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나의 친구는 네이트온에 나의 정치적 경향의 글을 만류했다. 자신의 옷밥만 찾는 사람들에게 정치는 먼 나라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들은 나이 30, 40대로 자신들만의 영악함과 순수함으로 살아오면서 굳어진 철학이 쉽게 무너질 리 없다는 논리였다. 차라리 그들은 자신들의 자유와 권리가 어느 순간 일시에 박탈되어야만, 제 정신을 차릴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친구의 주장이 옳지 않다고 반박했다.
나는 “그들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지 않고, 외면해 버린다면 이 나라와 민족의 미래는 없다.”고 주장했다. 친구는 웃으며, “너의 뜻은 알겠는데, 그들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며, “오히려 그들에게 역작용이 나타나지 않을까?”라고 의문을 제시했다. 나는 “그들 중에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의 글과 그림을 보고 새로운 사실과 주장에 눈을 뜨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1950년 피비린내 나는 6.25전쟁 이후에, 57년의 세월 동안 남북은 서로 자신의 체제가 우월하다며 핏대를 세웠다. 지금까지 북한 정권은 주민들을 굶주림에 몰아가면서까지, 자신들의 체제 우월성을 강조하고 내세우고 있다. 도대체 정치가 무엇이기에, 소수의 권력자들이 다수의 사람들을 고통 속에 몰아넣고 있는가? 문제는 북한만이 아니라 남한에서도 국가를 개인 소유화하여 독재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북한 주민들이 잃어버린 자유를 되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흘러도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듯이, 우리도 소중한 자유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북한과 마찬가지로 독재국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다수의 국민들은 간과하고 있다. 민주국가였던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사례를 일반인들이 정성껏(?) 찾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다. 보수언론들이 조장하는 현실왜곡 때문이다.
나는 노동자의 문제를 남의 일처럼 만드는 기막힌 언론플레이에 깜짝 놀란다. 1천만 노동자의 문제는 4인 가족기준으로 4천만 명의 국민 대다수의 문제이지만, 누가 노동자의 문제에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는가? 보수언론들은 노동자들이 해고 및 저임금에 견디다 못해서, 시위를 하면, 고작 귀족 노조와 폭력시위를 앞세워 물타기 작전에 혈안이다. 회사 경영의 어려운 점은 부각시키면서도, 생계문제로 깊은 시름에 젖은 노동자를 조명하는 보수언론은 없다.
자신과 아들과 딸 그리고 친구가 노동자인 것도 모르고, 노동자들의 입장에 반대하는 정치세력에게 표를 던진다. 노동자도 우리의 가족이고, 이웃이란 사실을 잊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나의 글과 그림이 자각하는 계기를 줄 수 있다면, 그까짓 비난과 욕설의 댓글은 감수할 수 있다. 어찌, 정치가 일부 특별한 사람들의 향유물인가? 국회에서 만들어지는 정책 하나에 죽고 사는 세상이란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한 나의 작은 몸부림을........
인터넷 게시판에서 자신들의 룰(rule)을 지키고자 온갖 비난과 욕설을 퍼붓고 있지만, 정작 자신들이 간직해야 할 자유와 권리가 훼손되는 것을 꿈에도 모르고 있는 사람들. 하지만, 나는 그들도 껴안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들의 옷밥도 중요하고, 그들의 사랑과 이별 그리고 취미와 경향도 모두 엄존하는 현실이다. 그들의 웃음과 울음 그리고 고독과 괴로움이 크고 작아도 모두 소중하다. 남북평화통일만 되면, 오히려 부질없는 것은 이념논쟁이다. 분단의 설움이 없는 외국인들처럼 개인의 자유와 권리 그리고 옷밥이 중요시되는 그런 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그림 5장에 광분하는 사람들에게.......
그림 5장에 광분하는 사람들에게.......
얼마 전 나의 친구는 네이트온에 나의 정치적 경향의 글을 만류했다. 자신의 옷밥만 찾는 사람들에게 정치는 먼 나라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들은 나이 30, 40대로 자신들만의 영악함과 순수함으로 살아오면서 굳어진 철학이 쉽게 무너질 리 없다는 논리였다. 차라리 그들은 자신들의 자유와 권리가 어느 순간 일시에 박탈되어야만, 제 정신을 차릴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친구의 주장이 옳지 않다고 반박했다.
나는 “그들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지 않고, 외면해 버린다면 이 나라와 민족의 미래는 없다.”고 주장했다. 친구는 웃으며, “너의 뜻은 알겠는데, 그들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며, “오히려 그들에게 역작용이 나타나지 않을까?”라고 의문을 제시했다. 나는 “그들 중에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의 글과 그림을 보고 새로운 사실과 주장에 눈을 뜨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1950년 피비린내 나는 6.25전쟁 이후에, 57년의 세월 동안 남북은 서로 자신의 체제가 우월하다며 핏대를 세웠다. 지금까지 북한 정권은 주민들을 굶주림에 몰아가면서까지, 자신들의 체제 우월성을 강조하고 내세우고 있다. 도대체 정치가 무엇이기에, 소수의 권력자들이 다수의 사람들을 고통 속에 몰아넣고 있는가? 문제는 북한만이 아니라 남한에서도 국가를 개인 소유화하여 독재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북한 주민들이 잃어버린 자유를 되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흘러도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듯이, 우리도 소중한 자유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북한과 마찬가지로 독재국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다수의 국민들은 간과하고 있다. 민주국가였던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사례를 일반인들이 정성껏(?) 찾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다. 보수언론들이 조장하는 현실왜곡 때문이다.
나는 노동자의 문제를 남의 일처럼 만드는 기막힌 언론플레이에 깜짝 놀란다. 1천만 노동자의 문제는 4인 가족기준으로 4천만 명의 국민 대다수의 문제이지만, 누가 노동자의 문제에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는가? 보수언론들은 노동자들이 해고 및 저임금에 견디다 못해서, 시위를 하면, 고작 귀족 노조와 폭력시위를 앞세워 물타기 작전에 혈안이다. 회사 경영의 어려운 점은 부각시키면서도, 생계문제로 깊은 시름에 젖은 노동자를 조명하는 보수언론은 없다.
자신과 아들과 딸 그리고 친구가 노동자인 것도 모르고, 노동자들의 입장에 반대하는 정치세력에게 표를 던진다. 노동자도 우리의 가족이고, 이웃이란 사실을 잊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나의 글과 그림이 자각하는 계기를 줄 수 있다면, 그까짓 비난과 욕설의 댓글은 감수할 수 있다. 어찌, 정치가 일부 특별한 사람들의 향유물인가? 국회에서 만들어지는 정책 하나에 죽고 사는 세상이란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한 나의 작은 몸부림을........
인터넷 게시판에서 자신들의 룰(rule)을 지키고자 온갖 비난과 욕설을 퍼붓고 있지만, 정작 자신들이 간직해야 할 자유와 권리가 훼손되는 것을 꿈에도 모르고 있는 사람들. 하지만, 나는 그들도 껴안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들의 옷밥도 중요하고, 그들의 사랑과 이별 그리고 취미와 경향도 모두 엄존하는 현실이다. 그들의 웃음과 울음 그리고 고독과 괴로움이 크고 작아도 모두 소중하다. 남북평화통일만 되면, 오히려 부질없는 것은 이념논쟁이다. 분단의 설움이 없는 외국인들처럼 개인의 자유와 권리 그리고 옷밥이 중요시되는 그런 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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