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성서해석을 위해 알아야 할 기본조건

서영희2009.07.05
조회682
올바른 성서해석을 위해 알아야 할 기본조건

성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다양한 비평적 방법들을 동원해 면밀한

분석과 해석의 작업을 거쳐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읽는 그대로

해석하고 이해하다 보면 장님 코끼리 만지기나 동문서답식의 해석

을 하게된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 마 16 : 15 ) 라고 물었을 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이다.

( 16절 )고 답하자 예수는 베드로를 칭찬하고서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 18절 )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역사비평과 문학비평을

잠깐만 해봐도 상당한 것을 알아낼 수 있다.

 

즉  이 말에서 예수는 교회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 말은 원래 희

랍의  정치 집회를  의미하는 단어였으며 예수당시까지도 그런 의미

로 사용되었던 말이다.

 

에클레시아는 기독교가 유대교로부터 완전히 독립해서 새로운 공동

체를  형성한 후에야  교회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므로 예수 당시에

는 교회라는 뜻의 이 말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예수가  베드로에게 이 18절의 말을 했을 수가 없다. 왜냐

하면  당시의 제자들은 교회라는 용어를 전혀 모르고 있었으므로 그

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의 이 말은  예수가 한 말이 아니라 후대에 초대교회 신

학을  정립하면서  그들 신학자들의 의도에 맞추어서 첨가된 것이라

고 봐야한다. 이 말은 초대교회 공동체 공통의 신앙고백이었던 것이

다. 따라서 이 말을 예수 자신의 말로까지 권위를 갖게 하는 것은 문

제가 있다.

 

.....

 

중세기  카톨릭 교회가 성서에 관한 권한은 오로지 교황에게만 있고

교황의 대리인인  사제들이 실질적인 해석자의 역활을 할 수 있다고

고 했던 것은 지나친 독선이며 성서에 대한 독점이다.

 

그러나 루터가 말한 만인제사장설 역시 심각한 문제를 지나고 있다.

 

전문적인 지식과 전문적인 직업을 통해서만  정확한 의미와 뜻을 알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누구든지 읽고 해석할 수 있다고 함

으로써  지나치게 자의적인 해석, 즉 귀에 걸면 귀걸이 토에 걸면 코

걸이식에  불과한  성서해석이라는  결과를 낳았고 지금까지 심각한

부작용을 빚고 있다.

 

특히 아무나 성서를 읽고 해석할 수 있다는 루터의 만인 제사장설은

축자영감설에 엄청나게 큰 공헌을 했다. 아무나 읽고 해석하는 자유

는 누구나 읽고 문자 그대로 이해하면 그만이니까 말이다.

 

당연히  성서를  읽는 것은 아무나 해도 좋다. 그리고 자신의 신앙의

정도에  따라 혹은 자신의 신앙에 비추어 스스오레게 적합한 해석을

해보고 의미를 찾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자의적이고 제멋대로인 성서해석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

거나 선포하는 것처럼 공적인 성격을 띠게 하는 것은 커다란 잘못이

다. 많은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성서해석은  전문적인 지식과 훈련의  과정을 거친 신학자와 신학을

배운 목회자들에게 맡겨져야 한다.  그리고  목회자들은 신학자들로

부터 배운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그 배운 것을 목회 현장에서잘

적용해야 한다.

 

물론 그대로 실행하면 당장 교인을 모으고 교회의 양적 팽창을 도모

하는 데 힘이 들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원칙은 잃지 말아야 한다.

 

옳은 것을 틀렸다고 말하고 틀린 것을 옳다고 말하는 죄악은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신학교에서 위에서 말한 성서해석 방법론을

가르친다. 거의 모든 성서신학자들은 특히 외국에서 학위를 한 학자

들은 이와 같은 방법을 바탕으로 공부를 하고 논문을 쓰고 거기에발

맞춰 학위를 받는다.

 

그런데 교회의 목사들은 이런 신학적 성서해석론을 무시한 채 자의

적이고 근본주의적  해석을 해서 설교한다. 단지 그뿐만이 아니다.

상당수  목사들은 성서를 신학적 방법론을 바탕으로 해석을 가르치

는 신학자와 목회자들을 이단이라고 공격한다.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제대로 교인들을 가르치지 않아서 야단 맞아야 할 자리에 있는 자들

이  교인들이 많고 교권을 쥐고 있다는 그 한 가지 이유로 오히려 올

바른  소리를 하는  신학자들을 공격하고 매도하며 몰아세우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왜 이런 잘못된 병폐를 시정하지 않고 계속 내버려두는

가 ? 지금 당장은 그런 편법이 교인들을 모르고 모인 교인들 유지하

는데  유리할 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편법과 불의가 얼마나 갈것인

가. 결국에는 교회가 스스로를 망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문제는  단순히 교회가 망가진다는 데 있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

회가  손실을 입어 하나님의 선교와 구원의 역사가 타격을 입는다는

것에 있다.

 

흔히들 성서는 인간적인 이성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거기

에는 하나님의  불가사의하고 초월적이며 초자연적인 개입이있으므

로  이성으로만 이해하려들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기적과 은사를

믿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언뜻 듣기에는 맞는 말 같기도 하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인간의 이성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는말

자체가 곧 인간의 이성적합리적 논리를 도입한 말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초월적인 분이며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진 분이라는 말 자

체가  얼마나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며 인간 이성의 도움을 받아야만

나올 수 있는 판단인가 !

 

인간  이성의  도움없이는 이러한 판단자체가  불가능하고 하나님에

대한 원초적인 개념을 설정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즉 이성은 아이

러니하게도  하나님의 존배와 그 역사를 인식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능력이요.  동시에 가장 중요한 기능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할 때 하나님에 대해서

말할 때  그에 대한 신앙을 말할 때 이성의 끈을 끝까지 놀아서는 안

된다.

 

이성의 힘으로 완전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인간이 가진 모

든  능력 중에서 가장 완성에 가깝게 다다갈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이

성이며  그것이야말로  위험에 빠지는 것을 막아줄 최후이자 유일한

보루이기 때문이다.

 

....

 

중요하고  어려운 것일수록 더욱 안전장치를 강화하듯이 신앙 역시

영적  세계를 좌우하는 중요한 것이기에 이중삼중의 안전장치를 해

야한다.

 

따라서 올바른 성서해석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열심히 공부하고 배

우는 것뿐이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1 : 12 에서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으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그리스도의 계시는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 디모데 후서 3 : 14 ) 라고 하였듯이

배워야만 제대로 알고 깨닫고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

 

추락하는 한국교회 _ 이 상성 지음

잘못된 종말론을 낳은 엉터리 성서해석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