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신문기자 변천사

알자알자 캠페인2009.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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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영화’는 각기 활자와 영상을 대표하는 아주 다른 매체지만, 114년의 영화사(映畵史)를 통틀어 신문은 빠질 수 없는 영화의 소재였다. 영화는 중요한 사건이 발생했음을 표현할 때마다 바삐 움직이는 윤전기와 빙글빙글 돌아가는 신문 1면의 제목을 삽입 화면으로 즐겨 사용했다. 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오슨 웰스의 ‘시민 케인’(1941)에서도 주인공은 신문업 종사자였다.

 

‘거대 권력에 혈혈단신으로 맞선 주인공’이 곧잘 등장하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주인공의 직업이 신문기자인 예는 많았다. 그들은 로맨스물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어느 날 밤에 생긴 일’(1934)의 클라크 게이블과 ‘로마의 휴일’(1953)의 그레고리 펙, ‘화양연화’(2000)의 량차오웨이가 신문기자였다. ‘수퍼맨’(1978)에서는 아예 지구를 지키는 초인(超人)의 평상시 직업이 신문기자였다. 편집기자(copy editor)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25살의 키스’(1999)도 있었다.

 

하지만 수첩 하나 달랑 들고서 밤 늦게까지 외로이 사건 현장을 헤집고, 산더미같은 자료 더미 속에서 데스크의 호령에 시달리며, 피 말리는 마감시간과의 전쟁을 치르며 땀방울을 닦아내는 이 직업 특유의 박진감(迫眞感)이 조금이나마 묻어 나오는 영화는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다. 역대 ‘신문기자 영화’들에는 변화하는 신문의 모습이 그대로 묻어나기도 한다.

 

 

◆1970년대세상이 바뀌어도 타자기를 친다

 

영화 속 신문기자 변천사

 

앨런 파큘러 감독의 ‘대통령의 음모(All the President’s Men·1976)’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추적해 세계적인 특종을 남긴 워싱턴포스트의 신참 기자 밥 우드워드(로버트 레드포드)와 칼 번스타인(더스틴 호프먼)의 실화를 다룬 영화다. 처음부터 끝까지 기자 본연의 취재업무에만 집중하고 잔가지를 모두 쳐 버린 이 영화는 ‘탐사보도 영화의 전범(典範)’이라 할 만하다.

 

두 기자가 권력의 음모를 파헤치기 위해 택한 취재방식은 대단히 고전적이다. 취재원의 사무실에 무작정 찾아가 문전박대를 당하고, 문서를 입수하기 위해 동료의 헤어진 연인까지 동원하며, ‘딥 스로트’라 알려진 내부고발자와의 접선을 은밀히 시도한다. 그들이 자료를 찾기 위해 산더미같은 문서철을 일일이 뒤지는 장면을 촬영한 도서관에서의 부감(俯瞰) 쇼트는 묵묵히 정도(正道)를 걷는 기자 본연의 모습이 무엇인지 웅변한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라스트신이다. 대통령 취임 중계방송이 나오는 TV 한쪽에서 기자들은 쉴 새 없이 타자기를 치고 있다. “타닥, 탁, 탁.” 타자기 소리와 함께 닉슨의 사임을 알리는 자막이 뜨고 영화는 끝난다. 다른 할리우드 영화와는 달리, 권력이 무너졌어도 승자의 환호는 주인공들의 몫이 아니었다. 다음 날이면 또 다시 어김없이 닥치는 취재와 기사 작성, 그리고 마감시간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1980년대참혹한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영화 속 신문기자 변천사

 

영화 속 기자들은 총탄이 날아다니는 지극히 위험한 현장을 끝까지 지키기도 했다. 역시 실화를 바탕으로 한 롤랑 조페 감독의 ‘킬링 필드’(The Killing Field·1984)에는 뉴욕타임스의 캄보디아 특파원인 시드니 셴버그(샘 워터스톤)와 현지 채용 기자 디스 프란(행 응고르)이 등장한다.

 

크메르 루주가 프놈펜을 장악하기 직전 활동하기 시작한 이들은 가족을 탈출시킨 뒤 현장을 떠나지 않고 취재하다가 붙잡힌다. 셴버그는 풀려나지만 프란은 지옥 같은 수용소 생활을 겪은 뒤 가까스로 탈출해 백골로 뒤덮인 ‘죽음의 들판’을 지난다.

 

꼭 전속(專屬) 기자가 아니더라도, 사진기자의 땀 냄새 역시 영화에서 진하게 풍겨났다. 실화를 상당 부분 각색한 올리버 스톤 감독의 ‘살바도르’(Salvador·1985)는 특종을 노리고 엘살바도르 내전 현장에 뛰어든 사진기자 리처드 보일(제임스 우즈)이 주인공이다. 그는 동료가 전투 현장에서 폭격을 맞아 죽기 직전 촬영한 필름을 지니고 탈출하다가 국경 검문소에서 체포된다.

 

검문소 요원이 필름을 잡아 빼 햇빛에 노출시키며 웃는 장면은 기자들에게는 악몽과도 같은순간인데, 나중에 그 필름은 위장용이었음이 밝혀진다. “(2차대전 때 종군기자인) 로버트 카파가 퓰리처상을 받은 것은 그가 항상 죽음의 현장에 가깝게 갔기 때문”이라는 인상적인 대사가 나온다.

 

 

◆1990년대컴퓨터와 특종경쟁 사이에서

 

영화 속 신문기자 변천사

 

이제 상당 부분 무게를 뺀 채 희화화된 신문기자의 모습이 영화에 등장한다. 찰스 샤이어 감독의 ‘아이 러브 트러블’(I Love Trouble·1994)에서는 컴퓨터 시대를 맞아 변화하는 신문기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데, ‘시카고 크로니클’의 고참 칼럼니스트(닉 놀테)는 PC로 옛날 써 놓은 자기 글들을 검색해 표절하다가 들통이 난다.

 

판매 부수를 늘리기 위한 신문들 사이의 치열한 경쟁도 묘사된다. 경쟁지 ‘시카고 글로브’는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신참 여기자(줄리아 로버츠)를 띄우는 버스 광고까지 만든다. 두 사람은 함께 사건을 조사하기로 ‘당꼬’(담합을 뜻하는 언론사 은어)한 뒤에도 서로 속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이 결혼한 뒤 신혼여행지에서 사건을 목격하자 포옹한 자세에서 취재수첩을 꺼내는 극단적인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이렇듯 코믹한 분위기 속에서도 영화 속 기자들은 본분을 잊지 않는데, 론 하워드 감독의 ‘페이퍼’(The Paper·1994)에서도 이 분위기는 잘 드러난다. 뉴욕 타블로이드 신문의 사회부장쯤 되는 주인공(마이클 키튼)은 지독한 특종 경쟁에 시달린다. 모처럼 부모를 만나 저녁식사를 하면서도 기사 걱정에 매달리는가 하면 “난 우리 신문 안 봐”라는 동료 기자의 말에 황당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살인범으로 몰려 체포된 흑인 소년들에 대해 집요하게 취재한 결과 ‘그들은 무고하다’는 단서를 얻어내자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결국 “오늘 맞는 기사만 쓰면 된다”며 기사 게재를 반대하는 편집국장(글렌 클로즈)과 윤전기 앞에서 몸싸움을 벌이는 악전고투 끝에 다음날 신문 1면에 그 기사를 싣는다.

 

 

◆2000년대인터넷 시대에도 진실은 존재한다

 

영화 속 신문기자 변천사

 

케빈 맥도날드 감독의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State of Play·2009)에는 인터넷과 블로그가 위세를 떨치는 시대에 종이신문이 처한 위기감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워싱턴 글로브’지가 수익을 내는 곳은 디지털 사업 쪽이고, 촉망받는 신참 기자(레이첼 맥아덤즈)는 애당초 온라인 쪽으로 입사했다. 옛 취재 방식을 고수하는 주인공(러셀 크로)의 행색은 초췌하고 그의 자동차와 아파트는 후줄근하다.

 

주인공은 폼만 잔뜩 잡거나 사건의 선정적인 부분에만 주목하는 숱한 온라인 기사들을 ‘양아치’쯤으로 여기고, ‘기사 품격보다 발행부수를 중시하는’ 새 경영진에 반발한다. 후배 기자에게 결코 친절하게 대하는 법이 없는 반면 경찰을 눙치고 정보를 빼 내는 방법은 체질화돼 있다. 그런 ‘빵 부스러기를 쫓아가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그는 마침내 진실과 대면한다.

 

“자넨 생각만큼 대단한 존재가 아니야”라는 상대방의 말에 주인공은 마감 시간도 잊은 채 신문의 미래와 관련된 무척 중요한 대사를 힘줘 말한다. “왜? 이젠 신문 읽는 사람이 없어서? 그래도 난 믿어. 독자들은 진실과 쓰레기를 구별한다는 걸!”

 

영화는 그 ‘진실’이 인쇄 공정을 거쳐 새벽 거리로 운송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데, 여기서 영화를 관람한 기자들은 이런 말들을 쏟아내기도 했다. “사진설명도 출고 안 하고 퇴근하나?" “도꾸다니(‘특종’을 뜻하는 언론사 은어) 분량이 3~4매밖에 안 되는 것 같은데?” “저 회사는 도대체 마감이 몇 시야?” “어떻게 전화만 걸면 정보가 나올 수가 있지?” “1면 메인사진은 대충 자료사진으로 때우나?”

 

 

출처 - 조선일보 유석재 기자 블로그 blog.chosun.com/deam/3992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