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지............옛날이야기부터 해볼까 한다. 나의 대구대 입학년도는 지금으로부터 약 12년 전인 1997년이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장애인교육의 메카, 장애인 복지의 요람으로 알려진 그 대구대가 나의 모교다. 사회복지, 특수교육 전공자인 친구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난 대구대를 나온 것이 매우 자랑스럽지 않다.
내가 다닐 때의 대구대는 장애인을 전국에서 가장 많은 180여명의 정원을 보유한 장애인들에게 그래도 고등교육 기회가 많은 대학이었다.
대구대에 다녀 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 당시 장애인에 대한 학습지원은 법률적인 근거로 특수교육진흥법 2조에 근거로 장애인 정원이 있는 학교에만 몇 억씩 지원했지만 정작 장애학생에게 돌아가는 것은 몇 천 만원 단위로 그것도 생활 장학금으로 차등해서 1급 15만원, 1급 12만원, 3부터는 8만원으로 책정하여 지급되었다.
원래는 장애학생과 기숙사에서 함께 지내는 롬 메이트에게 매월 근로생이 받는 것과 동일하게 지급되었던 것이 당시 장애학생에게 도움을 주는 노고의 보상책이었으나, 지급된 금액은 받아가면서 장애학생을 도와주지 않고, 유홍에만 쓴다는 이유로 그 돈을 장애학생이 관리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니 장애학생과 일반학생의 갈등은 켜지게 되자, 학교에서 봉사 학점을 신설해서 장애학생과 학과장의 서명과 몇 시간의 봉사확인서 재출시 봉사학점이 인정되는 것으로 여기서 주로 하는 봉사활동은 수화통역, 점자입력, 시험대필, 롬 메이트가 전부였다. 그만큼 학교가 장애 학생에 대한 학습 지원을 시혜적으로 접근하였다는 것이다.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야 종합적인 관리 체제가 등장하나 싶더니 2003년 불미스러운 일로 학교이미지가 크게 손상되었다. 우리 입에 담기 어려운 도시과학부 후배가 당한 성희롱 사건이 그것이었다.
나는 내가 학교를 다니는 것 보다는 처우가 많이 개선되어 후배들이 편하게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고 좋아했는데, 더 화가 났던 것을 진상규명에 나서야 할 학교가 이를 은폐하려 했고 가해 학생은 반성 없이 사건을 날조하는 것을 보며 정말 역겹다는 생각 밖에 안 났다.
난 대구대를 졸업한 뒤에 실패자로 살았다. 고시에도 유학에도 전부 실패했었다. 그러나 다 포기할 수 없어 2007년 나사렛대 재활복지대학원에 입학하였다. 여기도 대구대와 별 차이 없이 재활 복지 특성화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었다. 장애학생 지원 부분 최우수 대학인만은 분명하다. 올해는 교육복지 역량강화사업단으로도 선정되었다. 그렇지만 이것은 전시 행정에만 급급한 나머지 내실을 다지는 대해서는 소극적이었다. 장애인에게 우호적인 대학이라 자평하지만 장애인식개선에 대해서는 그렇게 높은 점수를 받기엔 부족한 점이 많다.
지난 2009 4월 말에 야간생활지원 도우미 매칭 실무를 관장하는 연구소 내 게시판에 정부 지원금 집행이 정부로부터 지연되고 있으니 학교에서 빠른 시일 내로 도우미 지원금을 지급할 있도록 노력중이라고 학생들을 동요하지 않게 하였다. 급기야 5월 중순에 장애학생고등교육지원 예산이 삭감된다는 보도가 나고도 학교는 학생들에게 동요하지 말 것을 언급했다.
이런 생각도 했었다. 정부와 대학들이 짜고 치는 건 아닐까? 장애인 받기도 싫고, 돈 쓰는 것도 싫다는 얘기로 밖에 들리지 않은가? 교육 예산도 문제지만 전반적으로 장애인 관련 예산은 다 삭감해서 무엇에 쓰려 하는가? 토목공사!~
이러한 모습들이 12년 전 내가 대학입학 당시 병폐가 지금도 고스라니 남아 있다면 예산 삭감이 근원적 처방은 아니라는 답이 나오는데 정부와 대학 당국은 엉뚱한 핑계를 대며 생색을 내고 싶어 하는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2009년 6월 23일 장애인고등교육예산삭감에 대한 규탄 기자 회견에 다녀오면서 많은 것을 느꼈고, 반성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학교 후배들과 인권에 종사하시는 분이 정말 열심히 투쟁하고 있는데 난 그분들에 빗대어 글이나 쓰고 있다는 참으로 한심스러웠다. 장애학생지원네트워크 김 형수 사무국장께서 우리나라는 장애인이 살아가기 어려운 난민국이라고 하셨다. 우리나라는 역시 장애인들이 살아가기 힘든 난민국이였다........
장애 대학생 학습지원에 대한 단상.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지............옛날이야기부터 해볼까 한다. 나의 대구대 입학년도는 지금으로부터 약 12년 전인 1997년이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장애인교육의 메카, 장애인 복지의 요람으로 알려진 그 대구대가 나의 모교다. 사회복지, 특수교육 전공자인 친구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난 대구대를 나온 것이 매우 자랑스럽지 않다.
내가 다닐 때의 대구대는 장애인을 전국에서 가장 많은 180여명의 정원을 보유한 장애인들에게 그래도 고등교육 기회가 많은 대학이었다.
대구대에 다녀 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 당시 장애인에 대한 학습지원은 법률적인 근거로 특수교육진흥법 2조에 근거로 장애인 정원이 있는 학교에만 몇 억씩 지원했지만 정작 장애학생에게 돌아가는 것은 몇 천 만원 단위로 그것도 생활 장학금으로 차등해서 1급 15만원, 1급 12만원, 3부터는 8만원으로 책정하여 지급되었다.
원래는 장애학생과 기숙사에서 함께 지내는 롬 메이트에게 매월 근로생이 받는 것과 동일하게 지급되었던 것이 당시 장애학생에게 도움을 주는 노고의 보상책이었으나, 지급된 금액은 받아가면서 장애학생을 도와주지 않고, 유홍에만 쓴다는 이유로 그 돈을 장애학생이 관리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니 장애학생과 일반학생의 갈등은 켜지게 되자, 학교에서 봉사 학점을 신설해서 장애학생과 학과장의 서명과 몇 시간의 봉사확인서 재출시 봉사학점이 인정되는 것으로 여기서 주로 하는 봉사활동은 수화통역, 점자입력, 시험대필, 롬 메이트가 전부였다. 그만큼 학교가 장애 학생에 대한 학습 지원을 시혜적으로 접근하였다는 것이다.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야 종합적인 관리 체제가 등장하나 싶더니 2003년 불미스러운 일로 학교이미지가 크게 손상되었다. 우리 입에 담기 어려운 도시과학부 후배가 당한 성희롱 사건이 그것이었다.
나는 내가 학교를 다니는 것 보다는 처우가 많이 개선되어 후배들이 편하게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고 좋아했는데, 더 화가 났던 것을 진상규명에 나서야 할 학교가 이를 은폐하려 했고 가해 학생은 반성 없이 사건을 날조하는 것을 보며 정말 역겹다는 생각 밖에 안 났다.
난 대구대를 졸업한 뒤에 실패자로 살았다. 고시에도 유학에도 전부 실패했었다. 그러나 다 포기할 수 없어 2007년 나사렛대 재활복지대학원에 입학하였다. 여기도 대구대와 별 차이 없이 재활 복지 특성화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었다. 장애학생 지원 부분 최우수 대학인만은 분명하다. 올해는 교육복지 역량강화사업단으로도 선정되었다. 그렇지만 이것은 전시 행정에만 급급한 나머지 내실을 다지는 대해서는 소극적이었다. 장애인에게 우호적인 대학이라 자평하지만 장애인식개선에 대해서는 그렇게 높은 점수를 받기엔 부족한 점이 많다.
지난 2009 4월 말에 야간생활지원 도우미 매칭 실무를 관장하는 연구소 내 게시판에 정부 지원금 집행이 정부로부터 지연되고 있으니 학교에서 빠른 시일 내로 도우미 지원금을 지급할 있도록 노력중이라고 학생들을 동요하지 않게 하였다. 급기야 5월 중순에 장애학생고등교육지원 예산이 삭감된다는 보도가 나고도 학교는 학생들에게 동요하지 말 것을 언급했다.
이런 생각도 했었다. 정부와 대학들이 짜고 치는 건 아닐까? 장애인 받기도 싫고, 돈 쓰는 것도 싫다는 얘기로 밖에 들리지 않은가? 교육 예산도 문제지만 전반적으로 장애인 관련 예산은 다 삭감해서 무엇에 쓰려 하는가? 토목공사!~
이러한 모습들이 12년 전 내가 대학입학 당시 병폐가 지금도 고스라니 남아 있다면 예산 삭감이 근원적 처방은 아니라는 답이 나오는데 정부와 대학 당국은 엉뚱한 핑계를 대며 생색을 내고 싶어 하는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2009년 6월 23일 장애인고등교육예산삭감에 대한 규탄 기자 회견에 다녀오면서 많은 것을 느꼈고, 반성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학교 후배들과 인권에 종사하시는 분이 정말 열심히 투쟁하고 있는데 난 그분들에 빗대어 글이나 쓰고 있다는 참으로 한심스러웠다. 장애학생지원네트워크 김 형수 사무국장께서 우리나라는 장애인이 살아가기 어려운 난민국이라고 하셨다. 우리나라는 역시 장애인들이 살아가기 힘든 난민국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