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샤를 드 푸코]

박선화2009.07.07
조회850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 샤를 드 푸코 -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사랑 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뿐입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선택입니다.

 

내가 아무리 마음을 쏟아 다른 사람을 돌보아도

그들은 때로 보답도 반응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신뢰를 쌓는데는 여러 해가 걸려도,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라는 것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인생은 무엇을 손에 쥐고 있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믿을 만한 사람이 누구인가에 달려있음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의 매력이라는 것은 15분을 넘지 못하고,

그 다음은 무엇을 알고 있느냐가 문제임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최대치에 나 자신을 비교하기보다는

내 자신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인생은 무슨 사건이 일어났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일어난 사건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무엇을 아무리 얇게 베어낸다 해도 거기에는

언제나 양면이 있다는 것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사랑의 말을 남겨 놓아야 한다는 것을.

 

어느 순간이

우리의 마지막의 만남이 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해야 할 일을 하면서도

 

그 결과에 대해서는 마음을 비우는 자들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영웅임을

나는 배웠습니다.

 

사랑을 가슴 속에 넘치게 담고 있으면서도

이를 나타낼 줄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음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나에게도 분노할 권리는 있으나 타인에 대해 몰인정하고

잔인하게 대할 권리는 없다는 것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진정한 우정은 끊임없이 두터워진다는 것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도 이와 같다는 것을.

내가 바라는 방식대로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해서

나의 모든 것을 다해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이

아님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또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친구라고 해도 때때로 그들이 나를 아프게 하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타인으로부터 용서를 받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고 내가 내 자신을 때로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아무리 내 마음이 아프다고 하더라도

이 세상은 내 슬픔 때문에 운행을 중단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환경이 영향을 미친다고 하더라도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의 책임인 것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서로 다툰다고 해서 서로가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님을.

그리고 우리들이 서로 다투지 않는다고 해서

서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밖으로 드러나는 행위보다

인간 자신이 먼저임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한가지 사물을 바라보면서도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앞과 뒤를 계산하지 않고 자신에게 정직한 사람이

결국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서 앞선다는 것을.

 

내가 알지도 보지도 못한 사람에 의하여

내 인생의 진로가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사람들을 도울 힘이 내게 없다고 생각할 때에도

사람들이 내게 울면서 매달릴 때에는

여전히 그를 도울 힘이 나에게 남아 있음을

나는 배웠습니다.

 

글을 쓰는 일이 대화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 마음의 아픔을 덜어준다는 것을

나는 배웠습니다.

 

나는 배웠습니다.

내가 너무나 아끼는 사람들이

너무나 빨리 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을.

 

그리고 정말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타인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과

나의 믿는 바를 위해 내 입장을 분명히 한다는 것,

이 두 가지 일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나는 배우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것과 사랑을 받는 것을.....

 

  

I can learn (Syareul de Foucault)

I can learn
Can make other people who do not love me
I can learn.

If I can do
That a person is to be loved.
Love is the choice of the people you love.

I also take care of other people even if their heart
They sometimes do not give a reaction
I can learn.

The sun takes a number of confidence building,
It is a fast collapse
I can learn.

What is holding your life depends on it,
It depends on who has been reliable canonicalization
I can learn.

Exceed the 15 minutes that we have the charm of,
Know what the problem is that the imdo
I can learn.

Compare myself to other people, rather than the maximum
Me to compare myself to the maximum
I can learn.

And also I can learn.
In life with what happened, but
Depends on how you cope with what happened is.

There are, no matter how thin you can pay what Bear
There are always two sides that I can learn.

I can learn.
For those who love
I put the words of love that is always left.


One moment
We will be the last of the time, no one can not know.
But we need to do

Emptying the mind about the results they
Is a hero in the true meaning
I have learned.

Contained in the flood absolutely loved breasts
In line to indicate that people do not know
I can learn.

To me, but for others bunnohal rights and the inhumanity
There is no right to treat cruelly
I can learn.

No matter how far away we have
A true friendship that constantly lose duteowo
I can learn.

And that is the love.
I do not love me the way you want
I love you do not have to do everything that is not good
I can learn.

Also, I can learn.
No matter how good a friend do it and sometimes they hurt me,
Even so you have to forgive them that.

And receive forgiveness from others, not enough
Sometimes you have to forgive myself that I
I can learn.

I can learn.
Even if my heart was sick
This world does not stop the operation because of my sorrow
I can learn.

The environment does influence
I have some people that are
Myself only to the liability of
I can learn.

We fight together, they do not love each other, is not it.
And we do not quarrel with each other and
I did not love each other, it
I can learn.

Behavior emerges out of the more
That I may learn his first human.

If you look at things two people as one
Completely different to see it
I can learn.

And! Also, I can learn.
Not calculated back to yourself in front of an honest man
After all we live in the place that overstepping like a boundary.

I did not even know the person by
Could change the course of my life that
I can learn.

I can learn.
We no longer have the power to help people think about me, even when not
Crying to me when people keep it up
I still have the power to help him to remain
I have learned.

Writing, as well as 12 to discuss
Give my heart to ease the pain of
I have learned.

I have learned.
People I care about so much
To leave this world so quickly.

And I really
I can learn.

That of others does not hurt
I believe that my position for my bar, and
To distinguish between the two is strictly a job
How much is difficult to
I can learn.

I can learn.
I love to receive the love .....

I can learn (Syareul de Foucault) 

 

 

 

어느 날 푸코는 나무를 보면서 깊은 깨달음을 얻는다

 

나무는 ,

떨어지는 자신의 잎이나 부서져 나가는 가지에 대해

아무런 염려를 하지 않는다.

떨어지지 못하도록 기를 쓰거나 떨어지는 것을 잡으려고

전혀 안달하지도 않는 것이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저 의연할 뿐이었다.

 

그렇다면 전능하신 창조주 하느님을 믿는 자들이

떨어져 나가는 재물(財物)이나 건강이나 생명 때문에

염려하고 절망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하찮은 나무보다도 더 못한 존재로

전락(顚落)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느님을 믿는 믿음으로

근심하거나 탄식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 뒤 ‘하느님을 믿는 자에게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하느님을 믿는 자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하느님을 믿는 것이다’ 고 말하였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 하였다.

‘하느님을 믿는 자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느님을 향한 신앙이다...’

 

샤를 드 푸코(Charles de Foucauld)

 

  




근대 프랑스가 낳은 가장 위대한 수도자였던

샤를 드 푸코 (Charles de Foucauld)는 1858년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크에서 태어났다. 당시 프랑스는 가톨릭

 

국가였기에 그 역시 태어나면서부터 신자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어린 나이에 양친(兩親)을 여의면서

그는 신앙의 길을 버리게 된다. 그리고 육군사관학교에 진학,

장교가 되어 북아프리카에서 일어난 반란군 진압에 투입되어,

상관의 명령에 따라 반란군의 심장을 겨누어 총을 쏘면서

그는 인생에 대하여 큰 회의(懷疑)를 느끼게 된다.

 

그 후 군대를 스스로 떠나 학자로서 모로코를 탐험하던 중,

그 곳의 이슬람 교도들이 깊은 신앙 속에서 신앙을 따라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하느님을 향해 시선(視線)을 돌리고

다시 가톨릭으로 귀의(歸依)한다. 그리고 오랜 기간 동안의

수도원 생활을 거쳐 그의 나이 43세 되던 1901년 신부 서품을 받은 후,

당시 세상에서 가장 버림받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여겨지던

아프리카 사하라의 베니아베스로 들어가, 1916년 12월

한 토착민이 쏜 총에 맞아 숨질 때까지 15년 동안 그곳에서

원주민들과 더불어 살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