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원점 철학과 사상 모든 분쟁의 씨앗:행복

조한준2009.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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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사람은 왜 사는가?

A: 태어났기 때문에 살아야 한다.

 

Q: 어떻게 살아야 하는건가?

A: 행복하게 살아야 좋은 것 아니겠는가

 

Q: 행복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A: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해지기 위해

소유를 원한다.

무소유와 소유의 관념은 여기서 비롯 되는 것이다.

 

좋은 집의 소유, 좋은 차의 소유, 좋은 옷의 소유

좋은 학벌의 소유 등등...

 

사람들은 행복해지기 위해 소유하길 원한다.

 

예를 들어보자

 

만약에 이 지구상의 아담과 하와처럼

 

남녀와 단둘이 있다고 한다면

 

어떨까?

 

좋은 집이 필요한 것인가? 좋은 학벌이 필요한 것인가?

 

기타등등의 모든 것들의 소유욕은 사라질 수 밖에 없다.

 

더 한 가지 예를 들자면

 

당신은 좋은 시계를 샀다.

 

그리고 차고 당긴다.

 

아무도 그 사실을 몰라준다면

 

어떤 사람들은 빈정이 상하고

 

어떤 사람들은 직접 자기가 말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묵묵히 누군가 알아주길 기대하다가

 

잊어버린다.

 

사람들은 사회 공동체에서 누군가

 

알아주길 원하고 인정받길 원한다.

 

곧 행복은 소유에서 소유의 소유욕은

사회 공동체가 존재함으로

비롯 된다.

 

Q: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무엇인가?

A: 1살짜리 아기는 아무것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라나게 되는 건 모든 인간의 기본적인

 

특징일 것이다.

 

처음 부터 부모님의 배경이 따라줘야한다.

 

부모님이 재벌가 라면

 

당신은 객관적인 행복의 기준에

 

첫번째를 갖추게 된다.

 

두번째는 자신의 지적 지능과 외모이다.

 

똑똑한 사람일 수록 삶을 슬기롭게 살 수 있다.

 

또한 외모가 183cm 67kg 이라면 더할나이 없고

 

몸매와 얼굴의 이목구비 비율도 받쳐준다면 부러울 것이 없다.

 

여자라면 165cm의 45kg의 몸무게를 지니고

 

역시 얼굴의 이목구비 비율과 몸매도 받쳐준다면

 

더할 나이 없는 행복의 두번째 객관적 기준에 합당한 자격을

 

갖춘 것이다.

 

기타 부수적인 학벌및 여러가지는 

 

위에 말한 첫번째와 두번째에서

 

모두 비롯된다.

 

그러나 행복의 기준의 객관적 

 

최종 도달점은 돈(Money) 이다.

 

요즘은

 

돈이 있으면 안되는 것이 거의 없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돈으로 우정, 사랑, 인맥 등등 많은 것을 살 수 있는게

 

현실이다.

 

Q: 그렇다면 행복하게 사는 것은 너무 힘든 것 아닌가?

꼭 그렇게 살아야 행복한 삶인가?

 

A: 아니다. 주관적 사상으로 행복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주변에 자신이 소유 하고 있는 것을 잊는다.

 

고아로 태어난 사람들을 돌아보자.

 

혹은 신체부자유자나 정신 이상으로 태어난 사람들을 돌아보자.

 

얼마나 감사한가?

 

일반 평범한 사람들은 이것을 잊고 지낸다.

 

부모도 없는 그런 사람들을 돌아보는 경우가 드물다.

 

주관적으로 보았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의 기준에 합당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다.

 

또한 삼성 이건희 회장의 딸을 보자.

 

남들이 보기엔 정말 부러울 것 없는 그 여자는 무엇 때문에

 

자살 하였는가?

 

사랑 때문에 자살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솔로지만

 

자신의 이성친구나 배우자가 있고

 

부모님과 가족들에게까지 같은 가족으로 치부되어지고

 

인정되어지는 것 또한 아주 행복한 삶의 주관적 부분이다.

 

주관적으로 자신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행복해질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객관적 사실에만 집중하기에

 

주관적으로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주변의 더 객관적으로

 

불행해 보이는 사람들을 돌아보지 않기에 불행해진다.

 

"엄친아" "엄친딸" 이런 용어의 발생은 그것에서 돌아본다.

 

아들들은 부모에게 다른 부모의 아들들과 비교당하고

 

딸들은 부모에게 다른 부모의 딸들과 비교당하지만

 

정작 자식 없는 부모들은 돌아보지 못하기에

 

이런 용어의 난발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가 될 사람들은 불행해지고

 

자식들도 또 그 부모의 사고방식을 물려 받는다.

 

하나하나 다 따지고

 

뒤를 돌아보면 누구하나 행복하지 않을 사람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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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렇다면 가장 행복한 인생의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행복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가?

 

A: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평생의 "배우자" "동반자" 를 잘 만나는 것을 뽑을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또한 동성친구는 친구일 뿐이고 삶을 살아가는데

 

하나님이 아담에게 하와를 만들어 주셨듯이...

 

모든 사람에겐 평생 같이 살 가족

 

즉 현재는 남이지만 자신의 평생 가족이 될

 

짝이 필요한 것이다.

 

그 짝을 잘 만난다면 행복의 기준의 거의 99%는

 

충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신은 혼자서 살아갈 힘이 없을 때

 

힘이 되어주고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자신의 짝이여야 하는 것이다.

 

그럴려면 서로의 대한 존중과 사랑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부분 행복의 객관적 기준인 소유욕과 인정받고 싶은

 

심리 덕분에

 

행복해지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고 어려움을 겪는다.

 

키 150cm 얼굴은 못생기고 마음씨만 착하고 성격이 객관적기준에

 

아주 좋은 남자가 있다고 쳐보자.

 

그런 남자가 다른 여성과 결혼하기는 힘든 것이다.

 

또한 몸무게 150kg의 거구의 여성이 있다고 쳐보자

 

그런 여자가 다른 남성과 결혼하기는 힘들다.

 

사람은 눈이 있기에 축복이며 또한 저주이다.

 

눈으로 사고하고 판단하기에

 

사람들은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좋은 짝을 찾기 시작한다.

 

정작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서로의 대한 외모가 아닌 사랑인데

 

외모와 성격 및 각종 다양한 세상의 객관적 기준으로

 

행복해지길 거부하는 것이다.

 

그것이 눈을 가진 자의 저주인 것이다.

 

어떤 여성이건 어떤 남성이건

 

행복해지기위해선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야

 

행복해질 수 있다.

 

허나 사람들은

 

자신의 관념과 세상의 눈에 빗대어

 

행복해지기보단 불행해지기 마련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