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정빛나라2009.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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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영혼의 자유를 외치다.

 

 

이 책을 드디어, 2년만에 읽었다.

처음엔 선물을 받았고- 선물 준 사람이 조르바가 생각난다며 다시 빌려갔는데 행방이 묘연해졌다. 두번째에는 내가 다시 구입했는데 각 장면들이 선뜻 머리에서 마음으로 이어지지가 않아서 몇번이든 내려두고 읽고 내려놓고 생각하다가 겨우 끝이 났다.

 

그래- 그런 사람이다, 조르바는.

처음엔 이해할 수 없는 괴팍한 괴물로 비춰지다가, 나중에는 철저히 본성에 의지한 동물같은 인간이 아닌가한다. 그러다가 끝에는, 우리가 본능적일 때 가장 자유롭고 행복한데 왜 괜한 지식과 도덕률로 스스로의 목을 잡아매며 목에 맞지않는 넥타이로 고상한 척을 떨어야 했었나- 하며 우리 자신들을 한껏 비웃게 만드는거다.

 

더 슬픈 사실은, 그.럼.에.도.불.구.하.고.

우리는 우리가 잡은 끈을 놓을 용기가 없다는 것이다.

우선 작가인 니코스 카잔차키스도 끝내 끈을 놓을 수 없었고-

나도 2년이란 시간을 통해 읽어내려갔고 최대한 이해하려 했지만 책장을 덮으면서 무수히 지나가는 상념들을 거쳐서는, 결국엔 씁쓸함으로 책을 마무리 해야 했다. 재보았던 것 같다. 내가 얽매인 끈은 무엇일까. 그것은 나를 옥죄기도 하지만- 때론 안정감을 부여하므로- 난 결국 looser일 뿐인가. 그래서 그리스인조르바는 소설인건가.

 

이성을 강조하면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최대한 남들과 맞추고 피해주지 않는 법만 가득 배워가는 것이 아닌가. 그러다보면, 욕할 수 있는 순간에 가장 큰 소리로 욕해버리고 타인의 시선에 전혀 개의치 않는 조르바를 쳐다보게 된다. 그럼으로써, 조르바는 누구보다 자신을 잘 이해하고 있고 남들을 볼때도 세밀한 통찰로써 바라보고 있다.

신을 통하여 구원을 받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을 구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작가의 이 말도 일맥상통하게 된다.

 

 

이 존재가 실존 인물이 아니었다면, 공감을 사는데 어려웠을 것이고 세계문학으로 인정받기도 힘들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해본다. 왜 나는? 이란 의문을 끝없이 던져주는, 자기성찰적이면서도 충분히 해학적인 책.

 

『아니요,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인 줄은 다른 사람들이 묶인 줄과 다를지 모릅니다. 그것뿐이오. 두목, 당신은 긴 줄 끝에 있어요. 당신은 오고 가고, 그리고 그걸 자유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그 줄을 잘라 버리지 못해요....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바보, 아시겠어요? 모든 걸 도박에다 걸어야 합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좋은 머리가 있으니까 잘은 해나가겠지요. 인간의 머리란 식료품 상점과 같은 거에요. 계속 계산합니다. 얼마를 지불했고 얼마를 벌었으니까 이익은 얼마고 손해는 얼마다! ..

 줄을 놓쳐버리면 머리라는 이 병신은 그만 허둥지둥합니다. 그러면 끝나는 거지. 그러나 인간이 이 줄을 자르지 않을 바에야 살맛이 뭐 나겠어요? 노란 양국맛이지. 멀건 양국 차 말이오. 럼주 같은 맛이 아니오. 잘라야 인생을 제대로 보게 되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