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에 앞서, 7월 9일 공개변론은 아무런 의미도 없이 끝났다. 변호사들의 태도는 눈 뜨고 봐 줄 수 없을 정도로 대책없이 성의가 없었고 그 재판정에 참여한 몇몇 여성들의 태도 역시 봐 줄 수가 없었다.이번 변론이 완벽한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그토록 나라의 일에 관심이 없는 변호사들의 태도와 변함없이이기적이기만 한 '한국형 페미니스트'들의 행태를 보며 나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그들의 이기심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논리로 같은 이기심과 폭력으로 대응하면 나 역시 그들과 다를 바가 없으므로 이렇게,나는 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올바름을 얻으려 한다. 한국형 페미니즘(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하고 이기심 있는 페미니즘)의 시작은 "오천년간 한국 여성들은 억압만을 받아왔고 이제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여자도 기를 펴고 살아야 한다."라는 복수로 가득찬(?) 논리로 시작한다.한국형 페미니스트들의 말로는, 반만년 한반도의 역사는 '여성 억압의 역사'라고 하는데 이러한 말은 '언어도단'이라는 것을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혹시 드라마 '선덕여왕'과 '태왕사신기'를 본 적이 있는가?드라마에서 보면, 여성들이 제사장의 역할을 맡는 것으로 나오는데 실제로 역사서를 뒤져보면삼국 시대까지는 '고대 모계 사회'의 흔적이 남아있어 삼국시대에는 여성들이제사장을 역임했고 제례를 주관했다고 나온다. 이들의 권력은 부족과 각 군단의 대장과맞먹었다고까지 전해지니 여기서부터 '여성 억압 시대' 라는 말은 '근거없는 허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신라시대에는 진덕, 선덕, 진성 이 세 명의 여왕마저 존재했으니 여성도 권력을 누릴 수 있었다는 것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뿐인가? 선덕 여왕은 세 명의 남편을 두기까지 했고, 신하들이선덕 여왕을 위해 남편을 여럿 두는 제도까지 만들었으니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최초의 화랑마저 여성이었으니 이는 한반도의 여성들의 권리가 유럽을 비롯한 서구 문명과도비교해 굉장히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증거들은 고구려에서도 나오는데 고구려에서 실시한 서옥제, 즉 데릴사위제 역시남녀 평등을 넘어 여성들의 권리가 남성들을 뛰어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구체적증거라 할 수 있겠다. 고려 시대에도, 겉보기엔 남성 우월주의 사회였지만 여성들의 발언권도 만만치 않아서여성들도 호주가 될 수 있었다. 족보도 남녀에 차등을 두지 않고 나이순으로 기재했으며결혼 시에도 여성의 집안의 위세가 더 크면 자식들이 어머니의 성을 따랐다고 한다.'출가 외인'이니 하는 말은 고려 시대엔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이혼과 재혼도 다른 서구 문명과 대국(大國)에 비해 자유로워서 재력만 된다면여성들이 재혼과 이혼을 했다고 전해지니 여성들이 억압받았다는 말은 거짓말인 것이다. 물론, 여성들을 그나마 억압했던 조선시대가 있긴 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외활동을 하는 남성보다는여성의 '집안에서의 권리'가 좀 더 강했으며 여성들이 순결을 강요당했다는 말도'어을우동'을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요즘, 호주제 폐지를 외치는 여성부와 그 밑의 남성들은 "오천년간 여성들의 억압만을 받아왔다"고 떠들면서"단지 몇 백년 조선시대에 있었던 여성 억압을 현대까지 이어오랴?"라고 항변하는 모양이나 이는 삼척동자라도 금방 알 수 있는 자승자박의 논리일 뿐이고스스로 사학적, 논리적 오류를 만드는 것임에 불과하니아이러니라 아니할 수 없겠다. 반대 눌러놓고 반박 덧글은 안 다시는 분들은 인격 수준과 두뇌 활동 수준이 어린애 수준이라고 보겠습니다.욕과 비속어, 인신비하성 발언시 즉시 사이버 수사대에 신고 조치하고 고소할 것입니다.글을 쓰기에 앞서, 7월 9일 공개변론은 아무런 의미도 없이 끝났다. 변호사들의 태도는 눈 뜨고 봐 줄 수 없을 정도로 대책없이 성의가 없었고 그 재판정에 참여한 몇몇 여성들의 태도 역시 봐 줄 수가 없었다.이번 변론이 완벽한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그토록 나라의 일에 관심이 없는 변호사들의 태도와 변함없이이기적이기만 한 '한국형 페미니스트'들의 행태를 보며 나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그들의 이기심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논리로 같은 이기심과 폭력으로 대응하면 나 역시 그들과 다를 바가 없으므로 이렇게,나는 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올바름을 얻으려 한다. 한국형 페미니즘(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하고 이기심 있는 페미니즘)의 시작은 "오천년간 한국 여성들은 억압만을 받아왔고 이제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여자도 기를 펴고 살아야 한다."라는 복수로 가득찬(?) 논리로 시작한다.한국형 페미니스트들의 말로는, 반만년 한반도의 역사는 '여성 억압의 역사'라고 하는데 이러한 말은 '언어도단'이라는 것을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혹시 드라마 '선덕여왕'과 '태왕사신기'를 본 적이 있는가?드라마에서 보면, 여성들이 제사장의 역할을 맡는 것으로 나오는데 실제로 역사서를 뒤져보면삼국 시대까지는 '고대 모계 사회'의 흔적이 남아있어 삼국시대에는 여성들이제사장을 역임했고 제례를 주관했다고 나온다. 이들의 권력은 부족과 각 군단의 대장과맞먹었다고까지 전해지니 여기서부터 '여성 억압 시대' 라는 말은 '근거없는 허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신라시대에는 진덕, 선덕, 진성 이 세 명의 여왕마저 존재했으니 여성도 권력을 누릴 수 있었다는 것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뿐인가? 선덕 여왕은 세 명의 남편을 두기까지 했고, 신하들이선덕 여왕을 위해 남편을 여럿 두는 제도까지 만들었으니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최초의 화랑마저 여성이었으니 이는 한반도의 여성들의 권리가 유럽을 비롯한 서구 문명과도비교해 굉장히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증거들은 고구려에서도 나오는데 고구려에서 실시한 서옥제, 즉 데릴사위제 역시남녀 평등을 넘어 여성들의 권리가 남성들을 뛰어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구체적증거라 할 수 있겠다. 고려 시대에도, 겉보기엔 남성 우월주의 사회였지만 여성들의 발언권도 만만치 않아서여성들도 호주가 될 수 있었다. 족보도 남녀에 차등을 두지 않고 나이순으로 기재했으며결혼 시에도 여성의 집안의 위세가 더 크면 자식들이 어머니의 성을 따랐다고 한다.'출가 외인'이니 하는 말은 고려 시대엔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이혼과 재혼도 다른 서구 문명과 대국(大國)에 비해 자유로워서 재력만 된다면여성들이 재혼과 이혼을 했다고 전해지니 여성들이 억압받았다는 말은 거짓말인 것이다. 물론, 여성들을 그나마 억압했던 조선시대가 있긴 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외활동을 하는 남성보다는여성의 '집안에서의 권리'가 좀 더 강했으며 여성들이 순결을 강요당했다는 말도'어을우동'을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요즘, 호주제 폐지를 외치는 여성부와 그 밑의 남성들은 "오천년간 여성들의 억압만을 받아왔다"고 떠들면서"단지 몇 백년 조선시대에 있었던 여성 억압을 현대까지 이어오랴?"라고 항변하는 모양이나 이는 삼척동자라도 금방 알 수 있는 자승자박의 논리일 뿐이고스스로 사학적, 논리적 오류를 만드는 것임에 불과하니아이러니라 아니할 수 없겠다. ----------------------------------------------------------------------------------------------- 반대 눌러놓고 반박 덧글은 안 다시는 분들은 인격 수준과 두뇌 활동 수준이 어린애 수준이라고 보겠습니다.욕과 비속어, 인신비하성 발언시 즉시 사이버 수사대에 신고 조치하고 고소할 것입니다.조회수가 말이 아니라서 재등록합니다.
페미니즘의 사학적 오류
변호사들의 태도는 눈 뜨고 봐 줄 수 없을 정도로 대책없이 성의가 없었고
그 재판정에 참여한 몇몇 여성들의 태도 역시 봐 줄 수가 없었다.
이번 변론이 완벽한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토록 나라의 일에 관심이 없는 변호사들의 태도와 변함없이
이기적이기만 한 '한국형 페미니스트'들의 행태를 보며 나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이기심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논리로
같은 이기심과 폭력으로 대응하면 나 역시 그들과 다를 바가 없으므로 이렇게,
나는 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올바름을 얻으려 한다.
한국형 페미니즘(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하고 이기심 있는 페미니즘)의 시작은
"오천년간 한국 여성들은 억압만을 받아왔고 이제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여자도 기를 펴고 살아야 한다."
라는 복수로 가득찬(?) 논리로 시작한다.
한국형 페미니스트들의 말로는, 반만년 한반도의 역사는 '여성 억압의 역사'라고 하는데
이러한 말은 '언어도단'이라는 것을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혹시 드라마 '선덕여왕'과 '태왕사신기'를 본 적이 있는가?
드라마에서 보면, 여성들이 제사장의 역할을 맡는 것으로 나오는데 실제로 역사서를 뒤져보면
삼국 시대까지는 '고대 모계 사회'의 흔적이 남아있어 삼국시대에는 여성들이
제사장을 역임했고 제례를 주관했다고 나온다. 이들의 권력은 부족과 각 군단의 대장과
맞먹었다고까지 전해지니 여기서부터 '여성 억압 시대' 라는 말은 '근거없는 허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신라시대에는 진덕, 선덕, 진성 이 세 명의 여왕마저 존재했으니 여성도 권력을 누릴 수 있었다는
것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뿐인가? 선덕 여왕은 세 명의 남편을 두기까지 했고, 신하들이
선덕 여왕을 위해 남편을 여럿 두는 제도까지 만들었으니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최초의 화랑마저 여성이었으니 이는 한반도의 여성들의 권리가 유럽을 비롯한 서구 문명과도
비교해 굉장히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증거들은 고구려에서도 나오는데 고구려에서 실시한 서옥제, 즉 데릴사위제 역시
남녀 평등을 넘어 여성들의 권리가 남성들을 뛰어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구체적
증거라 할 수 있겠다.
고려 시대에도, 겉보기엔 남성 우월주의 사회였지만 여성들의 발언권도 만만치 않아서
여성들도 호주가 될 수 있었다. 족보도 남녀에 차등을 두지 않고 나이순으로 기재했으며
결혼 시에도 여성의 집안의 위세가 더 크면 자식들이 어머니의 성을 따랐다고 한다.
'출가 외인'이니 하는 말은 고려 시대엔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이혼과 재혼도 다른 서구 문명과 대국(大國)에 비해 자유로워서 재력만 된다면
여성들이 재혼과 이혼을 했다고 전해지니 여성들이 억압받았다는 말은 거짓말인 것이다.
물론, 여성들을 그나마 억압했던 조선시대가 있긴 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외활동을 하는 남성보다는
여성의 '집안에서의 권리'가 좀 더 강했으며 여성들이 순결을 강요당했다는 말도
'어을우동'을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요즘, 호주제 폐지를 외치는 여성부와 그 밑의 남성들은 "오천년간 여성들의 억압만을 받아왔다"고 떠들면서
"단지 몇 백년 조선시대에 있었던 여성 억압을 현대까지 이어오랴?"라고 항변하는 모양이나
이는 삼척동자라도 금방 알 수 있는 자승자박의 논리일 뿐이고
스스로 사학적, 논리적 오류를 만드는 것임에 불과하니
아이러니라 아니할 수 없겠다.
반대 눌러놓고 반박 덧글은 안 다시는 분들은 인격 수준과 두뇌 활동 수준이
어린애 수준이라고 보겠습니다.
욕과 비속어, 인신비하성 발언시 즉시 사이버 수사대에 신고 조치하고 고소할 것입니다.
글을 쓰기에 앞서, 7월 9일 공개변론은 아무런 의미도 없이 끝났다.변호사들의 태도는 눈 뜨고 봐 줄 수 없을 정도로 대책없이 성의가 없었고
그 재판정에 참여한 몇몇 여성들의 태도 역시 봐 줄 수가 없었다.
이번 변론이 완벽한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토록 나라의 일에 관심이 없는 변호사들의 태도와 변함없이
이기적이기만 한 '한국형 페미니스트'들의 행태를 보며 나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이기심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논리로
같은 이기심과 폭력으로 대응하면 나 역시 그들과 다를 바가 없으므로 이렇게,
나는 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올바름을 얻으려 한다.
한국형 페미니즘(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하고 이기심 있는 페미니즘)의 시작은
"오천년간 한국 여성들은 억압만을 받아왔고 이제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여자도 기를 펴고 살아야 한다."
라는 복수로 가득찬(?) 논리로 시작한다.
한국형 페미니스트들의 말로는, 반만년 한반도의 역사는 '여성 억압의 역사'라고 하는데
이러한 말은 '언어도단'이라는 것을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혹시 드라마 '선덕여왕'과 '태왕사신기'를 본 적이 있는가?
드라마에서 보면, 여성들이 제사장의 역할을 맡는 것으로 나오는데 실제로 역사서를 뒤져보면
삼국 시대까지는 '고대 모계 사회'의 흔적이 남아있어 삼국시대에는 여성들이
제사장을 역임했고 제례를 주관했다고 나온다. 이들의 권력은 부족과 각 군단의 대장과
맞먹었다고까지 전해지니 여기서부터 '여성 억압 시대' 라는 말은 '근거없는 허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신라시대에는 진덕, 선덕, 진성 이 세 명의 여왕마저 존재했으니 여성도 권력을 누릴 수 있었다는
것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뿐인가? 선덕 여왕은 세 명의 남편을 두기까지 했고, 신하들이
선덕 여왕을 위해 남편을 여럿 두는 제도까지 만들었으니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최초의 화랑마저 여성이었으니 이는 한반도의 여성들의 권리가 유럽을 비롯한 서구 문명과도
비교해 굉장히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증거들은 고구려에서도 나오는데 고구려에서 실시한 서옥제, 즉 데릴사위제 역시
남녀 평등을 넘어 여성들의 권리가 남성들을 뛰어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구체적
증거라 할 수 있겠다.
고려 시대에도, 겉보기엔 남성 우월주의 사회였지만 여성들의 발언권도 만만치 않아서
여성들도 호주가 될 수 있었다. 족보도 남녀에 차등을 두지 않고 나이순으로 기재했으며
결혼 시에도 여성의 집안의 위세가 더 크면 자식들이 어머니의 성을 따랐다고 한다.
'출가 외인'이니 하는 말은 고려 시대엔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이혼과 재혼도 다른 서구 문명과 대국(大國)에 비해 자유로워서 재력만 된다면
여성들이 재혼과 이혼을 했다고 전해지니 여성들이 억압받았다는 말은 거짓말인 것이다.
물론, 여성들을 그나마 억압했던 조선시대가 있긴 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외활동을 하는 남성보다는
여성의 '집안에서의 권리'가 좀 더 강했으며 여성들이 순결을 강요당했다는 말도
'어을우동'을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요즘, 호주제 폐지를 외치는 여성부와 그 밑의 남성들은 "오천년간 여성들의 억압만을 받아왔다"고 떠들면서
"단지 몇 백년 조선시대에 있었던 여성 억압을 현대까지 이어오랴?"라고 항변하는 모양이나
이는 삼척동자라도 금방 알 수 있는 자승자박의 논리일 뿐이고
스스로 사학적, 논리적 오류를 만드는 것임에 불과하니
아이러니라 아니할 수 없겠다.
-----------------------------------------------------------------------------------------------
반대 눌러놓고 반박 덧글은 안 다시는 분들은 인격 수준과 두뇌 활동 수준이
어린애 수준이라고 보겠습니다.
욕과 비속어, 인신비하성 발언시 즉시 사이버 수사대에 신고 조치하고 고소할 것입니다.
조회수가 말이 아니라서 재등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