스스로가 만든 법으로 사회 정의를 실현시킬 수 있을까?
또한 인간은 그 법을 토대로한 재판에서,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고 사회 정의를 실현시킬 수 있을까?
그렇다면 죄인과 의인은 어떤 기준에 근거하여 결정되는 것일까?
이 영화는 143분동안 민주사회의 최고의 자랑인 재판에 대해서 비교적 객관적인 상황설정을 들어, 보는 이들에게 위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왜 하지도 않은 일을 인정해야 하는 거죠?"
"정말 안했어요?"
"당신도 마찬가지군."
아침에 회사면접을 보기 위해 만원 전철을 탄 가네코 텟페이는 옷이 전철문에 끼어서 빼내려고 하다가, 여중생 치한범으로 몰리게 된다.
경찰과 당번 변호사는 텟페이에게 혐의를 인정하고 자백하면 벌금형으로 취하하여 불구속 입건처리를 할 수 있다고 권유하지만 텟페이는 거절한다.
경찰의 부당한 취조와 유도 심문에도 결백을 주장한 텟페이는 결국 기소되고 형사 재판을 받게 된다.
"형사 재판의 최대의 사명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진실을 규명하는 것?"
"공평하게 판단하는 것?"
"공평성?"
"최대의 사명은.. 죄가 없는 사람을 벌하지 않는 것입니다."
형사 재판에서 유죄를 받을 확률은 99.9%이고 무죄를 받을 확률은 0.1% 라는 통설이 있는 가운데, 텟페이는 0.1%의 가능성을 믿고 재판에 계속 임한다.
그러나 재판이 계속될수록 무죄를 입증할 명확한 증거가 없자, 텟페이는 점점 불리해지고 객관적으로 사건을 처리하려 한 판사마저 다른 판사로 교체된다.
그러던 중에 주변사람들과 어머니의 도움으로 사건 당일, 텟페이가 치한이 아니라고 증언했던 여성이 나타나게 된다.
"재판은 진실을 밝히는 곳이 아니다. 재판은 피고인이 유죄인가 무죄인가를 모아들인 증거를 가지고 임의로 판단하는 장소와 같다."
어떤 이에게는 이 영화가 지루한 법정영화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민주사회가 가지는 문제점을 심도있게 표현했다.
그리고 실제로 이러한 일들은 우리 사회에서 비일비재하다.
돈과 권력 앞에서 무죄가 유죄가 되어버리는 것은 이젠 일도 아니다.
사람들은 실정법과 자연법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개인을 바라본다.
그리고 재판을 통해 법을 위반한 자들을 엄중하게 문책하고 유죄시 그에 따른 처벌을 내린다.
그러나 오판의 여지는 늘 있고, 불완전한 인간의 행동과 심리는 법과 논리로 정의될 수 없는 영역에 있다.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민주주의를 너무 싫어했다.
그들은 민주주의의 치명적인 문제로 신분을 막론하고 누구나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것과 다수결의 원칙으로 법이 제정된다면,
사회정의는 절대적인 것이 아닌 상대적인 것으로 돌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 라는 말을 남기고 민주주의자들에게 죽임을 당했고, 그것을 지켜본 플라톤은 철인정치를 주장했다.
근래에 우리 사회를 보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말한 민주주의 문제점들이 되새겨진다.
수많은 사람들의 피로써 민주주의를 이룩한 이 나라의 오늘은, 정의를 당당하게 외치는 사람이 없고 정의를 실천하려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만인에게 자유란 제한되었고 평등은 사라졌으며, 오직 돈과 명예와 권력만이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등에 업고 가증스러운 일을 벌이고 있다.
'장자연 리스트'와 '신영철 대법관 사건', '노무현 前 대통령의 서거' 등이 그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이후의 글은 감정이 컨트롤이 안돼서 쓸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나는 이 리뷰의 마지막을 노무현 前 대통령의 13대 초선 국회의원 당시 첫 국회발언으로 마무리 지으려 한다.
지금으로써는 이 말이 가장 나의 마음을 대변해준다.
"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먹는 거, 입는 거, 이런 걱정 좀 안 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좀 신명나는 그런 세상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만일 이런 세상이 좀 지나친 욕심이라면, 적어도 살기가 힘이 들어서 아니면,
분하고 서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런 일이 좀 없는 세상,
이런 것이라 하겠습니다."
수오 마사유키 감독은 실화를 근거로, 지루하지만 의미있고 기억에 남을만한 법정영화를 만들었다.
무고한 치한범으로 열연한 카세 료는 섬세한 심리묘사와 감정연기로 단번에 나를 영화로 몰입시켰다.
<스윙걸즈>의 코히나타 후미요는 극중 배역에 충실한 연기로 나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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