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페르시아전쟁 페르시아의 그리스계 영토였던 이오니아계 도시국가들이 BC500년경에 반란을 일으킵니다.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는 이를 계속하여 정벌하고, BC492년 트라키아지방을 목적으로 함대를 보내지만 아토스곳에서 패합니다. 전쟁에서는 졌지만, 페르시아는 트라키아 편입은 성공함으로써 목적은 달성합니다. 역사학자들에 따라 이를 1차원정으로 포함하는 사람도 있고, 마라톤에서의 아테네의 승리로 끝난 전쟁을 1차로 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는 이를 1차원정이라 부르겠습니다. 2차 페르시아전쟁 2차원정은 BC 490년 다리우스왕이 아테네 북동쪽에 있는 도시국가들을 정벌하고 마라톤평야에 까지 2만5천~3만의 병력을 이끌고 처들어 옵니다. BC491년경에 대립중이던 스파르타와 아테네 는 이미 페르시아의 침략에 공동대응하기로 협약을 맺었었기에 아테네는 스파르타에 지원을 요청하지만 스파르타는 종교행사를 이유로 파병을 지체합니다. 하는수없이 아테네는 자신들만의 병력 1만으로 페르시아군에 맞섭니다. 아테네군은 페르시아군에 거의 피해없이 대승을 거두고 다리우스는 본국으로 후퇴합니다. 3차 페르시아전쟁 10년뒤 다리우스의 뒤를 이어 집권한 크세르크세스는 군사물자와 병력을 징집해 대규모로 그리스를 침공해 옵니다. 크세르크세스는 그리스로 가기위해 다르다넬스에 배로 다리를 연결하는데 폭풍으로 모두 침몰해버립니다.(영화에서는 레오디다스 앞에서 폭풍으로 함대가 침몰하는 장면을 보여주는데 이일화를 서술한 장면같습니다.) 이에 격분한 크세르크세스는 에게해(海)를 채찍질을 합니다.(.....화풀이를 바다에게 ;;;) 페르시아는 포기하지않고 아토스곶에 운하를 판뒤 대규모로 그리스를 침공합니다. 이 전쟁중에 한 전쟁이 영화 300의 배경이 되는 테르모필레 전투 입니다. 스파르타 테르모필레 전투전에 먼저 스파르타라는 도시국가에 대해서 알아야될것 같습니다. 스파르타는 그리스 도시국가중에서도 가장강한 전투종족입니다. 드래곤볼의 샤이아인들이라 할까요^^;;; 스파르타는 아테네와 대립해온 도시국가입니다. 스파르타의 구성은 특이하게 몇프로 되지않는 스파르타인들이 90%가까이 대는 헬로트(노예)를 지배하는 나라입니다. 모든 농사등은 노예들이 지으면 스파르타인은 오직 군인으로서 이들을 착취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강한자들만이 살아남으로써 어릴때부터 강한 애국심과 철저하게 전투위주의 군인으로서 훈련받고 자라납니다. 또한 반란의 기미가 보이는 노예는 밤에 모두 암살해버림으로써 노예제를 유지해 갑니다. 스파르타는 여성들이 무시받던 그리스의 다른국가들과 달리 여성들도 병역의 의무를 지며 남성과 동등하게 대우받습니다.(영화초반에 페르시아의 사자가 여자가 끼어든다고 화를 내지만 여왕이 당당하게 권리를 주장하는 장면과 일치하죠) 왕은 두명으로서 돌아가면서 서로 견제하는 체계이기 때문에 왕권 또한 강하지 않았다합니다. 신을 부정하고 인간중심의 사고를 가진 아테네와는 달리, 노예를 부리면 잘먹고 잘살수 있는것은 신의은총이라 생각하며 신을 맹신했다고 합니다. 테르모필레 전투 페르시아가 침공해오자 스파르타의 왕이었던 레오니다스는 "페르시아에게 항복할 경우, 노예들은 반란을 일으키고 스파르타에서 도망칠것이며, 그렇게 되면 스파르타인들이 농사와 고기를 잡아야 살아야한다"며 스파르타가 전쟁에 나설것을 설득합니다. (영화에서 주장하는것처럼 자유,희생이 아닌 자신들이 누리고 지휘를 위해서, 오히려 노예들을 자유를 억누르며 지배하려는 목적입니다. 이는 영화와는 반하는 부분입니다) 레오니다스 왕은 델포이의 신탁을 얻으로 가지만 신녀는 왕이 죽지않으면 스파르타는 멸망할것이라는 신탁을 내립니다. 왕이 왜 300명을 데리고 갔는지는 정예부대였기 때문이라고 기술하지만, 왕권이 약하였고 종교기간중이었기에 자진해서 따라가는 사람이 적었다는 추측이 더 많습니다. 좁은 테르모필레에서 아테네와 기타의 도시국가 연합은 방어전을 펼칩니다. 크세르크세스는 엄청난 군사력을 과시하며 5일간 기다리며 항복하기를 권유합니다만 그리스동맹은 거부합니다. 페르시아는 테르모필레의 좁은 지형과, 다국적군으로서 사기가 높지 않은 단점에다, 장창과 방패로 중무장하고 민족주의로 뭉친 그리스연합에 연일 대패합니다. 이에 격노한 크세르크세스는 공격사령관을 처형시킵니다. 이틀째에 에피알데스라스는 그리스인이 포상을 바라고 크세르크세스에게 우회할수 있는 길을 밀고하였고 에피알데스라는 이름은 배신자를 칭하는 그리스어가 되었습니다. (에피알데스 후에 트리키아인에게 살해당합니다) 레오니다스는 회의를 가지고 결사항전을 할것을 다짐하고 배신할기미가 보이는 테배군400명과 자발적으로 남기로한 테스피아군 700명은 항전을 하기로합니다. (본래는 전원항전을 결의하였지만, 다른 동맹은 모두 도망하였고, 레오니다스가 후퇴하여 다음전쟁을 대비하라 했다고 핑계를 되었다는 설이 더 유력합니다.)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테배군400명은 재빨리 페르시아에 항복하고 오히려 그리스동맹을 공격합니다. 남은 그리스동맹은 창이 부러지면 단검으로 검이 뿌러지면 이빨로 물어뜯으며 저항했습니다. 이에 크세르크세스는 멀리떨어져 그들이 모두 죽을때까지 화살을 퍼부으라고 명령합니다.(영화속의 화살비장면) 직접 싸우는 칼이 아닌 화살에 죽는것은 스파르타인들의 가장 큰 수치였다고합니다. 후에 레오니다스의 시체를 발견한 크세르크세스는 목을 잘라 창에 꽂아 십자가에 매달아 놨다고 합니다. 적의 용장에게 관대한 편이었던 페르시아였기에, 이런 행동은 이례적이며, 스파르타에게 기가질린 크세르크세스의 극단적인 조치였다고 생각됩니다. 3차 페르시아전쟁 다시 전쟁으로 돌아와 3일간의 시간을 번 아테네와 그리스 후퇴하여 함대를 정비합니다. 페르시아는 진격해와 시민들이 떠나버린 아테네를 약탈하고 불태웁니다. 하지만, 함대를 정비하여 다시 공격해온 그리스동맹에의해 살라미스라는 좁은 해엽으로 페르시아군을 유인해 대파당합니다. 이에 크세르크세스는 페르시아로 돌아가며, 그리스 침공을 종용했던 조카 마르도니우스에게 남은 그리스침공의 전권을 넘깁니다. 479년 마르도니우스의 군은 플라티아에서 대파당하고 마르도니우스도 전사하며, 모든 페르시아 군은 철수합니다. 전쟁 후에 레오니다스의 시체는 반화되었고, 사자상이 세워졌으며 , 그를 기리는 의식이 매년행했졌다고 합니다. 페르시아 철수후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델로스동맹을 맺고 공동으로 방어자금을 관리하지만, 군자금 관리를 맞은 아테네가 독주하자 불만을 품은 스파르타가 전쟁을 일으켜 몇배가 많은 아테네를 점령합니다. 그렇지만 이일을 계기로 그리스는 쇄락의 길을 걷고 결국 붕괴합니다.. [출처] 영화 300의 역사배경|작성자 맑은바람
영화 300의 역사배경
1차 페르시아전쟁
페르시아의 그리스계 영토였던 이오니아계 도시국가들이 BC500년경에 반란을 일으킵니다.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는 이를 계속하여 정벌하고, BC492년 트라키아지방을 목적으로
함대를 보내지만 아토스곳에서 패합니다. 전쟁에서는 졌지만, 페르시아는 트라키아
편입은 성공함으로써 목적은 달성합니다.
역사학자들에 따라 이를 1차원정으로 포함하는 사람도 있고, 마라톤에서의 아테네의
승리로 끝난 전쟁을 1차로 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는 이를 1차원정이라 부르겠습니다.
2차 페르시아전쟁
2차원정은 BC 490년 다리우스왕이 아테네 북동쪽에 있는 도시국가들을 정벌하고 마라톤평야에
까지 2만5천~3만의 병력을 이끌고 처들어 옵니다. BC491년경에 대립중이던 스파르타와 아테네
는 이미 페르시아의 침략에 공동대응하기로 협약을 맺었었기에 아테네는 스파르타에 지원을
요청하지만 스파르타는 종교행사를 이유로 파병을 지체합니다.
하는수없이 아테네는 자신들만의 병력 1만으로 페르시아군에 맞섭니다. 아테네군은
페르시아군에 거의 피해없이 대승을 거두고 다리우스는 본국으로 후퇴합니다.
3차 페르시아전쟁
10년뒤 다리우스의 뒤를 이어 집권한 크세르크세스는 군사물자와 병력을 징집해 대규모로
그리스를 침공해 옵니다. 크세르크세스는 그리스로 가기위해 다르다넬스에 배로 다리를 연결하는데 폭풍으로 모두 침몰해버립니다.(영화에서는 레오디다스 앞에서 폭풍으로 함대가 침몰하는
장면을 보여주는데 이일화를 서술한 장면같습니다.)
이에 격분한 크세르크세스는 에게해(海)를 채찍질을 합니다.(.....화풀이를 바다에게 ;;;)
페르시아는 포기하지않고 아토스곶에 운하를 판뒤 대규모로 그리스를 침공합니다.
이 전쟁중에 한 전쟁이 영화 300의 배경이 되는 테르모필레 전투 입니다.
스파르타
테르모필레 전투전에 먼저 스파르타라는 도시국가에 대해서 알아야될것 같습니다.
스파르타는 그리스 도시국가중에서도 가장강한 전투종족입니다. 드래곤볼의
샤이아인들이라 할까요^^;;;
스파르타는 아테네와 대립해온 도시국가입니다. 스파르타의 구성은 특이하게
몇프로 되지않는 스파르타인들이 90%가까이 대는 헬로트(노예)를 지배하는 나라입니다.
모든 농사등은 노예들이 지으면 스파르타인은 오직 군인으로서 이들을 착취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강한자들만이 살아남으로써 어릴때부터 강한 애국심과
철저하게 전투위주의 군인으로서 훈련받고 자라납니다.
또한 반란의 기미가 보이는 노예는 밤에 모두 암살해버림으로써 노예제를 유지해 갑니다.
스파르타는 여성들이 무시받던 그리스의 다른국가들과 달리 여성들도
병역의 의무를 지며 남성과 동등하게 대우받습니다.(영화초반에 페르시아의 사자가 여자가
끼어든다고 화를 내지만 여왕이 당당하게 권리를 주장하는 장면과 일치하죠)
왕은 두명으로서 돌아가면서 서로 견제하는 체계이기 때문에 왕권 또한 강하지 않았다합니다.
신을 부정하고 인간중심의 사고를 가진 아테네와는 달리, 노예를 부리면 잘먹고
잘살수 있는것은 신의은총이라 생각하며 신을 맹신했다고 합니다.
테르모필레 전투
페르시아가 침공해오자 스파르타의 왕이었던 레오니다스는 "페르시아에게 항복할 경우,
노예들은 반란을 일으키고 스파르타에서 도망칠것이며, 그렇게 되면 스파르타인들이
농사와 고기를 잡아야 살아야한다"며 스파르타가 전쟁에 나설것을 설득합니다.
(영화에서 주장하는것처럼 자유,희생이 아닌 자신들이 누리고 지휘를 위해서, 오히려 노예들을
자유를 억누르며 지배하려는 목적입니다. 이는 영화와는 반하는 부분입니다)
레오니다스 왕은 델포이의 신탁을 얻으로 가지만 신녀는 왕이 죽지않으면
스파르타는 멸망할것이라는 신탁을 내립니다.
왕이 왜 300명을 데리고 갔는지는 정예부대였기 때문이라고 기술하지만, 왕권이 약하였고
종교기간중이었기에 자진해서 따라가는 사람이 적었다는 추측이 더 많습니다.
좁은 테르모필레에서 아테네와 기타의 도시국가 연합은 방어전을 펼칩니다.
크세르크세스는 엄청난 군사력을 과시하며 5일간 기다리며 항복하기를 권유합니다만
그리스동맹은 거부합니다.
페르시아는 테르모필레의 좁은 지형과, 다국적군으로서 사기가 높지 않은 단점에다,
장창과 방패로 중무장하고 민족주의로 뭉친 그리스연합에 연일 대패합니다.
이에 격노한 크세르크세스는 공격사령관을 처형시킵니다.
이틀째에 에피알데스라스는 그리스인이 포상을 바라고 크세르크세스에게 우회할수 있는
길을 밀고하였고 에피알데스라는 이름은 배신자를 칭하는 그리스어가 되었습니다.
(에피알데스 후에 트리키아인에게 살해당합니다)
레오니다스는 회의를 가지고 결사항전을 할것을 다짐하고 배신할기미가 보이는
테배군400명과 자발적으로 남기로한 테스피아군 700명은 항전을 하기로합니다.
(본래는 전원항전을 결의하였지만, 다른 동맹은 모두 도망하였고, 레오니다스가
후퇴하여 다음전쟁을 대비하라 했다고 핑계를 되었다는 설이 더 유력합니다.)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테배군400명은 재빨리 페르시아에 항복하고 오히려
그리스동맹을 공격합니다. 남은 그리스동맹은 창이 부러지면 단검으로 검이
뿌러지면 이빨로 물어뜯으며 저항했습니다. 이에 크세르크세스는 멀리떨어져
그들이 모두 죽을때까지 화살을 퍼부으라고 명령합니다.(영화속의 화살비장면)
직접 싸우는 칼이 아닌 화살에 죽는것은 스파르타인들의 가장 큰 수치였다고합니다.
후에 레오니다스의 시체를 발견한 크세르크세스는 목을 잘라
창에 꽂아 십자가에 매달아 놨다고 합니다. 적의 용장에게 관대한 편이었던
페르시아였기에, 이런 행동은 이례적이며, 스파르타에게 기가질린 크세르크세스의
극단적인 조치였다고 생각됩니다.
3차 페르시아전쟁
다시 전쟁으로 돌아와 3일간의 시간을 번 아테네와 그리스 후퇴하여 함대를 정비합니다.
페르시아는 진격해와 시민들이 떠나버린 아테네를 약탈하고 불태웁니다.
하지만, 함대를 정비하여 다시 공격해온 그리스동맹에의해 살라미스라는 좁은 해엽으로
페르시아군을 유인해 대파당합니다. 이에 크세르크세스는 페르시아로 돌아가며, 그리스
침공을 종용했던 조카 마르도니우스에게 남은 그리스침공의 전권을 넘깁니다.
479년 마르도니우스의 군은 플라티아에서 대파당하고 마르도니우스도 전사하며,
모든 페르시아 군은 철수합니다.
전쟁 후에 레오니다스의 시체는 반화되었고, 사자상이 세워졌으며 , 그를 기리는 의식이
매년행했졌다고 합니다.
페르시아 철수후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델로스동맹을 맺고 공동으로 방어자금을
관리하지만, 군자금 관리를 맞은 아테네가 독주하자 불만을 품은 스파르타가
전쟁을 일으켜 몇배가 많은 아테네를 점령합니다. 그렇지만 이일을 계기로
그리스는 쇄락의 길을 걷고 결국 붕괴합니다..
[출처] 영화 300의 역사배경|작성자 맑은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