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한 후에 계속 말씀을 듣고 실천하며 경건 훈련을 하지 않는 사람은 영적으로 유아상태에 놓여 있어, "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 하는 자이다.
이와 같은 성도는 인격 전반에서 "불안정성"이 특징인 "경계선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과 같은 삶을 살게 된다. 이들은 자기정체성도 불분명하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도 불안정적이다. 정서적으로도 불안정하며 자신의 기도와 기대에 하나님이 응답을 조금이라도 늦게 하시면 안절부절 못하며 분노를 터뜨리는 증상을 드러낸다.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 중에서 마지막 열매인 자기절제의 열매가 부족하여 자기파괴적인 충동적 행동을 드러낸다. 성도들과 목회자와 교회와의 관계에서 "이상화"와 "비하" 의 양극단을 오가는 불안정한 대상관계를 형성한다.
중생단계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음으로 받아드리는 마음의 눈이 열린 후에 전체적으로 마음의 눈이 열려가는 성숙을 경험하지 못하는 성도들도 있다. 삶과 신앙을 전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부분적으로 보며 지나치게 세부적인 것에만 집착하는 이들은 "강박적 성격장애" 의 증상을 신앙생활에서 드러낸다.
이들은 자신이 경험한 신앙세계를 마치 전부인양 그리고 최고의 것으로 고집하며 다른 신앙인들의 이야기를 수용하려고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전체적인 뜻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약하기 때문에 부분적인 현상 몇가지를 연결지어 하나님의 뜻으로 동일시하며 확대 해석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말씀의 정신은 깨닫지 못하고 율법주의적인 삶을 신앙의 성숙으로 착각한다. 신경증적인 완벽주의를 "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고 거룩하고 흠이 없는 것" 으로 혼동한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유지나 성도들과의 교제와 나눔을 소중하게 생각하기보다는 , 봉사나 활동에 균형을 잃을 만큼 에너지를 쏟는다.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면서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보고 견딜 수 없어하며 왜곡된 정의감으로 분노를 표현하기도 한다. 이들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과 용서와 긍휼을 충분히 수용하여 사고하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타인을 수용할 수 있는 포용력이 매우 좁다.
영적인 유아상태에서 나타나는 신자의 연약한 모습에 대하여
중생한 후에 계속 말씀을 듣고 실천하며 경건 훈련을 하지 않는 사람은 영적으로 유아상태에 놓여 있어, "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 하는 자이다.
이와 같은 성도는 인격 전반에서 "불안정성"이 특징인 "경계선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과 같은 삶을 살게 된다. 이들은 자기정체성도 불분명하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도 불안정적이다. 정서적으로도 불안정하며 자신의 기도와 기대에 하나님이 응답을 조금이라도 늦게 하시면 안절부절 못하며 분노를 터뜨리는 증상을 드러낸다.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 중에서 마지막 열매인 자기절제의 열매가 부족하여 자기파괴적인 충동적 행동을 드러낸다. 성도들과 목회자와 교회와의 관계에서 "이상화"와 "비하" 의 양극단을 오가는 불안정한 대상관계를 형성한다.
중생단계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음으로 받아드리는 마음의 눈이 열린 후에 전체적으로 마음의 눈이 열려가는 성숙을 경험하지 못하는 성도들도 있다. 삶과 신앙을 전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부분적으로 보며 지나치게 세부적인 것에만 집착하는 이들은 "강박적 성격장애" 의 증상을 신앙생활에서 드러낸다.
이들은 자신이 경험한 신앙세계를 마치 전부인양 그리고 최고의 것으로 고집하며 다른 신앙인들의 이야기를 수용하려고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전체적인 뜻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약하기 때문에 부분적인 현상 몇가지를 연결지어 하나님의 뜻으로 동일시하며 확대 해석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말씀의 정신은 깨닫지 못하고 율법주의적인 삶을 신앙의 성숙으로 착각한다. 신경증적인 완벽주의를 "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고 거룩하고 흠이 없는 것" 으로 혼동한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유지나 성도들과의 교제와 나눔을 소중하게 생각하기보다는 , 봉사나 활동에 균형을 잃을 만큼 에너지를 쏟는다.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면서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보고 견딜 수 없어하며 왜곡된 정의감으로 분노를 표현하기도 한다. 이들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과 용서와 긍휼을 충분히 수용하여 사고하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타인을 수용할 수 있는 포용력이 매우 좁다.
- 목회와 신학 2004년 6월호에 실린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