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세브란스병원 1508호실. 연세대세브란스병원은 김모(77)할머니에게 국내 처음으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방식의 존엄사를 공식 집행했다. 이제와서 합법적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존엄사지만 현대판 '고려장' 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유가족이었더라도 엄청난 갈등과 고민을 했을테지만 막상 3자의 입장에 있다보니 이런 말이 나온다.
기사를 읽으면서 마음 속으로 '내 부모, 내 가족은 이런 일 없어야지' 하면서도 이런 상황은 언제라도 우리에게 찾아올 수 있을 것이다. 갈등과 고민이 극에 달하면 더이상 윤리나 도덕적인 마인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이익대로 움직일 수 밖에 없으니까. 이에 대해서 중국의 사상가 순자(荀子)는 '성악설'을 제기하면서 사람의 본성이 날 때부터 악하다고 보았고, 그것에 대한 처방으로 '예(禮)' 를 강조하며 후천적인 도덕 교화를 통해 사람의 악한 본성이 극복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순자의 '성악설' 에는 충실하지만 '예' 하고는 거리가 멀다. 만약 예를 중시했다면 존엄사는 실행될 수 없는 것이고, 안하무인의 정부정책은 실행되지 않아야 된다. 하긴 예로부터 유교국가였던 우리나라가 '고려장' 을 시행했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다.
참고적으로 우리나라 역사를 되돌아보면, 한국민들의 사고와 정신은 철저하게 이해관계 속에 있었다. 임금과 신하의 관계, 나라와 나라 관계, 백성과 백성끼리의 관계에서도 이해득실의 논리로 형성되었고 지금까지 그러한 논리는 계속 적용되었다. 어디 우리나라 뿐이냐고 반문한다면 나는 할 말이 없고 슬퍼진다. 왜냐하면 그 반문을 되새겨볼 때. 이 땅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은 없기 때문이다.
이제 존엄사는 안락사의 다른 말이 되어버렸고 법적으로도 합법이 되었지만, 나는 한 인간의 죽음을 인간 자신이 결정하지 못하고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것이 슬프다. 아무런 힘도 없이 마냥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 자신의 암살을 모의하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 김모 할머니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아. 할머니니까 상관없다는 말이 나올지 모르니, 이 글을 보는 당신이었다면 어땠을까? 가장 가깝다는 혈육한데 자신이 암살당한다는 것을 '존엄사' 라는 이름으로 그럴 듯하게 포장하여 말하는 것은 인간 이기심의 극치라고 본다. 사람들은 말이 안되는 것을 말이 되게, 그것도 존엄이라는 말로 포장하면 그것에 대한 진실도 모른 채 무언의 인정을 한다. 언젠가 그 말의 대상이 곧 '나' 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줄기세포나 인간복제, 존엄사 등 생명을 수단, 상대화시킬 수 있다면, 사람들은 언제나 그들의 이익과 본능에 따라 실행시킬 것이다. 나도 그것에 대해 동의 못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것들이 공통적으로 '인간에게 꼭 유익을 준다' 라는 명제에는 아직도 의문이 든다. 인간은 섭리라는 단어에 늘 반항하여 역행하려 했고, 죽음보다는 영생을 더 추구했다. 대부분의 고대 신화들은 인간의 유한성에 대해서 말하면서 인간의 탐욕과 욕심을 절제할 것을 강조하지만, 이젠 진짜 옛날 이야기가 되려나 보다. 또한 양심에 근거로 한, 보이지 않는 법이었던 도덕과 윤리도 시대와 경제논리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여지가 생겨서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존엄' 이라는 이름을 가진 당신의 암살자들..
2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세브란스병원 1508호실. 연세대세브란스병원은 김모(77)할머니에게 국내 처음으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방식의 존엄사를 공식 집행했다. 이제와서 합법적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존엄사지만 현대판 '고려장' 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유가족이었더라도 엄청난 갈등과 고민을 했을테지만 막상 3자의 입장에 있다보니 이런 말이 나온다.
기사를 읽으면서 마음 속으로 '내 부모, 내 가족은 이런 일 없어야지' 하면서도 이런 상황은 언제라도 우리에게 찾아올 수 있을 것이다. 갈등과 고민이 극에 달하면 더이상 윤리나 도덕적인 마인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이익대로 움직일 수 밖에 없으니까. 이에 대해서 중국의 사상가 순자(荀子)는 '성악설'을 제기하면서 사람의 본성이 날 때부터 악하다고 보았고, 그것에 대한 처방으로 '예(禮)' 를 강조하며 후천적인 도덕 교화를 통해 사람의 악한 본성이 극복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순자의 '성악설' 에는 충실하지만 '예' 하고는 거리가 멀다. 만약 예를 중시했다면 존엄사는 실행될 수 없는 것이고, 안하무인의 정부정책은 실행되지 않아야 된다. 하긴 예로부터 유교국가였던 우리나라가 '고려장' 을 시행했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다.
참고적으로 우리나라 역사를 되돌아보면, 한국민들의 사고와 정신은 철저하게 이해관계 속에 있었다. 임금과 신하의 관계, 나라와 나라 관계, 백성과 백성끼리의 관계에서도 이해득실의 논리로 형성되었고 지금까지 그러한 논리는 계속 적용되었다. 어디 우리나라 뿐이냐고 반문한다면 나는 할 말이 없고 슬퍼진다. 왜냐하면 그 반문을 되새겨볼 때. 이 땅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은 없기 때문이다.
이제 존엄사는 안락사의 다른 말이 되어버렸고 법적으로도 합법이 되었지만, 나는 한 인간의 죽음을 인간 자신이 결정하지 못하고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것이 슬프다. 아무런 힘도 없이 마냥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 자신의 암살을 모의하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 김모 할머니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아. 할머니니까 상관없다는 말이 나올지 모르니, 이 글을 보는 당신이었다면 어땠을까? 가장 가깝다는 혈육한데 자신이 암살당한다는 것을 '존엄사' 라는 이름으로 그럴 듯하게 포장하여 말하는 것은 인간 이기심의 극치라고 본다. 사람들은 말이 안되는 것을 말이 되게, 그것도 존엄이라는 말로 포장하면 그것에 대한 진실도 모른 채 무언의 인정을 한다. 언젠가 그 말의 대상이 곧 '나' 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줄기세포나 인간복제, 존엄사 등 생명을 수단, 상대화시킬 수 있다면, 사람들은 언제나 그들의 이익과 본능에 따라 실행시킬 것이다. 나도 그것에 대해 동의 못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것들이 공통적으로 '인간에게 꼭 유익을 준다' 라는 명제에는 아직도 의문이 든다. 인간은 섭리라는 단어에 늘 반항하여 역행하려 했고, 죽음보다는 영생을 더 추구했다. 대부분의 고대 신화들은 인간의 유한성에 대해서 말하면서 인간의 탐욕과 욕심을 절제할 것을 강조하지만, 이젠 진짜 옛날 이야기가 되려나 보다. 또한 양심에 근거로 한, 보이지 않는 법이었던 도덕과 윤리도 시대와 경제논리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여지가 생겨서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謹弔 - 이 나라에 태어나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타인들의 손에 생을 마감한 김모 할머니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