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당연한 소리처럼 들릴 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명제는 한국 축구의 현실에서 '참'이 아닌 '거짓'이다. 스님을 버려두고 절이 떠나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지는 이 땅에서 팬은 프로 스포츠의 구경꾼 정도로 과소평가 되고 있다. 자생적 축구 클럽이 프로화된 유럽과 달리 대기업 주도로 만들어진 기업 구단이 대세를 이룬 국내 프로 축구 환경에서 팬들은 늘 푸대접을 받아왔다.
부천FC 1995의 등장은 그런 점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의 주도가 아닌 팬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클럽을 창단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많지 않은 유쾌한 '사건'이다. 이는 또 구단의 설립과 운영, 그리고 미래의 가치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팬들이 늘 배제되었던 기존 축구단의 전례를 온전히 벗어던진 출발이라는 점에서도 '한국 축구의 신기원'이라는 표현이 전혀 아깝지 않은 기념비적 사건이다. 이들이 자신들과 비슷한 역사를 가진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 구단과 오는 18일 친선 경기를 갖는 것 또한 매우 의미있는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You go, we go' 팬과 클럽은 한 몸이다
프로 축구단의 존재 이유는 축구 경기를 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감독과 선수라는 전문 직업인이 필요하고, 그들을 고용하고 팀을 운영하려면 돈을 벌어야만 한다. 경기 입장권을 팔고, TV중계권을 판매하고, 스폰서와 머천다이징에 공을 들이며 때로는 투자자를 모집하는 각종 사업은 결국 축구단의 존립을 위한 매우 기본적인 업무인 셈이다. 그리고, 이 모든 사업은 '팬'이 존재한다는 전제 하에 가능한 일들이다. 경기장을 찾고, TV 채널을 고정하며, 선수와 감독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축구단의 유니폼을 사 입어주는 팬들. 이들이 없다면 축구단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손님 없는 식당이 문을 닫는 것처럼 팬이 없는 프로 스포츠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손님이 왕'이란 말은 '팬이 왕'이라는 표현으로 바꿔도 말이 된다. 그래서 프로 축구와 프로 축구단의 존립 근거가 팬이라는 문장은 이 경우 지극히 현실적인 명제가 된다.
물론, 이것은 '원칙'이다. 모든 프로 스포츠가 '팬'에 매달리는 것은 아니다. 특히, 유럽 프로 축구 리그의 생성 과정을 거꾸로 밟은 K-리그의 경우 구단과 '팬'의 관계는 다소 왜곡되어 있다. 해외 대다수의 프로 리그는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축구 클럽들이 오랜 활동을 벌인 뒤 이들간의 합종연횡 속에 탄생한 결과물이지만, 한국에서는 축구단과 리그가 동시에 만들어졌다. 프로 리그의 자연스러운 시작은 공 놀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직장 단위, 지역 단위로 만든 클럽들의 경기가 관중을 모으고 이 과정에서 관중석이 생겨나고 입장료를 받게 되면서부터. 규모가 커지다보니 연락이 닿는 팀들끼리 약속을 잡고 정해진 시간에 킥오프를 하는 것으로 축구를 즐기던 클럽들은 체계적인 운영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리그는 그렇게 꼴을 갖추게 된다. 클럽과 팬이 함께 성장하며 리그를 만들고 규모를 확장시킨 것이다.
K-리그의 힘든 출발, 힘겨운 성장
하지만, K-리그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예로부터 학원 축구 중심의 클럽(구락부)이나 기업 소속 운동부가 존재하기는 했지만 정작 프로 리그의 출범은 정부 주도로 이뤄졌고 여기에 참여한 팀들은 모두 신생 구단이었다. 정부가 대기업들의 참여를 유도해 만들어낸 리그는 거대 자본에 소속된 '부서' 구단들의 주도로 운영됐다. 이들은 모기업에서 할당한 예산을 정해진 기간 내에 '소비'하면 되었기에 별다른 수입원을 애써 찾지 않았고, 자연히 관중보다 모기업을 위한 운영에 천착했다. 따라서, '팬'은 프로 리그와 프로 구단 운영의 필수 요소가 될 수 없었다. 오히려, 이후 '서포터스'로 조직화된 적극적 팬들은 때로는 귀찮은 존재로 여겨질 정도였다. 물론, '연고지'에 대한 개념도 뚜렷하지 않았다.
뒤늦게 연고지 개념을 도입하려 했지만, 기업 구단의 선택은 지역 사회와의 밀착보다는 미국식 프랜차이즈 시스템의 어설픈 이식이었다. 리그가 거듭되면서 팬들의 의식이나 정보 수준이 높아진 것을 반영하지 못한 기업 구단의 '모기업 우선' 운영 정책은 해외 클럽들과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됐고 이 과정에서 팬과 구단은 대치하기 시작한다. 구단 이름에서 기업명을 제외한 채 지역명 중심으로 팀을 호명하는 K-리그의 분위기는 가장 명징한 증거다. 팬들은 기업이 아닌 팬과 지역을 위한 운영을 요구하지만, 기업 구단의 목적은 그들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므로 교집합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사정이 이러하니 지역 기반의 클럽들이 켜켜이 쌓은 역사 위에 자리를 잡은 유럽 축구의 환경은 K-리그에는 적용될 수 없는 것이었다. 유럽 클럽들의 연고지는 '고향'이나 다름없지만, K-리그 구단들에게 '연고지'는 계약이나 협력 관계의 경기 장소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팬들의 격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축구단이 연고지를 이전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은 팬과 기업 구단의 인식 차를 보여주는 일종의 비극이다.
K-리그에서 그동안 몇 차례 연고 이전이 발생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업 구단 입장에서는 사업의 근거지를 옮기는 것과 엇비슷한 발상에서 실행한 것이지만 스포츠에서 연고지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팬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연고지의 중요성은 점점 강조되고 있지만 여전히 팬이 중심에 있지 않은 구단들에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모기업의 입장과 여러 가지 환경적 요소다. 당연히 축구팬들의 반발은 엄청났다. 하지만, 일반 대중과 미디어는 무심했고 남은 자들의 가슴은 처참하고 애달프게 허물어졌다. 프로 축구단은 팬 없이 존재할 수 없다지만, 유럽식 축구 클럽과는 다른 설립 과정을 거친 국내 기업 구단들에게 팬은 하나의 보조 장식품일 뿐이었다. 기업 구단의 배신에 뒷통수를 얻어 맞은 팬들은 바짓가랑이 붙잡을 기회조차 잡지 못한 채 텅 빈 도시에 홀로 남아 어금니를 꽉 깨물 수 밖에 없었다.
부천도 그렇게 축구단을 잃어버렸다. K-리그 최고의 서포터즈를 자처하던 부천의 서포터즈 '헤르메스'는 순식간에 존재의 위기를 맞이한다. 다른 팀간의 경기장을 찾아 억울함을 호소하고, A매치 경기장 안팎에서 사리에 맞지 않는 모 기업의 행위를 규탄도 해보지만 이미 벌어진 일은 되돌릴 수 없었다 그리고, 모두들 부천 축구와 헤르메스의 존재가 그렇게 사라지는 줄만 알았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K3에서 K-리그를 꿈꾸다
하지만, 부천 서포터스 헤르메스는 이대로 무릎 꿇지 않았다. 기업이 철수한 공터에 모여 앉은 헤르메스는 기업 구단이 버려둔 이 곳에 시민 구단의 씨앗을 뿌리기로 결심한다. 2007년 12월 1일, K3리그 출범을 앞두고 정식 창단한 부천FC의 등장은 이들이 1년 여간 절치부심한 결과이자 한국 축구의 신기원이 열린 순간이다.
팬 주도로 클럽이 만들어진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특히, 대부분 대기업과 지방자치단체의 주도로 축구단이 창단한 국내에서 부천FC의 창단은 그 자체로 이미 혁신적인 성과다. 이것은 팬과 클럽이 태생적으로 한 몸일 수 밖에 없는 축구단의 등장이라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사실, K-리그 구단들이 팬을 의식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여전히 많은 팀들은 폐쇄적인 운영과 모기업 의존적 구조를 유지하며 '축구 클럽'이 아닌 '기업 구단'의 면모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기업의 이미지를 중시하고 모기업의 지원금에 의지하며 지자체 단체장들의 기침 한 번에 팀 존립이 위협받는 환경이 팬들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 K-리그에도 '시민 구단'을 자처하는 팀들이 늘어났지만, 대개의 경우 엄밀한 의미에서 (실은 그 정의가 모호한) '시민 구단'이 아니다. 기업 구단과 엇비슷한 구조를 가진 이 팀들은, 소유주가 기업이 아닌 지자체라는 것만 다를 뿐 같은 매카니즘으로 팀을 운용하고 있다. 사실, 팀이 누구의 소유이냐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팀의 운영이 축구적인 것과 팬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느냐의 여부가 프로 리그 성패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천FC는 이 지점에서 여타 기존 구단들과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창단 2년차인 부천FC의 현황은 아직 초라하다. 서른 명이 넘는 선수단은 야식 배달원, 헬스 트레이너, 공장 노동자 등 다양한 본업을 가진 '연봉 0원'의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른바 '주경야축', 즉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차는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축구를 통해 버는 수입은 출전수당으로 받는 몇 십 만원이 전부다. 하지만, 부천FC는 오히려 낙관적이다. 1천 명이 넘는 유료 관중은 많지 않은 숫자지만 일부 K-리그 팀들의 유료 관중 수와 비교하면 도리어 기적적인 수준이다. 스폰서십 계약도 무시할 수 없는 성과다. '다음', 'SK에너지', '자생한방병원' 등 6개의 기업체가 현금과 현물 후원 업체로 나섰다. 지역 업체들의 적극적 지원도 눈에 띈다. 덕분에 지난 해 부천FC는 8천만원의 흑자를 냈다. 수 만 명 관중이 드나든다는 K-리그에서도 달성할 수 없는 놀라운 성과다.
이와 같은 성과가 가능한 것은 부천FC가 '팬'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운 구단이기 때문이다. 한 번 팀을 잃은 기억이 있는 팬들은 구단 스폰서 기업이 생산하는 물품을 적극적으로 애용하고 구단명이 널리 홍보될 수 있는 방안을 늘 강구한다. '내가 되살린 팀'이라는 자부심과 축구를 향한 애정이 만나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이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부천FC의 신동민 마케팅이사에 따르면 유료 관중 3,000명을 달성해야 장기적 생존이 가능하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K3에서 머물 때의 이야기다. 승강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어 내셔널리그를 거쳐 K-리그로 복귀하게 된다면 현재의 재정으로는 1년 운영도 어림없는 소리다. 그래도 이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힘든 여건 속에서도 늘 즐거운 마음으로 경기장에 오르는 선수들과 무보수 자원봉사로 팀의 한 경기 한 경기를 밀고 끄는 서포터스들의 마음 속에는 같은 꿈이 자리하고 있다. 2017년까지의 팀 운영 계획을 짜둔 '10년 마스터 플랜'은 당장의 어려움을 가볍게 만들어주는 보물지도와 같다. 10년 안에 K-리그로 복귀하겠다는 부천FC의 꿈은 멀고도 험난해 보이지만, '팬들'의, '팬들'에 의한, '팬들'을 위한 팀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 기업 구단과 다른 출발점에서 장밋빛 미래를 꿈꾸는 부천FC의 도전은 그래서 한국 축구의 새로운 발견이자 희망이 될 것이다.
한국 축구의 신기원, 부천FC의 무한도전
'팬들의, 팬들에 의한, 팬들을 위한' 클럽의 탄생프로 스포츠의 존립 근거는 팬이다.
너무도 당연한 소리처럼 들릴 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명제는 한국 축구의 현실에서 '참'이 아닌 '거짓'이다. 스님을 버려두고 절이 떠나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지는 이 땅에서 팬은 프로 스포츠의 구경꾼 정도로 과소평가 되고 있다. 자생적 축구 클럽이 프로화된 유럽과 달리 대기업 주도로 만들어진 기업 구단이 대세를 이룬 국내 프로 축구 환경에서 팬들은 늘 푸대접을 받아왔다.
부천FC 1995의 등장은 그런 점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의 주도가 아닌 팬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클럽을 창단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많지 않은 유쾌한 '사건'이다. 이는 또 구단의 설립과 운영, 그리고 미래의 가치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팬들이 늘 배제되었던 기존 축구단의 전례를 온전히 벗어던진 출발이라는 점에서도 '한국 축구의 신기원'이라는 표현이 전혀 아깝지 않은 기념비적 사건이다. 이들이 자신들과 비슷한 역사를 가진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 구단과 오는 18일 친선 경기를 갖는 것 또한 매우 의미있는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You go, we go' 팬과 클럽은 한 몸이다프로 축구단의 존재 이유는 축구 경기를 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감독과 선수라는 전문 직업인이 필요하고, 그들을 고용하고 팀을 운영하려면 돈을 벌어야만 한다. 경기 입장권을 팔고, TV중계권을 판매하고, 스폰서와 머천다이징에 공을 들이며 때로는 투자자를 모집하는 각종 사업은 결국 축구단의 존립을 위한 매우 기본적인 업무인 셈이다. 그리고, 이 모든 사업은 '팬'이 존재한다는 전제 하에 가능한 일들이다. 경기장을 찾고, TV 채널을 고정하며, 선수와 감독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축구단의 유니폼을 사 입어주는 팬들. 이들이 없다면 축구단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손님 없는 식당이 문을 닫는 것처럼 팬이 없는 프로 스포츠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손님이 왕'이란 말은 '팬이 왕'이라는 표현으로 바꿔도 말이 된다. 그래서 프로 축구와 프로 축구단의 존립 근거가 팬이라는 문장은 이 경우 지극히 현실적인 명제가 된다.
물론, 이것은 '원칙'이다. 모든 프로 스포츠가 '팬'에 매달리는 것은 아니다. 특히, 유럽 프로 축구 리그의 생성 과정을 거꾸로 밟은 K-리그의 경우 구단과 '팬'의 관계는 다소 왜곡되어 있다. 해외 대다수의 프로 리그는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축구 클럽들이 오랜 활동을 벌인 뒤 이들간의 합종연횡 속에 탄생한 결과물이지만, 한국에서는 축구단과 리그가 동시에 만들어졌다. 프로 리그의 자연스러운 시작은 공 놀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직장 단위, 지역 단위로 만든 클럽들의 경기가 관중을 모으고 이 과정에서 관중석이 생겨나고 입장료를 받게 되면서부터. 규모가 커지다보니 연락이 닿는 팀들끼리 약속을 잡고 정해진 시간에 킥오프를 하는 것으로 축구를 즐기던 클럽들은 체계적인 운영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리그는 그렇게 꼴을 갖추게 된다. 클럽과 팬이 함께 성장하며 리그를 만들고 규모를 확장시킨 것이다.K-리그의 힘든 출발, 힘겨운 성장
하지만, K-리그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예로부터 학원 축구 중심의 클럽(구락부)이나 기업 소속 운동부가 존재하기는 했지만 정작 프로 리그의 출범은 정부 주도로 이뤄졌고 여기에 참여한 팀들은 모두 신생 구단이었다. 정부가 대기업들의 참여를 유도해 만들어낸 리그는 거대 자본에 소속된 '부서' 구단들의 주도로 운영됐다. 이들은 모기업에서 할당한 예산을 정해진 기간 내에 '소비'하면 되었기에 별다른 수입원을 애써 찾지 않았고, 자연히 관중보다 모기업을 위한 운영에 천착했다. 따라서, '팬'은 프로 리그와 프로 구단 운영의 필수 요소가 될 수 없었다. 오히려, 이후 '서포터스'로 조직화된 적극적 팬들은 때로는 귀찮은 존재로 여겨질 정도였다. 물론, '연고지'에 대한 개념도 뚜렷하지 않았다.
뒤늦게 연고지 개념을 도입하려 했지만, 기업 구단의 선택은 지역 사회와의 밀착보다는 미국식 프랜차이즈 시스템의 어설픈 이식이었다. 리그가 거듭되면서 팬들의 의식이나 정보 수준이 높아진 것을 반영하지 못한 기업 구단의 '모기업 우선' 운영 정책은 해외 클럽들과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됐고 이 과정에서 팬과 구단은 대치하기 시작한다. 구단 이름에서 기업명을 제외한 채 지역명 중심으로 팀을 호명하는 K-리그의 분위기는 가장 명징한 증거다. 팬들은 기업이 아닌 팬과 지역을 위한 운영을 요구하지만, 기업 구단의 목적은 그들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므로 교집합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사정이 이러하니 지역 기반의 클럽들이 켜켜이 쌓은 역사 위에 자리를 잡은 유럽 축구의 환경은 K-리그에는 적용될 수 없는 것이었다. 유럽 클럽들의 연고지는 '고향'이나 다름없지만, K-리그 구단들에게 '연고지'는 계약이나 협력 관계의 경기 장소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팬들의 격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축구단이 연고지를 이전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은 팬과 기업 구단의 인식 차를 보여주는 일종의 비극이다.
K-리그에서 그동안 몇 차례 연고 이전이 발생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업 구단 입장에서는 사업의 근거지를 옮기는 것과 엇비슷한 발상에서 실행한 것이지만 스포츠에서 연고지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팬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연고지의 중요성은 점점 강조되고 있지만 여전히 팬이 중심에 있지 않은 구단들에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모기업의 입장과 여러 가지 환경적 요소다. 당연히 축구팬들의 반발은 엄청났다. 하지만, 일반 대중과 미디어는 무심했고 남은 자들의 가슴은 처참하고 애달프게 허물어졌다. 프로 축구단은 팬 없이 존재할 수 없다지만, 유럽식 축구 클럽과는 다른 설립 과정을 거친 국내 기업 구단들에게 팬은 하나의 보조 장식품일 뿐이었다. 기업 구단의 배신에 뒷통수를 얻어 맞은 팬들은 바짓가랑이 붙잡을 기회조차 잡지 못한 채 텅 빈 도시에 홀로 남아 어금니를 꽉 깨물 수 밖에 없었다.부천도 그렇게 축구단을 잃어버렸다. K-리그 최고의 서포터즈를 자처하던 부천의 서포터즈 '헤르메스'는 순식간에 존재의 위기를 맞이한다. 다른 팀간의 경기장을 찾아 억울함을 호소하고, A매치 경기장 안팎에서 사리에 맞지 않는 모 기업의 행위를 규탄도 해보지만 이미 벌어진 일은 되돌릴 수 없었다 그리고, 모두들 부천 축구와 헤르메스의 존재가 그렇게 사라지는 줄만 알았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K3에서 K-리그를 꿈꾸다하지만, 부천 서포터스 헤르메스는 이대로 무릎 꿇지 않았다. 기업이 철수한 공터에 모여 앉은 헤르메스는 기업 구단이 버려둔 이 곳에 시민 구단의 씨앗을 뿌리기로 결심한다. 2007년 12월 1일, K3리그 출범을 앞두고 정식 창단한 부천FC의 등장은 이들이 1년 여간 절치부심한 결과이자 한국 축구의 신기원이 열린 순간이다.
팬 주도로 클럽이 만들어진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특히, 대부분 대기업과 지방자치단체의 주도로 축구단이 창단한 국내에서 부천FC의 창단은 그 자체로 이미 혁신적인 성과다. 이것은 팬과 클럽이 태생적으로 한 몸일 수 밖에 없는 축구단의 등장이라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사실, K-리그 구단들이 팬을 의식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여전히 많은 팀들은 폐쇄적인 운영과 모기업 의존적 구조를 유지하며 '축구 클럽'이 아닌 '기업 구단'의 면모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기업의 이미지를 중시하고 모기업의 지원금에 의지하며 지자체 단체장들의 기침 한 번에 팀 존립이 위협받는 환경이 팬들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 K-리그에도 '시민 구단'을 자처하는 팀들이 늘어났지만, 대개의 경우 엄밀한 의미에서 (실은 그 정의가 모호한) '시민 구단'이 아니다. 기업 구단과 엇비슷한 구조를 가진 이 팀들은, 소유주가 기업이 아닌 지자체라는 것만 다를 뿐 같은 매카니즘으로 팀을 운용하고 있다. 사실, 팀이 누구의 소유이냐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팀의 운영이 축구적인 것과 팬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느냐의 여부가 프로 리그 성패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천FC는 이 지점에서 여타 기존 구단들과 다른 길을 걷고 있다.창단 2년차인 부천FC의 현황은 아직 초라하다. 서른 명이 넘는 선수단은 야식 배달원, 헬스 트레이너, 공장 노동자 등 다양한 본업을 가진 '연봉 0원'의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른바 '주경야축', 즉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차는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축구를 통해 버는 수입은 출전수당으로 받는 몇 십 만원이 전부다. 하지만, 부천FC는 오히려 낙관적이다. 1천 명이 넘는 유료 관중은 많지 않은 숫자지만 일부 K-리그 팀들의 유료 관중 수와 비교하면 도리어 기적적인 수준이다. 스폰서십 계약도 무시할 수 없는 성과다. '다음', 'SK에너지', '자생한방병원' 등 6개의 기업체가 현금과 현물 후원 업체로 나섰다. 지역 업체들의 적극적 지원도 눈에 띈다. 덕분에 지난 해 부천FC는 8천만원의 흑자를 냈다. 수 만 명 관중이 드나든다는 K-리그에서도 달성할 수 없는 놀라운 성과다.
이와 같은 성과가 가능한 것은 부천FC가 '팬'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운 구단이기 때문이다. 한 번 팀을 잃은 기억이 있는 팬들은 구단 스폰서 기업이 생산하는 물품을 적극적으로 애용하고 구단명이 널리 홍보될 수 있는 방안을 늘 강구한다. '내가 되살린 팀'이라는 자부심과 축구를 향한 애정이 만나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이다.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부천FC의 신동민 마케팅이사에 따르면 유료 관중 3,000명을 달성해야 장기적 생존이 가능하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K3에서 머물 때의 이야기다. 승강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어 내셔널리그를 거쳐 K-리그로 복귀하게 된다면 현재의 재정으로는 1년 운영도 어림없는 소리다. 그래도 이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힘든 여건 속에서도 늘 즐거운 마음으로 경기장에 오르는 선수들과 무보수 자원봉사로 팀의 한 경기 한 경기를 밀고 끄는 서포터스들의 마음 속에는 같은 꿈이 자리하고 있다. 2017년까지의 팀 운영 계획을 짜둔 '10년 마스터 플랜'은 당장의 어려움을 가볍게 만들어주는 보물지도와 같다. 10년 안에 K-리그로 복귀하겠다는 부천FC의 꿈은 멀고도 험난해 보이지만, '팬들'의, '팬들'에 의한, '팬들'을 위한 팀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 기업 구단과 다른 출발점에서 장밋빛 미래를 꿈꾸는 부천FC의 도전은 그래서 한국 축구의 새로운 발견이자 희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