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스. 어느 펑크 키드와 삶을 이야기하다

신한석2009.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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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스. 어느 펑크 키드와 삶을 이야기하다


 

 

 

 

인터뷰 일시: 10월 27일 저녁
장소:홍대앞 민들레 영토
인터뷰어: 김작가

 

10년을 맞은 한국 펑크의 역사에서 지금 누가 펑크 신의 기둥인가 궁금하다면 눈을 돌려라. 그리고 럭스를 보라. 펑크 스타가 아닌 펑크 밴드로서, 럭스의 역사는 한국의 언더그라운드 펑크의 행보와 그대로 일치한다. 펑크 신의 막내였던 그들은 세월과 함께 형님격의 연륜을 쌓았다. 그들이 세운 스컹크 레이블은 한국을 대표하는 펑크 전문 레이블로 자리 잡았다. 신촌과 홍대앞의 작은 지하실에서 시작한 스컹크 라이브 헬은 지금 옛날 드럭 자리에서 여전히 수많은 펑크소년소녀들의 땀을 연료로 주말을 태운다. 중학교 3학년때 럭스를 결성했던 원종희는 여전히 럭스의 멤버로 무대에 서고 스컹크 레이블의 대표로 펑크 앨범을 제작하고 있다. 삶과 음악이 완벽히 일치하는 몇 안되는 뮤지션, 럭스의 원종희를 만났다. 그와 함께 한국의 펑크에 대해서 얘기했다. 세상과 싸우고 부딪히면서 얻은 생각들을 들어봤다. ‘문제의 사고’ 그 전후도 물어봤다. 여기, 럭스의 음악에 담겨 있는 생각들이 삶의 언어로 길게 늘어서 있다.


럭스의 역사도 8년이다. 한국 펑크의 역사와 거의 일치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럭스는 왠지 원종희의 1인 밴드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멤버가 자주 바뀌어서 그런 것 같다. 요즘 멤버는 어떻게 구성돼있나.

 

베이스 치던 친구가 얼마전에 군대가서 또 2년을 기다려야한다. 드럼 치는 (조)상현이형이 있고, 예전에 캡틴 붓 보이스라는 밴드했던 농부(김동현)가 세션으로 기타를 치고 있다. 요즘 정식 멤버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는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멤버 교체가 잦았던 이유는 역시 외부적인 요인이 크다. 역시 군문제. 군대간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막상 갔다와도 우리 나라에서는 군대 갔다온 사람은 다르게 취급하지 않나. 이른바 나이값, 군대 갔다와서 한심하게 음악이나 한다는 소리를 듣게 되니까 밴드를 접어야겠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밴드가 오리지널 멤버로 계속 한다는 것 만큼 멋진 것도 없지만, 그만큼 힘든 것도 없다. 지금도 인생의 동반자로 있어줄 수 있는 멤버들을 동경한다.

 

럭스를 거쳐갔던 많은 멤버들 중 제일 오래 같이 했던 게 지금 게토 밤즈의 이주현이다. 그와는 계속 같이 하게 될줄 알았는데 어찌 보면 아쉬운 구석도 있다.


지금 와서 돌아보건데 내가 성격이 안 좋은가 보다. 고집이 세서 의견이 엇갈리면 싸우게 된다. 밴드는 네 명, 다섯 명이 뭉쳐서 할 때 진정으로 멋지다고 생각 하는데 의견이 엇갈린다고 탈퇴하는 지경에 간다는 건 결국 내가 통솔력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주로 어떤 부분가지고 많이 싸웠나.

어릴 때 갖고 있던 밴드의 원칙은 재밌어야 한다는 거다. 실력은 둘 째였다. 그러다보니 처음에 너무 연습을 안했다. 당연히 못한다는 소리가 나왔다. 그럴 때 다른 멤버들이 연습하자고 하면 우리가 연예인도 아닌데 재밌으면 되지, 고집하다가 싸우고 그랬다. 또 어린 여학생들이 보는 패션지에서 인터뷰 하자고 하면, 나는 이상한 잡지 나가서 바보 되느니 하지 말자는 입장이고 다른 형들은 이런 것도 해야한다고 얘기하고...그러다보면 아, 난 안해 이러면서 싸우는 경우도 많았다. 지금 함께 하고 있는 드럼 치는 상현이형을 내가 좋아하는 이유가 그 형은 나보다 그런 입장이 강경하다. MBC음악캠프 같은 경우도 우리 출연에 대해 형이 적극적으로 반대했었다. 문자 메시지 10개 넘게 ^^;; 이런거 써서 보내가면서 정중하게 나오는데 우리가 뭘 잘났다고 뿌리치냐 이렇게 설득했지만 형은 안나갔다. 결국 활동 노선 때문에 트러블이 많이 생기는 셈이다.

 

럭스. 어느 펑크 키드와 삶을 이야기하다



성장통이 남긴 것, 그리고 한국 펑크의 내면

 

예전엔 당신이 강경입장이었다면 지금은 온건해졌다. (웃음) 8년 동안 럭스라는 밴드가 조금씩 커왔고 당신도 나이를 먹었기 때문일텐데 지금의 활동 노선은 어떤건가.


밴드가 스타일 구겨지지 않고 자존심 안상하고 기분 좋게 공연할 수 있다면 어디서든 공연 할 수 있다. 하고 싶었던 말 그대로 전달되면 어떤 인터뷰를 거절하겠나. 어릴 때 보면 ‘텔레비젼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이런 노래가 있듯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나가게 되면 왠만한 곳에서는 자기 의도와 상관없이 밴드의 모습이 왜곡되서 나오니까 활동 노선을 조이게 될 수 밖에 없다. 선진국의 경우, 가장 밑바닥에서 자신의 역량과 에너지를 유지한 채 조금씩 활동하면서 이름을 알리고 유명세를 탈 수 있는 바탕이 깔려 있지 않나.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인디 밴드하면 골방에 쳐박혀서 라면 먹으면서 기타 연습하는 초라한 이미지가 있다. 인디, 오버 또는 마이너, 메이저가 연결되지 않고 서로 갈려있다는 게 문화적 수준이 아직은 낮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MBC음악캠프는 이 땅 펑크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웃음)


그런 기회가 사실 한국이 문화적으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커졌다는 거다. 그런데 애기가 기다가 갑자기 뛰면 넘어지지 않나. 너무 급하게 이뤄지다보니까 방송 경험 한 번도 없는 밴드가 친구들까지 다 데리고 나와서 공연을 했으니. 대통령이 퍼레이드 하는데 다이너마이트 들고 가는 것처럼 위험했던 것 같다. 쌈지사운드페스티벌 같은 공연도 한달 전부터 계약서 쓰고 차분히 하나하나씩 책임관계 및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는데. 계약서 한 장 없이 4일전에 섭외되서 생방송에서 공연을 했던 게 단계의 논리로 보자면 너무 빨랐던 게 아닌가 한다. 우리한테도, 방송국한테도.

 

사건 이후 공식석상에 처음 모습을 나타낸게 10월의 쌈지사운드페스티벌이었다.

럭스는 공연을 계속했다. 쌈싸페 전에도. 근데 뭐가 비공식이고 뭐가 공식 무대인지 모르겠다. 쌈싸페가 항상 공식이었나? 언론사가 오면 공식이고 아니면 비공식인가. 사람 수가 천명 이하면 비공식이고 이상이면 공식인가. 그런 생각에 언제나와 똑같은 마음으로 공연을 하려 노력했다. 관객들도 똑같은 반응을 보여줘서 고마웠다. 2004년과 똑같이 재밌게 했는데 바뀐게 있다면 그 때는 앞 순서, 사람 없는 시간대에 공연을 했는데 이번에는 무슨 메인 밴드처럼 섰던 것 정도다.  만약 방송사고로 인해 그런 변화가 생긴거 였다면 탐탁치는 않지만 작년에 했던 공연이니까 올해도 멋있게 하자, 했는데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반응해주고. 그리고 공연 시작 전에는 계속 공연장 옆 부스에서 스컹크 관련 상품도 팔고 사람들이랑 많이 부딪히고 했다. 다행히도 돌던지는 사람은 없더라. (웃음) 사실 인터넷으로 나쁘게 얘기하던 사람들이 직접 와서 얼굴 쳐다보면서 같이 얘기 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는데 아무도 없더라. 대신 원래 우리 밴드를 지지해주던 친구들이 그대로 와서 힘내라고 격려해주고. 고마웠다.

 

아무래도 문제의 ‘그 사건’을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노출사건이 잘했다, 못했다 여부를 떠나서 대중들의 관심사는 그게 생방송인지 몰랐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거였다. 펑크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모르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명확히 해야할 게 있다. 나는 생방송인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친구들은 몰랐다. 일단 TV를 안보고 사는데 생방송인지 녹화인지 어떻게 알겠나. 내가 친구들한테 방송 출연에 대해서 설명할 때 대충하기도 했고. 방송은 둘째치고 인터넷도 안하는 친구들이 내가 가자고 하니까 가면 보아라도 볼 수 있나 하는 식의 재미삼아 따리 온 거였다. 펑크친구들이 기껏 TV를 보더라도 디스커버리 채널 보면서 신기해 하는 정도지, 쇼 같은 건 안본다. TV뉴스를 봐도 대중들을 어떻게 요리할까 하는 감도 있고. 칵 크래셔라는 밴드가 있는데 그 친구들 노래에도 ‘차라리 눈 감을래’라는 구절이 나온다. 싫은 걸 보느니 눈감고 안보겠다는 마인드를 갖고 있는 거다.

 

하나만 더 묻자. 역시 네티즌들이 따지고 들었던 문제다. 앞에서 그런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는데 무대의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는 거다.
공연자로서는 당연한 게 아닌가. 우리 뿐만 아니라 다 마찬가지다. 럭스 무대 끝나고 다른 가수들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공연하지 않았나. 공연자에게는 공연은 계속 되어야 하는 마인드가 있는 것이다. 만약 공연하는데 불이 난다면 불을 끄는 것 보다 공연을 계속 했겠지. 그게 프로 아닌가.

 

그 사건이후 지옥의 시간을 겪었다. 남들이 평생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경험을 한거나 마찬가진데. 많은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안타까운 게 많았다. 예를 들어 기자들의 경우 딱히 악의가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자기네 매체를 조금이라도 팔기 위해서 관심있는 부분에 집중해야한다. 그런데 매체 판매량이 먼전가 인권이 먼전가. 기자들도 그런 생각을 했겠지, 하지만 윗선의 압박 때문에 사람의 프라이버시를 망치더라. 언론이 다루고 있는 이슈들이 당사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그 기사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을 좀 했으면 한다. 경찰서 근처에서 어떤 신문기자가 끝까지 따라와서 뒤에서 옷을 막 찢더라. 멱살잡고 싸울 뻔했다. 너무 집요해서 이성을 잃을 정도였다. 당신 뭐하자는거냐고, 왜 이 사람들 생각안하고 추한 장면만 골라서 찍는거냐. 사람이라면 생각을 하고 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그 사람도 “아는데, 아는데.” 이러면서...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인생이 있으니 상사가 ‘죽어도 인터뷰 따와라’ 이랬으니까 그랬지 정말 개인적으로 궁금했을까. 국민들의 알권리가 있는가하면 모를 권리도 있다. 만약 사건 하나로 헤드라인 크게 때렸을 때 그 사건에 묻혀 사라지는 다른 이야기들이 있지 않나. 무엇이 중요한지 언론이 선택을 해야지.

 

아무래도 관심이 많이 쏠릴 수 밖에 없는 사건이었다는 측면도 있었던 것 같다.
아니, 지금은 럭스 보다 오! 브라더스한테 관심이 더 쏠린 것 같은데. (웃음) 사실 주변 사람들이 많은 피해를 봤기 때문에 그게 참 힘들었다. 그 날 무대에서 불렀던 ‘지금부터 끝까지’가 노래의 의도와 상관없이 여러 국민들을 힘들게 했다. 여러 차례 얘기했던 거지만. 그런데 이 기사 나가면서 ‘럭스 원종희, 심경을 밝혔다’ 이런 식으로 가면 ‘오케이~ 아, 너무 하다’라는 심경이 될텐데.(웃음)

 

역시 마녀사냥 식의 언론때문에 제일 괴로워했다는게 느껴진다. (웃음) 여튼 그 사건이 생각이나 밴드 활동에 영향을 미친게 있나.
럭스 활동과는 상관이 없다. 다만 요 근래 럭스는 한국이 좀 더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펑크 밴드들 중에서는 럭스랑 다른 색깔을 갖고 있는 밴드들도 많다. 정리하자면 그 사건은 그런 밴드들의 색이 짙은 사건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런 밴드들을 싫어하느냐면 그렇지 않다. 반대로 그런 밴드들이 훨씬 멋있는 것 같다. 나는 인터뷰 하면서 대화를 하려고 하는 편이지만 ‘아오, 이야기는 질렸으니까 다 좃까라. 결론은 똥이다’ 이렇게 말도 안되는 꼴로 끝내는 밴드들 말이다. 사실 말로는 되는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름대로 내 생각을 남들에게 얘기 하기 위해서 한단계 밑지고 다가가고 싶어하는 게 럭스 음악이고. 반면 자존심에 털 끝 하나 안건드리고 활동하는 밴드들이 있고.

 

말이 세상을 바꾸지는 않지만 ‘똥이다’ 하고 가만히 있어봤자 역시 바뀌는 건 없다.
어차피 장황하게 두 세시간 설명해도 바뀌지 않고 쌍퍽큐 날려도 바뀔 것 없으니까 난 쌍퍽큐 하겠다, 이런 마인드를 가진 밴드들도 있다는 거다.

 

하지만 이런 식의 이야기들이 최소한 하나둘씩의 동조자는 만들 수 있지 않겠나. 안경낀 모범생이 갑자기 머리 세우고 나타날 수도 있고.
원래 펑크 뮤지션들이 꼰대를 능가하는 꼰대들이다.(웃음)  펑크를 퍼뜨리겠다는 생각이 없는 밴드들이 많기 때문에 럭스의 원종희가 최대한 알아듣도록 얘기한다고 해도 아마 펑크들중 과반수는 내가 하는 이야기를 인정하지 않을 거다. 그런데 인정하지 않는 쪽이랑 더 친해지고 싶다. 고개 끄덕거리면서 응, 그래? 괜찮네. 하면서 따라오는 사람 보다는 솔직히 그건 아니다 하는 사람들이 더 재밌지 않나. 세상이 획일적이라면 살아있다는 느낌이 날까.  ‘모두가 아니오할 때 나는 예라고 합니다‘라는 광고가 있듯이. 모두가 아니오 할 때 ’예‘라고 하고 싶다. 이 사람이 노란 색, 저 사람이 파란색 얘기를 했을 때 보라색, 핑크색 가지각색의 얘기가 있을 때 바로 자유로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 뻑뻑하고 설득하기 힘든 나쁜 면은 있을지 몰라도 제각기 틀리다는 게 인정이 되고 서로의 말을 인정해줄 수 있는 모토가 있어야지. 사람이 기계랑 다른 게 다양성 아닌가.

 

사실 우리나라에 극렬 펑크? 아무튼 극단적 허무주의 성향을 보이는 펑크가 나타난 건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펑크가 오래됐다고는 말 못해도 정착했다고 할 수 있을만큼의 시간은 된 것 같다. 펑크 출신의 유명 밴드도 많이 배출이 됐고. 그 이름 때문에 펑크가 좋아 모인 친구들이 많았다. 그들이 무슨 얘기를 하겠나. 꼰대 보다 더 꼰대 같은데. 이거 최고다 이러면서 생각을 하나로 모으지 못한다. 그게 펑크 밴드의 유니티이자 메리트다. 그러다보니 펑크 밴드들도 가지각색으로 다양해진거고 그 중에 몇몇은 펑크 중에서도 진짜 펑크다. 펑크들이 봐도 저 밴드랑은 같이 못하겠다 싶을 정도다. 예를 들어서 공연 스케줄을 잡아도 안올 가능성이 높다. 빵꾸 내놓은 다음에 미안하다, 이래버리는 게 자연스럽다. 펑크 밴드로서 펑크가 뭔지 고민하면서 사상을 완전 무장해버린 밴드들. 그런 밴드가 좋다. 사실 그게 진짜 펑크니까. 나는 그 정도로는 못하겠다. (웃음)

 

럭스. 어느 펑크 키드와 삶을 이야기하다



럭스와 스컹크, 그 성장의 역사

 

그들도 집에서는 나름대로 얌전할 수도... (웃음) 당신이 펑크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6학년때까지 미국에서 살았다. 큰아버지도 미국에서 살고 계셨는데 사촌 형이 펑크 밴드를 했었다. 그때 매료됐다. 그냥 음악이 아니라 화난 걸 표출하는 음악이었다. 안 그래도 화난게 많았었는데 멋있었다. 미국 처음 갔을 때 영어 못한다고 놀렸던 애가 아무도 없었다. 미국인 학교였는데 딱 두 명이 놀렸다. 둘 다 한국인이었다. 그래서 충격을 많이 받았다. 나랑 똑같이 한국말 할 줄 아는 애들인데 왜 나를 놀릴까. 화가 났었다. 알고보니까 그들의 부모님이 한국인이라는 열등감이 엄청 센 사람들이었다. 한국인임을 쪽팔려하더라. 어린 마음에 그게 화가 났었다. 나는 쟤들과 다르게 머리도 크고 키도 작고 그런데 똑같이 머리 크고 키 작은 한국인끼리 뭉치지는 못할망정  나를 놀리는 걸까. 그런 와중에 형이 펑크 밴드를 하니까 멋있었던 거다.
그러다가 한국와서는 또래 친구들이랑 똑같이 살았다. 그땐 듀스도 좋아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친구중의 하나가 내가 비트박스를 하는 걸 보고 비트감이 있으니까 드럼을 쳐보라고 해서 음악을 시작했다. 드럼을 치기 위해서 핫뮤직 잡지를 보는데 맨 뒤에 성수동 이벤트 스튜디오 광고가 있더라. 거기서 요즘엔 중학생도 음악하냐더니 드럼을 가르켜줬다. 그리고 중 3때 학교 친구들 끼리 럭스를 시작했다. 그 친구들은 다 일류 대학 가서 잘 살고 있다.

 

처음에 드럼을 치다가 보컬로 전향하게 된 계기는 뭔가.
그 때 보컬이 없어서 내가 하게 됐다. 그러다가 친구들이 다 공부해야한다고 음악을 관두고, 그래서 뮤직비디오 감상실 백 스테이지 앞에 ‘럭스라는 밴드입니다. 기타, 베이스, 드럼 구합니다’ 광고를 냈다. 그 당시 자살매미라는 밴드가 있었는데 드럭에서 한번 공연하고 연습 더 하고 오라고 잘린 상태였다.(웃음) 그 밴드 멤버들이 싸그리 다 럭스로 들어왔다. 그 때 멤버들 중 주현이형도 있었고.

 

럭스의 이름이 알려진 클럽이 하드코어였다. 이대앞에 있다가 지금은 사라진 펑크 전문 클럽. 럭스 데뷔도 하드코어였나.
그 때는 하드코어가 없었다. 스팽글이라는 클럽에서 시작했다. 껌엑스가 드럭에 들어가던 해였다.

 

럭스는 하드코어에서 활동하던 친구들과 함께 98년 스컹크 레이블을 만들었다. 그 때만해도 인디 레이블이 거의 없던 때였고, 있다해도 최소한의 자본이나 시스템을 구축해야 가능한 줄 알았던 때였다. 그 때 스컹크는 기존 인디 레이블과의 교류도 없이 그야말로 순수하게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펑크 소년들끼리 설립했다는 점에서 신선했다.

앨범 내주는 데가 없다보니까 우리끼리 내자 만든게 스컹크였다. 위에서는 기획사 만들어서 지들끼리 지지고 볶고 하니까 거기 끼지 말고 우리끼리 지지고 복자는 마음이었다. 하드코어에서 같이 하던 친구들이랑 시작해서 레이지본등이 껴서 ‘우리는 한 마음’이라는 테이프를 냈다. 카세트 녹음기로 녹음해서 만든 테이프였다. 사실, 처음에는 레이블도 아니었다. 그런데 야금야금 하다보니까 CD도 찍었으면 좋겠는데 그러려면 사업자 등록증 내야하고, 또 그러려면 세금 내야하고, 세금 내려면 바코드 찍어야하고, 그러다보니 이왕 이렇게 해놓은 게 유통도 해보고 싶고, 그 와중에 여기저기서 치이고 그러다보니 대안을 만들게 되고, 그래서 온라인 샵도 만들고 도매처도 생기고. 이렇게 야금야금 해나가는게 재밌었다.

 

스컹크 레이블에서 지금까지 몇 장의 앨범을 제작했나. 그리고 제일 보람있던 음반은 뭔가.
부터 최근 럭스 라이브 앨범까지 15장을 냈다. 보람...음, 역시 3000펑크가 최고였다. 보람 100%였다. 아직 고등학생일때였다. 당시 활동하던 거의 모든 펑크 밴드가 참가했었다. 역시 녹음은 조악했지만 메이저 레코드 엿먹으라는 생각으로 만들었었다.

 

엿먹일 의도였다니, 어떤 점에서?
이런거다. CD값이 만원쯤 할 때였는데 너무 비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3000원에 찍어서 상도를 다 어기겠다는 의도였다, 말도 안되게 초 로우파이로 만들었던 것도 잡지 보면 양복입은 사람이 다리꼬고 앉아서 ‘2년동안 몇억들어 만들었고..’ 운운하는게 꼴보기 싫었다. 그래서 음악하는 사람들끼리 뭔가 해보자, 해서 우리끼리 벌린 게 였다. 배추값도 그러지 않나. 실제 농민들은 배추 하나에 30원 받고 트럭 운전사는 서울에서 3천원에 팔고, 슈퍼 아줌마들은 5천원에 사고, 배추 만드는 사람들은 농민들인데. 음악을 하는 건 밴드들인데 1만원의 가격에 팔리기까지는 뚱딴지 같은 사람들이 개입이 되니까. 이게 고2때 생각이었다. 8년이 지나보니까 그 뚱딴지같은 사람들이 뚱딴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스컹크의 비즈니스는 어떤가. 인세나 계약서같은 이른바 뮤직 비즈니스의 기본적인 요소들이 존재하나.
계약서는 꼭 쓴다. 친구끼리라도 일은 확실히 하는 게 좋다. 그리고 계약서를 썼으면 서로 어김없이 하려고 노력한다. 하다보면 친한 친구라도 핀트가 어긋나서 친구관계를 망칠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 복잡한 문서가 오가는 건 아니고 앨범 팔리면 1:1로 갖는다, 앨범은 어떤 식으로 언제까지 찍는다, 저작권을 비롯한 다른 권리는 밴드에게 있고 레이블은 음원 사용시 사전 양해를 얻는다, 이런 기본적인 도리들만 명시한다. 소속 밴드 계약은 전혀 의미없는 것 같아서 안하고.

 

지난 해 초 스컹크가 옛날 드럭 자리로 옮겼는데, 장사는 잘 되나. (웃음)
찔끔찔끔 펑크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계속 생긴다. 그리고 찔끔찔끔 졸업하는 사람들도 있고. 졸업한 사람들을 보면 보람되기도 한다. 한 1년에서 3년 정도 펑크로 살다보면  세상에 대해 관대해지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 선입견도 없어지고. 워낙 극단적인 환경에서 살다보니 그럴 수 밖에 없지만(웃음). 펑크를 좋아하던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자기 자동차 긁어놨다고 ‘어떤 개새끼야!’ 이러는 게 아니라 ‘젊은 애들 객기에 이랬구만’ 웃음으로 넘기고 끝낼 수도 있는 거고. 20-30년 지나면 할아버지들이 닭머리 보면서 야, 우리가 젊었을 때는 최소한 20센티는 되어야 닭머리다. 이럴 수도 있을 것 같고.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세상이 살만해지지 않을까 싶다. 지난 6월에 럭스 단독 공연할 때 일이다. 공연이  끝나고 어떤 부부가 오더니 럭스를 8년전부터 알고 좋아했는데 지방에서 이 공연 보려고 왔다며 계속해서 변하지 않는 모습 유지해달라고 하더라. 싸인이나 사진 찍는 걸 싫어하는데 그분들 요청은 거부할 수가 없더라. 결혼도 했고 지방에서 차타고 부인이랑 올라와서 그러시는데.

 

펑크 밴드는 다른 인디 밴드들과 달리 음악으로 먹고 살겠다, 락스타가 되겠다는 생각이 없는 밴드가 없어 보인다.
확실하게 갈라진다. 음악으로 먹고 살겠다는 몇 밴드가 있고 그게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는 밴드가 있다. 음악으로 먹고 산다는 것 자체가 멋이 없다는 경우가 있는 반면,  음악으로 먹고 사는 게 도저히 말이 안되는 현실이니까 다른 일 하면서 돈 벌어 그 돈과 시간으로 음악에 투자하겠다는 사람도 꽤 많다. 상현이형도 그렇고. 나는 어찌어찌 하다보니 스컹크 레이블에 보통 발을 들여놓은게 아니라서 그렇게 못한다. 개인적으로 에피탑 레이블을 만들었던 배드 릴리젼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들이 에피탑을 성장시키고 수많은 펑크 밴드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음반 내고 활동 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는 게 좋았다. 내가 럭스와 스컹크를 병행하는 이유다.

 

인디 레이블 대부분이 적자를 면치 못한다고 알고 있다. 스컹크의 경우는 괜찮은가.
흑자다. 한달에 내가 먹고 자고 할 정도, 그리고 새로운 음반 찍을 수 있을 만큼은 된다. 작은 눈뭉치를 계속 굴리다보면 커지듯 그런 식으로 스컹크도 굴려왔던 것 같다. 50만원 투자해서 테입을 찍어서 다 팔았더니 80만원이 돼서 CD를 찍어 팔고, 조금씩 그런 식으로 돌고 있다. 그러다보니 스컹크헬 클럽이 생겼고, 클럽이 있으니 대관공연도 많이 잡게 되고. 월세가 보통 빡센게 아니라서 장난식으로는 못하겠더라.

 

월세 안 밀릴 정도면 그래도 성공한 사업가다. (웃음)
사람이 살면서 빚만 안져도 성공한다고 하는데. 빚은 안지려고 끝없이 노력할 거다. 나중에 이럴지도 모르겠다. 원종희라는 사람이 30년동안 빚을 안졌다는데, 그래봤자 ‘저는 돈을 안 썼습니다’가 전부겠지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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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일주의를 거부한다

 

사업을 하려면 세상 돌아가는 것도 관심이 많아야 하는데...(웃음) 뉴스는 좀 보는 편인가.
원래는 잘 안봤었는데 방송사고 이후 좀 보게 됐다. 그래도 대부분은 관심이 없는 편이다. 구체적인 사건을 접했을 때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 최근에 맥아더 동상 철거를 시도하는 사람들을 전경이 때렸다는 걸 집중적으로 보도하더라. 맞다가 맞다가 못버텨서 한 대 때린게 뻔한데 국가가 발언의 자유를 외치는 사람들을 칠 수 있는가 식으로 나왔다. 개인적으로 맥아더를 좋아하진 않지만 때를 알야야지. 동상을 넘어뜨린다는 건 미국에 대한 반감을 대놓고 부추키는 거 아닌가. 여중생 장갑차 사건이 있을 때도 그랬다. 당연히 잘못된 사건이지만 사건이 사건으로 끝나야지 왜 미군철수로 몰아가는지 모르겠다. 맥아더 동상을 보도하는 태도를 봐도 이 방송으로 대중이 철거지지자들을 옹호하려는 방향으로 몰고가려는 의도가 보였다.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하면 안된다고 본다. 한국을 자본주의 국가로 만들어줬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데.

 

의외의 발언이다. 당신은 자본주의를 지지하나.
펑크 밴드들은 현실에 대한 불만을 나름대로 자기 생각으로 만들어서 외친다.  그런데 섹스 피스톨즈가 무정부를 진짜 원했을까. 정부가 없으면 사람들은 카오스 상태에서 때리고 총쏘고 다닐거고, 그러다보면 강자가 약자위에 군림할 거고, 그렇다면 공산주의로 살거냐, 초반에는 이상적으로 시작하겠지만 결국 성악설을 확인하게 되고 그게 에러였다는 걸 수도 없이 많이 확인을 했다. 그러다보면 선택할 수 있는 게 몇 개 없다. 그나마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현실에서 이상적인 체제라 생각한다. 아나키즘, 한 번쯤은 생각해볼만한 이야기다. 무정부주의도 외쳐봤고 허무주의도 생각해봤지만. 세상이 이래야한다 생각했던 사람이 자본주의체제 안에서 번만큼 벌고 쓸 수 있는게 다행이라는 결론에 다다른 상태에서 일을 하며 살아간다면 좀 더 뿌리 있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젊은이들이 자본주의 국가에 살고 있다는 분명한 생각없이 산다면 내가 왜 사는지에 대한 생각을 안해봤다는 얘기겠지만.

 

그러나 현실에서는 일한만큼 벌고 쓴다는 게 간단하지 않다. 특히 미국식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 나라에서는 병폐도 많이 드러나고 있다. 
한국은 자본주의 초보국가가다. 겨우 50년 밖에 안된다. 전세계 역사상 정말 짧은 시간에 발전했는데 미국에게 대놓고 도움을 받는 것도 아니고 외부에서 보기에는 놀라울만한  위치까지 왔다. 펑크 밴드가 TV에 나와서 방송사고칠 수 있을만큼 급진적인 발전을 했으니까 말이다. 너무 빨리 성장하다보니 여기저기서 넘어지는 과정에서 병폐가 드러난다. 이랬다! 하면 사람들이 와 몰려가고, 저랬다! 하면 또 몰려간다. 한번 넘어질 때마다 고쳐진다면 빨리 아물고, 빨리 성장할 수 있겠지.

 

이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낙관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 펑크 맞나.(웃음)
부정의 끝까지 가다보니 긍정이 된것 같다. 다른 펑크들이 그렇듯 나도 사회를 비관적으로 바라봐 왔는데, 8년이나 비관적으로 바라보다보니.... 그러다보면 자살해야 하잖나.(웃음) 그래도 자살까지 하고 싶지는 않고, 이게 어디야 하게 되더라. 만약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전세계 최강국의 테두리에서 안전하게 살까싶은데 생각해보면 그럴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한국인 입장에서 니가 양키냐 소리 들으면서 살고 싶지도 않고. 한국의 실정을 보면서 나쁜건 조금씩 고쳐가겠지, 나도 도움이 되야지 생각하게 된다. 한국 사람을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한국인이니까 내가 좀 낳아지기 위해서, 한국이 좀 멋있어지기 위해서 내가 록 뮤지션으로서 할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를 고민해야할 것 같다. 나라가 안정되면 나한테 다 돌아오니까. 문 닫고 한국은 이래서 안돼, 이래봤자 달라질 게 없다. 그러니까 나는 펑크 밴드로서 이런걸 노래해야겠구만! 하면서 노래하고. ‘지금부터 끝까지’가 그런 노래다. 떡볶이 장사하는 아줌마도 내 떡볶이는 어디 떡볶이 보다 맛있게 하겠다는 긍정적 사고와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을 그린 노래다. 부정적 사고방식의 끝은 그냥 자신이 죽어버리는 건데 죽기는 싫다, 그러다보니 긍정적으로 돌아 왔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부정에서 긍정으로 유턴할 수 있었던 계기라도 있나.
펑크 밴드들을 아이러닉하게 표현하자면 정말 최악이다. 남들이 다 한다고 하면 무조건 안한다. 다 좋다고 하면 싫다고 하고, 싫다고 하면 좋다고 하고. 청개구리 그 자첸데. 수년동안 많은 동료 펑크밴드들이랑 지내다보니 모두 다 자기 현실에 불만을 품고 노래를 하는데 그렇다고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무작정 계속해서 욕만 하는 펑크 밴드들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면서 우리가 싸워야할 대상이 누군지를 고민했다. 멀찌감치서 바라보고 정권에 대해 부정적 노래를 했다고 했을 때, 알고보면 그게 정권의 좋은 의도일 수도 있지 않나. 그런데 오보가 나오거나 복잡한 사연이 있어서 그렇게 비춰 질 수 도 있는건데 우리가 궁시렁 대봤자 좋을게 없다는 결론도 나오고. ‘짭새 꺼져라’ 했는데 또 펑크 밴드들 중에 의경 출신들도 많더라. 그렇게 생각하면 경찰 욕할 것도 없고. 매스컴 좃까라 하고 싶은데 그건 컨셉일 뿐이지. 좋아하는 형이 매스컴에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런 문제들이 현실로 다가오니까 우리가 욕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다들 직업을 갖고 살고 있으니까. 펑크밴드들이 욕해왔던 내용이 결국 내 인생 꼬인걸 남탓하는 꼴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많이 하게 됐고.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선택한다면 어느 쪽인가. 여태까지 말한걸로는 왼쪽보다는 오른쪽에 가까운 것 같다.
그렇지 않다. 왼쪽도 아니고 오른쪽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까놓고 생각해봤을 때 독도 문제같은 걸 다룰 때 언론에서 반듯한 행정처리는 요구하지 않고 민족주의만 부추키는 걸 보면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러다보니 심지어 조그마한 분식집에서도 일본인에게 음식을 팔지 않는다고 써 붇일 정도 아닌가. 그렇게 해서 뭐가 좋을지를 생각해보자. 감정적으로 흘러가게 하는 보이지 않는 손들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한다. 하나의 사건을 자꾸 정치적으로 키우는 거 말이다. 그런 식으로 감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건 경계해야한다.

 

특정 논리나 주장에 의해 한 쪽으로 휩쓸리는 걸 경계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으로 들린다.
다른 나라에서 한국에 얼마나 관심이 있을까. 민족주의가 극단으로 치닫다가 최악의 결과가 나올 경우 바깥에서는 ‘50년밖에 안된 나라가 어떻게 하다가 없어졌습니다’  이 정도로 밖에 안 될수도 있는 거다. 중심을 잡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객관적으로 바라봐야할 문제들이 많은데 오히려 정치적으로 여러 가지로 불안한 모습이 많이 보이는 것 같다. 1년전에 고려대 반전토론회에 공연을 간 적이 있다. 초청받은 한 사람으로서 반전 토론회라고 해서 무슨 얘기를 할까 두근거렸다. 그런데 다 미군 철수 얘기하고 있고 다 부시 최악, 반전평화, 이미지 광고만 하고 있고. 70-80년대처럼 머리에 빨간 띠 매고 구호 외치는 모습 보는 것 같아서 실망 했다. 예를 들자면 담배 안 피는 사람들 100명 데리고 흡연의 폐해를 논한다면 그게 토론횐가. 시위지. 당시 앞의 밴드들이 “전쟁반대!” 라고 외칠 때마다 대학생들이 와! 하며 호응하는 모습도 한심한 것 같아서 우리는 무대에서 “저는 개인적으로 전쟁을 반대하진 않습니다.”라고 말을 시작했다. 실생활이 적극적으로 전쟁을 반대하고 있는 상황도 아니고, 실천적으로 뭘 하는 것도 아니니까. 다만 전쟁을 왜 반대하는지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근데 그 말을 하자마자 갑자기 우우~ 하는 야유와 함께 병이 날아왔다. 어느 할아버지가 나오더니 내려가라고 하더라. 받기로 한 출연료도 못받고 쫓겨나듯이 내려왔다. 토론회를 하려면 토론회 답게 했으면 좋겠다. 머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전쟁에 반대한다. 왜 반대하는지를 서로 얘기할 필요는 있다. 누군가는 그래도 전쟁을 한다. 그러면 그 사람들도 인간인데 왜 전쟁을 할까, 이런 걸 생각해야 대안도 나올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까웠다.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감정에 휘둘리다보면 10명중 7명의 생각없는 사람들은 그대로 따라간다. 다 노란 색 입었으니까 나도 노란 색 입어야지. 이게 사람 심린데 그걸 이용해서 몇 몇 사람들이 사회를 해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할 것 같다.

 

세상의 현상에 대한 이성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는 건데, 펑크야말로 사실 이성과는 거리가 멀지 않나. 어떻게 보면 가장 감정적인 라이프 스타일인데.
우리의 앨범이 그런 내용이다. 펑크의 컨셉은 감정적인거니까 럭스는 최고의 펑크 밴드가 되기 위해서 엄청 감정적인 밴드가 되야지, 생각하다보니  펑크가 하나의 컨셉이 될 수는 없다는 결론이 나오더라. 럭스라는 밴드가 펑크 밴드인걸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펑크 밴드기 위해서 감정적이고, 카메라에 퍽큐해야하고, 사람들을 때리고 다니면 안된다는 생각이다. 옳고 그른 걸 떠나서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럭스. 어느 펑크 키드와 삶을 이야기하다


 


펑크는 신념이다. 하지만 신념이 우정을 가로막지는 않는다

 

생각이 참 많다. 그런 생각들을 다 노래로 만드는거겠지. 노래 만들 때 특별한 노하우같은건 있나.
길가다가 떠오르는 악상들로 주로 작곡을 하고, 여태까지 말했던 여러 생각들을 집어넣는다. 악보 쓸 줄도 모르고 기본이 없으니까 어렵지 않겠냐는 질문을 많이 받긴 한다. 형사들이 “너희들 그렇게 모르는데 음악을 어떻게 만드냐.” 그러더라. (웃음). 자기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이건 아니다’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기가 모르는 건 가짜라는 식으로. 형사들도 조사 과정에서 우리 문화를 이해 못하더라. 왜 돈 안받고 음악을 하냐고. 모르는 건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게 진정한 우익이라고 생각한다.

 

종교집단처럼 봤겠다.
종교를 싫어하는 펑크 밴드들이 대부분인데 크리스찬도 몇 명있다. 펑크는 종교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믿는다는게 맞는 것 같다. 이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철부지 같은 생각으로 시작해서 어떤 단계까지 가면 세상에 믿을 사람은 나 밖에 없다는 굳은 의지가 생긴다. 만약 종교라면 자신을 믿는 종교겠지.

 

말하자면 굳건한 신념으로 살아간다는 거다. 그래서 펑크를 설명하거나 이해하기도 어려울테고. 신념을 지키면서 살기엔 현실에서 부딪히는 게 너무 많으니까.
신념을 만들기도 힘들다. 신념이 없는 사람들도 안타깝게 많지 않나. 자기 중심을 갖고 산다는 게 물론 힘들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할 필요가 있다. 그런 사람들이 많으면 서로 윤택해지지 않을까.

 

자신만의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파시즘이나 어느 한 쪽으로 휩쓸리는 사회 분위기도 약해질 것이다. 그런 면에서 펑크의 기본적인 성향이란 아나키즘이니 뭐니 다 떠나서 결국 모든 종류의 파시즘 거부에서 나오는 것 같다.
그렇지도 않다. 일본만 하더라도 우익 펑크가 얼마나 많은데. 자기 생각을 그냥 스트레이트 하게 얘기하는 게 펑크지.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다른 음악 장르들이 음악은 만들었는데 붙일 가사는 없고, 어떤 가사를 붙여서 노래 할까 생각하는 식이라면 펑크는 반대로 말은 해야겠는데 그냥 말하면 들어주지도 않고, 어떤 식으로 말할까 하다가 음악이랑 같이 말하자, 그게 펑크인 것 같다.  그런 친구들이 있으니까 우익 펑크와 좌익 펑크가 어깨 부딪히면서 술을 마실 수도 있고.

 

우리나라의 펑크들중에서도 우익 펑크와 좌익 펑크가 있다는 얘긴가. 좀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대부분의 펑크는 정치적으로 좌익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운동권 스타일로 구호 외치고 이런게 아니라 뭔가 부정적인 말들을 함으로써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스타일이다. 물론 우익 펑크들도 있다. 그러나 좌익 펑크와 우익 펑크, 함께 잘 어울린다.그래서 더 좋은 것 같다. 생각까지 똘똘 뭉쳐서 말도 똑같이 하고 한 부류가 되버리는 것 보다는 서로 다른 얘기하면서 어울리는게 낫지 않은가. 얘기하다보면 점점 목소리 높아지다가 그냥 넘어가고. 이런 식이다. ‘난 너의 그 얘기에 대해서는 안 건드릴 테니 내 생각도 건드리지 말아라, 근데 오늘 날씨 굉장히 좋네.’ (웃음). 생각은 다르지만 같은 펑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럭스. 어느 펑크 키드와 삶을 이야기하다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당신은 펑크이자, 홍대 언더그라운드 신의 일원이다. 8년 정도 이곳에 머무르면서 요즘 인디 신의 흐름을 어떻게 보나.
96-7년 한참 경제 호황기 시절에 클럽이 뜨지 않았나. 1단계, 배부르고 2단계, 등따시고 3단계, 놀아봐야겠는데 마땅히 놀 게 없던 그 시점에 인디 밴드, 하면서 뻥 튀어나면서 홍대앞 클럽들이었는데 IMF 겪으면서 다시 힘들어졌다. 그래서 3단계에서 2단계로 돌아가면서 다시 여자친구도 얻어야지, 직장도 다녀야지 하다보니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 것 같다. 홍대앞 클럽이  두 부류가 있지 않나. 록 클럽과 선진국형 나이트 클럽. 춤추는 클럽에 음악 들으러 오는 사람들이 어디 있나. 애인 만들고 하룻밤 같이 즐기고 할 원초적인 문화로 돌아가지 않았나. 그 사람들이 충분히 원초적인 걸 만끽하고 나면 다시 다양한 문화를 만끽할 것 같은데, 그러려면 나라 자체가 돈이 많아서 아버지들이 용돈도 많이 주고 그래야 재밌는 걸 보러 다니고 할 텐데, 쾌락도 충분히 만끽했으니 공연이나 보러 가자 하면서. 록 클럽이 침체가 된 건 다른 이유들도 있겠지만 청년층이 돈이 없다는 게 제일 큰 것 같다. 물론 댄스 클럽가서 작업을 해도 돈이 들지만, 그런 게 일상적으로 채워질 수 있는 정도의 소비 수준이 되면 굳이 클럽까지 안가도 될테니까.

 

인디 록 신 전체가 한동안 침체기였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펑크의 부침이 심했다. 인디 신 초기에는 가장 인기가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어느 순간 언더 중에서도 언더가 된 느낌이랄까. 최근 스컹크를 중심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는 감은 있지만.
지금이 좋다. 더 이상 나빠질 게 없기 때문에. 원래 펑크가 배고프면서 부자 음악이다. 부자 나라에서 배고픈 애들이 하는 게 펑크 음악이니까. 그런데 한국이 지금 그렇게 부자가 아니기 때문에 펑크도 많이 시들해지지 않을까. 그러나 없어지진 않을 것 같다. 아마 한국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굳이 펑크가 아니더라도 젊은이들이 소란을 피울 거라 생각한다. 그 소란 안에서 여러 가지 다이나믹한, 우리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펑크의 대중적 인지도와 상관없이 신 자체는  많이 커질 것 같고. 물론 지금의 작은 신에 만족한다. 신이 커질수록 안에서 아웅다웅 싸우게 되고, 그러다보면 편이 갈라져서 티격태격 하는 시기가 온다. 그렇다고 70년대 영국 펑크 신의 역사를 리바이벌 하지는 않을 것 같고 한국적인 스타일로 펑크가 자리를 잡아나갈 것이라고 본다.

 

최근 동남아 펑크 신이 장난 아니게 활성화되고 있다고 들었는데, 실제로 어떤가. 펑크들은 예전부터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으니 잘 알 것 같다.
한국이랑 섭취해온 수용 방식이 100% 틀리다. 그 동네는 펑크가 너바나나 그린데이 때문에 알려진 게 아니다. 즉 오버에서 언더로 내려간게 아니라 언더에서 언더로 넘어간 경우다. 그러다보니 선동과 정치성향이 강하다. 중국도 지금 그런 식이고. 말하자면 펑크가 일종의 민중 가요 개념이다. 그쪽도 나름대로 꽤나 바람직한 펑크 신이 형성되고 있다고 본다. 멋있는 밴드들이 많다. 팬진도 활발하게 나오고.

 

마지막 질문이다. 어떻게 사는 게 올바른 삶일까.
굳이 뭔가 말하자면... 사람들은 다 똑같은 사람들일 뿐이다. 살아가면서 다른 걸로 대리만족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맨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악플이나 달면서 스트레스 풀고. 잘사는 사람들 보면서 부러워하고, 연예인들 동경하고, 이러는 게 아니라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랑 뭔가 자꾸 만들어 가면서 각자 개개인들이 자신의 소박한 삶을 멋지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다. 자신에 대한 긍지를 갖고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고. 개개인도 다 연예인들이랑 다를꺼 하나도 없는 똑같은 사람들인데 멀리서 보고 ‘와, 연예인이다’ 하면서 쫓아다니지  않았으면 좋겠다. 멀리서 봤던 그 사람이 가까이 가면 그 자리에 없으니까. 스스로 봤을 때 인생이 힘들고 답답하고 초라할지 몰라도 언젠가 좋아질거라는 생각으로 자기 스스로가 더 낳아지려고 노력했으면 한다. 너무 긍정적인가... (웃음)