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정원 (The Old Garden, 2007)

류영주2009.06.20
조회156
오래된 정원 (The Old Garden, 2007)

 

  한국 / 드라마 / 112분 / 감독: 임상수

  (★★★★☆) 

 

  2007년 제43회 백상예술대상 영화여자최우수연기상

  2007년 제 8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감독상, 촬영상

 

  기억의 창고에서 꺼내고 싶지 않았던 것들이 문득 떠오르는 날이 있다. 감성이 차갑거나 슬퍼질 때 그 기억은 소리소문 없이 일상에 파고들어 나지막이 속삭인다. 기억 저 편에서 잠들기만 원했던 감정들이 선명하게 수면 위로 떠오르면 우리는 하는 수 없이 그 순간들을 마주해야 한다. 그것들은 어떤 식으로든 내 기억에서 멀어지기 바라던 것이기에 더 아련하고, 잊을 수 없을 만큼 힘들고 아프다. 
  1980년대 군부독재 반대운동을 하다 17년 만에 감옥에서 출소한 '현우-지진희'는 그때와는 너무나 달라진 세상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판사 앞에서 '난 사회주의자다'라고 당당히 말하고 17년의 세월을 감옥에서 허비해 버린 현우는 '윤희-염정아'가 죽었다는 소식에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황석영'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임상수' 감독의 은 연출자의 이름만으로도 거부하기 힘든 흡입력을 과시하며 제작단계에서부터 충무로를 떠들썩하게 했던 문제작이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삼은 은 한국영화가 이데올로기의 속박에서 자유로워졌다는 걸 새삼 진지한 방식으로 증명한다. 기존 멜로영화와는 다른 '임상수'만의 색깔과 스타일, '염정아', '지진희' 두 배우가 펼친 혼신의 연기는 작품에 반짝이는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임상수' 감독은 '5.18'을 체험하지 못한 세대들에게 그날의 진실을 알리고 화해와 용서를 구하는 식의 안이한 결론을 도출해 내지 않았다. 대신 광주 민주화 운동의 중심에 서서 희생될 수 밖에 없었던 한 남자의 현재와 과거, 실상과 환상을 넘나들면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개인의 존재성을 우회적으로 환기시킨다. 숭고한 삶과 사랑을 그린 진중한 원작의 무게감을 덜어내고 그 위에 조금 다른 색과 질감을 덧입힌 은 후반부로 갈수록 관객의 감성을 더 젖어들게 한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도 가슴 아픈 회한을 남기고 흘러가버린 시간 속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황석영'의 소설을 영화로 옮기면서 '임상수' 감독은 각각의 인물에게 '패배자의 그늘'을 내리기보다는 다각적으로 조명하는데 깊은 관심을 쏟았다. 이미 전작 을 통해 역사적 사건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탁월하게 재해석해내는 능력을 보여준 '임상수' 감독의 내공은 에서도 빛을 발한다.
  에 담긴 한국 현대사의 민감한 문제들은 어제 오늘의 난제가 아니다. 공권력을 이용한 국가의 폭력은 권력자의 안전과 보호를 위해 때로는 정당화되기도 한다.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당한 두 남녀의 이야기를 통해 '임상수' 감독은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사랑을 설파한다.
  헤아릴 수조차 없을 만큼 가슴 아픈 일로 가득한 세월 속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은 자신이 낙오자라고 세상에 선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은 사랑보다 신념이 앞서고, 신나게 사는 게 미안했던 시대적 분위기에 초점을 맞추며 더 큰 울림을 선사한다. 사랑의 의미가 상실되어가는 지금, 시대의 아픔을 관통했던 두 남녀의 진한 러브 스토리를 체감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경험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