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발광체가 아니라 반사체이므로 우리가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존재양식이 바뀐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편 1편은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는데..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6절) 이 부분에서 주목할 것은 여호와께서 "의인"을 인정하시나 "악인"은 망하리로다라고 쓰여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의인의 길"이라고 쓰여진 것은 그 길 위에 있는 자가 의인이라는 의미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말씀도 같은 의미인데..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 말은 그리스도 "밖"에 있으면 새 것이 아니란 뜻이겠지요. 그래서 선 줄로 생각하는 자가 넘어질 수 있고 구원받았던 자도 버림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고전10:11-12) 시편 1:1은 악인의 길, 악인이 되는 자리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walk in the counseel of the wicked, stand in the way of sinners, sit in the seat of mockers." 이 자리에 있는 자들, 곧 악인들은 타작 마당에서 키를 들고 계시는 분, 곧 예수님에 의해 알곡으로부터 가려지는 겨와 같은데 주께서는 바람(시련)을 통해 알곡과 겨를 가려내십니다. (마3:11-12) 이 자리에 있는 자들은 바람에 날릴 수 밖에 없는데 이는 첫째,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이며 둘째, 그 결과 바람을 이길 믿음을 갖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단이 베드로를 밀 까부르듯 하겠다고 요구했을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믿음이 없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셨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눅22:31-32) 주께서 허락하시는 바람을 이길 수 있는 것은 "믿음"밖에 없습니다. 참된 믿음이 없으면 다 날려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의인의 회중에 남아있을 수 없고 심판대에서도 벌을 받고 쫓겨나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 그리고 그 위에 세워지는 믿음. 그것이 알곡이 알곡일 수 있는 이유입니다. 의인의 길, 즉 의인이 되는 자리에 대해서는 2-3절에서 말해주고 있는데 시내로 형상화 되어 있는 영이요 생명이신 주의 말씀에 항상 붙어있는 자리입니다. "in the law of the LORD, planted by streams of water"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요6:63) 이 자리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진리가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계속 흘러나옵니다. 그래서 온전한 믿음이 확고하게 자라나 때를 따라 열매를 맺고 생명력이 시들지 않으며 하는 일마다 형통합니다. 하는 일마다 하나님의 뜻과 합치되기 때문이지요.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요일5:14) 오늘 내가 서있는 자리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 자리가 나의 존재를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회개란 잘못된 자리에서 바른 자리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바른 자리, 곧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분의 임재 가운데 앉고 서고 걸어가는 그 자리에 우리 자신을 위치시킵시다. 그래서 바른 자리에 있다는 증거, 즉 때를 따라 열매를 맺고, 잎사귀가 시들지 않고 하는 일마다 형통하는 은혜를 모두 다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6월9일
우리는 발광체가 아니라 반사체이므로
우리가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존재양식이 바뀐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편 1편은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는데..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6절)
이 부분에서 주목할 것은
여호와께서 "의인"을 인정하시나 "악인"은 망하리로다라고
쓰여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의인의 길"이라고 쓰여진 것은
그 길 위에 있는 자가 의인이라는 의미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말씀도 같은 의미인데..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 말은 그리스도 "밖"에 있으면 새 것이 아니란 뜻이겠지요.
그래서 선 줄로 생각하는 자가 넘어질 수 있고
구원받았던 자도 버림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고전10:11-12)
시편 1:1은 악인의 길,
악인이 되는 자리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walk in the counseel of the wicked,
stand in the way of sinners,
sit in the seat of mockers."
이 자리에 있는 자들, 곧 악인들은
타작 마당에서 키를 들고 계시는 분, 곧 예수님에 의해
알곡으로부터 가려지는 겨와 같은데
주께서는 바람(시련)을 통해 알곡과 겨를 가려내십니다.
(마3:11-12)
이 자리에 있는 자들은 바람에 날릴 수 밖에 없는데
이는 첫째,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이며
둘째, 그 결과 바람을 이길 믿음을 갖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단이 베드로를 밀 까부르듯 하겠다고 요구했을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믿음이 없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셨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눅22:31-32)
주께서 허락하시는 바람을 이길 수 있는 것은
"믿음"밖에 없습니다.
참된 믿음이 없으면 다 날려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의인의 회중에 남아있을 수 없고
심판대에서도 벌을 받고 쫓겨나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
그리고 그 위에 세워지는 믿음.
그것이 알곡이 알곡일 수 있는 이유입니다.
의인의 길,
즉 의인이 되는 자리에 대해서는
2-3절에서 말해주고 있는데
시내로 형상화 되어 있는
영이요 생명이신 주의 말씀에 항상 붙어있는 자리입니다.
"in the law of the LORD,
planted by streams of water"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요6:63)
이 자리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진리가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계속 흘러나옵니다.
그래서 온전한 믿음이 확고하게 자라나
때를 따라 열매를 맺고 생명력이 시들지 않으며
하는 일마다 형통합니다.
하는 일마다 하나님의 뜻과 합치되기 때문이지요.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요일5:14)
오늘 내가 서있는 자리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 자리가 나의 존재를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회개란
잘못된 자리에서 바른 자리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바른 자리,
곧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분의 임재 가운데 앉고 서고 걸어가는 그 자리에
우리 자신을 위치시킵시다.
그래서
바른 자리에 있다는 증거,
즉 때를 따라 열매를 맺고, 잎사귀가 시들지 않고
하는 일마다 형통하는 은혜를
모두 다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